과정의 아름다움 ; 채지윤의 확장된 칠기조형 페이지 정보 작성자 고영재 작성일20-09-28 14:09 조회1,708회 댓글0건 관련링크 이전글 다음글 목록 본문 체지윤 개인전 '몽요담-생각이 흐른다'. 2019. 오브제에 목칠, 자개 과정의 아름다움 ; 채지윤의 작품세계 예술가들에게 시간의 개념은 남다르다. 예를 들어 한 시간 동안 그림을 그리려면 적어도 한나절 동안은 방해받지 않는 온전한 자기 시간을 가져야 한다. 그저 멍하게 흘려보내는 듯한 그 시간동안 의도치 않은 생각을 길어 올리기도 하고, 무수한 사유의 단상들을 지우고 다시 구축하는 과정에서 작업의 본격적인 에너지를 발견하기도 한다. 창작을 위한 전처리, 즉 생각과 발견의 과정 그 모두가 이미 창작의 시간이기에, 예술은 자유로운 한편 주어진 정답이 없는 어려운 숙제가 아닐까 싶다. 고정불변의 정답이나 메시지가 아닌, 각각의 경험에 의해 도출되는 다채로운 삶의 단편들이 그 작품세계 안에서 자유롭게 오가기를 바라는 채지윤은 그동안 전통 칠공예의 현대적 해석에 집중해 왔다. 작가는 시시때때로 변화하는 우리 삶을 반추하듯, 추상성을 띤 형상이나 시적 공간을 통해서 보는 이에게 열린 해석을 유도한다. 소재와 형식의 확장 ; 칠공예의 현대적 해석 학부와 대학원에서 공예를 전공한 채지윤은 초창기 작업부터 전통 칠공예의 재료와 형식적 실험에 천착했다. 생명력의 근원인 물의 상징성을 고찰하며 다양한 조형적 해석을 시도한 초기 작품에선 외과 의료용 붕대인 캐스팅 테이프(casting tape)와 함께 유리 섬유(fiber glass)를 이용해 백골을 제작, 그 위에 건칠을 올리는 기법을 사용했다. 또한, 면사로 뜬 손뜨개 레이스에 아교와 강화플라스틱(FRP)을 입혀 형태를 고정시킨 후 칠을 올리거나, 풍선에 의한 성형으로 무게중심을 이용한 오뚝이 형태의 구조물을 제작하는 등 작가는 과정상 오랜 시간이 소요되는 전통 칠 작업의 단점을 보완하는 한편, 시각적인 풍성함을 주기 위한 다양한 기법들을 고안한다. 당시의 작품은 대부분이 추상적인 형태로 물의 소용돌이나 무정형성, 물방울의 파장, 물에 의해 반사되는 색색의 불빛 등 유동성을 지닌 물의 이미지가 입체 구조로 시각화됐으며, 자개를 이용한 나전기법으로 인해 전통과 현대의 미감이 적절히 어우러졌다. 물이라는 자연의 생명력은 이후 작업에서 휴식과 명상으로 치환된다. 자연에서 오는 근원적인 생명력을 주제로 상상의 식물군을 만들어간 작가는 설치미술 형태의 <몽요담 夢妖談> 시리즈를 선보인다. 직역하자면 이상한 꿈 이야기인 본 연작은 2009년부터 현재까지 10년 넘게 이어지고 있는 작가의 대표작이다. “몽유도원도와 같은 전통 산수화에서 보여주는 이상세계를 상상 속의 식물과 현실적인 사물로써 입체화하고 싶었어요.” 작가의 표현대로 ‘자기만의 방’을 의미하는 이 설치 연작은 우리의 일상 안에 자리한 모든 사물과 더불어 자유로운 내면세계를 한데 담아내기 위한 고민의 결과물이다. 나아가 외부세계와 나의 구분이 없는 합일의 공간을 지칭한다. 채지윤은 기존의 면사 레이스 성형기법을 확대하여 새장이나 조롱박 형태의 상상 속의 기물과 식물을 제작하고, 기성품인 목재의자에 옻칠과 자개 장식을 더하여 몽환적인 공간을 연출했다. 짙은 흑갈색으로 구현되는 옻칠의 색감은 레이스의 가느다란 선과 투각 형태의 덩어리를 강조하며 작품 전반에 신비로운 느낌을 배가시킨다. 쓰임을 넘어 보통의 공예분야는 쓰임이라는 장르적 특성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채지윤은 간간이 화병이나 그릇 형태의 기물 작업과 함께 브로치 등의 쓰임새 있는 작품들을 선보였지만, 본인 작업의 주제를 실용 가치 안에서 부각시키는 의도가 다분했다. 무의식과 의식을 구분 짓지 않는 자유로운 세계, 혹은 자연의 흐름 그대로 인간 본성에 근거한 본질적인 삶을 꿈꾸는 작가는 버려진 나뭇가지 그대로의 형태와 색을 이용해 <소요 逍遙>라는 이름의 브로치 설치작품을 보여주는가 하면, 물질만능사회에서의 소유의 허상과 실상을 사과의 상징성을 빌어 집적된 형태로써 제시했다. 일상에서 가장 흔한 과일인 사과는 그 탐스러운 형태와 색으로 인간의 욕망을 대변하는가 하면 다양한 인간관계의 군상을 비유하기도 한다. 작가는 옻칠과 자개로 단장한 사과와 실제 사과를 수레에 실어 전시했고, 전시 기간 중 관람객이 사과를 먹는 행위를 통해 소유의 개념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이후 그는 소유에 반하는 행위로서 버려진 사물들을 수집한다. 2016년 작품전 <기록되지 않은 사물 ; 침잠의 시간>은 이사철이면 흔하게 버려지는 자개장롱에서 비롯된 전시이다. 귀한 혼수품으로 쓰였던 물건이 생활환경의 변화에 의해 구닥다리 물품으로 전락해버렸지만, 작가는 실용성이 사라진 이 기물에 새로운 호흡을 불어넣어 과거와 현재를 아우르는 시간성을 지닌 사물로 부활시켰다. 서랍과 장의 문짝과 같은 기존의 버려진 가구의 일부분을 옻칠과 자개로서 보수하여 새 틀에 끼워 넣는가 하면, 사각 형태의 거대한 장롱을 파편화된 설치작품으로 재구성하여 일종의 기념비적인 구조물, 혹은 의미 있는 사물로서 전시 공간 안에 배치했다. “낯익은 듯 낯선 사물을 응시하는 관람객에게 새로운 시각적 경험을 선사하고자 했습니다.” 작가는 쉽게 버려지는 물건에 대한 비판적 시선, 혹은 강요보다는 관람객 스스로 작품화된 사물의 의미를 읽어내고, 개별적인 경험 안에서 그것의 가치를 도출하기를 바랐다. 채지윤은 근작에서 시간성을 더욱 강조한다. 과정으로서의 지금에 집중하며 관조하는 삶에 대해 이야기한다. 개인전 <몽요담 - growing the knit>는 소재와 행위가 중심인 설치작품으로 퍼포먼스 형식이 가미된 전시이다. 작가는 칠을 올린 면사 레이스 구조물에 이어서 코바늘로 검은 실을 엮는 행위를 보여주는데, 전시기간 중에 관람객이 직접 뜨개질에 참여하면서 작품이 완성된다. 관람객은 단순히 반복되는 행위 그 과정을 오롯이 즐기면서 잠시나마 스스로를 치유하는 시간을 갖는다. “갈고리가 달린 바늘을 이용해 실을 엮어 가는 시간, 식물이 자라나는 시간, 그리고 칠을 먹여 형태를 유지하는 행위들은 저에게 같은 맥락의 것입니다.” 다양한 형식으로 작업의 확장을 시도해온 작가이지만, 작품의 결과적인 측면에서 칠 작업이 갖는 당위성, 혹은 그것의 존재감 따위는 무엇인지 사뭇 의문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채지윤은 작업을 수행해가는 시간, 그리고 하나하나의 과정이 살아 숨 쉬는 공예의 작업적 틀에서 작품세계의 의미와 가치를 발견한다고 말한다. 관람객이 작품에서 무엇을 느끼기를 바라는지를 물었을 때에도 작가는 이내 과정을 강조했다. “살아가는 데 불변의 진리나 정답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각각의 경험에 의해 달라지는 게 우리 삶의 모습이기 때문에, 자신의 내면을 산책하듯 제가 만든 작품과 공간을 통해서 다양한 질문들을 던질 수 있기를 바라봅니다.” - 고영재 (독립큐레이터, 전라도닷컴 2020년 10월호 ‘고영재의 작가탐험’) 채지윤 개인전. '몽요담-이상한 숲으로 들어서다'. 2009'. 가변설치 채지윤 개인전. '몽요담-소유한다는 거', 전시의 일부. 2013 채지윤 개이전. '몽요담-growing the knit' 퍼포먼스. 2017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이전글 다음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