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동신 양수아 ‘100년의 유산’ 전시와 숙제 페이지 정보 작성자 조인호 작성일21-01-09 13:12 조회2,138회 댓글0건 관련링크 이전글 다음글 목록 본문 양수아 <작품>, 1971, 한지에 수채, 유채, .62x62cm 배동신 양수아 ‘100년의 유산’ 전시와 숙제 2020.12.23-2021.04.18. / 광주시립미술관 본관 이제는 지나간 옛일이 되었지만, 광주시립미술관 배동신 양수아 ‘100년의 유산’ 전시를 보면서 이러저런 생각들이 스친다. 95년 정초 이맘때쯤에 덕산그룹이 광주역 앞 사옥(한국시멘트 빌딩)을 준공 이전하면서 건물 2층에 무등갤러리를 개설했었다. 갤러리 개관전으로 ‘양수아 회고전’을 열었는데 그게 나의 첫 전시기획이었다. 지역 미술사를 공부하면서 흥미가 높았던 분이고 아는 분의 추천이라 2달 정도 밖에 남지 않았지만 이것저것 따져볼 새 없이 일을 맡았다. 컴퓨터가 일반화되기 전이라 노트에 칸을 그려 현황표를 만들고, 물어물어 작품 있는 곳을 찾아다니며 병원, 은행, 개인주택 등에 걸려 있거나 소장 중인 작품들을 확인하고 모으고 다녔다. 민족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워낙에 상처가 깊은 분이었고, 모처럼 회고전을 열어드리려 하니 꼭 좀 작품을 빌려 주십사고 읍소를 거듭했다. 공적 자산으로 걸려있어 대여가 어렵다거나 주저하는 분도 있었다. 그래도 대개는 무등일보 신문사 사업이고 양수아 화백을 재조명한다는데 공감해 줘서 70여점 정도를 모았던 것 같다. 대부분 풍경을 그린 구상화들이었고 비정형추상 몇 점이 함께 걸렸었다. 미술전시에 맞지 않은데도 교체해 주지 않은 쇼-윈도우용 조명등 등 때문에 결국 개관식 도중에 갑자기 전원이 나가 식은땀 나는 일도 있었다. 하지만 그 전시를 진행하면서 양수아 화백에 대한 이해와 숙제가 좀 더 뚜렷해졌었다. 그 회고전 후속으로 단체초대전을 진행하며 일반 임시직원이 아닌 큐레이터로서 대우를 원했으나 회사 관계자로부터 마음 아픈 얘기를 듣고 일을 그만두었다. 당시 전시 팸플릿이고 어디에도 기획자 조인호는 명시되지 않았기 때문에 첫 기획전의 황망함은 그냥 혼자만의 씁쓸한 기억으로만 남았다. 그로부터 한 달 여쯤 뒤인 2월말에 덕산이 부도가 나 공중분해 되었으니 그 연말 연초를 낀 짧은 몇 달 사이에 참 별일도 많았다. 양수아 회고전이 진행되고 있던 어느 날 배동신 화백이 찾아오셨다. 그날도 낮술이 거나하게 취해 비틀거리며 계단 난간을 붙들고 사모님이 부축해서 겨우 올라오고 계셨다. 급한 부름으로 일보러 가던 중이라 그분께 전시를 안내하지는 못했었다. 양수아 배동신 화백은 1920년생 동갑네기 일본유학파로 장동 도깨비대학과 전일빌딩 뒤 오센집에서 명콤비를 이루었던 열혈 예술가객 동지였다. 고생만 하다 비운에 가버린 친구의 회고전을 찾아오는 감회는 많이도 착잡하셨을 거다. 그 이후로 지역 추상미술 역사나 앵포르멜 등과 관련해 양수아 화백에 관한 연구나 전시도 있었지만 숙제는 여전히 풀리지 않은 상태였다. 그래서 이번 광주시립미술관의 양수아 아카이브전에 거는 기대가 컸다. 더욱이 절친이었던 배동신 양수아 두 분을 나란히 함께 모셔 탄생 100주년 전을 마련한 것도 반가웠다. 이번 양수아 전시에는 27년 전 내가 회고전을 기획하던 때 보다 훨씬 많은 작품들이 자료들과 함께 소개되고 있다. 특히 가족이 보관해 오던 드로잉 자료들을 비롯해 좀더 많은 작품들이 채워진 것은 자제인 양승찬 관장의 꾸준한 노력 결실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계속 궁금해 했던 숙제는 풀리지 않는다. 강용운과 더불어 호남 추상화단의 선도자로 일컬어지지만 스스로 ‘위조지폐’라고 자조했던 구상화와 60년대 이후 추상작품들 외에 미술사에서 중요한 격변기의 추상회화 실증작품이 확인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가족이 보관해 온 40년대 말 작은 스케치북의 추상적 드로잉 정도로 미술사의 논거로 삼기에는 약하다. 강용운 화백처럼 연도가 확실히 기입된 40년대 초부터 이후까지 추상작품들이 필요한데, 사실상 더 이상 나오기는 어려울 거라는 게 이번 전시를 기획한 학예연구사의 판단이다. 이태호 교수께서 양수아 관련 연구글을 쓰고 계신다하니 거기에 기대를 건다. 배동신의 맑은 물맛과 자유로운 붓놀림이면서도 골기와 정감이 가득한 수채화는 참으로 독특한 회화세계가 아닐 수 없다. 양수아에 비하면 사후 개인전 기회도 더러 있었고, 작품의 특성상 상대적으로 더 많은 분들이 좋아하기도 한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는 ‘무등산’과 ‘나부’와 ‘과일’ 연작 등을 묶음으로 배치해 시기별로 비교해서 볼 수 있게 되어 있다. 재미를 넘어 기인이라 할 만한 숱한 야사들만큼이나 자유로운 예술영혼이어서인지 그림들은 더없이 맑은 붓질들로 중첩되고 번지고 스며들면서도 결코 가볍지 않은 단단한 깊이를 지니고 있다. 지난해 오지호 화백 아카이브 전시와 세미나, 자료집 발간, 해를 넘어 계속되고 있는 배동신, 양수아 아카이브전, 올해 아카이브전이 예정된 1년 후배 강용운 전시까지 광주전남 근‧현대 미술사의 주요 거장들의 재조명 작업이 이어지고 있는 것은 고무적이다. 이런 과정들을 통해 지역 미술문화의 대맥과 특성, 더 빛내야 할 주요 가치들이 점점 더 또렷해지고, 지역과 세대를 넘어 더 넓게 많은 분들과 공감대가 이루어지면 좋겠다. - 조인호(광주미술문화연구소 대표) 양수아, 종이에 드로잉 양수아, 종이에 드로잉 양수아, 풍경, 캔버스에 유채 양수아 <재봉틀질 하는 여인>, 캔버스에 유화, 42x35cm 양수아 <작품>(잉태), 1962, 캔버스에 유채, 91x72.5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양수아 <자화상> 연작 양수아의 유품인 화구 양수아 아카이브전 전시실 배동신 아카이브전 전시실 배동신 아카이브전 전시실 배동신 아카이브전의 화실에서 작가 배동신 <추상>, 1960, 종이에 수채, 52x36.5cm 배동신 <무등산>, 1978, 종이에 수채, 52.5x77.5cm 배동신 <누드>, 1985, 종이에 수채, 27x39cm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이전글 다음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