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 생명계와 교감하는 무극유영의 소요유 ; 서미라 개인전 ‘별, 바람’ 페이지 정보 작성자 조인호 작성일21-06-20 17:02 조회2,081회 댓글0건 관련링크 이전글 다음글 목록 본문 서미라 <별이야기 6>, 2021, 캔버스에 유화, 200x200cm 천지 생명계와 교감하는 무극유영의 소요유 ; 서미라 개인전 ‘별, 바람’ 2021.05.27-06.20 / 광주문화예술회관 갤러리 “실경을 바탕으로 각인된 기억, 실경의 디테일한 재현이 아닌 몸으로 체득된 기억의 풍경들을 담으려 한다.” 예전에 서미라가 모 인터뷰에서 밝힌 그즈음 작업의 주된 관심사였다. 몇 년이 흐른 요즘, 이제는 자연 속에서 소재를 주로 취하되 그들을 대상으로 바라보기보다는 그 자신 물아일체(物我一體)가 되어 시시철철 변화하는 생명작용들을 그림으로 풀어낸다고 한다. 그가 학업을 마치고 화단의 신예로 활동하던 90년대 현실주의 참여미술 기조의 ‘광주전남미술인공동체’ 활동기 회화작업들과는 의식의 큰 변화다. 서미라는 등단기인 1990년대에 주로 민중미술활동이나 오월거리전 등을 통해 정치쟁점으로 얽혀진 한‧일 위안부 문제, 5‧18항쟁과 80년대 민주화운동 과정의 국가폭력과 연이은 희생들, 도시 농촌 무지렁이들의 고단한 생업 등등 무엇 하나 외면할 수 없는 시대의 초상들을 사실묘법으로 그려냈었다. 현장성이 강한 직설화법으로 시대적 발언에 앞장서던 집단활동의 동참이었는데, 이후 시대변화에 따라 직설보다는 은유와 풍자, 개별 예술세계의 고양과 서정을 더해가는 추세 속에서 본래 감성적 깊이가 남달랐던 서미라의 화폭은 훨씬 더 자연 본래의 서정풍경으로 독자성을 더하게 되었다. 게다가, 사회 한 복판의 거친 활동들을 접고 보성 웅치의 대자연과 더불어 가정과 삶을 일구는 동안 그의 의식도 예술도 밖으로 비쳐진 공백기와 상관없이 밑뿌리를 다지고 자연회귀 감성을 더하게 되었다. “보이는 세상에 대해 상심하고 절망하게 될 때 마음과 눈은 자연으로 향하였다. 자연을 들여다보는 속에서 생의 의지와 작업에 대한 열정도 찾게 되었다. 자연과 동화되면서 느껴지는 것들은 내 안으로 울리는 소리 같은 느낌이다.”라는 작가노트가 그 속내를 말해준다. 서미라가 현실생활로부터 다시 적극적으로 화단활동을 재개한 2009년 이후는 예전의 일그러진 욕망과 굴절된 세상사, 소시민적 삶의 현장 풍경이나 고달픈 생업들, 이 땅 산야의 풍광들에 대한 의식적 사실화법들과는 결이 많이 달라졌었다. 넓고 복합적인 서사의 구성이나 명징한 사실화법 대신 생활 주변의 생명존재들과 교감을 나누거나 필촉에 여운을 남겨 관조와 사유적 태도에 짙은 서정과 감정이입을 훨씬 더 돋우어 내었다. 이 시기에 그 자신이자 인고의 여성 삶을 비유한 ‘월매도(月梅圖)’ 등 매화그림들이 그의 회화세계를 함축하는 대표 화제가 되었고, 캔버스에 유성의 안료와 붓질만이 아닌 엷은 천에 한 땀 한 땀 바느질 드로잉으로 소채들의 윤곽을 뜨기도 하였다. 이와 함께 시린 겨울을 이겨내고 소생의 기운을 피워내는 ‘흑룡매’를 몇 폭짜리 대작으로 펼쳐 내거나, 청룡‧백호‧주작‧현무 사신과 삼족오가 등장하는 웅혼한 천지개벽 대작 ‘염원’, 또는 김정호의 ‘대동여지도’ 한반도 백두대간을 묵은 천 조각들에 바느질로 뜨고 잇대어 전시장 한쪽 벽을 채우기도 하였다. 주변 사물이나 소소한 존재들부터 천지 가득한 기운이나 민족정기 같은 정신성에 집중한 일련의 작업들은 삶의 무대를 전혀 낯선 곳으로 옮기게 된 최근작들에서 새롭게 다잡아지고 있다. 우연찮게 낯선 나라 거대도시에 장기간 체류하게 되면서 일상과 작업을 전면적으로 새롭게 꾸리게 된 것인데, 인생사나 화가일생의 중요 지점일 수 있는 날들의 기록과도 같은 작업들이다. 90년대 초 갓 등단 무렵의 짧은 파리생활이나, 2014년 북경창작스튜디오 입주활동과는 또 다른 뉴욕이라는 현대미술의 집결지에서 자신과 작업을 객관화시켜보면서 보다 더 내밀하게 내공을 다져가는 과정의 외출인 셈이다. 이번 전시는 뉴욕 체류 중 잠시 귀국한 몇 달 동안 집중해서 제작한 작품들이다. 이전부터 낮은 곳에 눈 맞춰 온 자연미물이나 소소한 존재들부터 천지우주 간의 경계를 넘어선 무극유영(無極遊泳)과 소요유(逍遙遊)까지 훨씬 폭 넓어진 그의 심상여행 세계를 보여준다. 낯설고 광활한 세계에서 엄습해 오는 이방인의 아득함, 인공의 도시 너머 순수자연과 떠나온 것들에 대한 그리움, 헤아릴 수 없는 별무리 가운데 한 점으로서 자존감 등등이 겹쳐 한 생명존재의 실존과 소생, 쇠락과 부활의 희망을 담기도 하고, 홀연 화폭에 펼쳐지는 장대한 우주의 황홀경에 빠져들기도 한다. 그는 이번 전시회에 붙인 작가노트에서 “간절한 희망의 욕망… 생명 이전에 존재했던 것들이 우리에게 보내는 간절한 소망과 기도가 내안에 맞닿아 있는가? 나는 지금 여기서 별바람이 부는 결의 황홀감을 그림으로 옮겨야 할 무의식에 빠져 있다. 산책길에 흐르는 물과 주변의 식물들… 그것은 강한 생명력과 순환의 처연한 아름다움으로 다가온다.”고 쓰고 있다. 작품들은 크게 보아 자연생명과의 교감 연작과 우주공간의 황홀한 무아지경 연작들로 대별된다. 마음으로 기억된 시골 들녘이나 강가의 이름 없는 뭇 생명들, 굽이치는 물줄기, 몽환적인 새벽안개, 이름 없는 잡풀더미 등등 자연 본래의 건강한 생명활동들을 소환해 낸다. 모태와도 같은 대지와 무궁한 천상계, 앙상한 겨울나목과 화사하게 돋아나는 봄꽃이나 무성한 여름 이파리 등을 나란히 짝지어 배치해서 흐르는 세월과 인생을 새로운 기대와 희망으로 이끌어주는 강인한 생명들에 대한 찬탄을 그려낸다. 비록 기나긴 인고의 시간에 비해 잠시잠깐 피었다 사그라질지라도 그 소멸로부터 내일을 응축해내는 매화들에서 늘 새롭게 생명력으로 충만하기를 소망하는 그 자신을 투영시켜내기도 한다. 서미라의 짙은 감성과 서정을 담은 이들 자연소재 작업들과 달리 이번에 새롭게 선보이는 ‘별이야기’ 연작은 그의 또 다른 심상계를 펼쳐놓은 것들이다. 현실과 상상계의 경계를 넘어서는 초저녁이나 짙은 어둠의 허공을 무형의 황홀경으로 채워주는 오로라에서 무한신비와 예술적 초극에 몰입된 그의 심상여행을 함께 누려볼 수 있다. 어쩌면 세상사의 직시에서 삶의 진실된 가치를, 자연미물로부터 원초적 생명력을 탐구해 온 오랜 작업과정들이 우주자연의 궁극에 맞닿게 된 대극상통(對極相通)의 흐름일 수도 있다. 직접 경험하지 못한 우주의 신비를 상상으로 펼쳐내는 동안 내면에 잠재된 무한세계로의 일탈과 또 다른 회화세계에 대한 열망을 반추시켜본 것인지도 모르겠다. 마음을 나누는 것들에 대한 애잔함과 연민, 그러면서도 깊은 서정과 희망을 담아내는 서미라의 회화세계는 지금 의미 있는 변환지점을 통과하는 과정일 수 있다. 소재도 형체도 의미도 터전도 모두 풀어버린, 너른 세계 속 쉼 없이 유동하는 비정형의 별 바람 작업들에서 그의 속얘기와 희망의 메시지들이 어떻게 다시 모두어지고 가다듬어질지에 대한 기대가 커지는 시간들이다. 서미라의 틀지워지지 않은 감성과 서정, 자연생명들과의 교감이 낯선 세계에서 객관화되고 제 모습을 반추하며 새롭게 영글어지기를 기대한다. - 조인호 (광주미술문화연구소 대표) 서미라 <별이야기 5>, 2021, 캔버스에 유화, 200x200cm 서미라 <새벽 하늘>, 2021, 캔버스에 유화, 72.7x60.6cm 서미라 <겨울산>, 2021, 캔버스에 유화, 116.8x91cm 서미라 <마른 풀>, 2021, 캔버스에 유화, 116.8x91cm 서미라 <물길 2>, 2021, 캔버스에 유화, 33x77cm. 서미라 <봄-나뭇가지>, <숲>, 2021, 캔버스에 유화, 각 120x240cm. 서미라 <겨울 3>, 2021, 종이에 먹, 아크릴, 65x37cm / <매화>, 2020, 종이에 유화, 63x37cm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이전글 다음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