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례 회화에 담긴 ‘망각의 강’ 페이지 정보 작성자 범현이 작성일20-09-05 13:30 조회1,964회 댓글0건 관련링크 이전글 다음글 목록 본문 김광례 회화에 담긴 ‘망각의 강’ 2020.09.01-09.29 / 오월미술관 그림이 된 생각들 계란 껍질 속 불투명한 흰 막 한 장이 눈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우울을 넘어 불안으로부터 습격 당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일상의 자유로움보다는 작가로서의 삶에서 매번 무엇인가를 갈구하는 갈증이 ‘실존’으로 보였다. 이승과 저승의 모호한 경계, 삶과 죽음에 대한 자의의 절대적 선택, 작가의 그림에는 분명한 절대의 실존이 존재하고 있었다. 몸을 가진 것들은 경계를 넘을 때마다 신음소리를 낸다. 작가의 작업은 그 신음소리에 대한 기록이며 자신의 몸에 대한 경고 같은 물음으로 보였다. 그때와 똑같이, 언제나, 항상 세 번의 개인전에서 공통적인 주제는 ‘죽음’과 ‘애도’였다. 작가는 깊고 낮은 목소리로 끈질기게 말하고 있었다. 살아오면서 근접의 죽음을 겪었다고 말했다. 피붙이의 죽음에서부터 예견된 부모님의 죽음까지. 죽음은 한 가지 모양으로 찾아오지 않았다. 물론 이 사실은 현재도 변함이 없지만, 그들은 ‘망각의 강’을 건넜고 작가는 지상에 발을 붙이고 삶을 지속하고 있다. 작가에게 있어서 모든 죽음은 위로받아야 할 존재였다. 5‧18민주화운동 당시 군부독제의 국가폭력 앞에서 꽃잎처럼 스러져 간 광주항쟁의 주검과 캄보디아 킬링필드 학살의 현장을 찾아 진혼과 위무의 형식을 취한 작품도 같은 맥락이었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검은 바다 흰 숨골’은 제주의 4‧3항쟁에 관한 물음표로 상징된다. 제주를 상징하는 검푸른 바다 위, 날아오는 총탄과 자국민이 행하는 학살을 피해 크레바스 같은 숨골로 몸을 숨겼던 순간을 작가의 시선으로 숨골을 표현하며 주검의 영혼들에게 말을 걸고 손을 잡았다. 생각_내 근간의 발효와 변주 이번 전시는 네 가지의 주제를 지닌다. 그 첫 번째는 애도와 위무에 대한 연결선상이다. 대표적인 작업은 ;꽃배‘이다. 꽃상여가 작품의 위쪽에 배치되어 있다. 평면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흩날리는 꽃잎들은 꽃상여의 주인인 누군가의 삶의 단면이자 편린이다. 바람에 흩날리는 꽃들은 꽃의 정확한 형상화 이전에 어떤 기호로써 살아온 생애에 대한 기억의 학인과 방향성을 바람의 방향으로 알려준다. 바람결에 제 몸을 맡긴 망자의 꽃상여는 편안하면서도 밝은 음악처럼 한 시절을 지나 망각의 강으로 들어서고 있음을 낱낱하게 보여준다. 두 번째의 주제는 삶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실존’에 관한 생각의 물음이다. ‘나를 살게 하는 힘’이라는 작품이 실존을 대표한다. 작가가 형상화해낸 뼈는 세상을 받치고 있는 근간의 모든 것이다. 꽃 같은 뼈, 다시 말하면 뼈꽃, 검고 붉은, 어쩌면 선연한 색의 뼈는 한 송이 꽃처럼 우뚝, 보이지 않는, 무게도 없는 공기를 받치고, 안고 있다. 세상과 나와 너를 받치고 있게 한 힘, 바로 그것이다. ‘스스로 불타오르다’ 역시 삶의 결연한 한때, 찰나를 바라보며 생각하게 한 결과물이다. 감정의 폭품이 휘몰아칠 때, 내가 나를 끝내 죽이고만 싶을 때, 세상이란 인위의 끝에 홀로 서 있다고 느낄 때 올곧게 나를 받치고 있던 뼈만이 남아서 세상과 대적하며 흡수하고 농축되는 시간의 단면을 기록처럼 형상화했다. 나의 아름다운 정원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 앞에서 전율하며 절망한다. 주검의 중심에는 검은 구멍이 뚫린채 검붉은 선혈이 낭자하다. 누워 있는 듯 주검은 서 있다. 서서 주검은 온몸을 통해 실존을 공유한다. 사라지면서 결국은 살아남는다. 존재하는 영혼이 되었다. 석고와 평면으로 형상화한 ‘아름다운 청년’과 ‘하얀 바람’은 윤상원 열사의 현신이다. 이 두 작품 역시 실존에 관한 물음표를 던지며 또 완결한다. 죽어서 영원히 살아있는 윤상원 열사의 현재의 모습일 것이다. 세상의 중심과 광주항쟁의 완결은 결국 윤상원 열사에서 시작되고 마침표로 귀결되어 광주항쟁을 대동세상의 혁명으로 인식하는데 충분한 역할을 해내는 것이 세 번째의 주제이다. ‘인연의 끈’이란 작품이 우리의 어쩔 수 없는 현실을 알게 해준다. 서로가 서로의 손을 맞잡고 네가 이끌고, 혹은 내가 이끌고 알 수 없는 ‘그때’를 향하여 시간을 향해 멈추지 않고 걸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이 모든 전율과 절망은 실존함으로써 겪는 아름다운 일상의 천형이다. 다시 말해서 작가는 아름다운 생각의 정원을 가지고 있다. 풀밭 위의 황금 깃털 네 번째의 주제는 기억에 관한 진실이다.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간은 초록 일렁이는 풀밭에서 하늘을 바라보는 시간일지도 모른다. 등을 붙이고 누워서 지상과 하늘과 내가 하나 되는 시간, 작가는 풀밭 위의 아름다운 시간을 ‘즐거운 상상’의 동물로 형상화했다. 네발을 굳건하게 땅에 딛고 있는 이 동물들은 어쩌면 미래에 대한 작가의 결연함의 상징일 수도 있다. 노란색이 단연 돋보이는 ‘유년의 기억’은 노란색이 따뜻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노란색이 함축적으로 발현하고 있는 기억은 어떤 이에게는 슬픔과 고통일 수도, 또 다른 이에게는 당시의 결핍을 넘어 희망과 꿈의 접점으로 여겨질 수 있다. 작가에게 있어 ‘유년의 기억’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풀밭 위의 황금 깃털이다. 먼 길을 애돌아 왔다. 죽음과 애도, 위로와 위무, 실존과 삶이 ‘붉은 흉터’의 한 송이 동백꽃으로 은유, 상징되었다. 우리는 삶의 시간이 허락하는 그 순간까지 살아가야 한다. 붉은 동백꽃 한 송이 가슴에 안고 꽃신을 신고, 꽃신을 꽃상여처럼 타고 항해를 해야만 한다. 풀밭 위의 황금 깃털을 향해서. - 범현이(오월미술관장) 전시평문에서 발췌 김광례 <검은 바다, 흰 숨골>, 2020, 캔버스에 아크릴릭, 혼합재, 130x163cm 김광례 <내사랑>, 2020, 콘테, 혼합재, 33x21cm 김광례 <아름다운 청년>, 2020. 석고, 70x30cm, <기억하고 기억하라II>, 2020, 비디오영상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이전글 다음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