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과 비현실의 경계에서’ 이조흠의 작품세계 페이지 정보 작성자 고영재 작성일20-12-02 12:21 조회1,979회 댓글0건 관련링크 이전글 다음글 목록 본문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에서’ 이조흠의 작품세계 이조흠 개인전 ‘UNREALRITY’ : 2020.10.29.-11.05 소촌아트팩토리 개인전 전시는 끝났지만 이조흠의 작품세계에 대해 좀더 깊이 있게 들여다보기 위해 고영재의 비평을 함께 공유한다. (편집자 주) 끝의 시작인 이맘때쯤이면, 나는 종종 청년작가들을 불러 모으곤 했다. 떠들썩한 연말에 젊은 그들은 어떤 눈빛으로 묵은해를 넘기고 있는지 자못 진지한 마음으로 전시를 만들었던 기억이다. 그러한 의도로 진행한 전시에 자주 초대됐던 작가가 이조흠이다. 세모 네모 동그라미 등 유쾌한 분위기로 치환된 우리 삶의 다양한 표정부터 빛으로 단장한 큐브 구조물까지, 얼핏 긍정의 기운으로 체감되는 그 형식의 이면에는 공허함이 자리하고 있었다. 많은 이야기를 건네는 ‘뒷모습’ 작업 초기에 이조흠을 알린 주된 도상은 ‘뒷모습’이다. 작품을 보는 이들을 향해 정면을 응시하고 있는 불특정 다수의 인물들에 비해 그 시선과 대치되는 근경의 인물은 두상이 확대된 뒷모습만 보여주고 있다. 주로 화폭의 정중앙에 자리한 뒷모습은 작가 자신의 투영으로 ‘군중 속의 고독’과 같은 형국이다. 원색이나 대비가 강한 색조로 채색되거나 싸이월드 미니미, 만화 속의 주인공과 같은 가상의 캐릭터들로 분한 다수의 인물들은 그것이 하나하나의 개체로서 읽히기 보다는 한 무리의 구성원 혹은 사회로 수렴된다. 수많은 인파로 북적이는 거리 한 가운데의 나와 같은 뒷모습의 인물에서 관람자는 그 인물과 같은 위치와 동세로 작품을 보게 된다. “나는 누구이고, 나는 현재 어디에 서 있나.”라는 흔한 일상의 질문들이 오고 갔을 법하다. 사회와 대척점에 있던 나는 뒤이어 그 사회 안으로 들어가며, 군중과 내가 하나의 덩어리로 뭉뚱그려진다. <connection> 연작에 이은 <social> 시리즈에서 이러한 형식의 변화는 두드러지는데, 같은 색상과 형태로 단순하게 반복되는 모습의 군중은 몰개성의 가상의 인물과 캐릭터로 전이되며 작품의 주제성이 더욱 부각된다. 이 시기부터 돋보이는 팝아트적인 성향은 이조흠 작업의 주요 어법으로 쓰인다. 작가는 회화, 영상, 설치작업 전반에 걸쳐 대중에게 익숙한 코드로 스며들고자 했다. 세모 네모 동그라미의 기본 도형으로 변한 <3types of humans> 연작, 손가락 크기의 작은 장난감을 무리 지어 구성한 설치작품 등 이조흠은 다양한 성향의 개개인이 집단을 이루며 살아가는 우리 사회의 모습을 유쾌한 형식으로 표현했다. 작가가 이러한 대중적인 질감에 몰입함은 그가 겪은 사회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다. 84년생인 이조흠은 디지털 환경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 세대이다. 온라인 매체로써 일상 깊숙이 파고든 컴퓨터와 함께 인터넷이라는 가상의 공간을 자유분방하게 유영한 소위 N세대는 극심한 교육경쟁에도 본격적으로 시달린 세대이기도 하다. 구세대가 주도하는 경쟁문화와 새로운 시대의 정보화 기술 사이에 놓인 이 세대가 느끼는 이상과 현실 사이의 간극은 이내 삶의 균열과도 같다. 윗세대가 그러했듯 비판의 시선으로 현실을 응시하지만, 온라인이라는 비현실적인 공간에서의 자기노출과 친밀감, 혹은 공동 공간감이라는 동시대 대중문화의 특질에 집중하는 이조흠의 어법은 그 자체가 역설일 수 있다. 무한대의 정보, 무한대의 세상 SNS와 애플리케이션, 동영상 공유 서비스 채널과 같은 온라인 매체는 지금의 삶을 마치 전시하듯 보여준다. 무수한 정보와 이미지들이 범람하고 디지털화된 대중 또한 빠르게 형성된다. 재독 철학자 한병철은 그의 저서 <피로사회>에서 이러한 집단을 전통적인 개념의 군중과 다른 선상에서 해석한다. “일정한 영혼, 혹은 일정한 정신이 비로소 그들을 외부에 대해 닫혀 있는 하나의 동질적 군중으로 빚어낸다. 디지털 무리에서는 군중의 영혼, 군중의 정신과 같은 것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 무리 속에 모여든 여러 개인은 우리를 만들어내지 않는다.”(한병철 지음, 김태환 옮김 『피로사회』, (서울: 문학과 지성사, 2012), p.129) 이조흠은 근작에서 무한대의 온라인 세상에서 느끼는 인간적인 한계와 공포, 그리고 양적인 성장만 주도한 채 주체가 상실되어 가는 정보화 사회의 부박함에 대해 열거한다. 비디오 설치작품인 <infinite scroll>은 작가 본인의 인스타그램 피드를 재구성한 것으로, 끝없이 흐르는 정보는 영상으로 이미지화 한 반면 그 전면에는 풍경이나 반복되는 캐릭터가 투각된 형태의 철판으로 자리한다. 거리의 넘쳐나는 광고물에 착안한 설치작품 <focus>는 요란스러운 카피 문구와 형형색색의 디자인이 없이 외려 아무런 정보가 명시되지 않은 채 단색으로만 구성돼 있다. 300개가 넘는 많은 채널 속에서 하나의 채널을 선택하지 못하고, 또한 무수히 뜨는 팝업창을 끄기에 바쁜 우리 일상의 한켠을 떠올리게 된다. 최근 들어 이조흠은 초기 작업인 뒷모습 시리즈를 다시 시작했다. <unreality>라는 주제로 열린 지난 전시(2020.10.29.~11.05 소촌아트팩토리 큐브미술관)에서 작가는 가상과 현실 사이를 살아가는 현 사회구성원의 다양한 모습을 회화와 영상, 설치작품으로 제시하였다. 디지털 사회에서 이미지와 정보는 습관적으로 소모되지만, 가상공간의 수많은 데이터 안에서 나와 너의 경계, 현실과 허상의 틈은 더욱 모호해진다. 두드러지는 특징은 셀 수 없는 작은 점으로 구성된 화면이다. 실재하는 세계와 더불어 디지털 세상에서 모든 형(形)의 기본이 되는 ‘점’은 개체의 상징이자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의 물리적 · 추상적 감각을 지칭한다. 익숙한 캐릭터와 반복되는 패턴으로 구성된 디지털 군중은 평면적이다 못해 도식화되어 있지만, 뒷모습으로 서 있는 인물은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있어 다소 이질감이 느껴진다. 경계에 서 있는 소외된 주체로서의 고민이 화면 곳곳에 점철돼 있고, 작가는 초기 작업에 비해 화폭에 밀도감을 부여하기 위해 터치나 패턴에 회화성을 부여했다. 지난 10여 년간 회화와 영상, 설치, 조각, 퍼포먼스 등 다양한 형식적 실험을 단행해온 이조흠의 작업은 재차 시작점에 서 있다. 작가는 지금까지 해오던 형식을 더욱 보완하여 내용의 깊이를 다져나갈 계획이지만, 무엇보다 전위(前衛)에 대한 강박을 걷어내고 싶어 한다. “그동안 시도했던 다양한 실험들이 스스로 작위적이었다는 느낌이 들고, 자연스럽지 않은 흐름이었다고 생각해요. 저는 대중과 친숙하게 호흡할 수 있는 ‘좋은’ 작가가 되고 싶습니다.” 채 여물지 못했던 초기 작업의 어법을 다시 취한 그의 의도가 이해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급변하는 사회 속 다양한 관계맺음에서 느끼는 공허와 피로, 때로는 타자의 전시된 삶을 관성적으로 받아들이는 일상에서 도리어 내 삶은 바로 보지 못한다. 어찌 보면 이조흠은 이러한 상실의 삶을 이야기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바이러스로 인해 비대면이 익숙해진 시간이 어느새 한 해를 채우고 있다. 나를 비롯한 우리를 다시 돌아보는 끝자락이 되었으면 좋겠다. - 고영재 (독립큐레이터, [전라도닷컴] 2020년 12월호 연재) 이조흠 <untitled (twitter)>, 22020, acrylic on canvas, 150x150cm 이조흠 <untitled (in the club)>, 2020, acrylic on canvas, 162x260cm 이조흠 <3types of humans>, 2013, led, installation, 90x70cm 이조흠 <collective>, 2020, toy, steel, installation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이전글 다음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