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식의 경계를 넘어서- 배수민의 작품세계 페이지 정보 작성자 고영재 작성일19-10-27 11:54 조회2,350회 댓글0건 관련링크 이전글 다음글 목록 본문 배수민 <Cambell Soup>, 2013, 40x40x63cm, 드럼에 플라스틱 페이퍼, 우레탄 페인트 형식의 경계를 넘어서-배수민의 작품세계 "다시 돌아온 빈센트 반 고흐의 진짜 이야기. 당신은 그의 삶에 대해 무엇을 알죠?" 2년 전 개봉되었던 유화 애니메이션 <러빙 빈센트 Loving Vincent>의 홍보 문구이다. 미스터리, 범죄물로 분류된 본 작품의 시놉시스는 빈센트의 죽음 후 1년, 제 3자의 시선에서 죽음의 진실을 추적해가는 구성이다. 여전히 수많은 사람들에 의해 전 세계적인 사랑을 받고 있는 화가이지만, 다분히 개인적인 취향은 반 고흐의 명성에서 한 발짝 물러서 있었기에 당시 관람이 머뭇거려지기도 했다. 아마도 천만 영화, 혹은 국민가수, 국민배우라는 전체주의 비슷한 사고에서 비켜서고 싶은 뒤틀린 마음과도 같을 것이다. 더불어 가난, 천재성, 고독, 광기, 비운의 대명사이기도 한 반 고흐의 삶이 예술가의 전형적인 삶으로 각인되는 흐름이 평소 못마땅하기도 했다. 그러나 영화 말미 즈음 스크린에 새겨진 고흐의 실제 고백이 새삼 뭉클하게 다가왔다. “난 내 예술로 사람들을 어루만지고 싶다. 그들이 이렇게 말하길 바란다. 마음이 깊은 사람이구나,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구나.” 미술로 밥 벌어 먹고 사는 나의 묵은 열정이 부끄러웠다가, 무엇을 위해 살고 있나 하는 자책감까지......, 어찌 보면, 영화를 만든 이들이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은 반 고흐의 작품, 죽음도 아닌, 한 화가의 순수한 창작 영혼이 아니었을까 싶다. 5년 전 갤러리 재개관 전시로 영화의 향수와 가치를 담은 기획을 선보였었다. <오마주 투 필름>이라는 타이틀의 본 전시에는 우리에게 익숙한 영화의 아이콘들이 등장했다. 당시 출품작 중에 마릴린 먼로와 오드리 햅번의 초상이 있었는데, 고흐의 고백에서 필자가 느꼈던 회한과 반성 비슷하게 작가는 예술적 삶을 살아온 인물들을 통해 자신의 삶을, 그리고 창작의 에너지를 투영하고자 했다. 미술대학을 졸업 후 3년이 지난 젊은 작가가 체감했을 불안과 혼란은 또 다른 오마주의 형태를 띠었다. 예술가, 아름다운 패배자? 대학에서 조소를 전공한 배수민은 굳이 환조(丸彫) 형식의 삼차원성에 국한하지 않고, 미술이라는 넓은 범주 안의 다양한 표현방식에 관심을 두었다. 작가는 일찍이 반 고흐, 에곤 쉴레 의 작품세계와 유사한 주정적이면서 표현주의적인 성향에 매료되었고, 광고나 디자인, 일러스트, 삽화와 같은 상업예술의 감각적인 시각 효과에도 흥미를 보였다. 그의 초기 작업 시리즈는 <Beautiful loser>이다. 일종의 역설로 읽혀지는 본 연작은 사회적 질서 체계에 녹아들지 못하는 자아가 반영된 것으로, 심리적 투영을 통한 자기 치유의 결과물이다. 작품에서 단연 눈에 띄는 인물은 프리다 칼로, 제임스 딘, 빈센트 반 고흐이다. 앞서 시대를 살다 간 예술인들에 대한 연민과 동경, 그리고 경의 안에는 20대 후반을 갓 넘긴 청년작가가 느끼는 시대적 혼란과 욕망이 함축돼있다. 여전히 정면을 응시한 눈빛이 형형한 윤두서의 자화상은 마스크를 쓴(작업 중임을 암시하는) 배수민의 자화상과 상치된다. 배수민이 표현한 대상은 무엇보다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에게 친숙한 인물들이다. 찰리 채플린, 존 레논, 체 게바라까지 현재에 이르러서도 대중에게 익숙하게 다가오는 그들은 공감의 측면에서 매우 효과적인 소재이다. 이러한 내용과 대상의 특수성 외에도 배수민 작업의 두드러지는 개성은 분명 기법적인 부분에서 기인한다. 작품 특유의 물질감, 즉 릴리프(relief), 혹은 돋을새김(양각)의 형태로 각인되는 반부조의 물성은 2차원적 평면과 3차원의 입체형식이 적절히 어우러진다는 점에서, 작품 자체로서 시각적인 힘을 함축한다. 작가는 전통적인 흙 작업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대상을 형상화한 후 석고 캐스팅을 한다. 이를 다시 합성수지(FRP)로 떠내는데, 떠낸 구조물에 우레탄 도장을 가한 후 하나하나 세밀한 면의 시트지를 컷팅하는 복잡한 공정을 취한다. 촘촘히 잘려나간 면은 가까이서 볼 때 깔끔한 도안 같지만, 좀 더 거리를 두고 바라봤을 때 소묘의 회화적인 필선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전통적인 흙과 석고 작업, 그리고 현대적인 재료가 혼용된 배수민 작업의 메커니즘은 ‘오마주를 통한 나의 투영’이라는 작업적 내용과 교차되며, 어느 정도 작업적 완성도를 구축해 나갔다. 자아에서 사회로 향하는 시선 배수민의 작업은 시선의 변화를 맞이했다. 표피적으로 바라볼 때 그 표현 대상이 인물에서 풍경, 혹은 구체적인 물체로 바뀌었지만, 문제 제기의 위치설정이 개인에서 사회로 확장되었다. 달리 표현하자면, 사적인 구역에서 공적인 영역으로 그 공감의 범주를 넓혀갔다고 볼 수 있다. 2016년 개인전 ‘일상의 삽화’에서 보여주었던 <달동네> <Flower tree> <문화적 혼동> <TV 정글>등의 작품들에선 전통과 현대의 혼재, 자연물과 인공물의 배치가 눈에 띈다. 작가는 물질만능주의와 무차별적인 정보의 홍수를 비판적인 시선으로 바라본다. 기형적인 크기의 잎사귀는 증식된 듯 TV와 라디오 사이사이를 에워싸고 있다. 비좁게 쌓아 올린 형태의 달동네는 화려한 꽃무늬 장식의 그릇 위에 놓여 있는데, 얽히고설킨 전선, 건축물의 빽빽한 자리매김이 무색하게도 집들은 하나같이 고래 등 같은 기와지붕을 얹고 있다. 탐스러운 꽃나무와 어우러진 신호등과 교통 표지판, 전신주 위에서 개화한 꽃무더기, 클래식 피아노와 여행 캐리어 전면을 장식한 전통문양까지 배수민의 이종교합은 모종의 허세와 부자연스러움을 자아낸다. 작가는 본인의 작업에 대해 “사회 전반에 대한 문제와 그 속에서 잊혀져가는 우리 고유의 정체성에 대해 돌이켜 보는 메시지를 담고 싶었다.”고 설명한다. 개발의 명분 아래 우리의 일상 풍경은 눈에 띄게 변화해간다. 지속성과 고유성은 과거의 낡은 사고로 치부되고, 삶의 문제에서 무수한 가치관의 혼란을 겪게 된다. 배수민이 바라본 일상에는 예상 밖의 결과가 빚은 모순이나 부조화가 곳곳에 존재한다. 여수가 고향인 작가는 한옥에서 나고 자랐다. 개인적으로 익숙했던 공간과 사물들은 어느새 사라져버렸고, 우리는 지금 어느 지점에 서 있나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매우 현대적인 외양의 배수민의 프레임은 그 차가운 물질성과 건조함으로 인해, 향수자로 하여금 작품의 기법적인 부면에만 집중하게 하는 경향을 보인다. 작품의 내용과 형식의 문제는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닌 작업적 선택의 부분이기는 하나, 팝적인 요소에 메시지를 담고자 하는 작가의 욕심이 다소간에 표류하고 있는 느낌이 든다. 3년 전 두 번째 개인전을 끝으로 이렇다 할 신작들을 보여주지 않는 작가이지만, 서른 중반을 준비하는 그가 선보일 변화에 기대를 걸어보기도 한다. -고영재(광주 롯데갤러리 큐레이터)의 작가탐험([전라도 닷컴] 2019년 10월호) 배수민 <정류장>(左), 2019, 합성수지에 우레탄 도장, pvc필름커팅, 82x115cm, 해동문화예술촌-도시리듬과 예술적 행동 배수민 <달동네> 연작, 2016, abs film, PVC film cutting 배수민 <마밀린_먼로>, 2014, 합성수지에 우레탄 도장, 커팅필름, 133x100cm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이전글 다음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