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적으로서 공간과 사물' 임현채의 작품세계 페이지 정보 작성자 고영재 작성일19-11-02 10:29 조회2,302회 댓글0건 관련링크 이전글 다음글 목록 본문 임현채 <낙원3>, 2009, 캔버스에 아크릴릭, 90.9x65.2cm ‘흔적으로서 공간과 사물’ 임현채의 작품세계 2019 롯데갤러리 창작지원전 2부 ‘임현채 ;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9.11.01.-11.26 스물아홉 살 되던 해 어느 날 밤, 내 방안의 천장을 물끄러미 바라본 적이 있다. 천장의 중앙에는 두 개의 등이 들어가는 긴 형광등이 자리했고, 그 중 하나의 형광등은 이미 나가버린 상태로 비어 있었다. 침침한 불빛에서는 윙~하는 소리, 때로는 웅웅거리는 소리가 규칙적으로 들렸다. 비어 있는 형광등과 다소 거슬리는 기계음 소리가 마치 불안정한 내 모습과 같았나 보다. 누워 있는 시점 그대로 프레임에 담아 그림으로 완성한 적이 있다. 여전히 그 그림을 보면 그 때의 내가 투영이 된다. 모종의 공허, 그리고 삶에 대한 불안감 따위가 무채색 위주의 화폭으로 재구성되어, 당시의 내 일상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7년 전 쯤 광주대인시장 내 미술공간에서 마주한 임현채 작가의 그림도 같은 느낌으로 다가왔다. 은은한 파스텔 색조로 표현된 특정할 수 없는 어느 한 공간은 무심히 툭 떨어져 있는 ‘소외된 공간’이었다. 사람은 없고, 어떤 이의 흔적과 같은 사물들이 덩그러니 위치한 그 공간은 실재하지만 실재하지 않는 내 마음속 어느 곳이었다. 나와 타인을 위한 공간 대학을 졸업하고 2년 후 즈음 임현채 작가가 선보인 첫 개인전의 주제는 <낯선 이와 빵을 먹어본 적 있는가>이다. 단막극의 제목과도 유사한 작업적 물음에서 관계에 대한, 타자와의 소통에 대한 개인적 소망이 내비친다. 타인과의 낯섦을 희석시키는 매개체로 음식을 택했다는 작가에게 소통은 작업세계를 관통하는 하나의 쟁점이 되어 왔다. 임현채의 초기 작업에서 두드러지는 것은 단연 공간이다. 어디선가 지나가는 길에 본 듯한 어떤 장소의 한 부분, 예를 들어 후미진 골목 어귀의 계단과 벽면, 하늘과 맞닿은 지붕, 높은 언덕에 설치된 동네 어귀의 울타리, 운동장의 펜스, 미로처럼 연결된 논밭두렁 등 쉬이 지나쳐버리는 실재하는 공간들을 작가만의 심상으로 단순화시킨다. 일상이라는 이름으로 주목받지 못하는 그 공간들은 보통의 삶으로 치부된 우리의 일상을 이내 상기시킨다. 낯선 듯 낯설지 않은 소외된 공간에서 나와 너는 개개의 삶을 투시하고 교감한다. <Be Present Together!>와 <낙원>시리즈에서 보이는 아주 작은 크기의 사람 형상은 낯선 공간에서의 교감을 위한 매개 역할을 한다. 형상에서 일어나는 몸짓은 그것이 너무 왜소한 체구에서 만들어지는 움직임이기에 때로 애달프다. 멀리서 보면 까맣고 작은 점으로 보이는 형상들은 관람자가 허리를 숙여야 겨우 발견할 수 있다. 나무 위에 털썩 걸터앉거나 풀숲에 몸을 파묻기도 하고, 어딘가를 열심히 기어오르는가 하면 정면을 향해 무언가를 외치기도 한다. 범속한 삶의 뉘앙스와 같은 그들의 움직임에서 익숙한 나를 발견하게 되고, 이러한 인식과 자각들 속에서 나와 너는 함께 하게 된다. 한없이 안으로 들어가는 자아, 그러함에도 공존하고 싶은 욕구는 꿈틀거리거나 피어오르는 유기체적 형상으로 분해 궁극의 주제를 드러낸다. <If go there>연작으로 넘어오면서 작가는 공간 중심으로 표현 영역을 한정한다. 직선과 곡선으로 과감하게 모서리를 주어, 공간은 종전보다 추상화되었다. 마치 카메라 앵글에서 잘려나간 것처럼 프레임 안에서 단절된 면과 면은 불안정한 느낌을 유도한다. 꽤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여백과 함께 공간감에 중점을 둔 화면에는 마이크와 인형, 피아노, 아코디언, 축음기가 자그맣게 자리한다. 누군가의 삶의 흔적이기도 한 이러한 사물들은 흔적으로서만 이야기를 건넨다. 사물에 얽힌 사람살이의 무수한 서사를 염두에 둘 때, 사물은 그것 자체로 함축적이며 상징성을 담보한다. 관람객은 작가가 제시한 유의미한 오브제를 통해 역시 그 삶을 투영하고, 구체적인 설명이 없는 열린 공간에서 열린 사유를 하게 된다. 수많은 정보와 관계망으로 이뤄진 현 사회에서 정작 우리는 어떠한 소통을 하고 있는가에 대해 작가는 아직도 물음을 던진다. 임현채 작가의 다소 적적하고 건조한 화폭이 나와 타자간의 사색을 위한 일종의 장치였다면, 이후 작업에서는 보다 현실적인 교감을 위한 실험을 단행한다. 놀이 형태의 참여와 설치미술 형식으로 선보였던 전시 <The Place>와 이끼와 같은 물질감, 그리고 사물이 더욱 부각된 동명의 회화작업에서는 구체성이 보다 배가된다. 내면에서 현실로 임현채의 작품은 4년여 전부터 시점의 변화를 맞이했다. 구체적인 형상이 두드러지고, 작가의 표현대로 작업의 시점이 원거리에서 근거리로 이동했다. 결혼이라는 개인적인 큰 변화는 삶 가까이에서 그 변화된 삶을 기록하게 했다. 사색의 공유에서 현실 교감으로 이어진 작가만의 감성은 보는 이에게 밀착된 서정을 부여하는데, 2016년 개인전 <The Place-기억의 이면>에선 설명적인 공간과 사물로 화면을 가득 메우게 된다. 작가가 채택한 작품의 주요 배경은 온실이다. 평안함, 보호 등의 이미지가 떠오르는 온실은 비닐이라는 소재적 특성에서 연약함과 같은 부정적 정서를 야기한다. 이러한 극과 극의 이미지 연상은 작업의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비바람과 같은 외부적 힘에 의해 비닐과 보온재가 찢겨져 나간 온실 안팎에는 이끼, 괘종시계, 메트로놈과 같은 시간성을 반영하는 물체가 있다. 시간의 흐름에 의해 또는 외부적인 여건에 의해 삶은 항상 불안정하게 흘러가고, 영원히 지속될 수 없는 일상의 안온함은 예측할 수 없는 미래와 맞물려 초조함을 불러일으킨다. 흘러내리거나 거칠게 흩뿌려진 물감, 앙상한 뼈대만 남은 하우스는 형형색색의 장난감과 인형, 허공에서 부유하는 풍선과 대치되며 극적인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아홉 번째 개인전을 앞둔 임현채 작가는 채집된 일상의 풍경과 사물들을 주로 집적(集積)의 구조로써 제시한다. 쌓아올리거나 클로즈업된 물건 하나하나는 지극히 현실적이다. 아이들의 장난감 꾸러미, 머리끈과 방울, 미처 개키지 못하고 쌓아놓은 옷가지, 색색의 스티커가 붙어있는 밥상, 흘러내리는 생일케이크, 그리고 풍선과 솜사탕까지 생활과 밀착된 갖가지 사물들이 시선을 끈다. 쌓여있는 구조물의 하단에는 하나같이 그 거대한 등치를 지탱하는 대상들이 위치하는데, 구조물 덩어리 밑에서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잡는 모양새에서 버거운 무게감이 느껴진다. 간간이 등장하는 코끼리는 작가 자신의 투영이자 삶의 무게에 지쳐있는 모두를 대변하는 존재이다. 실제로 모성이 강한 동물이라는 코끼리는 화면 안에서도 그저 짐을 진채 터벅터벅 걸어 나갈 뿐이다. 임현채 근작의 면면에는 주거와 육아와 같은 가사(家事) 문제에서부터 사회적 명성에 대한 고민들이 배어 있는가 하면, 때로는 시장의 나물 파는 할머니의 주변을 기록하며 부모님 세대를 돌이켜보기도 한다. 현실의 삶에서 살아가는 의미를 되새기는 근래의 작가는 우리가 왜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근원적인 문제를 작품으로써 곱씹는 중이다. “예전의 키워드가 소통이었다면, 지금은 균형과 무게인 것 같아요. 삶의 목적에 대한 의문과 함께, 왜 그림을 그리고 있나 끊임없이 질문을 합니다. 어떻게 보면 나를 잃고 싶지 않아서 작업을 합니다.” 본인 작품으로 하여금 작품을 바라보는 이들의 삶을 함께 기억하고 이야기하고 싶다는 작가는 여전히 진실한 소통을 꿈꾸는지도 모르겠다. 임현채는 작업에서 항상 현재의 나와 현재의 삶을 반영해 왔다. 교감할 수 있는 쟁점들로 그의 작업이 지속될 수 있기를 바라며, 예정된 작품전의 주제처럼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나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또 바라본다. - 고영재 (광주롯데갤러리 큐레이터, [전라도 닷컴] 2019년 11월호 임현채 <The place - communication mesh>, 2014, 가변설치 임현채 <불안한 세계>, 2016, 캔버스에 아크릴릭, 97.0x130cm 임현채 <균형잡기 2>, 2019, 종이에 아크릴릭,과슈, 162.2x130.3cm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이전글 다음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