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달용 개인전 ‘묘정 猫情’ 페이지 정보 작성자 문희영 작성일20-11-04 11:19 조회1,971회 댓글0건 관련링크 이전글 다음글 목록 본문 허달용 개인전 ‘묘정 猫情’ 2020.11.04.-11.13 / 예술공간 집 지금의 시간, 지금의 그림 하나의 그림과 마주한다는 것은 그림을 그린 이의 삶과, 그 안의 내밀한 감정들과 마주함이다. 내밀하고도 옹골진 흔적들은 그림 안으로 오롯이 옮겨진다. 굳이 애써 주절거리지 않아도 그림의 언어는 모든 것들을 쏟아낸다. 안팎으로 꽉 차 올랐는지, 그 겉만 훑고 지났는지 그림은 모든 것을 명확하게 알려준다. 그림이라는 것, 참 묘하다. 눈앞에 펼쳐진 세상만이 아닌, 진정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 전부를 담는다. 고요하고도 치열한 세계 그 사이사이 우리의 시선이 미처 머물지 못하는 곳, 우리의 마음이 뻗어가지 못하는 곳들을 끄집어 들춰낸다. 그토록 평범하지만 놀라우리만치 경이로운 무언의 존재를 펼쳐내는 것이다. 눈앞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고, 특별한 것들은 늘 곁에 곳곳에 있으니 잘 보라고 말한다. 작가 허달용의 그림이 달라졌다. 수십 년 그림과 함께 했던 그의 그림이 다르게 읽힌다. 당연하지 않은가. 세상이 이토록 달라졌는데 어찌 달라진 세상에 똑같은 그림만을 그릴 수 있겠는가. 삶의 행태가 바뀌고 가치관도 달라졌다. 그 세상 속에서 이제 진정 자신의 그림을 그릴 수 있겠다고 했다. 지금의 시간을 살아가며 작가는 지금을 그린다. 지난 시간에 얽매이지 않고 지난 시간을 묶어두지 않는다. 지금의 시선이 머무는 곳, 바로 이번 전시에 만나는 그림들에 담긴 세상이다. 猫情, 고양이를 그리다. 이토록 다양한 면모를 지녔을까. 그림들로 새삼 다시 고양이를 보게 되었다. 작가는 올 봄이 시작될 무렵 겨우 두 달 정도 된 새끼 고양이를 곁에서 보기 시작했다. 고양이도 작가도 서로 경계의 대상으로 기싸움이 일었다. 3개월의 시간이 지나고서야 친밀한 관계로 동반자와 같은 사이가 되었다. 작가의 손에는 고양이가 할퀸 자국들이 그대로 남아있다. 견제의 시간이 지나고서야 형성된 친밀한 관계를 증명하는 생채기이다. 고양이와 자신과의 관계처럼 사람과 사람들의 관계가 자연스레 연결 지어졌다. 결국 고양이를 다시 보게 했고, 그리게 했다. 그렇게 오월 무렵부터 고양이를 그리기 시작했다. 흔하게 마주치는 길고양이를 보며 누구나 알고 있지만 거짓부렁을 일삼는 자들의 흔한 역겨운 모습들이 겹쳐졌다. 시커먼 먹의 가운데 또렷이 보이는 고양이의 눈빛, 숱하게 곱씹고 되뇌게 하는 시선이다, 시선 너머 전시장 벽면을 가득 메운 고양이는 과거의 고양이가 아닌 현재 작가의 곁에 맴도는 고양이이다. 작가는 고양이를 통해 지금의 시간을 살아가는 자신을 그려갔다. 자신을 속박하던 규정들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은 마음이 그대로 투영된다. 50여 개의 그림 속에 담긴 고양이들은 각기 다른 모습이다. 그 안에는 행복도 기쁨도 사랑스러움도, 또 위태로움도 걱정스러움도, 숱한 인상들 모두 투영되었다. 이전 그림에서 느껴지던 묵직한 기운보다는 생생하고도 안온한 기운이 한껏 베였다. 지금 바라보는 세상, 현재의 시선이 담백하게 그려진다. 박제되어 시간의 역사에 붙들린 화가가 아닌 지금 현재를 보려하고 살려 하는 작가 허달용의 모습이 포개어진다. 지나온 시간과 지나갈 현재 작가는 좋은 그림을 그리고 싶다 했다. 한때는 시대의 큰 물음을 따라 거친 소리도, 고집스런 몸부림도 마다하지 않았지만 지금, 시대의 변화 앞에 다시 멈춰서 유연하게 더욱 더 깊고 먼 곳을 바라본다. 지금을 성찰할 수 있음은 미래의 우리가 존재하는 이유가 된다. 화가 허달용을 속박하던 것들이 있었다. ‘의재’라는 글자가 규정하듯 그림의 시작은 몸속에 흐르던 ‘진한 피’였다. 청년의 시간을 넘기면서부터는 ‘가슴에 뜨겁게 타오르던 피’가 그림을 가득 채웠다. 거침없는 외침도, 격렬하고 묵직한 그림들도 마다하지 않았다. 허나 시간은 많은 것들을 변하게 했다. 무서운 속도로 시대는 변해갔다. 불합리한 사회를 향해 모두 함께 한 마음으로 그려가던 그림들은 미술관에서 기억하는 역사가 되었다. 과거에 사로잡힌 시선을 거둬내고 현재를 보려 하니 그림은 자연스레 ‘나’를 향했다. 삶의 궤도도 그림의 궤도도 돌고 돌아 지금의 작가에게로 향한 것이다. 무거운 무게를 덜어내니 그림은 가벼워졌지만 그림이 담은 세상은 더 꽉 차올랐다. 먹과 종이는 자유롭게 그림을 지휘한다. 거친 붓질도, 부드러운 먹물의 스밈도 투박하게 찍어 내린 붓자국도, 그 모든 것들은 자유자재로 세상의 흔적을 그려낸다. 하릴없는 것들이건만 그림은 그 모든 것들을 세심히 바라보게 한다. 지극히 다를 것 없는 일상에 삭혀진 비범함은 조용히 그림에 스며들었다. 우리들의 삶도 매한가지이다. 문득 고개 들어 본 하늘의 석양에 감동이 일기도 하고, 창문 넘어 방구석에 비친 따사로운 햇살에 기분이 좋아지기도 한다. 고요한 빗소리에도 서늘한 바람에도 마음은 요동친다. 너무 거창하지 않아도, 어느 특별한 순간이 아님에도, 일상의 매 순간은 평범하지만 특별하다. 그럴게 하릴없는 일상이 변모하는 순간, 그림의 힘은 거세게 발동된다. ‘내가’ 그리는 그림, ‘나’만이 그리는 그림 작가 허달용 만이 그릴 수 있는 그림들이다. 그에게 그림은 평생의 업業이다. 급작스레 달라진 건 아니다. 작가는 시대의 한가운데 있었고, 여전히 지금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그렇기에 이번 전시의 작품들 또한 작가의 시선이 머문 지금을 그려간 ‘작가 허달용’만의 그림들이다. 시대의 변화에 유연하게 순응하며 작가는 꾸준히 자신의 시선을 따라갔다. 다른 이의 시선을 쫒지 않고, 거창하거나 거대한 것만을 쫒지 않았다. 그건 결코 ‘내 그림’이 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변화를 두려워않고 너그럽게 끌어안은 그의 그림들이 지닌 쓸모를 더 깊이 이해해갈 수 있기를, 좋은 그림들을 줄곧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한다. - 문희영 (예술공간 집 대표)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이전글 다음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