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공 글쓰기와 존재탐구 ; 이뿌리 행위작업 페이지 정보 작성자 조인호 작성일20-12-23 16:39 조회2,064회 댓글0건 관련링크 이전글 다음글 목록 본문 이뿌리 <영상서예-시냇물>, 2019, 섬진강에서 행위영상 허공 글쓰기와 존재탐구 ; 이뿌리 행위작업 광주문화재단 미디어아트레지던시 결과보고전 ‘샛길-오아시스’ 온라인 전시 https://youtu.be/BRYWzk8v_9Q 이뿌리의 행위기반 미디어아트와 설치작업은 복합적인 환경들과의 관계 속에서 개념화되고 실행된다. 스스로 ‘해프닝 그래피티’ 또는 ‘영상서예’라 이름한 허공에 글쓰기와, 너른 자연풍경 속에 한 존재의 실체를 객관적 시점에서 바라보는 정체성 탐구 모두에서 행위와 풍경을 함께 중시하기 때문이다. 사회와 예술세계, 개체와 집단의 관계, 노동과 창작행위, 반복되는 일상에서 사라지고 남겨지는 것 등등에 관한 사색을 행위와 그 흔적영상으로 풀어가는 작업들은 그래서 사유적이기도 하다. 그는 사회학을 전공하며 디지털콘텐츠를 공부했고 겸하여 인문학 탐구의 하나로 서예를 학습했다. 반정부 투쟁과 촛불시위들로 점철된 격동의 시기에 운집한 군중의 열기 속에서 고독감, 교조적 집단논리의 공허와 거기에 겹쳐지는 욕망의 그림자들을 체감하였다. 잠시 몸담은 공연기획과 마케팅플레이어 일에서도 온전하게 몰입하지 못하고 나만의 길과 자기언어를 찾고 싶은 번민이 계속됐다. 방황과 상념들은 고향집 목장에서 매일같이 반복되는 육신의 노동으로 대체했다. 새벽에도 밤에도 계속되는 젖소들과의 접촉, 따스한 온기를 주물러 우유를 짜내고 그들 배설물들을 치워내며 생명활동의 모태와 부산물이 몸에 배어들었다. 노동의 시간 사이에는 농장에 펼쳐진 옥수수밭과 너른 초지를 걸으며 광활한 자연대지와 그 안의 한 점 존재인 자신을 보게 되었다. 목장일 가운데 혼자인 시간에 다시 서예로 자신을 가다듬었다. 그러나 종이나 탁자의 폭과 규범화된 기존 서법에서 벗어나고 글씨에 색채를 결합하고도 싶었다. 그래서 무한으로 열린 자연공간을 바탕삼아 물리적 조건이나 규칙에 매이지 않는 행위의 흔적을 글씨로 담아내기로 했다. ‘책상에서 걸어 나온 무법의 서예’라 이름한 이 작업은 모필과 먹 대신 광섬유뭉치나 갈대뭉치에 반사되는 빛의 작용을 드론 카메라로 기록하면서 허공에 휘젓는 행위의 궤적을 글씨로 삼았다. 때로는 드론의 궤적으로 드넓은 하늘에 커다란 글씨를 쓰기도 했다. 똑같은 하얀 종이 대신 계절마다 주조색이 다채로워지는 자연배경에 갈대뭉치의 빛 반사작용이 가장 효과적으로 촬영되는 시간대나 날씨를 택해 글씨쓰기 행위를 벌이고 기록하는 것이다. 이뿌리는 이른바 글씨라고 통용되는 형태와 의미, 소통 매개로서 기능을 다른 각도에서 재해석하면서, 글씨 쓰는 행위나 그 흔적의 창조적 탈바꿈을 시도한다. 글씨의 획들이 이루는 기호적 형식만이 아닌 장소와 환경과 생각을 담고, 필체 중심의 서예개념과는 다른 쓰여지는 과정의 시간성과 마음작용 같은 복합요소를 서사로 결합시키는 것이다. 서법과 필체로 유형화된 글씨를 무형의 행위흔적으로 치환시켜내는 작업이다. 따라서 그의 허공글씨에는 늘 있던 풍경이라도 시시각각 다른 배경으로 담겨지고, 흘러가는 구름이나 바람결, 새들의 날개짓, 흐르는 강물의 물결과 반짝이는 빛반사 등 자연현상에 따라 의도치 않은 우연효과가 중첩되기도 한다. 농장 밭이나 솔숲, 강가에서 정령을 불러내는 의식처럼 치러지는 허공 글쓰기와는 달리 ‘흰개미’ 작업은 너른 세상 속 미물 같은 존재의 움직임에 초점을 맞춘다. 매일 되풀이되는 반복노동과 자투리 시간이면 농장주변을 쳇바퀴 돌 듯 걷는 게 일과인 자신을 대자연 속 한낱 미물의 움직임으로 객관화시켜 본다. 넓은 들 빼곡히 들어찬 옥수수 군락들 속에서 둥그런 구덩이를 계속해서 파내려가는 자신의 모습을 드론으로 촬영한 것이다. 어디엔가 묻혔을 죽은 젖소의 흔적을 찾는다는 설정인데, 드넓은 밭에서 흰개미처럼 하나의 점일 뿐인 구덩이를 계속해서 파고 있는 단순행위로 지금의 막연한 일상이나 끝 모를 창작세계의 천착을 스스로 비유하고 있다. 은밀한 함정처럼 잘 드러나지도 않는 미물들의 활동흔적을 소재로 한 미시작업은 거미줄 차용으로 연결된다. 허공에 늘어뜨리고 날리고 이어붙이며 검점 키워가는 덧의 구조에 색채를 뿌리고 투명 슬라이드로 채집해 목재구조물과 함께 구성해 놓는다. 무한히 열린 거대 자연 속의 구덩이 파는 작업과, 구석진 어둠 속 먹이를 노리는 미물의 포획망을 그대로 떠내는 작업은 목적을 달리하며 서로 전혀 다른 지점에 있으면서도 의도된 행위와 우연의 결합으로 자신과 타자에게 함정을 남긴다는 점에서 공통되기도 한다. 이뿌리가 얼마 전 선보인 <줄의 안쪽>은 십년 넘게 폐업 상태로 방치된 도심 전자상가 구석에 영상비디오와 텍스트를 설치한 작품이다. 미처 처분되지 못한 물품들이 통로 가득 쌓여 있는 어둠의 공간에 음울한 침묵을 깨고 반복해서 울려 퍼지는 점포 주인의 단순 스트로그 기타연주 소리 비디오영상을 패널이 떨어져 나간 천장 안쪽을 울림통 삼아 설치해 놓았다. 그 아래 화장실 입구 벽에는 읽히지 않는 글자들이 자막처럼 흐르고, 바깥세상과 단절을 현실화시켜주면서 마치 현악기의 줄처럼 나란히 평행선을 긋는 쇠창살에는 투명레진에 붓글씨로 적어내린 작업노트가 망령의 옷자락처럼 나풀거리는 하얀 커튼 뒤로 붙어 있다. 그동안의 허공서예나 행위영상 작업들과는 결을 달리하는 폐공간 현장설치작품은 이뿌리의 또 다른 모색을 시사하기도 한다. 이뿌리는 계획된 작업보다 우연과 변수가 개입될 여지가 많은 현장 중심에 행위성을 결합하는 즉흥작업을 영상으로 담는 작업을 우선한다. 일정부분 흐르는 대로 맡겨두는 작업방식은 더 큰 가능성을 품기 위해서라고도 한다. 다만 일하고 걷고 하는 일상적 행위와 탁자 밖 어딘가에 글씨를 쓴다는 예술적 작업에서 행위적인 요소를 공통되게 끌어내고, 자연요소든 마음의 요소든 행위 중에 우연찮게 개입되는 여지를 자유롭게 열어둔다는 것이다. 이제 갓 신예인 이뿌리 작업의 근간은 서예다. 바람결에 날려 흩어지거나 빛의 반사가 고르지 않아 필획의 연결이 불규칙하게 나타나는 허공의 영상서예라 하더라도 행위 이상으로 글자라는 구체성만큼은 특화되어야 한다. 드론을 날리거나 갈대붓 광섬유붓을 휘두르고 그 흔적을 기록하는 일은 다른 누군가도 얼마든지 가능하기 때문이다. 예술은 즉흥행위나 개념에 의미를 둘 수도 있지만 시각예술로 가시화시켜내는 방법과 형상이미지에서 자신만의 독자적인 작품성을 가다듬을 필요가 있다. 의도이든 자연이든 우연이든 시각예술로 끌어들여졌을 때는 그런 요소들과 행위와 이미지와 의미가 서로 복합적 상관관계를 이루고 있는 것이 기본일 것이다. - 조인호 (광주미술문화연구소 대표) 이뿌리 <영상서예-얼굴>, 2019, 드론영상서예 이뿌리 <흰개미>, 2020, 비디오영상 이뿌리 <원의 함정>, 2020, 채집한 거미줄에 채색, 설치 이뿌리 <줄의 안쪽>, 2020, 반도전자상가 폐공간 영상, 설치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이전글 다음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