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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승찬 개인전 ‘무기력한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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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정헌기 작성일26-02-05 11:28 조회31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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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승찬 '무기력한 풍경' 중

     

    권승찬 개인전  무기력한 풍경

    2026.02.02-02.27, 호랑가시나무아트폴리곤

     

    잊혀지고 지워진 기억 앞에 서다

    공동체 기억은 단순한 과거의 저장이 아니다. 그것은 현재의 방향성과 정체성을 구성한는 과정이다. 기억되지 않은 것은 단지 잊힌 것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거부된 경우가 많다.” - David Carr, Memory and the Real

    무기력한 풍경(2024~2026)은 한국전쟁(1950~53) 직후 전국 곳곳에서 벌어진 대규모 민간인 학살, 이른바 국민보도연맹 사건을 출발점으로 한 작업이다. 국민보도연맹은 한국전쟁 시기, 좌익을 가려내고 관리한다는 명분 아래 개인을 등록 관리하던 국가 주도의 조직이었다. 그러나 실제로 이 명부에 포함된 대부분은 정치활동과 직접적 관련이 없는 일반 민간인이었으며, 전쟁 발발 직후 이들은 잠재적 위협이라는 논리 속에서 재판이나 법적 절차 없이 처형되었다.

    이 사건은 단순히 전쟁 중의 비극으로 환원될 수 없다. 국민보도연맹 학살은 일제강점기 동안 축적된 통치 기술과 폭력의 방식이 해방 이후에도 충분히 청산되지 못한 채, 국가 권력의 이름으로 반복된 결과였다. 해방 이후 전국 각지에서 벌어진 이 학살은 특정 지역이나 특정 시기의 문제가 아니라, 광복 이후에도 지속된 구조적 국가폭력의 한 단면을 드러낸다. 피해 규모는 최소 10만 명에서 최대 12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지만, 전쟁이 끝난 지 76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사건의 전모와 책임은 여전히 온전히 규명되지 않았다.

    작가 권승찬은 자신의 고향인 전남 장흥에서 민간인들이 집단으로 살해되어 바다에 수장되었다는 이야기를 계기로 이 작업을 시작했다. 이 전시는 작년 전남도립미술관에서 선보였던 전시 이후, 현장조사와 리서치를 지속하며 확장 발전된 결과물이다. 2024년부터 작가는 전남과 광주 지역을 중심으로, 나아가 전국 각지의 학살지, 매장지, 수장지를 직접 찾아가며 조사를 이어가고 있다.

    그는 잘 알려지지 않은 장소들을 직접 답사하고, 희생자 유족과 지역 사회 문화 활동가들의 증언을 기록한다. 이 과정에서 작가는 단순한 자료수집을 넘어, 오랫동안 침묵 속에 방치되어온 장소 앞에 신체적으로 서는 행위를 반복한다. 이 작업은 과거의 사건을 설명하거나 재현하기보다는, 은폐되고 왜곡된 국가폭력의 기억이 현재의 공간과 어떻게 겹쳐 있는지를 드러내는 시도이다.

    이번 전시는 회화뿐만 아니라 설치작업과 비디오기록을 함께 포함한다. 작가는 국민보도연맹 사건과 관련된 희생자 매장지 65곳을 찾아다니며 현장을 영상으로 기록했고, 그 장소에 묻혀 있었을- 혹은 여전히 묻혀 있을- 피해자들의 육신과 하나가 되었을 흙을 수집했다. 이 흙은 설치작업의 일부로 전시장에 놓이며, 비디오 작업은 작가의 이동과 체류의 시간을 고스란히 담아낸다. 회화, 설치, 비디오는 각각 독립적인 형식이면서도 동일한 질문을 서로 다른 감각의 층위에서 반복한다.

    작가의 회화에 등장하는 풍경은 특정 사건을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화면 속에는 들판, 바다, , 길과 같은 일상의 장소들이 펼쳐진다. 그러나 이 풍경들은 결코 중립적이지 않다.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은 듯 보이는 이 장소들은 한때 국가폭력이 실제로 작동했던 자리이며, 이후 아무 설명도 없이 일상으로 복귀한 공간들이다. 그 고요함은 평온이 아니라, 말해지지 않은 기억이 남긴 침묵에 가깝다.

    기록되지 않은 더 과거로부터의 폭력을 모두 거론하지 않더라도, 2차 세계대전 이후 나치와 일본 제국이 자행한 대량학살과 인권침해가 역사로 기록된 지 수십 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국가폭력은 여전히 반복되고 있다. 미얀마, 캄보디아, 우크라이나, 이스라엘, 이란, 미국 등 세계 곳곳에서 국가는 여전히 개인의 생명과 존엄과 통제하고 삭제한다. 무기력한 풍경은 국민보도연맹 사건을 과거의 비극으로 고정하지 않고, 이러한 동시대의 현실과 나란히 놓는다.

    이 전시는 국가폭력 앞에서 무력했던 개인의 좌절, 그리고 그 이후를 살아가는 우리의 일상이 얼마나 쉽게 무기력해질 수 있는지를 묻는다. 아직까지도 국민보도연맹 사건이 금기어처럼 회피되는 현실 속에서, 작가는 그 장소 앞에 서는 개인의 위치를 선택한다. 무기력한 풍경은 진실을 단정적으로 말하지 않는다. 대신 우리가 무엇을 기억하지 않기로 선택해 왔는지, 그리고 그 선택이 오늘의 풍경을 어떻게 만들어 왔는지를 조용히 질문한다.

    - 정헌기 (호랑가시나무창작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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