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40주년에 부치는 이매리의 ‘시 배달’ 페이지 정보 작성자 조인호 작성일20-04-17 09:54 조회1,935회 댓글0건 관련링크 이전글 다음글 목록 본문 이매리 초대전 '시 배달' 전시의 일부 5·18 40주년에 부치는 이매리의 ‘시 배달’ 2020.04.07-06.14 / 무안군오승우미술관 초대전 5·18광주민주화운동 40주년! 매년 그래왔듯이 그 10일간의 항쟁과 희생과 정신을 추념하고 오늘에 되새기는 전시들이 여러 기획으로 이미 시작됐거나 준비되고 있다. 시각과 구성을 달리하는 이들 전시들로 40년이라는 묵직한 역사의 퇴적을 들여다보려 하는데, 그러나 코로나19로 전시관 문조차 열지 못하고 있는 현 상황이 안타깝다. 광주 현장에서 꽤 멀리 떨어진 곳에서 특별한 5·18 40주년 기획전이 마련되었다. 무안군 오승우미술관이 초대한 중견작가 이매리의 ‘시 배달(poeat delivery)’이라는 전시이다. 다른 오월전보다 일찍 4월 7일에 시작되어 오는 6월 14일까지 진행되는데, 아직 여유가 있지만 공들여 준비한 전시가 개막도 못하고 당분간 온라인 영상으로만 소개되고 있다. ‘시 배달(poetry delivery)’은 이매리 작가가 2015년부터 국내외에서 여러 유형의 작품들로 이어오고 있는 전시명이다. 그 연속선에서 광주민주화운동 40주년 기획전에 맞춘 이번 전시는 ‘개인과 기억의 집단에 대한 제례와 시적 윤리’라는 부제를 붙여 최근작과 새 작품들을 선보인다. 전시는 미술관 2층 두 개의 큰 공간에 ‘시 배달’과 ‘지층의 시간’으로 나뉘어 모두 10점이 설치되어 있다. 대부분 검은색을 주조로 흑백 사진이미지와 금색 문자들이 결합되어 5·18에 관하여, 또는 유무형의 시공간으로 쌓여진 인류의 역사와 문명과 삶과 존재를 고요히 성찰해 보는 설치·평면·영상작품들이다. 우연찮게 어느 시점 발굴해낸 사라진 역사의 유물들인 것처럼 크고 작은 단편들로 채집되거나 긴 서사의 두루마리로 펼쳐지기도 하고, 여러 층위의 퇴적을 드러내고 있다. 이 가운데 5·18 40주년 기획에 맞춘 거대작 <잃어버린 40년, 우리는 그를 잊었다>(2020)이 주목된다. 전시장 넓은 한쪽 벽을 거의 다 채우다시피 한 이 작품은 441개의 비닐서류봉투에 각각 한웅큼씩의 흙이 담기고 추모의 글들이 적혀있다. 5․18 행방불명자 441명의 유해를 찾기 위해 암매장지로 추정된 광주교도소와 주남마을 등 다섯 군데 발굴현장에서 채취한 흙들이고, ‘임을 위한 행진곡’ 가사와 백기완의 시, 행불자의 묘비명, 제1차 세계대전 후 참담한 심정을 담은 에즈라 파운드의 시 등이다. 80년 5․18 당시 고교생이던 작가가 항쟁기간 거리에서 여러 번 유해운반 차량들을 목격했었고, 아파트로 총알이 날아드는 공포와 긴장 속에서 물자들이 끊겨가는 데도 주민들이 주먹밥을 만들어 물과 우유와 함께 시민군들에게 나누어주는 현장을 보았었다. 그런 충격과 감동의 5·18에 대한 기억풀이이자 4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행방불명 상태인 이름 모를 영혼들에 대한 추념과 환기의 작업인 것이다. 죽음조차 마감 짓지 못한 혼령들을 품었을 그곳의 흙들로 441명의 위령제를 올리는 셈이다. 이와 함께 묵직한 울림을 주는 <지층의 시간>(2020)도 압권이다. 검은 석탄덩이들이 두텁게 깔린 네모진 퇴적 위로 같은 무채색의 91개 패널들이 덮여 있다. 그 패널들은 유적 발굴현장이나 육탈된 인간 두개골 사진, 아니면 그냥 검은 바탕에 구약의 창세기나 불교 금강경, 어느 종족의 흥망성쇄를 이야기한 에즈라 파운드의 시 ‘캔토스’(Cantos), 밥 딜런의 음유시 같은 노래 ‘불어오는 바람 속에(blowin' in the wind)’ 등이 금니사경처럼 정갈한 금분 붓글씨의 히브리어, 라틴어, 영어로 빼곡히들 적혀 있다. 세상 곳곳에서 거듭되어 왔을 인간 개개인이나 집단의 존재, 생성과 소멸에 관한 인류문명사의 대서사를 펼쳐놓은 것이다. 전체 넓이는 3.5m에 6.5m이지만 묵직한 아우라로 넓은 전시공간을 조용히 압도하고 있다. 이 드러난 지층의 주변 네 벽에는 무한 시공간으로 통하는 창인 듯 검은 패널들이 몇 폭씩 줄을 지어 붙어있다. 작은 패널 10폭을 나란히 붙인 <시를 배달하는 자>(2020)는 검은 바탕 해골사진에 금빛 글씨로 영국의 예전 푸르고 복된 땅과 산업혁명 이후 피폐해진 자연과 인간성을 풍자한 윌리엄 블레이크의 ‘예루살렘’ 시가 작은 글씨로 필사되고, 아래쪽에는 그 중 한 소절인 ‘아득한 옛날 저들의 발길은’(And Did Those Feet in Ancient Time)가 적혀진 같은 구성이다. 또한 맞은편 벽의 6폭은 검정 단색들이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무수히 얽혀진 연필선들이 희미하게 드로잉된, 개념적 언어 대신 행위의 흔적만으로 채워진 <절대적 공간>(2018)이라는 작품이다. 영상과 텍스트 소품설치로 구성된 <시 배달>(2020)은 뿌리를 개별존재의 정체성에 관한 작품이다. 베트남·파키스탄·아프카니스탄·북한 등지에서 삶의 뿌리를 옮긴 이주민들의 50개국 민족시들이 각자의 모국어로 읊는 영상과 함께 같은 크기 종이에 각기 다른 문자들로 그 민족시들을 열거해 놓았다. 현대사회가 안고 있는 지역과 인종과 국가 간의 빈부격차와 차별과 노동의 애환을 전하면서 언어도 현재의 삶도 서로 다르지만 모두가 동등한 하나의 세계이기를 희망하고 있다. 15m 길이의 두루마리 두 폭을 천정에서부터 늘어뜨린 <너의 씨앗을 생각하라>(2019)는 개인과 국가의 존재, 그 유장한 역사의 대맥을 서사로 엮어낸 작품이다. 단테의 [신곡] 한 구절을 차용한 제목이라는데, 지난 해 상해임시정부수립 100주년 기념전 때 ‘자유’라는 주제로 출품했던 작품이다. 61cm 폭의 하얀 두루마리에는 지난날의 독립운동과 임시정부수립 관련한 빛바랜 흑백사진들이 서로 겹치고 이어지며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그 흑백의 흔적들 위에 마틴 루터 킹 목사의 흑인 자유에 관한 연설문을 금분 글씨로 옮겨 놓았다. 억압과 차별에 맞서는 자유존재로서 인간과 정치적 자유에 관한 발언을 담고 있다. 이들 평면 또는 설치작품들과 함께 비디오영상 작품 <시 배달>(2017, 2채널)도 이매리 작품세계의 줄기와 주된 의식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그의 고향집이 있었던 강진 월출산 아래 월남사터에서 출발해서 광주와 서울을 지나 임진각까지 고속도로 차창을 스치는 이 땅의 풍경들을 자신과 타자의 시선으로 시낭송과 함께 결합시키고, 다른 화면에서는 월남사터에서 분쟁·전쟁지역 50개 국가의 이민노동자들이 모여 서로의 애환과 고통을 담아 모국의 민족시를 읊는 영상이다. 이번 이매리의 ‘시 배달’ 전시는 시대와 지역과 모습은 달라도 서로 유·무형으로 이어지면서 어느 한 시점의 단편이 아닌 인류 문명사의 총체로서 지속되고 있는 인간존재와 삶의 역사에 관한 대서사이자 경건한 성찰의 장이다. 그런 무한히 이어지는 세상의 역사를 화석화된 석탄과 시간의 층위들과 그 모든 것을 품은 검은색과 존귀와 영원성을 부여하는 금빛을 이용해 과거와 현재를 발굴하고 연결하는 이미지와 텍스트로 교집합시켜 경배의 작업들로 펼쳐내었다. * 전시는 휴관 중이라 미술관 홈페이지(www.muan.go.kr/museun)나 유튜브(검색창 무안군오승우미술관)로 온라인 소개되고 있고, 이 글은 설치를 마쳤을 때 작품을 접했던 것을 공유하기 위해 정리하였다. - 조인호 (광주미술문화연구소 대표) 이매리 <잃어버린 40년 우리는 그를 잊었다>, 2020, 투명서류봉투(33x25cm), 흙, 잉크젯프린트 OHP필름 441개 이매리 <잃어버린 40년 우리는 그를 잊었다>, 2020 (부분) 이매리 <지층의 시간>, 2020, 혼합설치. 3.5x6.5m (부분) 이매리 <시를 배달하는 자>, 2020, 혼합재, 각 70x52cm 이매리 <시 배달>, 2020, 싱글채널 비디오, 디지털프린팅 종이 70개 (각 21x29.7cm) 이매리 <너의 생각을 씨앗하라>, 2019, 디지털 프린팅에 금박, 각 61cmx15m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이전글 다음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