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에 대한 순수한 인식, 김익모의 ‘형상 너머의 세계’ 페이지 정보 작성자 박은지 작성일20-06-15 09:31 조회1,835회 댓글0건 관련링크 이전글 다음글 목록 본문 김익모 <추상풍경2021>, 2020, 캔버스에 아크릴릭, 60.6x45.4cm 자연에 대한 순수한 인식, 김익모의 ‘형상 너머의 세계’ 김익모 개인전 ‘추상풍경-형상 너머의 세계’ 2020.06.09.-06.18 / 예술공간 집 “… 작가 김익모는 세상에 없는 이미지를 창조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예술이란 새로운 이미지를 창조하는 것이라고 생각해 왔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회화의 배경이 되는 사고의 틀은 어떤 내용을 담고 있었을까. <장자>나 <채근담>을 곁에 두고 즐겨 읽는 그는 ‘욕망에 집착하지 않고, 속세의 더러움에 물들지 않으며, 고아한 경지에 뜻을 두되, 외로운 생각에 빠지지 않는 삶’을 추구하고자 하였으며, 그러한 마음가짐이 인격 수양의 길로써 회화의 구도자 측면에서도 일면 상통하는 것이 있었을까? ‘낙천적 허무주의자’로의 삶을 동경하기도 하였으며, ‘무위(無爲)’와 ‘무형(無形)’의 세계에 천착하기도 하였다. 그가 지속적으로 추구하던 것은 ‘놀이로서의 회화’에 대한 태도였던 바, 그가 추구하고, 열망하는 경지가 바로 어린 아이처럼 마음 가는 대로 그리는 그림이었던 것이다. 모두 잘 알다시피 <즐거운 풍경> 연작 시리즈는 그러한 토대 위에 세워진 결실이었다. 작가 자신이 행복해서가 아니라, 행복해지고 싶어서 행복한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는 그의 노력처럼 고통 속에서 인내하고 지혜를 갈구하는 점은 동양 철학의 구석구석에서 찾아볼 수 있는 대목이다. 가는 곳마다 깨달음을 얻지 못하는 곳이 없다는 생각으로 일상 속에서 삶을 관조해 온 그의 모습이 캔버스 곳곳에서 관찰된다. 그는 언제나 ‘자신의 화풍이 매너리즘에 빠지는 것을 가장 경계해야 한다’는 것을 다짐하고, 새로운 이미지를 창조하는 변화의 시점이 짧고 단호하게 변곡점을 맞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였으며, 대가들의 작품에서 영감을 얻기도 하고, 유행과 상관없는 철학적 모티브를 얻고자 ‘자연’에 대한 명상에 몰입하는 시간을 갖기도 하였다. 홀로 있는 작업실 안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시도해보면서 철저히 계산된 추상 이미지를 구성해내는데, 그것은 ‘상징의 세계’라기 보다는 ‘직관의 세계’에 가까운 형태로 작품이 되었다. ‘형상 너머의 무엇’,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그려내는 것’, ‘물리적으로 증명할 수 없는 수많은 가치에 대한 회화적 표현’, ‘상상력에 의존하는 회화의 본질’ 등에 대한 질문이 곧 자신과 자신의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육 철학으로 자연스럽게 굳어졌다. 예술을 정의하고자 함이 아니라, 예술 표현의 자유로움과 다양성에 대한 실천적 가능성에 대해 긍정적인 태도를 갖게 함이 주된 목표였다. 지역에 뿌리 깊은 회화적 전통은 무시할 수 없는 역사성을 담보하고 있었으나, 새로운 조형 흐름이 끊긴 답답한 현실은 몇 몇 소재와 기법이 반복적으로 재생산되는 정체된 덩어리와 같이 무디게 전진하는 것에 대하여 깊이 성찰하게 되었다. 작가 김익모의 회화에서 늘 강조하는 ‘직관적 표현주의’는 우리가 삶에서 일상적으로 대면하는 숱한 대상에 대한 최초의 분위기와 감상을 가장 순수하게 인식하는 하나의 방법론이라 볼 수 있다. 즉, 인물이나 풍경에 대한 묘사와 이해로 빚어진 지식을 의도적으로 거부하고, 대상에 대한 즉자적인 느낌을 경험적 지식으로 인정하고 그 순수한 최초의 감정과 감상을 관람객에게 전달하는 최상의 이미지를 스스로 구성하는 것이다. 그것은 의외로 치밀하고 계산된 절차로 아주 오랜 시간을 작가 스스로의 내적 이미지로 완성시키고 나서야 화폭에 옮겨진다. 자신의 심상(心想)을 색채와 형태로 표현하는데 있어 가장 심혈을 기울이는 대목은 ‘자연물에서 차용한 추상 이미지’를 기획하는 것인데, 소재의 모티브를 ‘자연’에 두고 화폭의 변화를 일궈내고자 노력해왔다. 특히 최근에 답사했던 여러 곳에서 숲에 대한 새로운 감흥을 얻었다. 숲에서 느껴지는 약동하는 생명력을 그려내고 싶었던 것일까. 이번 전시에서는 디지털 화면에 오류가 생긴 것과 같은 초점 흐린 색채의 군집이 펼쳐진다. 언뜻 카메라의 핀이 잘못 맞춰진 상태를 연상하게 하는 이러한 회화적 표현은 그가 숲을 바라보며 느꼈던 무언의 외침을 표현한 것이다. 이러한 자연에 대한 순수한 인식은 형상 너머의 세계를 표현하는 데 집중하게 만들었던 것 같다. 말하자면, 숲을 바라보며 느껴지는 바람 소리, 새 소리, 안개의 밀도 등을 치밀하게 계산한 이미지라는 얘기다. 그렇지 않고서야 캔버스에 응축된 자연의 소리와 풍광을 다 담아낼 수 있었을까. 말초 신경을 자극하는 듯한 미뢰(味蕾)의 기호적인 요소들이 사라지고 오로지 형태가 으스러진 추상 풍경만이 남게 되었다. 작가 김익모에게 남은 것은 ‘지시하는 대상으로서의 회화’가 아니라 ‘함축하는 공간력’이다. 캔버스 안에 자연의 본질인 ‘생명력’을 뿜어내도록 에네르기를 장착하고 마치 숲 속에서 숨을 쉬는 듯한 ‘공감 지대(共感 地帶)’를 관객들에게 선물한 것이다. 시대적 가치관의 변화, 신자유주의 사조의 확산과 도‧농간의 무한한 변화 속에서도, 지속적으로 자연과 밀접하게 교유하여 온, 작가 김익모의 화풍에 면면히 내려오는 줄기를 펼쳐보면, ‘어떤 주어진 상황에서든 활용할 수 있는 설득의 수단을 찾는 능력’으로, 청중에게 정보를 주고, 청중을 설득하며, 청중에게 동기를 부여한다고 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수사학(Rhetoric)이 연상되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초창기부터 현재 작품에 이르기까지 담론의 예술로써 전반적인 감정과 공감, 무엇인가 총체적이고 지속적인 정열을 내포하고 있어, 청중들의 감성에 호소하는 파토스(Pathos)적인 요소가 작품을 내부를 채우고 있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이기적 로고스에 대비되며, 일시적인 감정적 흥분 상태를 넘어서는 장대한 한 획으로 철학적 의미를 부여하여, 인간과 자연의 예술적 담론으로 승화시킨 바, 이것이 작가만의 독특한 화면을 만드는 바탕이 된 것이라고 본다. 초창기 생활 속에서 국도변을 달리면서, 아침 기운을 받은 포플러 잎사귀를 감싸 안은 듯 포진된 안개는 몽환의 숲이었고, 그 사이를 뚫고 들어오는 차가운 바람은 출렁이는 변화였으며, 따스한 볕은 생명의 원동력이었다. 대지는 더욱 더 파랗고, 높푸른 하늘은 그 끝이 없어 보였다. 색, 빛, 점의 기본요소를 단순하고, 냉철하게 정제해 내어, 작가의 정신세계를 나타내는 도구로 점차 익어가는 화풍은, 감정이나 생각이 반영된 주관적인 모습으로 승화시켜 추상적 요소가 가미된 새로운 패턴을 보여주고 있다 …” - 박은지 (갤러리 아트14 대표) 김익모 <추상풍경2023>, 2020, 캔버스에 아크릴릭, 53.0x33.3cm 김익모 <추상풍경2011>, 2020, 캔버스에 아크릴릭, 100x65.2cm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이전글 다음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