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나의 빛 영원한 색채, 남도' 조선대학교미술관 30주년전 페이지 정보 작성자 조인호 작성일19-06-16 13:01 조회2,358회 댓글0건 관련링크 이전글 다음글 목록 본문 조선대학교 개교 초기 미술학과 교수였던 김보현의 <기도>(1994)와 오지호의 <추경>(1953) 찰나의 빛 영원한 색채, 남도 2019광주세계수영선수권대회 및 조선대학교미술관 30주년 특별전 2019. 05. 09 – 08. 12 / 김보현&실비아 올드 미술관 남도 현대미술의 역사로서 조선대학교 미술 대학 미술관은 대학 구성원들의 전문역량을 배양하고 학교 밖 사회·미술계를 잇는 창작활동의 현장이다. 학습과정이나 실기실 또는 연구실에서 이루어진 창작의 산물들을 밖으로 내보이는 쇼케이스이면서 바깥 현장의 생생한 기운과 학습모델이 될 만한 활동들을 흡입하는 충전소이기도 하다. 워낙에 변화도 빠른데다 별의별 일들이 수없이 명멸하는 요즘의 문화흐름에서 대학미술관이야말로 어느 미술관보다 가장 앞서 깨어있어야 하고 진취적 예술실험과 대외소통 교류가 활발히 이루어지는 곳이어야 한다. 1946년 개교 이래 83년 세월동안 조선대학교는 내부 교수진과 졸업생들의 활동으로 해방 이후 한국 현대미술의 역사와 함께 해왔다. 대학의 기본 소임인 창작의 학습처로서 작가와 미술교육자를 양성하고, 그러는 중에 이른바 ‘호남 인상파 화풍’이라는 학파를 형성하기도 했지만, 기존 예술형식이나 집단양식에서 벗어난 파격적 형식과 시대미술의 배양처로서, 신개념 시각예술을 실험하는 창작세계의 산실로서 역사를 쌓아왔다. 따라서 30주년을 맞는 조선대학교미술관은 그런 대학 구성원들의 족적과 활동들을 체계적으로 조사 정리하여 자체역사를 명확히 하고, 현재의 학습·탐구활동과 가능성들을 안팎으로 소개하면서, 적극적인 기획·교류 프로그램들을 통해 재도약의 계기를 만들어야 한다. 김보현&실비아올드 미술관이 조선대대학교 미술관 30주년을 맞아 ‘찰나의 빛, 영원한 색채, 남도’ 전시를 마련했다. 초대된 22인의 작가들은 대부분 초기 예술학과장이었던 김보현을 비롯, 개교 당시 강단에 섰던 교수진과 초기 졸업생, 이후 대학에서 주요 보직을 맡았던 분들이고, 특별히 어떤 공통점으로 묶어지지 않는 몇 분이 더 포함되어 있다. 물론, 회화 쪽만 하더라도 이미 작고했거나 원로·중견이 되고 청년미술계를 리드하며 국내외 미술현장에서 두드러진 창작활동을 펼치고 있는 조선대학교 출신 작가들이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이고 보면 이십여 명 남짓 작가들로 30주년을 기념하기에는 벅차 보이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초대작가들을 조선대학교와 현대미술과의 관계 속에서 몇 가지 그룹으로 간추려볼 수 있다. 먼저, 해방 직후 개교 초기인 40년대 말에서 50년대 초 사이에 강단에 섰던 김보현·백영수·윤재우·천경자 같은 분들이다. 이 시기는 일본 유학파들의 귀국 후 활동으로 비로소 지역화단이 형성되기 시작하던 때이다. 해방공간의 자유의지와 신미술 탐구로 현대미술의 토대를 이제 막 일구기 시작하던 시기다. 당시 이들은 형상의 주관적 해석이나 반추상 형식을 띤 독자적 회화세계를 모색하고 있었는데, 아직 지역화단이 특정 성향으로 틀지어지지 않은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추구하는 예술세계나 문화감각이 지역정서와는 잘 부합되지 않았던 듯 일찌감치 조선대를 떠나 타지에서 예술세계들을 펴나가게 된다. 이어 50년대부터 80년대 전반까지 30여년은 조선대가 남도 인상파 화풍의 산실로 자리를 굳힌 시기다. 이 기간 동안 오지호·임직순·김영태·오승우·조규일·국용현·김종수·양영남 등으로 이어지는 내림이 그들 작품활동뿐 아니라 미술교육을 통해 같은 계열의 작가들을 확산시키고 일반인들의 보편적 미감으로 배어들면서 지역미술의 집단양식을 만들어내게 되었다. 특히 오지호의 남도 빛과 약동하는 생명력을 근원으로 삼는 자연감흥의 색채와 필촉의 맛, 그의 뒤를 잇는 임직순의 표현성 강한 대상 해석과 오묘한 색채의 마법은 조선대 미술 또는 남도 서양화단이 ‘인상파 화풍’이라는 전형을 이루는데 절대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같은 학풍 속에서도 점차 독자적인 시각과 화폭을 탐구하여 집단양식과는 다른 회화세계를 일구어낸 경우가 진양욱·황영성·양계남·최영훈·진원장 등의 예이다. 이들은 학풍의 바탕 위에 ‘자연’을 회화의 모본으로 삼되, 진양욱처럼 화폭에서 색채의 효과와 특수 마티에르로 차별화를 모색하거나, 황영성처럼 세계의 근원적 질서인 생명공존 우주관을 단순 색면화 또는 다양한 재료로 압축하거나 무한증식으로 펼쳐내기도 하고, 양계남은 지역 전통회화를 익혔음에도 자연소재에 상상을 가미한 세필채색화로 현대 한국화의 변화를 모색하는가 하면, 최영훈·진원장은 자연소재를 단순화하여 심미적 색채효과에 집중하기도 하였다. 이와 함께 학풍의 전반적인 서양화 쪽 쏠림현상과 학교 교육체제와는 다른 전통적 사승관계가 고착된 한국화의 후진양성에 한계를 가졌을 이창주, 조선대와는 다른 학풍의 광주사범대학 출신으로 한 때 격렬한 앵프로멜의 전사였다가 구상회화로 전향한 명창준, 민족혼과 남도의 맥을 화두삼아 현실과 이상이 결합된 초현실적 리얼리즘을 추구했던 이강하, 문학적 서정과 시심을 두터운 마티에르와 거친 필촉을 덧쌓아 우려낸 한희원, 현상 이면의 창조적 에너지를 빛으로 재해석한 색채와 부정형의 화폭으로 담아낸 김유섭, 정겹고 화사한 남도 서정을 절제된 형상과 평면들의 중첩으로 다듬어낸 박구환 등의 작품도 조대미술 또는 남도 회화의 다양성을 수놓고 있는 경우들이다. 분명, 이 전시는 조선대 미술의 역사와 활동들을 고루 보여주기에는 역부족이다. 이 전시와 더불어 2019광주세계수영선수권대회를 기념하여 백학미술관에서 기획한 설치·영상·미디어아트 전시가 남은 부분을 더 채워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외에도 광주 현대미술사에서 뚜렷한 봉우리를 이룬 80년대 현실주의 참여미술과, 뒤늦은 포스트모더니즘 물결 속에 시대변혁을 이끌었던 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 전반 다양한 예술실험과 현장활동, ‘비엔날레 키즈’로 성장한 세대들의 90년대 중반 이후 국내외를 넘나드는 괄목할만한 활동들, 다원성이 일반화된 지금의 현실에서 매체와 형식, 다른 분야와 융복합을 적극 시도하며 이 시대 예술세계를 넓혀가고 있는 활동들까지 눈여겨 볼 부분이 적지 않다. 한국 현대미술의 주요 산실이자 시대문화의 주역들을 배출해낸 80여년 조선대학교 미술이 보다 더 체계적으로 재조명 되고 향후 동력을 불어넣는 후속작업들로 빛을 발할 수 있었으면 한다. - 조인호 (미술사, 광주미술문화연구소 대표) 조선대학교 미술학과 초창기 교수였던 백영수의 <새와 아이>(1977), 오지호의 <추경>(1953) 조선대학교 미술학과 초창기 졸업생 중 김영태의 <산촌에서>1979), 오승우 <도솔산과 동백>(1984), 오지호 후임교수였던 임직순의 <여인상>(1963) 조선대학교 출신이면서 교수진이 된 진양욱, 황영성, 양계남, 김대원의 작품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이전글 다음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