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확정성의 경계, 그 ‘신비의 실체’ - 김유미 회화 페이지 정보 작성자 김허경 작성일19-11-30 13:41 조회2,300회 댓글0건 관련링크 이전글 다음글 목록 본문 김유미 <신비의 실체>, 2019, 캔버스에 혼합재, 각 162x112cm 불확정성의 경계, 그 ‘신비의 실체’ - 김유미 회화 2019.11.12.-12.07 / 금산갤러리 초대전 Kim 25는 현대미술의 현장에서 회화의 실천적 방법을 지속적으로 탐색해 왔다. 최근까지 자신의 내부와 외부의 상호작용과 연관된 새로운 작업방식을 시도하고 있다. 그런데 이번 전시는 그동안의 작업방식과는 다른 행보를 보인다. 목표 지점을 바라보고 있지만 앞을 향하여 나아가지 않고 제자리에 멈춰 자신만의 ‘색채(color)’에 깊이 천착하고 있다. 마치 탐험가 난센(Fridtjof Nansen)이 북극을 향해 나아가다 탐사(探査)의 어느 지점에 멈춰선 것처럼 Kim 25는 가로막힌 삶의 길목에서 자신이 서있는 위치를 확인해야 했다. 1895년 난센은 북극탐험계획을 발표하고 모두들 불가능하다고 우려했던 북극을 향해 떠났다. 난센이 탄 프람호(Fram 號)는 순조롭게 항해를 하던 중 북위 84도 4분 지점에 다다랐을 때 사방이 얼어붙어 더 이상 나아갈 수 없게 되었다. 길어지는 밤, 기다려도 오지 않는 낮, 혹독한 추위와 어둠속에서 그는 밤하늘에 출렁이는 초록색의 경이로운 빛을 발견한다. 극지방에서 볼 수 있는 이 환상적인 현상은 바로 새벽의 ‘여명’을 뜻하는 ‘오로라(aurora)’ 였다. Kim 25는 제16회 개인전의 작품을 두고 <신비의 실체(The truth of mystery)>라 명명한다. <신비의 실체>는 신비하고 아름다운 현상인 오로라를 닮아 있다. 오로라는 태양에서 방출된 플라스마 입자가 지구를 보호하기 위해 감싸고 있는 자기장에 이끌려 대기로 진입하면서 공기 입자와 충돌하여 빛을 일으키는 현상이다. <신비의 실체>는 오로라의 한 단면을 여러 조각으로 잘라낸 것처럼 빨강·파랑·노랑·초록·분홍 등 신비로운 발색을 드러낸다. 또한 오로라가 붉은색이나 녹색 등의 색채로 커튼 모양의 주름을 만들어 내는 것처럼 <신비의 실체>에도 일시성과 우연성이 빚어낸 즉흥적인 효과로 인해 주름과 선이 종종 발생한다. (중략) Kim 25는 스스로 “모든 순간, 모든 신비의 세계를 경험하기 위해 자신과의 합일(合一)을 통해 그 실체에 접근해 간다”고 말한다. 작가는 “민낯의 생면 천에 섞인 물감반죽이 붓끝에서 휘돌아 각기 다른 뉘앙스로 서로 껴안으며, 구겨진 텍스트와 주름진 장들로 현생(現生)을 대변한다”고 설명한다. 작가는 이젤 위의 캔버스를 거부하고 바닥에 깔아놓은 수십 장의 면천을 오가며 신체적 움직임을 통한 행위를 끊임없이 시도한다. 더불어 커다란 붓으로 수성아크릴과 바니쉬(varnish)를 겹쳐 바르는 과정을 반복한다. 이윽고 유화와 아크릴 물감으로는 표현할 수 없는 오묘한 색채들이 생성되는 순간, 신비한 체험에 빠져든다. 화면에 안착된 색채들은 겹쳐지고, 흘러내리고, 고착되는 경과를 거쳐 스며들고 베어나면서 각기 다른 색채의 패턴을 형성한다. 오로라의 실체처럼 일정한 형태나 동일한 색채는 하나도 없다. Kim 25의 <신비의 실체>는 여기에 머물지 않는다. 프레임(cadre)이 없다. 일반적으로 프레임은 이미지의 모태(母胎)이자 표상(表象)의 가장 필수적인 조건으로 기능한다. 회화에서 프레임은 “보기 위해 만들어진 것” 즉 “시각의 대상”을 구성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해왔다. Kim 25의 작품처럼 프레임이 없다는 것은 자신 내부의 불확정성뿐 아니라 그림의 내재적 불확정성을 강화시킨다. 때문에 회화 전체를 불확정성의 텍스트로 만들어 그림내부에 끊임없이 침투하고 관여하려는 태도를 유발시킨다. 이와 연관하여 Kim 25는 근자에 <신비의 실체>를 신(scene)으로 나누어 배열하거나 커다란 프레임을 하나의 작품으로 분리시키는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화면들을 분해하거나 재배치하여 몇 개의 신(scene)으로 나누고 있지만 총체적인 이미지들은 이내 시퀀스(sequence)를 이룬다. 우리는 평면의 불확정성을 근거로 프레임과 분리되어 있는 화면을 통해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각기 다른 사유를 경험하게 된다. 하지만 우리가 무엇을 지각하든 그것은 재구성된 이미지일 뿐 객관적인 현실이 아니다. 평론가 자크 오몽(Jacques Aumont)은 ‘프레임-오브제(cadre-objet)’, ‘프레임-한계(cadre-limite)’, ‘프레임-창문(cadre-fenêtre)’으로 구분하여 이를 규명한 바 있다. 오몽의 분류에 따르면 <신비의 실체>는 ‘프레임-창문’으로 해석된다. ‘프레임-창문’은 이미지와 세계를 연결시켜주는 ‘통로’로서 비가시적인 것, 즉 상상적인 것을 향해 열려있다. 철학자 데리다(Jacque Derrida)의 ‘파레르곤(parergon)’은 오몽이 구분한 ‘프레임-오브제(cadre-objet)’의 연장선에서 확장된 해석을 가능케 한다. ‘파레르곤’은 ‘주변’을 의미하는 ‘파라’(para)와 ‘작품’을 뜻하는 ‘에르곤’(ergon)이 합쳐진 단어로 작품을 감싸는 프레임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데리다는 회화에 대한 사유를 담은 『회화의 진리(La vérité en peinture)』(1987)에서 프레임이 작품의 내부와 외부에 모두 속하는 ‘이중적 경계’이자 또는 어느 것에 속하지 않는 ‘독자적 형상’이라는 두 가지의 관점을 제시했다. 결국 데리다의 ‘파레르곤’은 작품으로부터 떼어내어 분리할 수 있는 바깥이 아니라 안과 바깥사이의 관계를 설정하고 안과 바깥사이의 상호작용을 발현시킨다. 가령, 우리는 그림을 볼 때 액자를 벽으로 여기다가도 벽을 볼 때는 액자를 그림의 일부로 바라본다. <신비의 실체>에서 ‘프레임-오브제’는 작품의 바깥이기도 하고 작품의 일부이기도 한 이중적인 존재이다. 작가는 ‘프레임-오브제’를 통해 예술작품이 소위 본질적인 것 즉 ‘에르곤’이라고 규정하는 것 내부에 존재하는 ‘결핍’을 스스로 인정하고 있다. 왜냐하면 ‘에르곤(작품)’은 바로 ‘파레르곤(주변)’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신비의 실체>는 내적인 질서와 외적인 작용에 대한 분리이자 동시에 관계를 연결하는 이중적 속성 즉 ‘경계’에 있다. 다시 말해 kim 25의 작품에서 프레임은 ‘분리’와 ‘연결’이라는 이중적 속성을 드러내는 일종의 기호이다. (중략) 오로라의 신비로운 현상처럼 KIM 25의 <신비의 실체>는 ‘프레임과 창문’ 너머 이미지와 세계 사이에 존재한다. 또한 데리다가 ‘파레르곤’에 주목한 것처럼 ‘프레임-오브제’로서 그림의 안과 밖의 상호작용을 지지하는 ‘회화의 바깥이면서 동시에 회화의 일부’임을 증명하고 있다. 요컨대 KIM 25의 작품은 회화의 의미를 고정시키고 완결 짓기보다는 내부와 외부의 유동성과 비-고정성, 불확정성의 경계에서 우리에게 ‘신비의 실체’로 다가온다. - 김허경 (미술학 박사) 김유미 <신비의 실체>, 2019, 캔버스에 혼합재, 164x105, 164x112cm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이전글 다음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