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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 가까이, 사람 가까이 ; 김희상의 작품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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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고영재 작성일19-12-24 11:42 조회1,93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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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사람꽃, 가변설치, 점토, 장작가마 무유소성 2016, 2015, 2016, 2017.jpg
    김희상 <사람꽃>, 2015~2017, 점토, 장작가마 무유소성
      

     

     삶 가까이, 사람 가까이 ; 김희상의 작품세계

     

    제법 추운 기운이 올라오는 12월의 첫 주 서울로 뒤늦은 휴가를 떠났다. 신산한 마음이 일었는지, 항상 먼저 들르는 전시회장이 아닌 성북동 길상사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백석 시인과 김영한의 애끓는 사랑, 그리고 법정 스님의 청아한 정신이 아로새겨진 그 곳은 여전히 도시의 호흡과는 다르게 느린 숨을 내쉬고 있었다. 법복 차림을 한 채 석탑 아래서 오랜 시간 기도를 올리는 어르신, 추운 날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법회 참석을 위해 삼삼오오 모여든 사람들의 얼굴에는, 하나같이 간절함이 가득했다. 내가 다른 이의 얼굴을 언제 이렇게 유심히 바라보았을까? 나를 투영한 듯, 한 사람 한 사람의 얼굴에는 무수한 희로애락이 한 데 응축되어 있었다. 속된 삶에서는 타인에게 온전한 관심을 기울이기가 힘들다. 다른 사람과의 부대낌이 짐으로 여겨지는 개인주의 사회에서, ‘사람을 이야기하는 작품 또한 점점 드물다.

    10년 전, 오월 기획전을 준비하며 처음 접했던 김희상의 작품은 관계상실을 자처하던 나에게 모종의 환기 역할을 했다. 다른 이의 삶을 작품으로 담아내어, 종국에는 위로를 건네는 그 작업적 결이 참 따스하게 다가왔다.

    흙으로 빚어낸 삶

    84학번인 김희상은 대학에서 조소를 전공했다. 학내미술운동이 한창이던 80년대 미술패와 전국학생미술운동연합에서 활동했고, 졸업 후 민주열사들의 추모비와 초상부조 작업에 적극 참여했다. 대학시절부터 20년 가까이 미술운동 진영에서 활동하며 구축한 작가의 주된 작업적 내용은 시대를 함께 해오고, 또는 함께 이 시대를 살아갈 사람들에 관한 것이었다. 더불어, 그간의 활동에서 주요 형식으로 쓰인 탄탄한 구상작업의 테크닉은 작가의 이후 조형작업에 큰 밑거름이 되었다. 김희상은 2001년 인사갤러리에서의 목조각 작품전 <숲으로부터>를 마지막으로 긴 시간 작업적 모색을 단행한다. 자신만의 작업세계, 즉 김희상만의 정체성을 고민하며 수년간 사회, 역사, 종교, 예술 등 다양한 분야를 공부하고 현장을 답사했다.

    작가 프로필 사진.jpg

    2000년 중반부터 현재까지 이어오고 있는 인물상 <사람꽃> 연작은 작가의 오랜 시간 침잠의 결과물이다. 본 연작은 도자와 소조(塑造, modeling) 형식이 혼재된 도조(陶彫)작업으로, 불교의 오백나한상에서 유래한 것이다. 중생을 이롭게 한다는 나한, 일체의 번뇌를 끊고 지혜를 얻어 세상 사람들의 공양을 받는 성자를 의미하지만, 다른 불교문화권과 다르게 우리의 나한상은 보다 친숙한 동세와 인간적인 표정이 두드러진다. 더불어 부처와 중생의 연결고리로 해탈의 시작점이며 사람과 가장 가까운 존재로 읽혀지는데, 김희상은 중생과 호흡하는 나한의 상징적 의미에 집중하며 그만의 인물상을 만들어냈다. 청년시절 스케치했던 노동자들의 얼굴부터, TV와 신문, 잡지 등의 매체에서 끌어올린 각양각색의 사람들, 그리고 가까이 호흡하는 지인과 이웃의 얼굴까지, 회화적인 손맛을 통해서 나오는 인물들의 표정에는 사람살이의 희로애락이 오롯이 담겨있다. 잇몸까지 드러내며 아이처럼 크게 웃는 사람들, 사색하며 물끄러미 시선을 두는 이, 반가움에 미소 짓는 사람, 깊은 고민에 빠져 있거나, 화가 나 있거나, 두 눈을 가린 채 슬퍼하는 사람까지, 흙으로 빚어낸 인물의 면면은 직관적인 흙의 속성만큼이나 날것 그대로의 모습이다.

    평균 30~50cm의 크기로 나오는 인물상은 점토로 형상을 만들어 속을 파내고 건조한 후, 1200~1300도의 장작가마에서 유약 없이 구워내는 고단한 과정을 거친다. 매끄러운 질감의 유약, 그리고 비교적 균일한 소성을 가능케 하는 가스나 전기가마 대신, 작가는 계속 무유와 장작가마를 고집한다. 무유소성, 즉 유약 없이 재가 녹아내려 색을 내는 이 제작기법은 미세한 물리적 여건에 따라 기면의 빛깔이 달라지는 매력을 지닌다. 특히 김희상은 아래에서 불을 때는 가마 형태가 아닌 위에서 불을 때는 방식을 통해, 재가 더 많이 붙어서 녹는 효과를 유도한다. 인물의 다채로운 표정만큼이나 거침없는 질감은 인물 개개인의 존엄과 자유를 대변하는 듯 보는 이로 하여금 풍성한 서정을 불러일으킨다.

    오백나한이 될 때까지

    2014년 개인전에서 작가가 선보였던 인물상이 80여 점, 그 사이 현재까지 180여 점의 인물상을 제작했다. 오백나한상처럼 500점을 채워나갈 계획을 갖고 있는 김희상은 이 작업은 제가 평생을, 죽을 때까지 해도 전혀 부족함이 없겠다는 생각이 듭니다.”라고 말한다. 단순히 숫자가 상기하는 중압감이 아닌, 동시대를 함께하는 이들의 삶, 그 지근거리에서 시선을 떼지 않으려는 작가의 마음이 새삼 고맙고 반갑다.

    사실적인 묘사를 절제하며 개별 인물의 특성을 드러내는 작업은 외려 힘들다. 비슷한 듯 다른 우리의 모습처럼 다양한 인물을 흙으로 빚어내는 작업은, 무엇보다 대상에 대한 깊은 애정과 관심이 선행되어야 한다. 사람 한 사람 한 사람이 꽃이라는 생각이 들어 사람꽃이라는 이름을 지었다는 김희상 작가가 바라보는 궁극의 지점은 단연 사람의 귀함이다. 흙 상감 기법으로 제작한 판각도판 작품에서 보이는 자연과 사람의 어우러짐, 운주사 와불의 표정마냥 꽃무더기 안에 자리한 인물의 잔잔한 미소에서, 인간의 존엄과 소중함을 읽어낼 수 있다.

    패기, 열정, 분노, 슬픔, 희열, 쾌락 이런 감정에 솔직했고 진실했는가! 생로병사의 희로애락을 알 수 있고 받아들인다면, 너와 나 우리 또한 소중한 사람꽃이다.” 5년 전의 작가가 술 한 잔 걸치고 쓰게 되었다는 작업노트의 끝자락에서 일기일회(一期一會)의 속뜻을 새시로 발견할 수 있었다. 우리의 매순간은 일생에 단 한 번뿐인 지나가는 시간들이다. 크게 보면, 단 한 번의 만남과 단 한 번의 기회인 삶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그 삶을 함께 하는 이들을 보다 따뜻하게 보듬을 수 있다면, 더욱 가치 있는 한 해가 되지 않을까 싶다. ‘사람꽃이 주는 메시지에 귀 기울여, 주변과 내 마음자리를 정돈하는 시간을 가져보자.

    -고영재 (광주롯데갤러리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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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희상 <사람꽃>, 2016, 점토, 장작가마 무유소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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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희상 <사람꽃>, 2014, 판각도판에 흙상감, 무유소성 / 2009, 가변설치, 점토, 장작가마 무유소성

     

    2019년 11월 화순군 도암면 작업장에서의 작품들.jpg
    화순 도암면 김희상의 작업장 작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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