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그 투영의 힘 ; 조대연의 사진 세계 페이지 정보 작성자 고영재 작성일19-05-24 10:33 조회2,237회 댓글0건 관련링크 이전글 다음글 목록 본문 사진, 그 투영의 힘 ; 조대연의 사진 세계 음악을 비롯한 모든 예술은 그것을 단순히 알고 즐기는 행위 이상의 인식이라는 의식의 활동을 수반하는 것이기에, 자체가 개인 삶의 증거로써 역할하기도 하고 더불어 사회를 적극 투영하기도 한다. 예술에서의 투영은 ‘무엇을 위한 예술인가’에 대한 쟁점에서 바라볼 때, 다분히 목적 지향적이며 생산자로 하여금 왜 창작하는가에 대해 지속적인 고민을 가능케 한다. 실재에 기초하는 사진은 일차적으로 어떠한 사실을 드러내기 위한 지표로 작용한다. 어찌 보면 사진의 장르적 속성이자 특질인 실재성은 이미 나올 형식이 모두 나온 현대미술 안에서 전복되기 쉬운 가치 판단의 영역일 수 있다. 그러나 조대연이 사진 작업에서 지켜나가고자 하는 기록의 의미가 새삼 반가웠던 이유는 그러한 가치판단에서 무엇보다 확고했기 때문이다. “다큐멘터리 사진에서 거짓을 말할 수는 없어요. 작가의 살아온 삶과 인간성이 그대로 표출되는 작업이기 때문입니다.” 기록의 가치 다큐멘터리 작업으로 알려진 조대연의 본격적인 사진은 보도사진에서 시작되었다. 중앙대 사진학과를 졸업 후 88년부터 5년 여간 신문사에서 사진기자 생활을 했던 조대연은 안정적인 위치를 접고 돌연 유학길에 오른다. 80년대라는 저항의 시대 한 가운데서 사실 전달의 수단으로써 사진을 접한 그가 다시 배움을 선택한 이유는 “내 사진을 찍고 싶어서”이다. 이 지점에서 ‘내 사진’이란 실용적 목적을 위한 다큐멘트(Document)가 아니라 자신이 사회와 삶을 바라보는 시선을 담아내기 위한 다큐멘터리(Documentary)이다. 조대연의 초기 작업은 메시지가 확연하다. IMF 외환위기 이후의 도시 풍경을 담은 <낯선 일상의 리듬> 연작에는 구제금융사태 직후의 사회적 절망감이 흑백 프레임 안에 그득하다. 태양빛이 쏟아져 내리는 교보생명 빌딩의 대형 태극기에는 나란히 건국을 기념하거나 경제부흥을 부르짖는 구호가 선명하지만, 그늘을 지나고 있는 양복을 입은 근경의 피사체는 전체적으로 초점이 흐릿하다. 도시민의 공허한 시선이 대형 빌딩의 원경과 겹쳐지면서 시대의 엇박을 시사하는데, 이러한 사회적 다큐멘터리(Social Documentary) 작업은 삶터와 사람으로 관심 영역이 확대되면서 보다 인간중심적이며 담담한 화면을 구축하게 된다. 90년대 후반 대학에서 교편을 잡으면서 광주에 정착한 조대연이 가장 먼저 다루었던 주제는 지역에 관한 것이다. 내가 숨 쉬고 살아갈 장소의 가치를 가늠하기 위해 작가가 발품을 판 곳은 다름 아닌 섬진강과 진도였다. 한국문화의 원형으로서의 진도를 탐색하고, 섬진강 줄기에 기대어 사는 이들을 근접 시점에서 바라본다. 근접한 시점이라는 것은 대상에 대한 애정에서 비롯된다. 섬진강 시리즈에서 유독 체감되는 사람을 향한 애틋한 시선도 피사체를 향한 깊은 관심에서 기인한 것일 테다. 이제 막 추수를 끝낸 농부는 너른 들판을 배경으로 우뚝 서있다. 땅을 향해 고개를 떨구는 농부의 상반신 주변으로 흰빛 새털구름이 스치는데, 언뜻 도상에서 숙연함과 성스러움이 느껴지기도 한다. 사라져가는 것들을 돌아보며 다큐멘터리 작업은 ‘기록’이냐 ‘해석’이냐의 관점에서 의견이 분분한 논쟁을 야기하는가 하면, 이미지 표출 방법에 있어서 지향점을 달리하기도 한다. 기본적으로 다큐멘터리 사진은 연출이 아닌 실제의 사실에 기반하기 때문에 기술보다는 대상에 접근하는 태도에 주안점을 둔다. 조대연 초기작업의 비판적인 논조가 지극히 객관에 의거하고, 이후의 작업부터 근작까지의 경향이 지극히 주관적이라고 함부로 판단할 수 없는 이유는, 대상을 바라보는 시점이 나아가 현상을 마주하는 태도가 근접에서 관찰자적 시점으로 바뀐 것일 뿐, 인간 삶의 환경이 기반인 다큐멘터리의 특질은 지속된다는 점에서 연유한다. 환경 보존과 개발의 명분에 의해 제법 시끄러웠던 새만금 개발사업이 그 소재인 <흐르는 땅>은 그가 10여 년간 개발 현장을 다니며 찍은 결과물들이다. 본 작업에서 작가는 환경론자의 직설화법으로 현장을 기록하기 보다는, 개발에 의해 생의 터전을 잠식당하는 토착민의 삶에 집중하며 현상을 해석한다. 개발 현장이 지척인 전북 군산의 옥구에서 출생한 작가가 느꼈을 근원적 상실감이 작업에 투영되었을 법도 하지만, 그의 표현대로 “변화에 수긍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을 표현하며 자못 애수 어린 서정을 자아냈다. 화산의 분진에 뒤덮인 듯 간척지에 처박힌 폐차, 덩그러니 남겨진 바다마을의 폐가, 때로는 수평선과 나란히 한 어부의 굽은 등이 근경의 버려진 깡통과 중첩되어 보이는가 하면, 빈 그물을 뒤로 한 현장 순찰인의 표정에서는 무력함마저 읽혀진다. 시적 상징성과 호퍼(Edward Hopper)식의 고독감 혹은 공허함이 내비치는 프레임에서 우리가 외면할 수 없는 사실이 극적으로 드러나는 것을 볼 때, 일상의 촬영이 그저 일상이 아닌 뜻 그대로 의미심장한 구술임을 깨닫게 된다. 순천만의 생명력을 담은 <습지> 연작에서 조대연은 경외의 자연을 잔잔하게 나타내지만, 환경과 어우러지는 인간의 모습을 포착하며 우리 삶의 주변에 대한 관심을 계속 피력한다. 그가 기록의 가치에 천착하며 지속하고 있는 아카이브 구축 작업도 내 삶터와 사람에 대한 애정이 밑바탕에 깔려있기에 가능한 행위이다. 남도의 삶을 담고 싶어서 단행한 아카이브 작업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나를 배제한 채 최대한 객관성을 유지해야 하는 일이지만, 그간 광주교도소와 국군병원, 505보안대, 그리고 소록도를 비롯한 일제강점기의 아픔이 서려있는 제주의 동굴진지까지 발로 밟은 작가는 “보고 기록할 수 있다는 자체가 사진을 찍는 기쁨”이라 역설한다. 근 6년 만에 개인전을 준비 중인 조대연은 근작에서 광주에 대한 소회를 풀어낸다. ‘광주의 시간’이라는 큰 테마의 첫 시리즈작인 이번 전시의 소제목은 <기억을 기다리다>이다. 사진의 배경은 모두 5·18민주광장으로, 지난 10여 년간 광주의 구도심을 다니며 관찰한 장소와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거리극을 포함한 다양한 문화행사, 그리고 3·1운동 기념식이나 추모행사 등이 펼쳐지는 광장의 모습을 ‘가까이할 수도 멀리할 수도 없는’ 입장에서 무던히 기록했다. 민주화를 위한 공간이었던 그 곳의 의미를 상징적으로 함축하는 장면들이 펼쳐지는데, 이미지의 향수자로 하여금 열린 해석을 담보하며 일상의 범주에서 언급되지 못한 이 공간이 어떠한 장소성을 띠는 지 다시금 상기시킨다. 본인 사진의 질감에 대해 물었을 때 그는 ‘먹’을 언급했다. “먹과 같이 흡수되는 사진, 타성에 젖지 않는 그런 사진이었으면 좋겠습니다.”고 말하는 작가에게서, 오롯이 삶이 기반인 다큐멘터리 사진, 그것의 속뜻을 제고하게 된다. - 고영재 (광주롯데갤러리 큐레이터, [전라도닷컴] 6월호 연재글)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이전글 다음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