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의지 재충전 광주작가들의 '북경질주' 페이지 정보 작성자 조인호 작성일18-06-19 18:43 조회2,537회 댓글0건 관련링크 이전글 다음글 목록 본문 표인부 <바람의 기억-붉은색의 강박>(부분), 2016, 캔버스에 종이, 190x150cm 창작의지 재충전 광주작가들의 ‘북경질주’ 2016년 8기 엄기준 장미한 조정태 표인부 2017년 9기 김병택 김연아 이동환 이승하 광주시립미술관이 운영하고 있는 북경창작센터에 2016년과 17년에 입주했던 작가들의 활동성과를 발표하는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2009년 시작된 미술관의 이 창작활동 지원사업의 제8기 9기에 해당하는 기수의 작가들인데, 미술관 본관 5·6전시실에서 6월 12일에 시작하여 8월 26일까지 계속된다. 2016년 8기 입주작가인 엄기준·장미란·조정태·표인부와, 2017년 9기 김병택·김연아·이동환·이승하의 의용에 찬 80여점 대작들이다. 대륙의 이국땅 수도에 마련된 생애 최고의 넓고 높은 작업공간에서 각심하고 모색했던 예술세계의 탐구와 확장노력의 산물들이 말 그대로 ‘북경질주’답다. 현실주의 참여미술 현장 활동으로 청년기를 보낸 조정태는 “법치와 자본이 공존하는 중국의 사회구조, 언론통제와 우민화 등에 대한 관점, 고대부터 지속하는 그들의 고유한 통치방법과 제시된 이상(중국몽) 등”을 접하면서 그들의 눈에 보이는 실재와 본질에 대해 이방인의 관점을 크고 작은 화폭들에 표현해 내었다. <중국몽 2>는 강령처럼 제시된 거대한 선전선동 구호와 폐허가 되어가는 건조물 배경에 인간과 문명과 이념 등등의 “모호한 실체와 현란한 현실이 교차하는” 뒤죽박죽 혼재된 상황을 4m에 가까운 큰 폭의 그림으로 펼쳐낸 것이다. 또한 <나무를 심다>도 거의 같은 크기의 화폭에 붕괴되는 구조와 얽이고 설킨 뿌리들 속에 새 생명의 나무를 심고 있는 인민들, 이런 시대상황을 혼란스런 심사로 겪어내고 있는 듯 몸체는 없이 빈껍데기 옷만으로 상징화된 인물형상으로 구성해냈다. 회색빛 공간에 겹쳐지는 빛바랜 붉은 기운을 소파에 몸을 묻고 지켜보는 <응시2>는 몸으로 체감하게 된 중국현실을 현장에서 느꼈던 당시 심중의 자화상이다. 조정태 <중국몽 II>, 2016, 캔버스에 유화, 194x394cm 김병택은 그동안 다각도로 탐구해 오던 리얼리즘의 시야를 사회주의 미술 현장인 중국의 현재로 옮겨가 이방인의 관점에서 그들 문화에 대한 단상들을 상징적인 소재들로 비유해 놓았다. 제도화된 사회주의 이념과 빠르게 확산되어 가는 자본주의의 욕망들이 혼재된 중국의 현실을 <유산> 연작으로 표현한 작품들이다. 헤아릴 수 없는 역사의 퇴적물인 흑회색 석탄더미 속에 한 시대의 화석들로 파묻힌 중국 전통 도자기들, 그 석탄퇴적 속에 쓰레기들처럼 뒤섞인 외래 서방 자본주의 소비문화 징표들이나 일련의 코드번호들, 채색한 화판 위에 한지를 찢어 붙여가며 특별한 질감을 시도한 거대 태호석 등등이 풍자적인 어법으로 묘사되어 있다. 그는 “역사의 시간을 되돌아 들춰서 망각이 아닌 실체적 기억으로 기록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작업들은 “현실과 현상에서 드러나는 모든 것, 나 자신으로부터 출발하여 대상에 대한 접근과 역사에 대한 실체와 허상, 현실과 비현실의 모순을 나의 조형어법으로 응축시키는 일련의 과정”이라 한다. 김병택 <유산-I Maid in China>(왼쪽), 2017, 캔버스에 혼합. 259x194cm / <유산 V>, 2017, 캔버스에 혼합, 259x194cm 이동환은 지난 7~8년 동안 집중해 오던 ‘불’에 관한 탐닉을 중국에서도 계속 이어낸 연작들을 내놓았다. 불난 집과도 같이 번뇌 가득한 세상을 ‘삼계화택’으로 비유하여 대부분 같은 크기 화폭들에 수간채색으로 풀어놨다. 폭발하듯 타오르는 불길 속에 검은 숯이 되어 무너져 내리거나 불타 사라지는 것들로 혼돈스런 세상을 비춰낸 것이기도 하면서, 어느 면에서는 현세 욕망과 불안과 부조리와 번뇌를 불구덩이에 던져 넣으며 세상 밖 출구를 갈망하는 장중한 의식처럼 보이기도 한다. 실제로 그는 “황홀한 불꽃 너머의 절망적인 공허, 그리고 새롭게 돋아나는 새싹들… 얼마간 더 축적의 시간을 가져야 내게 ‘화엄처럼 황홀하고 칠흑 같은 절망’을 보여줄 것 같다.”고 말한다. 이와 함께 100여점 넘게 계속하고 있는 ‘아! 장준하’ 목판화 연작 일부도 함께 내보이고 있다. 이동환 <三界火宅>, 2017, 장지에 수간채색, 각 117x91cm 10점 등 현실에 맞서 거친 직설 또는 비유적 풍자로 정면 대응하는 세 작가의 넘쳐나는 에너지와 더불어 표인부의 작업은 화폭에 넘실대는 바람결을 실재감 있게 표현했다. ‘바람의 기억’ 연작인데, 캔버스에 일정 크기와 단색조 색깔의 엷은 종이들을 무수하게 덧대어 붙여가며 바람의 편린들을 시각화시켜내었다. 거기에 중국에서 일상 현실로 절감하게 된 먼지, 붉은색, 인민, 돈 등을 암시하는 부제를 붙여 ‘작가의 의식 속에 켜켜이 쌓여있는 기억의 형태’들을 음미하도록 유도한다. “바람은 매 순간순간마다 의식되지 않다가 어느 장소나 시기, 또는 어떤 상황을 통해서 그 존재가 은유적으로 비유되어 삶을 반추하는 형태를 띤다.”는 것이다. 표인부 <바람의 기억-어머니 6>(2017), <어머니 2>(2017), <인민 7>(2016), 캔버스에 종이. 각190x150cm 엄기준은 현대인의 욕망과 현실갈등을 ‘New City' 연작으로 표현해내었다. 주체가 사라진 껍데기 코르셋이나 몸의 외피들만이 허공에 떠도는 형상이다. 하지만 부유하는 그들 토르소나 몸체들의 표면은 치밀한 격자구조 속에 정교하게 채워진 점묘들로 개별존재이면서 또한 집단이라는 질서를 이루고 있다. 따라서 그들은 금빛 바탕 위에 무리를 지어 춤추며 흔들거리거나 홀로 허공에 떠돌기도 한다. “현대사회의 다양한 사회현상과 현대인의 생활양상을 흥미로운 작업소재로 삼으면서…개개인이 모여 하나의 사회가 되는 형태를 시각적으로 표현해 내고자 한 것”이라 한다. 엄기준 <New City-Dance 13>(오른쪽), 2018, 종이에 혼합재, 162x130cm 김연아는 ‘미몽’처럼 흐릿한 도시의 야경 속을 거닌다. ‘The City'연작은 희미해지는 노을빛과 겹치며 시커멓게 어둠에 묻혀가는 도시의 원경이거나, 온갖 잡다한 일상들을 실루엣으로 파묻고 환상의 불빛만이 도로변과 마을과 수변에 은근한 담먹과 채색들로 빛을 드리우고 있다. “고요함 속에 은은히 빛나는 불빛을 보고 있노라면 어떠한 번뇌도 없어지는 듯 하다… 심리적으로 느껴지는 체험을 야경-빛을 통해 정신적인 재현을 나타내며 내적 자기치유의 움직임으로 반복한다.”는 것이다. 김연아 <The City No.017-1>, 2017, 장지에 채색. 38x25cm, <The City No.017-11>,2017, 장지에 채색, 190x125cm 내면으로 침잠하는 작업이라면 장미란의 수묵채색 작업들도 고요와 투명한 생동들이 함께 한다. ‘꽃’ ‘불상’ 같은 구체적 화제도 그렇지만 ‘생동’ 연작들은 마치 투명한 수면 위에 푸른 생명의 수풀 그림자들이 번져 오르듯 잔잔한 요동의 움직임들을 비춰낸다. “나는 수묵의 번짐과 중첩의 효과로… 생동하는 듯한 나뭇가지와 들풀의 하늘거림을 단색으로 함축하여 몽환적 분위기… 모호한 희망의 심리적 투사들”을 그려낸다. 장미란 <생동 27>, 2016, 한지에 수묵채색, 69x328cm 물기 촉촉한 먹의 번짐효과이면서 이를 영상과 여러 단편들로 인화시켜내는 것에서 이승하의 ‘무제’는 다른 회화작업들과 결과물을 달리한다. 공간의 틀을 넘어 마법처럼 무한히 번져 나가는 먹 또는 원색안료들의 번짐과 그 파문들을 비디오 영상으로 담아 보이면서 한쪽에서는 그 변화하는 순간순간의 이미지들을 몇 컷 패널에 담아놓았다. “‘The Untitled Space’ 작품은 의식과 무의식, 존재와 비존재, 생성과 소멸의 세계로 넘어가는 지점에서 작업이 시작되었다… 물의 생성과 소멸이라는 순환적인 흐름과 빛의 변화를 통한 의식의 세계에서 무의식의 세계로 넘어가는 지점을 담고 싶었다.”고 한다. 서로 다른 의식과 작품세계를 가진 여덟 작가가 1년씩 이국땅에 나가 낯선 환경과 부딪히며 새로운 의지를 충전하고 자유로움과 자기성찰의 시간들을 가졌다. 새삼 되비춰본 세상과 자신에 대한 여러 생각과 감정과 욕구들을 크고 작은 화폭들에 저장해 놓은 작품들이 이번 북경질주전이다. 이번 북경 창작센터 입주활동은 다른 공간과 환경조건 속에서 새롭게 느끼고 다잡았던 작업의 방향과 창작의지들을 더 적극적으로 펼쳐가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 조인호 (광주비엔날레 전문위원)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이전글 다음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