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이 담아내는 메시지; 이정기의 작품세계 페이지 정보 작성자 고영재 작성일19-04-24 10:55 조회3,157회 댓글0건 관련링크 이전글 다음글 목록 본문 이정기 <piggy bank>. 2018 예술이 담아내는 메시지; 이정기의 작품세계 나비효과(Butterfly effect)라는 말이 있다. 나비의 날갯짓이 커다란 태풍을 일으키듯 인지할 수 없을 정도의 미미한 변화나 작은 사건이 막대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음을 뜻하는 용어이다. 크고 작은 인연의 무수한 관계망으로 이어지는 지금의 사회도, 더불어 그 사회의 구성원인 우리 또한 나비효과의 굴레에서 자유로울 순 없을 테다. 이는 단순히 개인의 선택과 판단의 문제이기 전에, ‘범주 안에 존재하는 인간’이라는 지점에서 생각해볼 수 있는 사회적 책임감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정기 작가의 작업이 다소 무거울 수 있는 그러한 책임감에서 비롯되었다고 하면 과장일까? 시대상을 반영하듯 가볍고 경쾌한, 혹은 최첨단의 예술적 형식이 난무하는 지금에 이르러서도 내용의 진중함을 추구하는 그는 미술이 담당할 수 있는, 아니 담당해야만 하는 모종의 ‘역할’을 꿈꾸는 듯하다. “작품에는 사회를 반영하는 메시지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정기 작가가 작업을 통해 드러내고자 하는 쟁점은 무엇일까? 잃어가고 있는 가치에 대해 이정기의 작업은 현대문명 안에서 사라져가는 것들에 관한 물음에서 시작되었다. 난색조 위주의 색감과 추상적인 면 분할이 돋보이는 초기의 화폭은 고대의 동굴벽화를 재해석한 것으로, 작가는 인간사의 근원적 생명력과 함께 공동체에 대한 향수를 원시 유적의 미감을 빌려 표현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다양한 형식적 실험을 고민한 그는 재료나 기법에서 회화적 범주를 탈피한다. 기성 오브제, 자연물을 이용해 설치작업을 시도한 이정기가 한동안 주목한 재료는 깨진 거울 파편이다. 도시의 난개발로 버려지고 잘려 나간 나무나 사물에 거울 조각을 붙인 작품에선 재료가 부여하는 상징성 그대로, 반성적 시각을 투영하고자 했다. 평면과 입체, 설치 형식을 오가며 10년 가까이 이정기 작업의 주된 도상으로 쓰인 파편화된 거울은 작가의 표현처럼 두 개의 자아를 의미한다. 조각난 거울에 비치는 일차적인 형상은 분명 현실 속 나의 모습이지만, 왜곡된 형상을 인식하는 과정에서 발견하게 되는 나의 모습은 실천의 행위로 이끌어낸 반성적 자아에 다름 아니다. 시각의 투영, 나아가서는 내면의 투영을 담보하는 이러한 재료적 특질은 이후 돼지 저금통이나 쇼핑백의 형태로 분하며 물질만능주의의 병폐와 무분별한 소비사회의 단면을 언급하기도 한다. 사람살이의 근원에 대한 천착, 발전과 개발의 명분에 의해 상실한 인간성 더러는 인간다움, 이기주의가 만연한 현대사회에서의 성찰과 소통의 부재까지, 이정기가 거울이라는 매체를 통해 보여준 작업적 메시지는 하나같이 우리가 잃어가고 있는 삶의 가치에 관한 것들이다.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의 붕괴, IMF 외환위기 등 소위 90년대 중반의 엑스 세대였던 작가가 체감한 당대의 누적된 불협화음은 그로 하여금 “미술의 사회적 역할과 기능에 대해 생각하는 계기”를 만들어주었다. 지금도 세상 돌아가는 형국에 관심이 많고, 타인의 아픔에 깊은 시선을 기울이는 이정기는 여전히 작품 안에 사회를 담고 사람을 담고 싶어 한다. 생의 인과성 ; 유물 시대의 불합리함을 자각함과 동시에 지금을 살아가고 있는 나와 우리를 돌아보는 도구로써 깨진 거울이 그 역할을 하였다면, 이정기가 작품 세계의 키워드로 함께 끌고 온 또 다른 테마는 ‘유물’이다. 유물은 과거와 현재, 미래를 수반하는 개념으로 과거의 삶이 고스란히 응축되어 후대까지 이어진 의미 그대로의 ‘남겨진 물건’을 지칭한다. 더불어, 지나간 시간과 지금의 시간, 그리고 다가오는 시간까지의 모든 시공간을 가늠할 수 있는 상징적 사물이기 때문에, 작가 나름 사회적 인과관계를 비유하기에 가장 적합한 대상이었는지도 모른다. 지금 이순간의 우리의 모든 선택과 결정이 앞으로의 세대에 어떠한 결과를 초래할 것인가에 문제를 제기하는 이정기 작가는 유물의 형식을 차용해 작업의 메시지를 풀어 나간다. 초창기의 ‘기념비적 유물’이 인류의 보편적 가치 상실을 강조하는 측면에서의 은유적 접근이었다면, 근작에서는 보다 즉물적인 형태로 가상의 유물을 만들어낸다. 모나리자를 떠오르게 하는 어머니의 초상, 때로는 박물관에 전시된 대리석상으로 표현된 부모님의 형상에선 질곡의 현대사를 견뎌온 윗세대에 표하는 경의(敬意)를 발견할 수 있다.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주변인들을 석고와 레진으로 캐스팅한 후 대리석이나 청동, 테라코타 등의 고전적인 질감으로 아크릴 채색을 가한 부조 작품은 의도적으로 사실적인 묘사가 배제되어 있다. 얼핏 폼페이 유적의 그것이 떠오르는데, 녹아내리듯 뭉뚱그려진 모습에서 위태로운 현재가 느껴진다. 아이를 잉태한 여인은 절박하게 배를 감싸 안는가 하면, 겨우 자신의 키만 한 크기의 공간에 엎드린 아이는 조심스레 바다를 건너는 중이다. 생명력을 감금당한 듯 하나의 덩어리로 무심히 툭 던져진 인물상들은 많은 설명을 부연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최근의 작품 경향을 통해 점점 첨예화되고 있는 인종, 세대, 종교 간의 갈등이나 거듭되는 환경파괴 등의 현 시대의 문제들이 자연스럽게 유추된다. 종전의 성향보다 함축적인 어법으로 구술되었지만 외려 사유의 폭을 확장시키고 있음을 발견한다. 유물의 형태로 제시된 형상은 우리의 자화상이기도 하지만 현재의 모습을 기록하고자 하는 작가적 고민의 산물이기도 하다. ‘삶을 위한 예술’을 지양하는 입장에선 이정기의 작업 성향과 태도가 구태의연하고 유행에 뒤쳐진 흐름으로 인식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가 작업을 통해 꾸준히 유지해 온 내용은 어찌 보면 우리 모두가 감당해야 할 실존에 관한 고민일 수 있다. 다가오는 전시를 위한 작가의 작업계획서에는 <40대의 행복론> <현재인> <플라스틱 세상>이라는 가칭으로 작품 설명이 나열되어 있었다. 새삼 가족의 안부를 묻는 오월이기도 하지만 시대의 아픔을 되새기는 오월이기도 하다. 오월 정신은 과거형이 아닌, 바로 현재에 대한 끊임없는 문제제기일 터이다. 여느 때보다 이정기 작가의 사회를 향한 관심이 반가운 봄이다. - 고영재 (광주롯데갤러리 큐레이터) [전라도닷컴] <문화야 놀자-‘고영재의 작가탐험’>(2019년 5월호) 이정기의 가족소재 작품 <희귀한 유물 II>(2018), <시대의 초상-어버지를 기록하는 방법>(2017), <시대의 기록-어머니를 기록하는 방법>(2018) 이정기 <Shopping Bag>(2012), <시대의 유물-식탁>(2017) 이정기 <시대의 유물-부상>(부분, 2016) 이정기 <바다를 건너서>(2018), Acrylic on plaster cast, resin, wood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이전글 다음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