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이남 초대전 리뷰; 나로부터 모두에게로 다가가는 빛 페이지 정보 작성자 문희영 작성일23-05-18 10:21 조회1,345회 댓글0건 관련링크 이전글 다음글 목록 본문 이이남, <책 읽어주는 소녀>, 2022, 영상 설치 혼합매체 이이남 초대전 리뷰; 나로부터 모두에게로 다가가는 빛 2022.12.01-2023.04.30 / 광주시립미술관 미디어아트플랫폼 기억의 광장으로 전시가 시작되는 지점, 우리는 작가의 유년 시절로 함께 귀의한다. 담담하게 읊어내는 작가의 독백은 작품의 이야기를 연다. ‘이이남입니다.’라고 반복 각인되는 말머리는 작가의 과거이자 모두의 과거로 시간 이동을 이끌어간다. 작가인 ‘나’의 기억은 관람자들의 기억과 중첩되며 같은 시공간에 존재하는 숱한 ‘나’들의 상실된 기억과 시간을 다시 끌어 올린다. 고개를 숙이고 몸을 낮추어 진입하는 낯선 시공간. 숙연하게 정제(整齊)된 몸과 마음으로 마주한 공간에 기억의 광장이 있다. 작품의 화자가 된 5학년의 이이남, 따스한 봄볕과 함께 유난히 서글펐던 잿빛 공기의 기억을 들춰냈다. 어린아이의 천진난만한 마음을 파고들었던 낯선 두려움과 즐거운 일상 속 불쑥 튀어나오던 날 선 공포가 모두 뒤섞인 기억의 광장에 몸이 놓인다. 열을 맞춰 늘어선 낡은 선풍기의 단정하지 않은 바람 소리, 삐걱거리는 날개의 웅성거림도, 미디어의 화려한 빛도 묘연하게 중첩된다. 시간의 역주행을 가속하게 하는 건 이이남 작가의 유년 시절 사진과 상장 등의 기록물들이다. ‘횃불을 든 소년’과 ‘책 읽는 소녀’ 동상 덕분에 시간은 더 거꾸로 파고든다. 소녀의 무릎에 놓인 책은 작가가 띄우는 메시지로 작품의 화자인 작가 이이남의 메시지를 대변한다. 작가 개인의 단편이 아닌 시대를 함께 살아낸 모든 이들의 역사가 밀집된 광장인 것이다. 기억의 광장 안에서 작가는 묵직한 질문을 건넨다. 인류의 근원적 질문일 수도 있는 그런 물음이다. 우리는 어디에서 왔고, 어디에 존재하며, 또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지, 과거 현재 미래라는 영속적 시간의 굴레 안에서 우리를 존재하게 하는 것은 무엇인지. 무수한 생과 사의 사이에 실존하는 것은 무엇인지.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생성과 소멸’이라는 뫼비우스 같은 물음을 온몸에 이입시켜 낸다. 5학년이었던, 5월이었던, 80년 봄날의 파편은 숱한 누군가의 마음에도 박혀 있을 아픔의 시간이다. 사라지지 않는 기억, 중첩되어가는 시간의 중량 작가 이이남을 상징하는 표상들이 거대한 화면을 가득 채웠다. 동서양 고전 작품들에서 빌려온 과거의 시간과 자신의 기억에서 불러낸 과거의 표상들은 영상 속 혼재됨을 거듭한다. 계절이 바뀌고 꽃이 피고 지고, 눈이 내리는 가운데 ‘책 읽는 소녀’도 ‘다윗상’도, 하늘에 떠다니던 헬리콥터도 폭격인지 불꽃인지 묘연한 빛도, 그 모든 파편은 서로 뒤섞이고 충돌하고 사그라들기를 반복한다. 이렇게 5학년 소년에게 각인된 조각조각의 단편들이 하나의 시공간으로 꽉 들어찬다. 어머니의 온기가 스며든 양철 도시락 속 파란 하늘, 아버지의 해진 양복 주머니를 헐겁게 채웠던 동전 더미, 기억 너머 잠들어 있던 어린 날의 시간이 아스라하게 솟아오른다. 이이남 작가가 끌어올린 것은 시간 너머 내재한 기억의 뿌리이다. 과거로부터 현재, 또 미래를 연결해나가는 끈질긴 뿌리이다. 덤덤한 나레이션 뒤로 천첩(千疊)되는 영상은 숱한 시간의 중량을 배가시킨다. 초현실이자 비현실이며 디지털 세상이 만든 공명의 공간에 우리를 더욱 깊숙이 이입시킨다. 표상 너머 끄집어낸 사라지지 않는 기억의 시간을 다시 환기해주며, 과거가 단지 과거가 아님을 확인한다. 시간은 계속 흘러가고, 사라져가는 시간 속 내재한 ‘영원과 진리’는 무엇인지 되뇌게 한다. 5학년이었던 작가만이 아닌 누구에게도 대입되는 물음으로, 현재의 이이남 작가가 던지는 근원적 질문은 자신의 예술을 향한 질문이자 진정 현시대 예술이란 명제가 나아갈 방향성이기도 하다. 작가는 자신을 상징해오던 고전 명화들의 차용에서 끊임없이 시간의 확장을 이끌어간다. 과거와 현재, 미래로 이어지는 시간이 내포한 진동의 폭을 점자 확장해나가는 것이다. 그 시작점은 자신 스스로를 다시 들여다보고 꺼내는 것이었다. 작가인 ‘나’이자 모두를 대변하는 ‘나’를 작품의 전면에 세웠다. 어쩌면 나를 가장 큰 존재이자 시간 안에 소멸해가는 가장 작은 존재로 귀결시키는 것일지도 모른다. 어린 시절 스스로의 기억으로부터 촉발된 표상들이 시간이라는 무게를 견고하게 중첩 시켜내며 물리적 시공간으로 나아가는 끝없는 실험이 한없이 달갑다. 거룩하고도 찬란하게 “저항할 수 없고, 정지되지 않고, 쉬지 않고 자신을 소멸하는 시간의 폭력 속에 영원한 것은 무엇인가? 나의 존재와 기억은 어디로 가는가? 진리는 과연 존재하는가?”- 이이남. 한 인간의 생과 한 시대의 삶, 같은 시대를 사는 무수한 이들에게 공평한 시간이라는 존재. 생성과 소멸의 사이 ‘시간의 행간’이 있다. 이이남 작가가 각 사람에게 비추고자 하는 빛이 향하는 곳이다. 시간의 행간에 기억이 스며들고 감정이 피어오른다. 우리 모두의 생이 그러하다. 무(無)로 생성되고 무(無)로 소멸한다지만, 그 사이를 채우는 건 매 순간의 빛이다. 작가에게 유독 각인되었던 죽음은 또 다른 빛으로 승화된다. 전시장 3층 공간을 가득 메우며 넘실대는 작가의 DNA염기서열 정보들은 한 인간을 표식하는 가장 작은 정보체이지만, 작품 속 DNA염기서열은 더없이 아름다운 영상의 정보체가 된다. 쉼 없이 자신을 소멸시키는 ‘시간’일지라도 이를 통과해가는 각 사람들은 모두 아름다운 존재임을 확인해준다. 한 인간의 가장 작은 정보가 펼쳐낸 시공간은 거룩하고 찬란하게 빛을 발산한다. 유한하고도 무한한 시간의 단편들 사이를 헤집어내며 하나하나 닫힌 진공을 파쇄한다. ‘빛’도 ‘시간’도 그 무엇보다 인간에게 공평한 존재임을, 유한한 생을 무한하게 만드는 건 각 사람들의 빛이자 서로를 비추는 빛임을 각인한다. 시간의 행간에 파고들고 깃들어가며 스며드는 거룩하고도 찬란한 빛, 그 온기로 ‘삶’은 상실과 소멸보다는 ‘빛’이라고 이이남 작가는 말한다.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더 큰 빛을 무한히 밝히고 비춰주기를 기대해 본다. - 글, 그림 : 문희영(예술공간 집 대표) 이이남, <뿌리-Rondanini Pieta>, 2022 이이남, <소녀의 기도>, <80년 5월 18일 날씨 맑음>, 2022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이전글 다음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