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 되는 그림; 장용림의 '꽃∙숨' 페이지 정보 작성자 고영재 작성일18-03-28 09:02 조회4,001회 댓글0건 관련링크 이전글 다음글 목록 본문 장용림. 홍매-숨을 쉬다. 2018._장지에 석채, 분채. 90x130cm 위로가 되는 그림; 장용림의 꽃∙숨 2018.03.30 - 04.24 광주 롯데갤러리 흙의 속 뜰을 닮은 짙은 황토빛 보자기 안에 목화 솜꽃이 담겨 있다. 행여나 바스러질까 조심스레 매듭지은 모양에서 애달픔이 느껴지고, 보자기는 외려 그것대로 넉넉하다. 기억 속 장용림 작품의 첫인상은 고스란히 ‘정성’이었다. 시큼하고 달달한 냄새가 배어나던, 엄마의 보자기 도시락이 언뜻 스쳤으니 그 인상은 일종의 설렘이자 애틋함이었다. 만물의 소생을 준비하는 사월 롯데갤러리는 한국화가 장용림의 작품전을 선보인다. 작가는 오랫동안 꽃을 그려오고 있다. 꽃은 대표적인 탐미의 대상이기에 장식성으로 치부되기 쉬운 화재이기도 하다. 그러나 화폭에 오롯이 생의 감성을 담아내기 위해, 더불어 화폭으로써 삶을 위로하고자 노력하는 작가를 바라볼 때, 왜 꽃이어야만 하는가에 대한 의문은 도리어 사족이 된다. 두꺼운 장지 위에 여백의 호흡을 염두에 두어 형상을 그려 넣고, 석채와 분채 기법으로 자연에서 생겨난 그대로의 빛깔을 내기 위해 겹겹이 색을 올리는 장용림 작품의 미감은, 꽃이 피고 지는 지난한 여정에서 체득할만한 생명의 숭고함을 상기시킨다. 여기에서의 숭고함이란 자연 현상에 대한 외경(畏敬)이라기보다는 우리가 자연을 대하는 마음자리의 진솔한 감정이다. 매화와 달개비, 진달래와 찔레꽃, 목화 꽃과 개망초, 동백꽃까지 사시사철 남도의 들녘을 수놓은 꽃들과 함께, 그동안 작가가 작업으로서 다뤄온 대상들은 하나같이 우리네 어머니 가까이 자리했던 조각보와 저고리, 보자기 등이다. 장용림은 면면히 사람살이의 애수가 묻어나는 소재에 천착해고, 당연하게도 그 창작 흐름의 밑바탕에는 부모님이 존재한다. 모든 세간살이에서 꽃을 피우고 시든 들풀 하나에도 온 마음을 기울였던 어머니, 그러한 아내의 마음을 아는 듯 귀갓길에는 항상 들꽃을 꺾어 건네던 아버지. 소담스러운 여느 촌부(村夫, 村婦)들의 일상에는 살아감의 정성이 깃들어 있었고, 생에 대한 혹은 자연만물에 대한 진중한 정서는 그대로 화가의 길을 걷는 딸에게 다시 깃들게 됐다. 이번 작품전의 주제는 ‘꽃, 숨’이다. 사람의 손길이 더해지지 않아도 뜻 그대로 스스로 존재하는 자연 그 본연의 힘은 세상 만물이 각기 스스로의 호흡으로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는 데 있을 것이다. 언제나 다시 피고 다시 지듯이 장용림은 우리의 삶도 나름의 호흡으로 온전한 숨을 쉴 수 있기를 바란다. 작가는 내가 온전히 숨을 쉰다는 것은 스스로를 위로하는 일이며, 결국에는 그러한 과정을 지나 타인을 위로할 수 있다고 말한다. 꽃들에게서 걷어 올린 사색의 편린들을 다시 세밀한 붓놀림으로 형상으로 그리고 색으로 화폭 안에 새겨 넣고, 여린 꽃가지와 미세한 흔들림의 꽃잎, 또는 그것을 감싸 안은 공기 하나하나에도 감사의 마음을 투영한다. 붓에 의해 물기를 머금었다가 이내 퍼석거리다가, 얼핏 봤을 때 드문드문 얼룩져 보이는 장용림 화폭의 여백이 그저 빈 공간이 아닌 기원의 행위, 또는 수행으로 비쳐지는 것도 사소한 것, 작은 것에게까지 지극히 정성을 다하는 작가만의 화심(化心)이 작업에서 여실히 드러나기 때문일 테다. 암향 가득 달빛을 머금은 백매화, 마음의 멍 자국 마냥 푸르디푸른 쪽빛 하늘 아래의 흰동백, 밤새 불을 보고 바람을 보며 가마를 지키는 도공의 들숨과 날숨처럼 달 항아리 안에서 새근새근 숨 쉬고 있는 새하얀 목화 솜꽃, 청아하고 맑은 기운 뽐내는 청매화와 봄바람 선연한 홍매화까지, 본 전시에서 볼 수 있는 장용림의 꽃의 면면은 그것이 꽃이기에 가능한 서정을 불러일으킨다. 작가는 근작에서 의도적으로 묘사를 절제한다. 자못 도식적인 형상으로 다가올 수 있는 변화이지만, 화업 안에서 삶의 본질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을 비워내던 옛 화인들처럼 그렇게 또 작가는 근원적인 물음으로 돌아서며 모험을 꾀하는 중이다. “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하면 정성스럽게 된다. 정성스럽게 되면 겉에 배어 나오고, 겉에 배어 나오면 겉으로 드러나고, 겉으로 드러나면 이내 밝아지고, 밝아지면 남을 감동시키고, 남을 감동시키면 이내 변하게 되고, 변하면 생육된다. 그러니 오직 세상에서 지극히 정성을 다하는 사람만이 나와 세상을 변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작가가 작업을 지속하는 동안 지침이 되었다는 중용 23장의 내용이다. 매사에 온 마음을 다하는 것, 즉 작업이 화업이기 전에 곧 삶이 되어야 함을 새삼 깨닫게 해주는 부분이기도 하다. 예술가에 있어 기본에 충실함은 어떠한 지점을 들여다봐야 하는 일인지 여전히 어려운 숙제이지만, 세상을 함께 호흡하고 있는 이들에게 그림으로써 위로가 되고자 하는 장용림의 작가적 의도는 새삼 상서롭다. 찬 기운이 늦게 가셔 봄꽃 또한 조금은 늦게 우리 곁을 찾아왔다. 지극한 마음을 담아, 보다 완연한 봄을 느낄 수 있다면 좋겠다. - 고영재 (롯데갤러리 광주점 큐레이터) 장용림. 매화-소식. 2017._장지에 석채, 분채. 61x73cm 장용림. 오동꽃이 피었다는 소식. 2014._한지에 채색. 73x100cm 장용림. 꽃인 듯... 그늘인 듯..._.2016. 장지에 석채, 분채. 90x130cm 장용림. 꽃-숨 1. 2017._장지에 석채, 분채. 100x100cm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이전글 다음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