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우리가, 그림이 되다 ; 전현숙 성혜림 2인전 페이지 정보 작성자 문희영 작성일18-06-20 19:02 조회2,316회 댓글0건 관련링크 이전글 다음글 목록 본문 내가, 우리가, 그림이 되다; 전현숙 성혜림 2인전 전현숙 성혜림의 직간접 화법 자화상전 2018. 06. 19 - 07. 27 / 문화공간 집 그리는 ‘나’와 그려지는 ‘우리’ 어찌 보면 우리 모두는 누군가에 의해 그려졌을지도 모른다. 개개인의 표면적 모습은 아닐지라도 나의 마음과 비슷한 누군가. 혹은 나와 비슷한 감정을 가진 누군가. 또 나와 비슷한 생을 겪어가는 누군가. 같은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는 모두 ‘나’로 귀결되거나, ‘우리’로 귀결되어 어느 작가의 그림으로 그려졌을지도 모른다. 이번 전시는 전현숙과 성혜림 두 작가의 작품으로 보는 우리들의 자화상이랄 수 있다. 두 작가는 ‘그림’이라는 방식으로 스스로를 그려나간다. ‘나’라는 존재에서 비롯되어 그려지는 인물들은 작가 스스로를 넘어 ‘우리’라는 존재가 된다. 두 작가가 그려내는 이미지를 찬찬히 들여다보면 스스로의 삶을 둘러싼 이야기들을 담고 있지만, 이는 결국 우리 모두의 이야기가 된다. 작가인 ‘나’는 ‘나’를 그려가지만, ‘나’는 ‘우리’가 된 것이다. 나의 삶에서 태어난 그림 전현숙은 “나의 작업들은 내 삶에서 태어난다”고 했다. 어둡고 단조로운 무채색의 배경화면에 커다랗게 그려진 여인들은 모두 그녀 자신이다. 그녀에게 밀착된 사람들(남편과 아이), 상징적으로 보이는 물건들, 은근하면서도 짙게 베어든 감정들은 그림에 하나하나 담겨졌다. 어두운 배경 위에 밝고 화려한 색채, 선명한 이미지로 그려진 인물은 강렬하게 관객을 바라본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아이를 키우면서 ‘잠시 물러났던 나’와 단 한 번도 ‘사그라들지 않는 나의 자아’는 그림 안에서 팽팽하게 공존한다. 그렇기에 화려한 색채와 대비되는 무표정한 얼굴은 왠지 모를 복잡다단한 감정들을 한껏 품고 있다. 원색의 색채는 화려하면서도 무미건조한 듯 하고, 확연하게 형상이 드러나는 인물은 뭔가 묘한 표정들로 채워진 듯하다. 먼 곳을 바라보는 시선과 멈춰선 것 같은 신체는 강렬하고도 묘한 여운을 남긴다. 다들 비슷하게 살아가는 삶의 면면이겠지만 저 깊은 곳에 자리한 채워지지 않은 욕망이나 힘겨움, 갈등, 버거움은 결코 무겁지 않게, 위트 넘치게 그녀만의 특별한 그리기의 방식으로 관객들을 설득한다. 버겁고 힘겨울지라도 그 또한 우리에게 주어진 삶이며 한 걸음 한 걸음 잘 나아가리라고 말이다. 나의 내면을 비추는 아이 성혜림은 미성숙한 어른으로 살아가는 듯 한 자신을 어린아이의 모습으로 그려냈다. 그녀는 어릴 적 하루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건만, 어른이 되어 바라본 세상은 불안함과 두려움, 혼란스러움이 더 많았다. 그래서인지 밝게 웃고 있는 아이의 모습이 아닌, 타인의 시선을 외면한 채 살며시 눈을 감고 혼자만의 세계에 스스로를 가둔 것 같은 아이의 모습으로 그림을 그려갔다. 이는 비단 작가에게만 내재된 모습은 아닌,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많은 이들에게 대입되는 모습일 것이다. 비교적 초기에 그려진 ‘홀로서기(2014)’와 ‘나는 길을 잃었다(2014)’의 제목에서도 드러나듯, 이제 더 이상 어린 자신이 아닌 어른이라는 이름으로 많은 일들을 헤쳐나가야 하는 것에 대한 그녀만의 고민이 그대로 드러난다. 그녀는 그림 안에서 어른으로 살아가는 행복과 불안이 공존하는 삶에 대해 조용히 토로한다. 어른으로 규정된 나이를 살아가지만 마냥 어른의 시선이 바라보는 세상은 그리 긍정적이지만은 않기에 더 아이이고 싶은 마음은 그대로 그림으로 남겨졌다. 아이는 작가 스스로의 모습에서 비롯되었지만 작가와 비슷한 시간을 겪는 그 누군가, 혹은 우리 모두의 모습은 아닐는지. 내가, 우리가, 그림이 되다. 두 작가의 그림에서 ‘나’는 주인공이다. 직접적으로 또 간접적으로 ‘자신’이 그림의 중심에 있다. 25년의 나이차를 가진 두 작가이지만 이들의 그림에서 ‘나’는 똑같이 그림의 한 가운데 존재한다. 마치 엄마와 딸처럼. 어른이 되었지만 세상을 향해 거침없이 뛰어가는 게 조금은 두려운 딸의 마음과, 한 인간이자 엄마, 아내라는 존재에게 부여된 무수한 역할 속에서 자신의 자아를 놓고 싶지 않았던 강인한 마음은 그대로 그림이 되었다. 그림은 가장 친밀하고도 버거운 존재 ‘나’를 생각하게 한다. 그녀들이 그린 ‘나’는 철저하게 그녀 자신들이었지만, 우리에게 보여지는 ‘나’는 결국 ‘우리 모두’이다. 내가, 우리가, 그림이 된 것이다. 그림은 가볍기도 무겁기도 한 삶의 무게들을 소란스럽지 않게 드러낸다. 화려하면서도 처연하게, 섬세하고 진솔하게 그녀들을 감싸고 있던 마음들이 하나하나 그림이 되었다. 비슷한 듯 보일수도 있지만 둘의 이야기는 명확하게 구분이 된다. 전현숙 작가가 자전적 모습으로 자신을 직접적으로 드러냈다면, 성혜림 작가는 아이라는 존재를 통해 간접적으로 자신의 마음을 조용히 이야기한다. 두 작가가 보여주는 ‘내 모습’은 ‘우리의 모습’으로 끝없이 말을 건넨다. 우리는 모두 완전치 않은 존재들이지만 서로 보듬어주고 북돋아주어야 한다고 말이다. 두 작가의 작품을 마주하며 ‘내 안의 나’를 다시 돌아보며 나 자신에게 한걸음 더 다가가볼 수 있기를 바란다. - 문희영 (‘예술공간 집’ 디렉터)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이전글 다음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