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멸하는 서정적 환상' - 박상화 개인전 페이지 정보 작성자 백종옥 작성일18-07-07 15:04 조회3,113회 댓글0건 관련링크 이전글 다음글 목록 본문 일상과 자연, 명멸하는 서정적 환상 박상화 개인전 2018. 06.30-09.15 / 무안 오승우미술관 비탈진 산등성이에 나즈막한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빛바랜 달동네 풍경은 정겨운 고향 마을처럼 애잔한 느낌이 들면서도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그 낡고 초라한 집들 위로 새들이 울며 날아가고 사람들은 골목길을 서성인다. 어느새 집집마다 창문 속에서 눈이 껌벅이더니 물이 차오르기 시작한다. 물이 가득한 집들은 폭포처럼 물을 토해내고 뒤이어 수많은 꽃들이 사방으로 퍼져 나간다. 이제 집들은 어둠에 잠긴다. 울려 퍼지는 귀뚜라미 울음소리와 날아오르는 반딧불이들이 어둠을 더욱 선명하게 만든다. 서산동의 밤은 그렇게 깊어간다. 허공에 매달린 26장의 수제 필름스크린에 비친 영상에서는 시시때때로 변하는 서산동의 풍경이 되살아난다. 그것은 사실적이면서도 작가가 품은 꿈같은 환상도 함께 녹아들어 있는 풍경이다. 서산동에 대한 작가의 서정이 다채로우면서도 잔잔하게 드러나는 작품이다. 관객들은 간격을 두고 설치된 스크린들 사이를 마치 달동네의 좁은 골목길처럼 다니며 영상을 감상할 수 있다. 서산동은 항구도시 목포의 유달산 자락에 자리잡은 달동네다. 바닷가에 있는 서산동은 목포항이 번성하던 시절엔 활기를 띠었지만 지금은 매우 낙후된 지역이다. 박상화 작가는 1995년 미술대학을 졸업한 후 2년간 서산동에서 작업을 하며 살았다. 이때의 체험이 서두에서 묘사한 영상설치 작품 <이너드림 서산동>(2013)으로 형상화된 것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그가 서산동 생활을 하는 동안 <이너드림 서산동>을 만든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서산동을 떠난 직후도 아니고 거의 15년의 세월이 흐른 뒤에야 작품이 제작되었다는 말이다. 이런 현상은 작가의 체험이 즉각적으로 작품의 재료로 쓰이지 않고, 꽤 오랜 시간 작가의 내면에서 발효되고 숙성된 후 작품으로 발현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박상화 작품 세계의 특징인 서정성은 이처럼 긴 시간 속에 축적된 정서에서 생성된 것이다. 그렇다면 박상화 작가의 감정이나 정서를 이루는 원천은 무엇일까? 그는 33살까지 대부분 목포에서 살았다. 유달산에서 바라본 섬들과 바다, 출렁이는 푸른 파도와 갈매기들의 활공, 쓸쓸한 뱃고동 소리, 선창가의 비릿한 냄새 등은 유년기와 청년기 추억의 밑바탕에 깔려 있는 요소들이다. <이너드림 서산동>의 풍경도 그런 요소들 중 하나로 바라볼 수 있다. 그리고 그는 군대를 가기 전까지 한옥들이 많았던 목포 용당동에서 살았는데, 그의 가족들이 오랫동안 살았던 집도 역시 아담한 한옥이었다. 따뜻한 가족의 둥지였던 한옥의 이미지는 입체와 영상이 결합된 형태로 <이너드림 하우스>(2016)에서 다시 되살아난다. 이처럼 박상화 작가가 일상의 이미지를 중요하게 다루는 데에는 그의 삶에 새겨진 어린 시절의 기억들이 작용하고 있다. 일상과 자연이라는 주제 의식은 그의 작품 세계를 형성하는 중요한 두 축이다. 물론 그가 다루는 일상과 자연은 삶의 체험이라는 사실성에서 출발하지만 환상성을 통해 재구성된다. 특히 작가의 환상은 꽃, 물, 반딧불이 같은 서정적인 이미지들로 표현된다. 그래서 박상화 작가의 예술 어법을 ‘서정적인 환상’이라고 부를 수 있다. 이는 박상화 작가를 동시대 다른 미디어아티스트들과 구별 짓게 하는 조건이다. 1960년대 비디오아트의 등장 이후 미디어아트는 티브이, 비디오 카메라, 빔 프로젝터, 홀로그램, 컴퓨터 등 각종 매체 기술의 발전 속도와 함께 변화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근에는 새로운 융복합적인 첨단 기술들의 등장 속도가 더욱 빨라지고 있다. 그 때문에 미디어아티스트들은 남보다 빨리 최첨단 기술을 활용한 작품을 보여주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히기 쉽다. 오늘날 미디어아트로 발표되는 상당수의 작품들은 첨단 기계에 과도하게 의존적이거나 다분히 기술적인 효과를 현란하게 과시하는 형식 실험에만 치우쳐 있는 형편이다. 의미 있는 내용보다 그저 시각을 자극할 만한 요소들을 나열한 작품들이 허다하다는 말이다. 이렇게 특별한 기술을 앞세운 형식이 먼저 눈에 띄는 작품들에 비하여 박상화의 작품은 은은한 서정성이 더 강하게 다가온다. 그렇다고 형식적으로 진부하거나 실험적인 면이 부족하다는 말이 아니다. 박상화 작가가 선보이는 영상과 설치물들이 그가 말하고자 하는 내용에 자연스럽게 녹아들면서 관객의 감성을 자극한다는 의미이다. 미술이 재료와 기술의 발달과 함께 진화해 온 것은 사실이지만 예술적인 언어로 승화되지 못한 작품들은 가치를 인정받기 힘들었다. 그런 면에서 박상화 작가가 추구하는 작업 방향은 온당하다고 본다. 박상화 작가가 이제까지 해온 작품들의 변화를 살펴보면 그가 어떤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더 분명히 이해할 수 있다. 그가 본격적으로 영상과 설치작품을 선보이기 시작한 시기는 <그림의 떡>을 발표한 2000년부터다. 쌓아올린 쌀가마니들과 모니터들로 구성된 이 작품은 굶주린 아이와 음식을 대비시킴으로써 인간의 욕망과 사회적 불평등을 강조한 것이다. 이 시기에 박상화 작가는 인간 문명의 부조리처럼 거시적인 문제에 대해 발언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관념적일 수밖에 없는 거시적인 주제에 머무르지 않고 보다 구체적인 삶의 문제를 관조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특히 2004년부터는 점차 박상화 작가 자신의 일상을 작품의 소재로 다루는 데 관심을 기울였다. 자신이 살아가는 일상의 장소와 자연의 이미지들이 환상적으로 혼합된 작품들이 시도되었다. 이런 시도들은 2008년 이후 보다 구체적인 결실을 맺기 시작했다. 바로 비디오조각 작품인 <이너드림-아파트>(2010)가 그것이다. 이 작품의 외형은 사실적인 아파트 건물모양을 하고 있는데, 박상화 작가가 살고 있는 동네의 공원 옆 아파트를 보고 만든 것이다. 아파트 모형 속에는 엘이디(LED) 모니터가 들어 있어서 단조롭게 반복되는 베란다 창문들이 구름, 폭포, 꽃잎들로 인해 시시각각 환상적으로 변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일상 속에서 흔히 마주치는 무미건조하고 평범하기 짝이 없는 아파트의 외관이 갑자기 초현실적인 풍경화로 비약할 수 있는 것은 순전히 박상화 작가의 참신한 상상력 덕분이다. 그는 지루한 일상에 발을 딛고 있지만 그곳에서 지속적으로 탈출하면서 자신만의 독특한 상상력으로 세상을 새롭게 재구성하려는 의지를 가지고 있다. 이밖에도 그가 발표한 이너드림 연작들은 대부분 비근한 일상의 풍경에서 환상성이 표출되는 분위기를 보여 주었다. 일상의 이미지를 기반으로 하는 이너드림 연작에 이어 또 하나 큰 줄기를 이루는 작품들은 판타지아 연작이다. 판타지아 연작들은 주로 자연의 이미지가 배경이다. 이런 자연의 이미지 역시 박상화 작가가 체험한 공간에서 출발한다. 광주에 살고 있는 박상화 작가는 종종 무등산을 올라가는데, 등산과정에서 작업에 대한 영감을 얻어왔다. 그래서 2016년부터 본격적으로 무등산을 주제로 한 영상설치 작품들을 발표하고 있다. <무등판타지아-사유의 가상정원>(2017)과 <겨울꿈>(2018)이 대표적이다. 이 작품들에서는 그가 채집한 무등산의 사계절과 역사적인 장소 그리고 자연 속을 거니는 인간의 이미지들이 서정적이면서도 몽환적으로 그려지고 있다. 무등산이라는 대자연은 박상화 작가의 작품에서 신성한 생명의 터전이자 병적인 문명의 삶에 찌든 인간들이 궁극적으로 귀의해야 할 이상향으로서 암시된다. 한편 <무등판타지아-사유의 가상정원>에서는 더욱 실험적인 설치 방식을 선보였다. 그것은 반투명 메시천이나 필름으로 제작된 스크린 수십 개를 공중에서 수직으로 길게 늘어뜨린 다음 영상을 투사하는 방식이다. 이런 설치 방식은 마치 울창한 숲 같은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관객들은 이 가상의 숲 속을 거닐며 보고 듣고 만질 수 있다. 박상화 작가는 앞으로 무등판타지아를 더 깊이 연구하려고 한다. 그것은 인문학과 첨단기술이 예술로 융합되는 과정을 포함한다. 박상화 작가의 주제의식은 거시적인 문명의 문제에서 소소한 일상의 풍경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다시 문명과 일상의 이야기까지 녹아든 인간과 자연이라는 보편적인 철학적 사유로 확대되고 있다. 이런 주제의식은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하면서 주로 서정적인 환상이라는 어법으로 표현되어 왔다. 물론 그만의 어법은 아직 제대로 완성되었다고 말할 수 없다. 평자로서 나는 그의 작품들이 서정적인 환상성을 유지하되 더욱 정제되고 함축적인 시처럼 되기를 은근히 바라고 있다. 박상화 작가는 명멸하는 영상을 재료로 자신의 언어를 숙성시키기 위해 한걸음 한걸음 계속 나아가고 있다. 탁 트인 풍경을 보기 위해 높은 산을 오르는 사람처럼. - 백종옥 (미술생태연구소 소장)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이전글 다음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