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갤러리 설마중 기획전 '깊어질수록 꽃이 되는' 페이지 정보 작성자 고영재 작성일19-01-30 19:09 조회2,208회 댓글0건 관련링크 이전글 다음글 목록 본문 나예심_<홍매화>, 2017,_80x65cm,_광목에 쪽염색 살뜰한 마음 담아, 애틋한 사랑 담아 ‘깊어질수록 꽃이 되는’ 롯데갤러리 설 마중 기획전. 2019.02.01-02.28 무심히 흘러가는 계절을 두고 돌고 돈다 하고, 항상 흘러가는 시간이지만 한 해가 시작되는 날은 새날 새해라 한다. 하루하루의 일상으로 빚어진 우리네 삶이 녹록지 않은 탓도 있겠지만, 살아감의 버거움에도 다시 희망을 찾고 기운을 냄은 오롯이 나에게 정성을 다하고자 하는 마음이 크기 때문일 테다. 결과적으로만 최선이 아닌, 나에게도 주변에도 정성을 쏟기 위한 그 다짐이 소중한 음력 정월 초하루께 롯데갤러리는 생의 애틋함을 담아본다. 흔히 현대인의 삶은 호흡이 가쁘다. 도시라는 생태와 발맞추어 주어진 시간 안에 크고 작은 일을 완수해 내야 하는 흐름이 반복되고 또 반복되기에, 내가 어떻게 살아가는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물음은 그 가쁜 호흡 속에 묻혀버리기 마련이다. 본 전시에 참여하는 3인의 작가는 그러한 숨 가쁨에서 조금은 비켜서 있는 듯하다. 나예심, 박현철, 소빈 작가가 다루는 작업이란 물들이고 바느질하고 옷을 짓고 또는 한 겹 한 겹의 종이로 형상을 만드는 일이다. 종국에는 모두 사람을 위한 작업이지만, 긴긴 시간을 버텨내어 나오는 작품에선 수고로움 이상의 생의 다양한 감정들이 묻어난다. 자연의 재료로 물들인 천에 이내 자연을 수놓는 나예심의 바느질은 차(茶)에서 비롯되었다. 우리 문화에서 차를 마시는 일이란 단순히 차를 음용하는 것 이상의 몸과 마음의 수양을 쌓는 일이다. 불을 피우고 물을 끓이며 물의 온도에 맞춰 정성스레 덖어낸 차를 우려 마시는 범속한 행위를 다도(茶道)라 부르고, 더러는 그 과정을 참선(參禪)에 비유하기도 한다. 이렇듯 수행의 가치를 담은 찻자리를 보다 의미 있고 아름답게 만들어줄 것에 관심을 두어 시작된 나예심의 바느질은 본인의 표현대로 “차를 마시기 위한 공간 설치작업”이다. 작가는 모시, 삼베, 무명, 광목, 명주 등의 전통 천에 주로 감물과 먹물을 들이고, 물들인 천에 조각천을 덧대어 수를 놓는다. 단순화된 패턴으로 무심히 자리한 조각천은 수줍게 뜬 달이 되었다가 쪽빛 강가에 수양버들 드리운 기다란 나무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함초롬 꽃이 담긴 화분으로, 때로는 황금빛 은행나무 감싸 안은 따스한 뜰로 분하기도 한다. 조각천의 간결한 모양새는 사실적 묘사를 절제한 바느질과 어우러지며 정갈한 기운을 자아낸다. 지리산과 섬진강이 에두른 구례의 들녘이 몇 날 며칠의 물들임과 한 땀 한 땀의 바느질에 의해 가리개와 발, 방석, 다포, 찻수건, 찻상보, 잔받침 등으로 일상 안에 살뜰히 자리하게 된다. 박현철_<누비 배냇저고리>, 2018,_화장29cm 반품12.5cm 기장26cm,_명주 열네 살에 시작한 손바느질이 어느새 옷을 짓는 일이 돼버린 박현철은 세간의 표현처럼 ‘청년 옷쟁이’이다. 자연의 색을 담은 듯 편안한 눈 맛을 선사하는 그의 침선은 손수 옷을 만들어 입으시던 할머니와의 추억에서 시작되었다. 할머니의 상을 치를 때도 그분의 지인들은 고인이 살아생전 지어 준 옷을 입고 조문을 왔더랬다. 박현철이 옷이라는 대상에서 체감했을 서사란 사람에 대한 기억이자 오롯이 사람 그 자체이다. 표주박생고사, 숙고사 등의 고급 원단과 함께 생초, 산탄, 순면까지 다양한 원단으로 우리의 전통 한복을 짓는 박현철은 옷을 통해 사람과 소통하고 옷에서 사람을 드러낸다. 사람이 태어나면서부터 입게 되는 옷은 일생의 관혼상제(冠婚喪祭)를 함께 하게 된다. 옷에서 사람의 성정과 인품이 배어나오는 것처럼 옷쟁이 또한 허투루 바느질 하지 않는다. “나는 옷을 맞추려고 오는 사람과 이야기를 나눴을 때 서로 결이 맞지 않는다고 느끼면 옷을 짓지 않는다. 옷에 좋지 않은 감정들과 부정한 마음이 담기면 그 옷은 다시 돌아오기 마련이다. (중략) 입는 이가 알아주지 않더라도. 내 마음 편하기 위해 또 그 사람 위해 길일을 잡고 기도를 하고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옷 안에 깃들기를 무던히 노력한다.”껴묻거리된 복식을 보며 옛 삶의 흔적과 자신의 업을 되뇌는 작가는 그 흔적에서 ‘지금의 사람’을 위한 새 옷을 만든다. 이번 전시에 선보이는 옷들은 배냇저고리, 당의, 원삼, 도포, 삼회장저고리 등으로 사람의 탄생과 상서로운 날, 그리고 일상에서의 매무새를 두루 느낄 수 있는 작품들로 구성된다. 짙은 감수성을 바탕으로 시적인 작품세계를 선보여온 소빈은 이번 전시에 기존의 한지인형 작품과 함께 고서를 다룬 근작을 선보인다. 인간의 수명으로는 가늠할 수 없는 세월을 견뎌내는 한지, 촘촘하게 엉겨 있는 섬유가 무수한 물질에 의해 한 장의 종이로 태어나는 것처럼, 한지를 이용하는 작업 또한 인내와 인고의 시간을 거쳐야 한다. 소빈의 고서 작업은 고문서의 낱장 낱장을 별도의 화학적 접착제 없이 물로써 이어 붙이고 건조하는 작업이 선행된다. 이후 오래된 종이 위에 배접하듯 올려놓은 염색 천 조각을 바느질로 고정시키는 과정은 한지조형 작업 못지않게 집중력을 요한다. 고서 위에는 주로 좌선(坐禪)한 사람이 자리한다. 형상은 세부적인 디테일이 아닌 단색의 덩어리로 표현되었는데 간결한 실루엣이 돋보인다. 유백색의 빛깔로 익어갈 달 항아리 안에 좌선한 이, 그 위엔 가득 찬 만월이 떠 있고 차고 기우는 달처럼 영글은 과실나무도 함께 있다. 작품 <어디로 가는가>에는 백목련을 향해 긴 팔을 뻗은 사람이 배를 타고 어디론가 향하고 있다. 이룰 수 없는 사랑처럼 혹은 실현할 수 없는 이상처럼, 꽃잎에 닿을 듯 닿지 않는 뭉툭한 손의 표정에서 살아감에 대한 번민이 읽혀진다. 나무 그늘 아래서 참선하는 이에게는 꽃비가 내리고 나무 꼭대기엔 희망을 상징하는 파랑새가 머무른다. 꿈을 향해 때로는 이상을 좇지만 행복이 멀리 있지 않음을, 내 안에서 선을 찾아야 함을 이야기하는 듯하다. 어찌 보면 세 작가의 작품에서 읽혀지는 주된 키워드는 ‘사람’일 것이다. 찻물의 얼룩을 닮아 부담스럽지 않은 감물과 먹물, 사람살이의 주기 그 지난한 여정처럼 정성을 다하는 침선, 나와 너의 삶을 종이로 켜켜이 쌓아가는 작업에서 두드러지는 것은 역시 사람을 향한 애정이다. 쪽물 들인 천에서 아득한 밤하늘의 별빛을 찾기도 하고, 자연의 빛깔을 담은 옷에선 사람의 살결과 호흡이 느껴지기도 한다. 발그레한 볼에 물끄러미 자리한 인형은 유년시절을 상기시키며 그 옛날 그 녀석 그리고 우리 엄마와 아버지를 기억하게 한다. 단순히 보여주기 위한 혹은 쓰이는 작품이 아닌 생의 애수와 정이 스며있는 작업에서 새해의 나를, 내 소중한 이들을 다시금 다독일 수 있다면 좋겠다. 전시명인 <깊어질수록 꽃이 되는>은 누군가를 위해 정성을 다하는 ‘사람의 마음’을 비유한 것이다. 모진 계절 견뎌 내어 짧은 시간 동안 개화하는 꽃처럼 살아온 시간과 살아갈 그 과정 또한 아름다운 것임을 조금이나마 되새길 수 있으면 참 좋겠다. - 고영재 (광주롯데갤러리 큐레이터) 소빈_<카르마>, 2014, 6x3x12cm, 한지에 아크릴 / <집에 가는 길 -가도 가도 찔레꽃>, 2005,_40x15x80cm,_한지에 아크릴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이전글 다음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