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로작가 탁연하 조규일 박행보 아카이브전시 페이지 정보 작성자 광주미연 작성일17-01-07 16:58 조회4,761회 댓글0건 관련링크 이전글 다음글 목록 본문 원로작가 탁연하·조규일·박행보 아카이브전시 광주시립미술관 아카이브 프로젝트전 2 / 2016. 11. 15 - 2017. 2. 19 광주시립미술관이 지역 원로작가들에 관한 자료조사 정리차원에서 추진하고 있는 [광주시립미술관 아카이브 프로젝트 2 : 호남미술을 말하다]가 2016년 11월 15일부터 오는 2월 19일까지 열리고 있다. 주로 원로작가들이 소장한 주요 아카이브 자료와 작품, 구술채록 인터뷰영상 등을 통해 초대된 원로작가들은 물론 지역미술의 직간접 자료들을 발굴 조사 정리하면서 지역미술사 연구의 기초자료를 채워가는 작업이다. 2015년의 첫 호남미술 아카이브 프로젝트전이었던 김영태(서양화), 김옥진(한국화), 김형수(한국화), 박남재(서양화), 백영수(서양화) 등 5인에 이어 이번 전시는 1930년대 출생인 조각가 탁연하(1932 목포생), 서양화가 조규일(1934 보성생), 한국화가 박행보(1935 진도생) 화백 등 3인이 주인공이 되고 있다. 호남조각의 터를 일군 탁연하광주·전남 현대조각사에서 초기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성오 탁연하(星悟 卓鍊河) 작가는 한국전쟁 시기에 상무대 문관으로 근무하던 중 광주의 첫 서양식 기념조형물인 ‘을지문덕상’(1953) 제작에 참여한 것을 계기로 휴전 이후 홍익대 조각과에서 조각에 전공하게 되었다. 이후 광주공원 ‘어린이헌장탑’(1959) 현지작업을 위해 광주에 내려와 활동하면서 ‘4.19학생의거기념탑’(1961), 상무대 ‘충장공 김덕령장군상’(1972), ‘충무공 이순신장군상’(1974, 목포유달공원) 등 지역의 대규모 기념동상들을 맡아 제작하고, 건축과 실내인테리어 사업을 병행하였다. 또한 지역에 신식교육을 받은 현대조각가나 건축가 드물던 시절이라 조선대학교 미술학과와 건축학과 디자인학과 등에 출강(1960∼1976)하면서 후학을 양성하기도 했다. 70년대 서울로 주 활동지를 옮긴 뒤 주로 건축과 조경분야 사업에 힘을 쏟느라 작품활동에 전념치는 못하였으나 한국미술협회전, 전국조각가협회전, 한국조각가협회전, 홍익조각회전, 장안회전, 무진회전 등을 통해 틈틈이 작품을 발표하였다. `80년대 후반부터 생명의 역동성을 상징화한 ‘트위스트(TWIST)’ 연작을 주로 하면서 간결한 곡선형태로 추상적 조형미를 탐구하는 선보여 왔다. 이번 아카이브전시도 탁연하 조각인생을 되돌아볼 수 있는 50년대부터 당시 작품제작이나 미술계활동을 알 수 있는 흑백사진과 발간물들, 소품조각들, 미술사학자 정경숙과의 대담 영상들로 50여년 조각가의 자취를 돌아보게 한다. 남도 구상화맥을 이어온 조규일백민 조규일(百民 曺圭逸) 화백은 호남 구상화단의 원로로 광주지역 서양화단의 특징인 자연주의 인상파 화풍을 즐기다가 점차 형태와 필치를 단순화시킨 밝은 색감의 풍경과 인물화로 독자적인 회화세계를 모색해 왔다. 조선대학교 미술과에서 오지호 교수로부터 서양 인상주의와 일본 외광파에 포비즘의 주관적 형태해석과 생동감 있는 색채감각을 결합한 ‘남도적 구상회화’를 지도받아 이를 화업의 기초로 삼았다. 대학을 졸업하기 1955년부터 오지호 교수의 추천으로 진도중학교에 미술교사로 근무하면서 훗날의 조각가 양두환을 지도하는 등 79년까지 교단에서 후학들을 지도했고, 목우회전·전우회전·국립현대미술관 현대미술초대전 등의 출품과 12회의 개인전을 통해 작품을 발표해 왔다. 주로 남도의 자연풍경을 주된 소재삼아 주관적 감흥에 의한 원색들의 분할묘법과 중첩효과로 일반적인 인상파에 비해 안료와 필촉들이 농축되어 보이는 무게감 있는 화폭을 선보여 왔다. 그러다 2000년대 들면서 이전과는 달리 훨씬 단순화시킨 형태와 넓고 밝은 색면들로 대상을 재해석한 풍경과 인물, 화초들을 즐겨 그리고 있다. 이번 아카이브전은 조화백이 간직해 오던 오지호화백의 서신들과 사진, 전시안내인쇄물, ‘국전특선’ 등 상장, 다른 작가들의 개인전 팸플릿이나 리플릿, 1951년 자화상부터 시기별 주요 작품들, 미술사학자 홍성미와의 대담영상들로 구성되어 있다. 호남 남종화맥에서 문인화를 키워온 박행보 금봉 박행보(金峰 朴幸甫) 화백은 의재 허백련으로부터 이어받은 호남 남종화의 화맥에서 특히 문인화 쪽에서 두각을 나타내온 원로작가다. 예향 호남의 뿌리라 할 진도에서 태어나 의재 허백련으로부터 남종화를, 소전 손재형으로부터 서예를, 한학자인 만취 위계도로부터 고문과 한학을 배워 시서화의 기초를 다졌다. 부드러운 담묵과 운필로 시정이 깃든 산수·문인화들로 [대한민국미술대전]에서 동양화부문과 사군자부문을 오가며 국무총리상과 문공부장관상을 수상하는 등 큰 두각을 나타내었다.또한 개인화숙에서 문인화를 지도하여 문하생들과 취림회를 창립(1983)하기도 하고, 호남대학교 교수(1986∼1991)로 현대식 교육제도에 의한 한국화를 지도하였으며, 광주전남문인화협회(1992)와 한국문인화협회(1999)를 창립하여 초대이사장과 초대회장으로 피선되었고, 제5대 연진회장(2004)을 맡기도 하였다. 아울러 광주비엔날레 조직위원과 이사, 한중일 국제문화교류전 한국회장, 동아미술제 심사위원장 등 대외활동을 폭넓게 펼치면서 8회의 개인전을 가졌고, 본인 작품과 소장품들을 광주광역시 북구청에 기증하여 금봉미술관을 개관하기도 하였다.그러나 그동안의 작업들에서 ‘더 잘 그려도 의재화풍이기보다는 내 그림을 그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기존의 전통화법이나 정도처럼 익혀온 필묵법을 벗어나 독자적인 회화세계를 탐구하게 되었다. 1990년대 중반부터 산수자연을 소재로 시적 감흥과 문기는 살리면서 그 대상에 대해 이전보다 훨씬 주관적인 묘법형식을 강조하여 닥지처럼 거친 화지에 필획과 채묵을 적극적으로 구사하는 화법을 펼쳐오고 있다. 이번 아카이브전에는 금봉 화백의 이같은 그동안의 활동과 작품세계의 변화를 살펴볼 수 있게 옛 사진과 전시회 자료들, 신문기고문이나 보도기사, 간행물 기사, 육필원고, 시각문화연주가 한재섭과의 대담 영상, 시기별 주요 작품들이 함께 전시되고 있다. 공기관이든 미술단체이든 개인이든 활동들이 객관적으로 조명되고 자체적으로 내보일 기회가 훨씬 많아진 요즘, 지난 시기의 활동과 작품세계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소개할 수 있는 아카이브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관리의 개념이 몸에 배지 않았던 시절의 흩어진 자료들을 모으고 재정리해서 개인사나 공적인 미술사의 연구자료로 기초를 다지는 일이 작품제작이나 전시활동 못지않게 중요해진 것이다. 광주시립미술관이 지역의 공립미술관으로서 출신·연고작가들의 자료를 발굴하고 조사해서 재정리하는 것과 더불어 단체나 개인들도 이를 계기로 자료보전과 정리, 관리·활용에 인식을 새롭게 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이전글 다음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