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TWEEN LANDSCAPE 풍경사이 페이지 정보 작성자 황유정 작성일18-03-29 13:06 조회2,426회 댓글0건 관련링크 이전글 다음글 목록 본문 풍경을 보다, 나를 보다 BETWEEN LANDSCAPE 풍경사이 2018. 03. 02 - 05. 13 광주시립미술관 사진전시관 광주시립사진전시관은 다양한 사진전시와 교육 등을 통해 광주시민과 소통하는 기회를 마련하고자 항상 노력하고 있다. 이번 “풍경 사이”전 역시 한 해를 새롭게 출발하면서 맑은 기운을 바라는 시민들에게 선물을 드리는 마음으로 기획한 전시이다. 마음의 충전을 위해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은 익숙한 풍경이 아닌 여행지의 낯설음에서 일상이 주지 못하는 신선함을 느끼고, 생각지 못한 여유를 맛보게 된다. 새로운 생명 에너지가 충만한 3월, “풍경 사이”전은 광주시민들이 각자의 ‘나’를 위한 풍경 속으로 떠나는 여행의 안내자가 되고자 한다. 이번 전시에 참여한 5명의 작가(김영태, 김혜원, 박일구, 이정록, 지성배)는 광주를 비롯 순천, 전주 출신의 작가들로, 이미 중앙 사진계에서 개성 있는 작업으로 주목받는 작가들이다. 전시된 풍경사진은 실재의 풍경이지만 눈에 보이는 풍경의 사이를 비집고 바라보도록 이끄는 긴 여운이 남다르다. 풍경으로 쓴 시(詩)처럼 자신의 소리에 귀 기울이게 하거나 내면에 감추어진 긍휼함, 감탄을 끌어 올리고, 우주적 존재로 시야를 확장시켜주기도 한다. 풍경 너머의 본질을 향하도록 호흡을 한 번 멈추고 비움으로써 맑은 기운으로 가득해지길 기대한다. 김영태, 시간의 그림자 김영태가 카메라를 들고 풍경을 마주하는 시간은 자기 독백의 시간이다. 2001년, 정화되지 않은 광주천을 찍은 사진은 오염되고 더러운 물길임에도 불구하고 색색의 유제를 부어 놓은 듯, 번들거리고 끈적끈적한 광택을 발산하며 그림처럼 아름다웠다. 이렇게 아름다운 사진은 환경오염에 대한 사람들의 판단을 흐리게 하겠다는 비판을 받을 만큼 주변을 놀라게 했다. 미술대학에서 회화를 전공한 그가 이 한 장의 사진으로 신세계미술상(2001)을 수상하면서 작업의 출구를 찾은 듯, 사진으로 방향을 바꾸게 된다. 카메라를 들고 냄새나는 하천의 구석구석을 촬영하면서 어떤 실체를 붙잡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는 점점 내면의 기억을 퍼올리고자 하는 갈망으로 이어지면서 <그림자 땅> <시간의 그림자>시리즈를 내놓았다. 두 시리즈는 풍경의 중첩으로 존재의 본질을 드러내고자 한 연속 작업이다. 빛이 있음으로써 실재한 대상은 땅 위에 그림자를 던진다. 화면상의 수차례 중첩된 이미지는 대상의 실재에 가까이 가기 위한 김영태의 노력이다. 선명하지 않은 기억을 떠올릴 때 그리기와 지우기를 반복하듯 중첩된 선으로 윤곽이 뭉개진 빌딩, 숲, 불빛 등은 선명한 이미지보다 더 확실한 존재감을 갖는다. <시간의 그림자>시리즈는 김영태의 산에 얽힌 체감된 기억들을 재현한 작업이다. 시간의 퇴적이 쌓아올린 산은 풍화의 시간 속에 사라지겠지만 켜켜이 묻은 기억은 메아리처럼 감돌며 내면으로 파고든다. 김영태. Shadow of Time #2. 2013. pigment print. 130x260cm 김혜원, 용담댐 풍경 김혜원의 이력은 참 특이하다. 1983년,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한 뒤, 사진을 전공했으며 다시 국문학 박사학위를 취득하기까지 30년이 걸렸다. 그녀의 사진이 갖는 내러티브 구조와 사진을 보고 쉽게 돌아서지 못하도록 보는 이의 정서를 건드리는 힘은 아마도 다년간의 문학적 배경의 작동인 듯싶다. 어쩌면 글쓰기의 매체로 언어가 아닌 사진을 선택한 문학가로 느껴진다. 우리나라 1960~70년대의 산업화시기에 성장기를 보낸 세대들은 최근 급속도의 도시개발, 현대화 추세에 불안감을 떨치지 못한다. 그녀 역시 동세대로서, 택지 개발이나 댐건설 등으로 삶의 흔적을 쉽게 지워버리는 현실을 통해 세상을 지탱하는 힘도 함께 사라져 감을 느낀다. 규칙적인 블록으로 배열되는 격자의 사회는 사람들마저 재단해 갈 수 있을 것이다. 1997년부터 3년 동안 <용담댐 시리즈-수몰민> <용담댐 시리즈-폐가> <용담댐 시리즈-마을>, 그리고 <용담댐 시리즈-풍경>을 작업했다. 김혜원은 소재 면에서 감정 이입을 최소화하고 중립적 태도를 갖는 뉴 토포그래픽스(New-Topographics)의 영향을 받은 작업이라고 밝히지만 담담한 시선으로 완성해 나간 용담댐 시리즈는 어쩔 수 없이 스러져가는 존재에 대한 애잔함이 스며있다. 고도의 정적이 깔린 흑백의 화면 속에서, 쓰러지고 잘려나간 둥치, 파헤쳐진 붉은 땅은 젊은 날의 영광과 아름다움을 역으로 떠올리게 한다. 지금은 널브러진 땅의 존재들이지만 저항하지 못한 자연이 누추하지 않은 것은 그녀의 훼손된 풍경을 향한 날선 비판이 아닌, 담담히 끌어안는 품 넓은 태도 때문이다. 김혜원. 용담댐시리즈-풍경03. 1999. gelatin silver print. 20x24inch 박일구, 남도 바다 박일구는 대상을 찍을 때, 항상 기록에 충실하려는 마음을 바탕으로 한다. 사진을 전공하기 전, 역사의 기록과 고증으로 단련된 시각을 갖는 사학도였기 때문에, 그의 사진은 고밀도의 기록성이 배어있다. 문화유산의 기록으로서 2005년 작업한 <장승>시리즈나 생활의 터전이 되어 온 들녘, 길 등 남도의 땅 사진 역시 대상의 객관성을 담보하는 다큐멘터리 작업이다. 그러나 그의 작업은 특이하게도 보여 지는 풍광만 남는 것이 아닌, 그 길을 걷고 땅을 일군 손길과 온기가 머물러 있다. 남도를 사랑한 박일구는 시야를 무한히 넓힐 수 있는 바다로 나가면서 자연의 무궁한 요소들을 담기 시작했다. 바람, 빛, 대기, 파동 등등, 우주에 떠있는 지구의 경계를 객관화시키기 위해 작업 위치와 시간 설정 등 조리개를 열고 몇 날 며칠 지난한 작업을 했다. 그 결과 대기의 변조가 적당한 남해 바다는 실경을 떠나 붉은 색, 녹색, 보라색 등의 깊이를 알 수 없는 추상의 세계로 바뀌고, 드러나는 윤곽은 하늘과 바다를 구분 짓는 아스라한 수평선만이 유일하다. 카메라의 눈이 포착한 이 경계를 우주와 지구가 맞닿는 천평(天坪)이라 말하는 박일구는 <남도 바다>작업을 통해 ‘추상의 세계’도 리얼리티를 통과해 나감으로써 열리게 됨을 증명해 보이고 있다. 또한 기록을 염두에 두고 시작한 작업이지만 ‘기록과 예술’이라는 사진의 두 속성을 동시에 체감케 하는 영역으로 진입함으로써 더욱 확장된 사유를 끌어내고 있다. 박일구. 영광 백수. 2007. 1621x112cm. digital C-print 이정록, 나비 NabiI 깊은 겨울 끝, 맑은 얼음의 냉기가 남아 있는 나뭇가지에 붉은 물이 돌면, 박락이 될 것처럼 두터워 진 껍질 밑에서도 여린 순이 올라와 봉긋해 보인다. 우리의 감각을 열고 집중해보면 일상의 도처에서 감지되는 어떤 움직임에 문득 감탄할 때가 있다. 유독 이정록은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으며, 그러나 우리의 가시적 세계와 조응하는 그 어떤 원형체에 대한 갈망이 깊다. 자신이 작업하는 매체가 사진인 만큼 비가시적 에너지를 붙잡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와 함께 <생명나무>작업을 시작했다. 그가 나무를 선택한 이유는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의 관문이자 일종의 균열을 일으키는 실체’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빛과 공기와 대기의 상태 등, 자연발생적 상황들을 컨트롤해서 원형의 존재를 붙잡기 까지 4년여의 시간이 걸린 생명나무 시리즈는 스튜디오로 옮겨 완성되었지만, 빛의 형태로 흩뿌려져 자체를 드러내는 영롱한 존재감은 사람들을 현상 너머의 세계로 이끌어 간다. 이 작업의 연장선으로 야성의 자연과 맞닥뜨려 이루어진 작업이 <나비(Nabi)> 시리즈 이다. 두 계(界)의 메신저로 선택한 나비는 영혼을 안내하는 정령처럼 느껴지는데, 우연히도 Nabi는 히브리어로 선지자를 뜻하기도 한다. 계속해서 이정록은 역사의 무게가 묵직한 장소를 돌며 이 에너지 존재를 발현시키고, 상처 깊은 현장은 그 존재를 통해 치유로 보살피고자 한다. 그의 작업이 거듭될 때마다 차원을 가로지른 존재의 발현이 더욱 손에 잡힐 듯 다가오고, 에너지를 발산하는 화면은 염원하는 이들에게 대상의 풍경으로 곧추선다. 이정록. Nabi 30. 2015. c-type print. 300x450cm 지성배, 기별 지성배는 사진의 본질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한다. 작가의 관념과 주장의 표현으로서 보다 사진 자체로서의 근원성에 접근하고자 한다. 그래서 사진의 프로세스에 집중하고, 실험적 작업을 하고, 물리적 상황들의 결과에 대해 면밀하게 검토한다. 이런 작업은 고도의 객관성 유지와 중립적 위치를 견지함이 필수적이다. 그런데 이 행위 자체가 자신의 안과 자신을 둘러싼 밖을 헤집는 시간이 되어 버렸다. <Human Refinery>(2001), <어둠의 정원>(2002) 시리즈에서는 거대한 기계장치가 가득 찬 공단의 밤풍경을 배경으로 우뚝 선 기계장치를 조감해 가다 자신의 실존을 발견하게 된다. <Seeds>(2005)는 이제 갓 땅에 떨구어진 낱알들을 찍은 작업으로, 무심히 실험실에서 배양일지를 쓰듯 찍었지만 하나하나의 낱알들에는 생명의 몸짓이 세밀하게 기록되어졌다. <기별(寄別)>(2015)시리즈 역시 어둠의 고요를 빌려 사진의 입자성을 극대화시킴에 관심이 더 컸다. 그런데 결과 된 풍경은 원경의 산과 사이사이 번지는 동네의 불빛, 근경의 잡풀들의 서걱임까지 대상들의 존재를 뚜렷이 느껴지게 만든다. 더욱이 생각을 최소화시키는 밤 풍경은 찍힌 대상뿐만 아니라 부유하는 내밀한 움직임까지 감지된다. 삶을 고민하는 자아, 시간의 차원, 물리적 힘들의 부딪힘, 생명들의 소리 등등, 누군가에게 닿길 바라는 파장 같은 움직임이 끊임없이 주억거린다. 그가 만든 풍경을 응시할수록 자신안의 흔들림의 정체를 만날 것 같고 자신에게 한걸음 더 다가갈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이 생긴다. 그 어떤 풍경도 현재 ‘나’의 존재로부터 연유한다. ‘나’의 흔적들이 묻어있는 풍경은 ‘나’의 기억을 환기시키고, ‘나’를 다시 만나게 한다. 항상 해가 바뀌고, 계절이 바뀌면 새로운 출발을 해야 한다는 다짐을 서로 굳건히 한다. 하지만 전시장을 돌아 나오면서, 출발이 아닌 ‘나’의 모습을 재발견하는 노력이 필요하며, 새로움이 아닌 쌓여진 켜를 볼 수 있어야 한다. 명확한 선보다 번져 보이는 기억이 더 진실일 수 있음을 깨닫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 - 황유정 (광주시립미술관 학예연구사)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이전글 다음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