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성지점 - 윤세영 회화전 페이지 정보 작성자 김민경 작성일18-04-05 15:34 조회3,147회 댓글0건 관련링크 이전글 다음글 목록 본문 윤세영. 생성지점. 2018. 장지에 석채,분채. 180x240cm 생명의 근원을 찾다 생성지점 Becoming space; 윤세영전 2018.04.03-04.29 무등현대미술관 많은 예술가들은 그들의 모티브로 자연을 탐구하거나 내외적인 경험을 그들만의 감성으로 시각화한다. 윤세영의 작업은 후자에 속하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일반적으로 자신 삶의 실체와 근본원리를 이해하려는 예술을 상기시킨다. 이미지를 그린다는 것은 세상에 존재하는 일상적 경험들을 작가 자신만의 시각과 방법으로 물질화 시키고 유일무이한 대상으로 치환하여 그 속에서 카타르시스를 이끌어 내는 일이 아닌가 싶다. 작가 “윤세영”. 푸른 심연의 깊은 바다 형상이 떠오른다. 윤세영의 작품을 접하는 첫인상이다. 그리고 관람자는 발길을 멈추고 거기서 잠시나마 위안을 찾게 된다. 그가 이끄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그는 “시간”을 형상화하려고 노력한다. 그것을 위해 부단히 탐구한다. 이전의 작품들에서는 한 여성으로서 결혼하고, 아기를 잉태하고 출산함으로써 내재한 작가 개인의 경험을 작품으로 승화시켜 표현해왔다. 그의 작품에는 마치 혈관처럼 보이는 “가시” 형상들이 자주 등장한다. 이것은 그가 여성의 경험을 통해 얻은 “아픈 상처가 쌓이고 쌓여 혈관처럼 온 몸을 이루고 그것이 결국 하나의 생명을 생성”하게 되는 중의적 의미의 “가시(加時)”와 연결된다. 다시 말하면 여성주의적 관점에서 시작된 작업들이 이제는 보다 큰 의미를 내포하는 것으로 확장되고 있다. 이는 하나의 커다란 유기체에 비유될 수 있다. 작가 자신은 세상을 이루는 것을 물, 불, 흙, 공기라는 네 가지 원소로 여기고 이들을 전부 통과할 수 있지만 보이진 않는 그 무엇을 “시간”이라 전제한다. 이러한 전제는 전통적인 동양적 사유방식과도 맥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다. 하나의 형체는 시각적인 장식물뿐만이 아니라, 하나의 생명체이자 시공간을 초월하여 자유롭게 넘나들면서 교감을 나누는 대상으로서 자연스러운 생명의 상징적 소재가 된다. 이러한 모색은 그가 꾸준히 탐색해오던 여성적 경험에서 얻은 아픔의 승화, 포용성, 깊은 심연의 표출, 무수한 결들이 만들어낸 고요함과 형체들은 유기적 관계를 맺는다. 물, 불, 흙, 공기의 요소들은 심연의 색을 띤 몽환적인 간결함과 빛의 힘으로 그가 표현하고자 하는 “시간”을 이끌어 낸다. 우리는 작가와 함께 생명의 근원을 찾는 여정이 될 것이다. 이번 전시에서 윤세영은 자신의 시간을 이루어 내는, 에너지가 집약되는 특별한 지점을 만들어 내었다. 그는 그것을 “생성지점”이라 칭한다. 전시공간은 하나의 구심점을 향해 전체를 집약시킨다. 마치 생명이 탄생되듯이 그가 형상화하는 생성지점은 평면, 입체, 설치 등 다양한 방법을 통해 시각화된다. 그의 “생성지점”이란 모든 만물의 생명근원의 표출이라 볼 수 있으며, 단순한 외형적 표현이 아닌 생명의 근원을 작가 자신만의 “시간”이라는 속성을 통해 시각적으로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다. 작가 윤세영은 예술가로서의 탐구와 연구, 새로운 도전에 게을리 하지 않는다. 마치 실내악의 어느 악장처럼 그의 작품 속에서 고요함과 동시에 그가 지니고 있는 작은 에너지들이 모여 격동적 울림이 동시에 포착된다. 이번 전시를 통해 작가는 어쩌면 또 다른 세계로 나아가는 작업의 폭을 넓히는 꿈을 꾸고 있을 지도 모른다. 윤세영의 한층 심오한 세상에 대한 응시가 우리에게도 활짝 피어나고 고요함 속에 깃들에 있는 그 생성의 에너지를 작품 속에서 읽어 낼 수 있기를 바란다. 앞으로 더 큰 무대로 나아가는 길목인 지금, 그가 풀어나가는 탐구들을 지켜보면서 조용하면서도 깊은 울림과 기다림을 가져본다. - 김민경 (광주시립미술관 학예연구사) 윤세영. 생성지점. 2018. 장지에 먹,솜,가시,설치. 612x290cm “현재는 과거의 시간과 이어져 있고 미래는 현재를 미묘하게 복제하며 같은 듯 다른 시간을 끊임없이 생성해낸다. 그 시간은 한 시대의 역사적 상황과 개인이 겪는 각기 다른 경험들이 새로운 항을 이루어 하나의 블록을 형성한다. 그리고 그것은 작든 크든 특별한 지점을 만든다. 생성지점이다. 바로 그곳에 집약된 에너지가 생긴다.” 들뢰즈에게 ‘생성’은 없음 無에서 새로운 것이 창조되는 것이 아니라 있음 有에서 또 다른 있음 有이 나오는 것이라 보았다. 각기 다른 배열(아장스망 agencement)로 이루어진 조건들이 모여 잠재적인 존재가 현재의 실재적인 존재로 발현 된다는 것이다. 우선 나는 세상을 이루는 제4원소, 물·불·흙·공기인 그것을 전부 통과할 수 있는, 보이지 않는 요소를 ‘시간’이라고 가정했다. 사람의 육체는 이 네 가지 원소들의 집약체이고 이 육체가 속해 있는 땅과 바다 같은 자연은 그야말로 이 원소들의 집합이다. 이 조합체가 곧, 시간이 통과하는 통로다. 그래서 나는 잠재적 존재의 있음 有을 시간이 더해지면서 생기는 크고 작은 상흔이라고 생각했다. 그로인한 생겨난 새로운 배열을 ‘가시 : 더할 加, 시간 時’라는 뾰족한 형태를 이용하여 중의적으로 표현하였다. 크고 작은 상흔을 의미하는 가시들이 한 지점으로 수없이 많이 모여 들고 결국 생명을 이루는 혈관으로 변화하는 지점을 생성하게 되는 것이다. 행복한 시간이든 고통의 시간이든 시간이 통과하는 모든 것에는 한 지점이 생긴다. 구멍이 뚫린다. 죽음에서 삶으로, 어둠에서 빛으로, 절망에서 희망으로. 그 모든 양면적인 것들이 그 지점을 통해 넘나든다. 그래서 생성과 소멸이 공존하는 그곳에는 마치 살아있는 문門인냥 시간이 넘나드는 꿈틀거리는 에너지가 응축되어 있다. - 윤세영 (2018. 작가노트) 윤세영. 생성지점. 2018. 장지에 석채,분채,레진. 180x180cm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이전글 다음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