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롯데갤러리 기획전 'Falling in Winter' 페이지 정보 작성자 고영재 작성일18-12-04 10:44 조회2,269회 댓글0건 관련링크 이전글 다음글 목록 본문 광주 롯데갤러리 기획전 Falling in Winter 2018. 12. 01 - 2019. 01. 09 십이월, 그 끝의 시작에서 묵은해를 보내는 아쉬움과 새해의 여러 다짐, 더불어 첫 눈을 기다리는 설렘 등 겨울의 시작점인 연말 풍경 안에는 시작과 끝이 물고 물리며 지나간 날들과 다가오는 날들이 교차한다. 항상 끝이라는 마지막 지점에서는 아쉬움과 반성이 남길 마련이지만 그 자리에는 다시 희망이란 것이 들어찬다. 롯데갤러리 연말기획전시 <Falling in winter>는 겨울일상과 함께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점인 12월에 대한 소회이다. 주로 청년작가 중심으로 구성된 9인의 참여 작가는 계절의 감성과 서정을 은유와 상징, 서술을 통해 이미지화했으며, 그 세대에서 체감할 수 있는 독특한 시선들로 다채로운 작품들을 그려냈다. 그러나 우리가 흔히 상기하는 성탄절의 화려함이나 새해를 앞둔 설렘과 같은 ‘보통’의 연말 풍경은 없다. 부산스럽고 조금은 들뜬 절기임에도 불구하고 작가들은 자신의 일상 근거리에서의 겨울을 담담하게 드러냈다. 재개발 구역에서의 계절의 쓸쓸함, 묵은해가 지나가듯 사라져가는 오래된 삶터, 역사적 사실을 품은 장소에서의 겨울 단상, 내 기억 속 힘들고 공허했던 연말, 겨울을 상징하는 사물에서 느껴지는 허무, 혹독한 삶에서도 계속 꿈을 꾸는 순수의 마음까지, 생각할 만한 ‘꺼리’들이 관람자를 맞이한다. 생성과 소멸, 삶에 대한 기억 강선호는 이번 전시에서 광주 중흥동, 계림동 재개발 지역의 겨울을 담았다. 많은 이들의 삶의 흔적이기도 한 주거지역의 재개발 풍경은 단순히 건물을 부수고 다시 짓는 것이 아닌 살아온 시간들의 갈무리이자 지나간 것들에 대한 그리움을 담보한다. 한 해가 지나가는 이 즈음, 허물어진 건물 더미 위로 겨울 공기의 쓸쓸함과 적적함이 배어 나온다. 노여운은 오래된 골목길의 풍경을 그린다. 광주의 학동 재개발 지역, 중흥동, 남광주 시장의 뒷골목 등 주로 구도심에서 지나간 시간들에 대한 애수와 삶의 흔적을 포착해 온 작가는, 이번 전시에 운림동 풍경을 담았다. 오래된 붉은 기와 위에 소복이 쌓인 하얀 눈, 빨간 우편함이 소담한 골목집에는 수줍게 첫눈이 내리고 있고, 파란 대문집 앞에는 어느 노인의 장바구니로 쓰였을 유모차가 덩그러니 놓여 있다. 크기도 색깔도 제 각각인 플라스틱 화분, 이 또한 화분으로 분한 고무대야와 욕조, 그리고 추위를 막기 위해 늘어뜨린 색색의 포장 천까지, 화폭 안에는 소소하지만 가치 있는 우리네 겨울 일상이 한 데 어우러지고 있다. 강선호 <중흥동 재개발>, 2018, 캔버스에 아크릴릭 / 노여운 <머무르다>, 2018, 캔버스에 유화 공허의 한 켠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에게서 허무와 공허에 대한 은유를 찾는 이혜리는 우리의 겨울 일상을 채워주는 오브제에서 계절을 읽어낸다. 겨울철 언 몸을 따뜻하게 녹여주는 붕어빵, 이불 위에서 까먹던 댕그런 귤, 시린 눈 맞아 더욱 선명한 붉은 동백꽃까지 일상의 파편들이 한 화면에 시간 순으로 나열된다. 머리부터 베어 먹은 붕어빵은 꼬리만 남겨지고 옹골차게 까먹은 귤은 껍질만 남긴다. 참은 눈물 한 방울 뚝 떨구듯 혹한의 눈 맞아 떨어진 동백꽃 더미 등은 얼핏 의미 없어 보이지만, 그 시간의 간극 안에서 허허로움이 느껴진다. 미디어 매체를 통해 다양한 작업형식을 선보여 온 이조흠은 이번 전시에 큐브 형태의 발광 구조물을 전시한다. 사면이 뚫린 이 열린 구조물은 내가 우두커니 자리하는 실제의 방일 수도 내면에 갇혀 있는 나의 현재일 수도 있다. 항상 북적거리는 연말의 부산스러움과 다르게 작가는 그 안에서 공허함을 느꼈고, 지리한 싸움의 도중에 느끼는 피곤함, 절망감처럼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생의 일순간을 이번 작품에 투영하고자 했다. 작가는 관람자들이 큐브 안에 들어와 머물며 연말이라는 특수한 시점에서 느껴지는 각자의 일상을 곱씹어 보기를 바란다. 우리에게 익숙한 공간과 사물에서 삶을 보여주는 임현채는 자신의 일상을 담담하게 드러낸다. 물건 하나하나는 현재를 보여주기도 하고 관람자의 인식에 따라 각기 지나간 기억들이 소환되기도 한다. 아이의 친구가 되어주었을 봉제인형들은 아무렇게나 쌓여 있지만 마치 자기 할 일을 다 한 듯 드러누워 있다. 사물은 항상 실용성을 지니지만, 일상의 복잡다단한 서사가 투여된 사물이란 그 자체로 감정이입의 대상이자 중의적 의미를 지닌다. 아슬아슬 지쳐 보이는 사물들의 조합이지만, 트리를 화려하게 장식할 꼬마전구에서 희망 혹은 의지 따위가 느껴지기도 한다. 이혜리 <계절>, 2018, 종이에 수채 / 이조흠 <무제>, 2018, 혼합재 / 임현채 <수고했어>, 2018, 한지에 연필 자연을 향한 경외와 장소적 특이성 먹을 칠한 화선지를 콜라주하는 기법으로 독특한 산수화를 선보여온 설박은 시리디 시린 겨울 설산을 보여준다. 전체적인 구도는 다소 부감하여 표현돼 있고, 산은 색을 절제하며 조각조각 먹의 농담으로만 구성되어 있다. 작가는 적절한 여백과 함께 최대한 번잡스러운 표현을 배제하여 대상이 상징하는 근원적 힘을 드러내려 한다. 사진작가 이세현이 매체 안에서 담아내는 공간은 우리 근현대사에서 상기할만한 장소들이다. 작가는 실재성을 담보하는 장르적 속성을 통해 일종의 기록자가 되고자 한다. 역사가 담긴 장소 위에 던져지는 돌은 작가가 간주하는 모뉴멘탈한 소재이며 과거와 현재를 아우르며 행해지는 일종의 문제제기이다. 이번 작품에서 작가는 겨울 제주의 오름, 남평 드들강 유역의 겨울나무를 담아내며 4·3항쟁의 기억과 4대강 사업이라는 장소 특정적 의미 너머의 자연의 순리, 상서로움을 반영한다. 설박 <어떤 풍경-겨울의 온도>, 2018, 종이에 먹,콜라주 / 이세현 <경계-오름>, 2015, 잉크젯 프린트 끝나지 않는 생의 희망 섬세한 감수성이 돋보이는 이선희는 겨울의 향기를 담아냈다. 조각달이 뜬 설원을 배경으로 서 있는 여인이 손 안에 담고 있는 씨앗은 연중 마지막 계절인 겨울에 품을 수 있는 새 날, 새해를 향한 희망을 상징한다. 후 불면 날아가는 씨앗의 포자처럼 이 겨울 많은 이들의 소중한 바람과 염원들이 무사히 뿌리 내려 이뤄지기를 기원한다. 흰 눈꽃송이 닮은 목화솜꽃은 첫눈을 기다리는 겨울의 설렘을 드러내며 보는 이에게 소녀적 감성을 선사한다. ‘여행자’를 키워드로 동화 속 세상과 같은 화폭을 선보여 온 최순임은 이번 전시에서도 순수의 세계를 보여준다. 애틋하게 시선을 주고받는 고양이와 함께 수중 목마를 타고 있는 소녀는 작가 자신의 투영이다. 목마의 배경으로는 전통 서화에서나 볼 수 있는 산천초목과 기와집들이 자리하며, 우리 안의 무릉도원을 드러낸다. 말을 타고 어딘가로 길을 떠나는 소녀는 하늘 높이 고개를 들며 순례자의 설렘을 나타낸다. 보다 나은 일상을 꾸려오며 지쳐있는 12월, 작가는 많은 이들이 순수와 꿈을 잃지 않기를 바란다. 이선희 <겨울을 떠나보내며>, 2018, 마직에 분채 / 최순임 <수중목마>, 2017, 목판에 혼합재 시간의 끝에서 우리는 종종 겸허해지고 다시금 나를 다독이고는 한다. 수많은 고민과 번뇌로 점철된 하루하루가 켜켜이 쌓여 일 년이라는 시간이 흘러왔지만,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그 누구도 아닌 ‘사람’의 삶이기에 놓지 못하는 생의 희망과 기쁨이 존재한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12월 작가들이 풀어내는 다양한 겨울서정을 통해 서로의 일상을 보다 깊이 공유하고 교감할 수 있기를 바란다. - 고영재 (롯데갤러리 광주점 큐레이터)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이전글 다음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