켜켜이 쌓아올린 그리움; 소빈의 한지인형 페이지 정보 작성자 고영재 작성일19-01-24 12:06 조회2,347회 댓글0건 관련링크 이전글 다음글 목록 본문 소빈 <그리운 것은 말이 없다>, 2008, 한지 켜켜이 쌓아올린 그리움; 소빈의 한지인형 어릴 적 싫었던 일상 중에 하나가 장에 나간 엄마를 기다리는 일이었다. 홀로 집에 남겨진 그 시간이 두렵기도 했지만, 반나절 동안의 기다림은 그리운 감정 이상의 묘한 긴장감을 안겨주는 일이었다. 계속되는 긴장감에 생짜로 배가 아프기도 했고, 장 보따리를 풀어헤칠 생각에 마냥 설레기도 했고......, 내 기억 속 유년이란 이렇듯 그리움과 애틋함, 혹은 두려움이 교차하는 시간이다. 소빈의 한지인형을 보면서 떠올렸던 기억도 별반 다르지 않다. 광주리를 머리에 인 엄마를 물끄러미 올려다보는 아이, 엄마의 이고 진 삶의 무게가 애달프기도 하지만 아이의 깃털 같은 발걸음에서 괜스레 희망을 찾아보기도 했다. 소빈의 닥종이 작업에선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는 따위의 설명할 수 없는 감정들이 읽혀진다. 일종의 감정적 교류이겠지만 빈 공간에 덩그러니 자리할 뿐인 조그마한 인형들에서 오롯이 살아 숨 쉬는 일상의 희망을, 혹은 예전 그 사람을 그 기억을 다시 끄집어낸다. 많은 설명이 부연되지 않은 작품들이건만 시와 같은 함축된 감성들이 인형이 자리한 공간의 공기를 에두르며 관람자에게 말을 건넨다. 감정이입의 힘 대학 때 미술을 전공한 적이 없는 소빈의 한지작업은 아이가 없는 형수를 위해 인형을 만들면서 시작되었다. 공모전에서 종종 큰 상을 받기고 하고 대학원에서 조소를 전공하면서 변화를 거듭했던 작업은 햇수로 벌써 20년째에 접어들었다. 한 겹 한 겹의 종이를 쌓아 올리며 감내한 그 긴 시간 속에서 작가가 여적 잃지 않고 있는 태도란, 사람을 위해 정성을 다 하는 마음이다. “나의 이야기가 사람들의 생각과 같은 영역을 공유하고 그들로부터 웃음과 눈물 한 줌 쏟게 할 수 있다면 내 몫은 거기까지이다.” 10년 전에 했던 소빈의 이 다짐은 아직 지속되는 듯하다. 더불어 그간 ‘사람의 이야기’를 담기 위해 무던히도 애를 썼다. 살아내기 위한 삶 속에서 쉬이 잃어버린 동심과 순수, 혹은 잊혀 가는 꿈, 언제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는 어머니 아버지의 사랑과 그이들의 생에 대한 애틋함, 개인의 사연이기에 지나치기 쉬운 그러나 어느 누군가는 이야기 해주어도 될 법한 아무개의 삶, 떠나온 가족이 생각났는지 떠나간 친구를 기다리는지 사뭇 적적해 봬는 동자승과 슬픈 눈의 소녀까지, 어찌 보면 소빈의 작품세계를 관통하는 대표적인 심상은 그리움일 터이다. 보통 인물의 동세는 하늘을 바라보듯 물끄러미 위를 올려다보기도 하고, 고개를 지그시 틀며 관람자의 시선을 마주한다. 단순히 기다림의 행위만으로 해석될 수도 있지만 인물들은 보는 이의 감정에 따라 지극히 평온했다가 더러는 번뇌에 가득 차 그 심중에 심란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2004년 대한민국 한지대전에서 대상을 수상했던 작품 <반추>가 그저 현대적인 감각으로 일궈낸 결과물이기보다는 소빈 작업이 내재하고 있는 이러한 감정이입의 힘이 적절한 순간에 발휘된 것이 아닐까 싶다. 감정이입은 대상을 보는 주체가 그만의 개성을 투사하는 과정이며, 또한 자신의 온 감각을 일깨워 대상을 온전히 이해하는 과정이다. 머리로의 이해는 정해진 답이 있겠지만 직관을 통한 이해는 다양한 교감으로 이어지며 보는 주체를 대상 안으로 옮겨 놓는다. 한편, 비례 면에서나 표현 면에서 작업 초기의 디테일했던 묘사력은 가늘게 긴 팔 다리, 몸에 비해 큰 두상, 작은 눈매, 절제된 동세 등으로 요소요소에 데포름을 주는 방식으로 변화했다. 점차 덜어낸 형식에서 더 많은 이야기를 드러내기 위한 작가적 의도가 엿보이며, 나아가서는 자연물의 병치와 함께 인간의 실존에 대한 탐색과 삶의 순환 등 추상적인 주제에 대한 고찰도 발견된다. 시간성의 축적과 나를 향한 물음 인간의 수명으로는 가늠할 수 없는 세월을 견뎌내는 한지, 촘촘하게 엉겨 있는 섬유가 무수한 물질에 의해 한 장의 종이로 태어나는 것처럼, 한지를 이용하는 작업 또한 인내와 인고의 시간을 거쳐야 한다. 소빈은 최근 작업에서 고서를 다룬다. 흘러간 역사와 함께 수백 년을 견뎌 온 고문서의 낱장 낱장을 별도의 화학적 접착제 없이 물로써 이어 붙이고 건조하는 작업이 선행된다. 이후 오래된 종이 위에 배접하듯 올려놓은 염색 천 조각을 바느질로 고정시키는 과정은 한지조형 작업 못지않게 집중력을 요한다. 고서 위에는 주로 좌선(坐禪)한 사람이 자리한다. 형상은 세부적인 디테일이 아닌 단색의 덩어리로 표현되었는데 간결한 실루엣이 돋보인다. 유백색의 빛깔로 익어갈 달 항아리 안에 좌선한 이, 그 위엔 가득 찬 만월이 떠 있고 차고 기우는 달처럼 영글은 과실나무도 함께 있다. 작품 <어디로 가는가>에는 백목련을 향해 긴 팔을 뻗은 사람이 배를 타고 어디론가 향하고 있다. 이룰 수 없는 사랑처럼 혹은 실현할 수 없는 이상처럼, 꽃잎에 닿을 듯 닿지 않는 뭉툭한 손의 표정에서 살아감에 대한 번민이 읽혀진다. 나무 그늘 아래서 참선하는 이에게는 꽃비가 내리고 나무 꼭대기엔 희망을 상징하는 파랑새가 머무른다. 꿈을 향해 때로는 이상을 좇지만 행복이 멀리 있지 않음을, 내 안에서 선을 찾아야 함을 이야기하는 듯하다. 시간성을 내재한 고서는 재료 그 자체에 상징적인 의미가 부여된다. 오랜 세월을 유영해 온 종이에는 흘러온 시간만큼 수많은 사람의 흔적이 배어 있다. 선인들에게서 지혜를 찾듯 흘러간 시간 안에서 살아간 흔적과 살아갈 힘을 찾는다. 성인의 깨달음을 닮고자 하는, 달리 보면 끊임없는 나를 향한 물음이 고서와 좌선한 사람의 형태로 나타난다. 소빈은 고서의 파편을 보다 거대한 형태로 잇기를 희망한다. 물성 자체로, 그리고 물질이 상징하는 메시지를 담보하며 사고의 확장을 수반할 수 있는 개념미술의 형식도 고민해봄직 하다. 그러나 종이라는 재료로 실험을 거듭하는 작가적 의지가 더욱 반가운 근작의 경향이다. 기획전시 준비 때문에 간만에 소빈의 작업실을 방문했었다. 각각의 사연을 담은 한지 인형이, 그리고 오랜만에 보는 ‘순이’가 반갑기도 했고, 고려시대의 토기와 조선시대 때 쓰였을 오래된 민예품들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여전히 사람을 좋아하고 사람의 흔적을 좋아하는 작가의 마음자리가 새삼 고맙고 편안했다. 소빈에게 있어 우리 종이도 그런 존재일 테다. 사람의 호흡이 드나들 정도로 약해보이지만 무엇보다 질기고 강한, 사람의 살결을 닮고 숨소리를 닮은 한 장 한 장의 종이가 따스하고 편안하기에 소빈은 계속 한지를 다룬다. - 고영재 (광주롯데갤러리 큐레이터) * [전라도닷컴] 2019. 2월호 소빈 <기억한다>, 2018, 한지, 30x15x40cm / <다시 꽃이 피다>, 2017, 나무, 15x15x45cm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이전글 다음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