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생을 사유하다’ 김설아 오승우미술관 초대전 페이지 정보 작성자 이미경 작성일19-05-03 13:39 조회2,570회 댓글0건 관련링크 이전글 다음글 목록 본문 ‘미생을 사유하다’ 김설아 회화 2019. 03. 30 – 06. 26 / 무안 오승우미술관 초대전 <잃어버린 대상을 찾아서-그리고 상실은 욕망이 된다>는 작가 김설아가 2015년부터 2019년까지 육안으로 관찰하기 힘든 형상과 존재를 관찰하고 고민한 흔적들을 선보이는 전시이다. 작가는 이 시기 동안 미생(Microorganism) 곧 작은 미물들에 대한 관심을 대상화했다. 작가는 땔감으로서 생명을 다한 재(ash)나 먼지조차도 생명을 지닌 생명체로 보았으며,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미약한 생명체의 상실, 소멸을 기록해왔다. 따라서 작가는 먼지, 깃털, 단세포 생물에서 기억에 이르기까지 사라져버린 과거의 시간과 기억을 시각화했다. 이러한 경향은 2016년 광주 비엔날레에서 선보인 연작 이후 두드러졌으며 작가는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생명체로 인식하며 내러티브를 배제하고 철저하게 미생을 사유하는 작업을 선보였다. … 인도에서 7년을 보낸 작가는 신화 속 인물보다는 신화가 생성되는 과정에 관심을 보이며, 개인의 기억이 집단의 기억으로 일반화될 수 있다는 믿음을 보여주었다. 따라서 이 타원형 형상은 성적 에너지로서, 욕망으로서, 생명의 근원으로서 시공간을 뛰어넘는 다의적 가치를 지니게 되었다. 작가 김설아가 요코하마 레지던스 시절 천착했던 주제 역시 물과 곰팡이 균사체와 같은 미물 종류였다. 단일한 세포나 균사로 몸을 이루는 미세한 생물에 대한 관찰과 기억은 작가의 오래된 경험에서 비롯되었다. 어릴 적 화학 단지 개발에 따른 고향의 철거 및 이주, 성인이 된 후 삶의 터전이 전소되어 뼈대만 남은 집터에 대한 황망한 기억은 언제고 사라질 수 있는 사물과 생물에 대한 기록을 재촉했다. 작가가 경험한 불에 대한 기억은 모든 것을 파괴할 정도로 무섭다기보다 그가 사물을 바라보는 방식, 사고하는 방식을 바꿔 버렸다. 눈앞에서 사라져 버린 부재에 대한 두려움은 수많은 세필의 중첩 속에서 촉각으로 그리고 청각으로 살아났다. 작가 김설아의 수많은 세필 작업은 그저 단순한 선의 중첩이 아니라 꿈틀거리는 생명력 때문에 섬모로 혹은 위족(pseudopodia)으로 읽힌다. <눈물, 그 건조한 풍경>은 쏟아져 내리는 가슴과 눈물의 중력과 세월의 무게를 위족이 굳건하게 받치고 있는 형상이다. 이 위족의 내부에는 움직임을 결정하는 세포 소기관이 자리한다. 이 기관은 형상을 지지하는 받침대 역할을 하기도 하고 어디론가 떠나려는 이중의 역할을 한다. 이는 곧 이주할 수밖에 없었던 작가의 현실과 정주하고 싶은 작가의 무의식적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이 위족들은 작가의 작품 전체에서 관찰되는데 이 세포기관은 단세포 동물의 운동방향을 결정하는 중요한 기관이다. 아메바형 생물은 이 위족 때문에 생명체로 존재하고 생명체로 인정받는다. 왜냐하면 이 위족은 섭식을 담당하고 움직임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작가의 전작들에는 이 위족이 진화한 흔적이 담겨있다. 작가가 2016 광주비엔날레에서 선보인 <숨에서 숨으로>는 짚신벌레 모양의 단세포 동물처럼 수많은 위족을 거느리고 있다. 여기서 위족은 미약하나마 전진하려는 의지를 내보였다. 위족들로 둘러싸인 중앙 몸체의 줄무늬는 세월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쳐진 인간의 뱃살 위에 새겨진 나이테로서 공간에 새겨진 시간의 흔적이다. 같이 전시된 <침묵의 목소리> 역시 위족의 운동 기능이 두드러진 작품이다. 여기서 작가는 고등 동물 인간의 척추와 하등 동물인 단세포 생물의 위족을 결합했다. 이 두 기관의 만남은 작가의 상상력 속에서 탄생한 것이며 작가가 의도적으로 결합한 생명체인 셈이다. 척추는 고등 동물의 뼈 구조물이자 신경통로를 보호하는 주요 골격으로서 인간의 직립 보행을 가능하게 하고 신체의 평형을 유지하는 고등 기관이다. 그러나 절대로 흔들리지 않을 것 같은 척추의 중심축은 위족들의 끊임없는 자맥질로 인해 진동을 일으킬 것이다. 그 진동은 미약하지만 분명한 소리로 위족들의 존재감을 증명할 것이다. … 수많은 습작과 사유를 통해 작가가 찾은 테마는 곰팡이 균사로서 작가는 곰팡이가 생과 사를 구분하는 가장 시각적이고 촉각적인 물질이라 결론지었다. 작가는 곰팡이 균사가 내는 가장 작은 소리에 집중하면서 생과 사의 경계를 고민했다. 이 경험은 인도에서 보았던 장례 행렬에서 받은 인상에서 비롯되었다. 인도 사람들은 죽음은 삶의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삶이라 생각하고 이 생을 마치고 다음 생을 준비하는 기간으로 인식한다. 따라서 그들은 장례 의식 때 슬퍼하기보다 화려하게 치장한 마지막 옷을 입히고 기쁘게 망자를 보낸다. 망자의 옷 위에는 화려한 꽃을 엮어 몸에 둘러준다. 작가가 집착한 곰팡이라는 테마는 어쩌면 인도 장례 의식 때 쓰이는 화려한 꽃의 또 다른 이름이다. <물의 희롱>에서 꽃처럼 핀 곰팡이 균사는 하늘로 향하고 있다. 이 작품은 균사가 죽음을 조율하고 생이 다한 생명체를 위로 끌어올리는 형상이다. 이러한 균사들의 움직임은 천상의 세계로 인도하는 것처럼 곰팡이 균사는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기능하는 존재들이다. 사실 곰팡이는 어둡고 습기가 많은 곳에서 자라는 균으로서 혐오감을 주는 존재이다. 곰팡이는 가느다란 실 모양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유기물질과 만나 변이를 일으킨다. 이 변이는 부패와 분해 작용을 통해 생물의 본래의 모습을 파괴한다. 따라서 습윤한 지역에 서식하는 곰팡이는 유기체의 생명이 다했음을 알려주는 메신저로서 <사자의 은유> 속 곰팡이는 죽음을 알리러 온 사자처럼 죽음으로 인도하는 존재이다. 곰팡이는 곧 생명이 다한 한 개체의 표피에 새긴 하늘의 메시지이자 죽음을 알리러 온 메신저의 은유이다. 작가는 가장 비싸고 다루기 힘든 매체인 실크 위에 곰팡이 균사를 그림으로써 죽음을 전하러 온 사자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 혐오를 극대화했다. … 김설아 작가는 미생들의 감각기관에 대한 연구를 거듭하여 곰팡이 균사를 더욱 확대해 개별 작품으로 선보였다. 여기서 독립된 곰팡이 균사의 원형 구조는 세포의 핵으로 읽히기도 하며, 눈동자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따라서 균사를 확대해 그린 <사자의 은유>는 눈동자와 관련 있다는 점에서 시각과 함께 외부를 둘러싼 위족들이 내는 소리로 청각을 공감각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사자의 은유>는 위족/섬모/촉수/핵 등의 미물들의 기본 개체 단위들의 조합이라는 점에서 충분히 생명체로 존재할 가치를 지니고 있다. <잃어버린 대상을 찾아서-그리고 상실은 욕망이 된다>는 위족, 섬모, 핵, 곰팡이 균사와 같이 현미경으로 관찰할 수 있는 작은 세상으로 이끌었다. 하이퍼리얼리즘보다 더 세밀한 마이크로리얼리즘의 세상과 존재에 대한 관심을 보여준 작가 김설아의 작품 세계는 죽음과 삶을 관통함으로써 보이지 않는 존재로 전환되었다. 따라서 그의 작업은 마이크로한 생명체들이 존재하는 매크로한 세상이 되었다. - 이미경(미술사학)의 전시평문에서 발췌 처음사진. 무안 오승우미술관 김설아 초대전 부분 삽입사진1.김설아. 물의희롱(The Tease of Water 부분). 2018. 실크에 먹. 75x75cm 삽입사진2. 김설아. 분자에서우주로(부분). 2019. 실크에 먹. 110x110cm 김설아. 使者의 은유. 2019. 실크에 먹. 440x200cm 김설아. 使者의 은유(부분). 2019. 실크에 먹. 440x200cm 김설아. 물의 희롱 (The Tease of Water). 2017. 실크에 먹. 80x300cm / 부분 김설아. 기억의 막. 2017. 종이에 아크릴릭. 63x85cm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이전글 다음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