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소명 개인전 ‘Infra-Lifeless’ 페이지 정보 작성자 윤 익 작성일19-05-05 11:34 조회2,376회 댓글0건 관련링크 이전글 다음글 목록 본문 이소명 <Prototype of Creation 5,6 (Intimacy1,2)>. 2019 .캔버스에 유화. 60x60cm 이소명 개인전 ‘생명의 빛’ ‘Infra-Lifeless’ / 2019.05.01-05.08 유스퀘어문화관 금호갤러리 미술인의 작업은 통상적으로 아무것도 없는 비어있는 화폭에서, 혹은 아무것도 표현되지 않은 돌이나, 나무, 점토 등의 자연적인 물질에서 출발한다. 작가는 이러한 화면 혹은 물질에 자신의 조형적 언어를 통하여 형상(形象)을 제작하고 세상과 소통하며 자신의 작품에 의미를 부여한다. 작품을 만나는 감상자의 입장에서도 작가의 미학적 의도와 메시지를 이해하려 노력하며 자신의 지적이며 감성적인 소양과 경험에 비추어 작품을 이해한다. 이러한 이유로 어찌 보면 미술작품은 우리가 일상에서 구사하는 언어처럼 일종의 형식적 코드를 지니는 또 다른 형태의 언어임에 분명하며 그 기능을 우리는 공감한다. 일반적인 언어는 동일한 문화권과 지역성, 민족성을 토대로 특정의 언어권이 형성되며 무리 없는 소통이 가능하다. 하지만 다른 언어권의 사람을 만나게 되면 이는 서로의 언어적 코드가 다른 이유로 언어는 그 본래의 소통적 기능을 상실한다. 미술 역시, 하나의 언어이며 체계가 있다. 주제가 존재하여 어떤 내용을 표현하고 전달하는 그 목적이 분명하게 존재한다. 다만 그 언어적 속성을 공유하지 못한 상황에서는 우리가 일상에서 접하는 타국어처럼 이해가 불가능하다. 이러한 상황을 전제조건으로 동서양의 수많은 작가들이 그 나름의 조형적 언어를 통하여 자신의 사상과 삶을 표현한다. 이유와 목적이 없는 작품은 존재하지 않으며 본질적으로 읽혀지고 소통되는 기능을 한다. 이론과 실기를 겸비한 이소명 작가는 우리에게 무언가를 전달하고자 작품을 진행하는 작가이다. 작품들에는 확연한 목적과 언어적 코드가 맞물려 있으며, 그녀는 이를 통해 우리에게 미술적 언어로 손짓하며 대화를 주도 한다. 그녀의 작품들은 하나의 질문에서 출발 한다. 이는 우리의 세상을 이루는 수많은 생명체들의 시작과 끝을 통해 만날 수 있는 생명의 존재성이다. 과거로부터 인류의 모든 문화권은 생명의 신비에 의문을 가지며 저마다의 가설과 논리로 세상의 시작을 상상하고 믿으려 노력하였다. 태초에 세상이 어떤 모습이었는지에 관한 궁금증은 인간이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는가에 대한 질문으로 연결되며, 이는 우리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으로 귀결된다. 이러한 질문의 연장선에서 작가는 자신의 작품을 통하여 존재하는 생명체들의 근원적인 모습을 찾고 있다. 이번 전시 “인프라-라이프러스(infra-lifeless)”를 통하여 작가는 평면회화, 드로잉, 사진, 비디오 등의 다채로운 표현 방식의 작품으로 관람자들과 마주한다. 전시를 이루는 작품들의 장르별 특성은 차별적이지만 작품 전반에 흐르는 주제는 일관성이 있게 “생명의 모습”에 관한 그녀만의 탐구이다. 무심히 바라보는 창밖의 풍경에서, 숲속의 밤공기와 희석되는 바람결에서, 길을 지나며 만나는 정원의 식물들에서 이소명 작가는 생명의 원형을 이루는 순수한 형상을 발견하고 있다. 때로는 현대문명의 산물인 사진기와 비디오카메라를 통하여 그들의 모습을 담아내고 때로는 그녀의 진지한 눈빛과 진실한 기억으로 자신의 마음에 형상을 담아내었을 것이다. 이후에 그녀는 작업실이라는 이름의 공간에서 예술적 언어로 새로운 화면과 물질에 몸을 드러내는 생명체들을 생산 하였다. 24점으로 구성된 흑백의 연필 드로잉 연작 <The Prototype of Creation>은 생명의 원형을 상상하며 찾아내는 시도로 제작된 작품들이다. 일상에서 흔하게 접하는 꽃처럼 보이기도 하며 혹은 녹음이 우거진 나무를 위에서 내려 보는 이미지의 작품들이다. 다소 모순적인 설명으로 전체적인 느낌은 추상적이나 무언가를 묘사하듯 세밀하게 표현된 이미지가 연필 드로잉만이 지니는 즉흥적인 물성과 조화를 이루어 보는 이들에게 편안한 마음으로 다가온다. 어찌 보면 생택쥐베리(Saint-Exupéry)의 어린왕자가 살았을 법한 작은 행성 B612를 묘사한 듯 느껴지는 이 작품들은 작가가 의도하는 생명의 원형이 상상으로 공감된다. 한편으로는 머나먼 우주 공간의 또 다른 은하계 행성이거나 우리의 몸속에 존재하는 기본단위의 세포의 모습과도 연관되어 더욱 그러하다. 전시공간의 다수를 이루는 유화작품을 통해서도 작가의 생명과 연관된 주제의식을 공감할 수 있다. 육각형과 사각형의 캔버스에 그려진 작품들은 추상적이지만 감성적으로는 생명력의 형상들이 더욱 확연하게 느껴진다. 예를 들면 사각형의 작품 <Intimacy> 연작과 <Organism> 연작들의 이미지를 보면, 에너지와 공기처럼 묘사된 형상들이 스스로를 생성(生成)하며 번성(蕃盛)하는 모습으로 묘사되어 있다. 이는 작가의 의도가 손을 빌어 자동기술적인 방법을 통하여 마음속 형상이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에서 스스로 정립되어진 형상들이다. 작가는 무언가를 그리겠다는 의도를 버리고 그저 마음과 손이 전개되는 방향으로 붓질과 색채들이 혼합되어 이미지 자체가 구현이 되는 일종의 추상회화를 제작한 것이다. 태초에 진정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고 모든 것이 비어있던 상황에서, 오늘날 세상을 가득 이루고 있는 수많은 생명들이 생겨나고 자라는 상황을 화면에 기록 하였다. 이소명 작가의 이러한 그림이 그려지듯 우리의 역사가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상황을 작품들이 설명하고 있다. 사진과 비디오를 통하여 제작된 작품들은 보다 현실적이다. 작가는 우리의 일상에서 만나는 빛을 이용하여 생명의 형상을 우리에게 제안한다. 도심에서 보이는 빛은 우리가 일상에서 이용하는 인공적인 조명에 의한 것이다. 누군가에 의하여 작동되며 점등되고 소등되는 현상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를 멀리서 보노라면 일종의 생명체들이 생성하고 사라지는 모습으로 보인다. 마치 밤하늘의 별처럼 일정한 자리를 지키며 자신을 밝히는 생명체처럼 인식 되는 것이다. 작가는 이를 비디오 영상물로 제작하여 자신만의 이러한 논리를 관람자들에게 전달하고 있다. 또 다른 사진 작업은 실제 살아 움직이는 반딧불이를 촬영하여 그들의 움직임을 기록한 작품이다. 어두운 숲속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며 스스로 불을 밝히는 작지만 신비로운 존재는 작가에게 그녀가 추구하던 “생명의 빛”을 느끼게 하였으며 이는 10장의 사진작품 제안되었다. 작가들은 자신의 예술적 활동을 통하여 끊임없이 자신에게 질문하고 가능한 답을 상상한다. 이소명 작가 역시 예술가로서 철학자이며, 예술가로서 종교인처럼 우리 자신들이 잊고 살아가는 우리의 존재성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을 한다. 그녀의 작품들에서 인간의 형상을 찾을 수는없지만, 인간의 삶과 공통분모를 이루는 보이지 않는 존재들의 형상과 생명성(生命性)이 잔잔한 감동으로 느껴진다. 우리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존재인가? 그리고 그 생명성의 본질은 무엇인가? 예술은 아쉽게도 하나의 정답을 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답을 생각하는 다양한 기회를 제공한다. 작가는 이번 전시를 통하여 우리 스스로의 조화로운 삶과 존재하는 모든 대상들이 지니는 “생명의 빛”을 생각하게 한다. - 윤 익(미술문화기획자, 조형예술학박사) 이소명 <Prototype of Creation 11 (Organism 1)>. 2019. 캔버스에 유화. 24.2x24.2cm 이소명 <Prototype of Creation 15>(2018. 종이에 수채. 45x60cm) / <The Prototypw of Creation-Drawing>. 2019. 종이에 연필. 22x22cm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이전글 다음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