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화와 균형의 화폭; 하루.K의 작품세계 페이지 정보 작성자 고영재 작성일19-07-25 09:54 조회3,291회 댓글0건 관련링크 이전글 다음글 목록 본문 하루K. <맛있는 산수>. 2017. 한지에 수묵채색. 200x240cm 조화와 균형의 화폭 ; 하루.K의 작품세계 물질적 가치와 정신적 가치가 충돌하는 현장에 몸담고 있는 필자가 종종 직면하는 고민이란, 대립하는 가치들 사이에서 어느 정도의 객관적 기준을 세울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의식 구조와 삶의 지향점이 다른 이들 틈에서 균형을 맞춰가는 일은 자칫 이도 저도 아닌 무색무취의 결과를 낳게 되므로, 무엇을 우선순위에 두어야 하는가는 항상 어려운 문제이다. 그러함에도 추상적이나마 안고 가는 지점은 ‘삶과 함께 가는 예술’이다. 전통 산수화의 현대적 해석을 도모해온 하루.K의 작품을 소개하려 하는 이유도 이 부분에서 기인한다. 모두가 만족할 수는 없지만 미술이라는 정신적 활동의 한 카테고리에서 현실과 이상의 균형을 꾀하고자 하는 태도는 마땅히 존중받아야 한다. 균형을 위한 움직임은 ‘성실’을 담보하기도 하지만, 향수자의 입장에서 수용 가능한 지점을 모색함은 생산자의 유의미한 역할이기도 하다. 전통과 현대의 틈새 홍익대에서 동양화를 전공한 하루.K(본명: 김형진)의 초기작업은 사회적 메시지가 담긴 수묵채색화가 주를 이룬다. 1980년생인 작가가 체감해온 90년대와 2000년대의 급격한 사회변화는 작품의 주제뿐 아니라 전통회화의 현재성에도 관심을 기울이게 했다. 작가는 이상향의 추구 및 정신성을 강조하는 전통 회화의 특질에서 벗어나 지금의 이야기, 혹은 현대의 감성을 드러내는 방향으로 작품의 변화를 모색하게 된다. 2009년 대학원을 마치고 남종화의 전통이 서린 고향 광주로 내려온 하루.K는 동서양 회화의 비교 작업을 거친다. 작가는 회화적 형식뿐 아닌 설치미술 형태의 작품과 재료적 실험을 진행한 이 과정에서, 두 문화를 대립되는 시선에서 바라보지 않았다. 더불어, 개방과 교류로 다양한 문화가 혼재된 현대사회에 초점을 맞춰 작업적 변화를 단행한다. 알려진 작품 <맛있는 산수> 시리즈가 그 본격적인 변화의 시작으로, 산수화의 현대적 해석이라는 작가적 의도를 여실히 보여준다. 음식은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와 더불어 문명사회 속 현대인의 욕망을 상징하는 소재이다. 하루.K는 옛 것, 정신성을 반영하는 산수화와 현재적, 물질성을 드러내는 음식을 한 데 구성하여 정신과 물질의 조화라는 현대인의 새로운 이상향을 화폭에 제시하고자 했다. 음식, 더 나아가 그것으로 확장되는 ‘먹고 사는’ 문제는 여전히 대부분의 삶에서 실질적인 화두로 작용하지만, 궁극의 사람살이를 가장 잘 비유할 수 있는 ‘솔직한’ 화재(畫材)이기도 하다. 음식과 산수화의 결합은 예술의 유용한 가치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던 작가가 대중이 쉽게 받아들이고 호응할 수 있는 내용에 천착하다 고안한 산물이다. 맛있는 산수 연작의 초기 화풍이 실경이 아닌 관념산수라는 것에 주목해보면, 실재하는 풍경이 아닌 작가만의 구성법에 의해 구축된 상상 속의 풍경은 화폭 그대로가 이상향이며, 완벽한 세계를 의미한다. 멀게는 안평대군이 꿈에서 보았던 이상세계, 가깝게는 영화 아바타의 미쟝센처럼 하루.K의 음식산수에는 누구나 그려볼 법한 초현실의 세계가 내재되어 있다. 또한, 현실세계의 다양성만큼이나 다채로운 색채와 볼거리(일종의 만찬)를 제공한 화면이 보는 이로 하여금 흥미를 유발하는 것은, 소재의 친숙함 외에도 익숙한 소재가 낯 선 위치에 놓일 때의 정서적 충격, 즉 의외성에서 기인한다. 이러한 하루.K 작업의 의외성에서 해학적 요소 또한 발견할 수 있다. 경험으로서의 자연 하루.K는 근 5~6년 간 완성도를 구축해간 맛있는 산수 연작에서, 스스로 그의 작업이 형식화되어 간다는 것을 느낀다. 2018년부터 선보인 수집과 편집 시리즈에서 작가는 작품의 제작방식과 구성 면에서 재미와 변화를 준다. 경험으로서의 산수로 읽혀지는 본 작품들은 수집, 편집이라는 키워드에서 인지할 수 있는 것처럼, 산수를 하나의 사물로 치환한다. 전작이 이상과 현실의 버무림을 통한 새로운 세계의 제시였다면, 근작에서는 제시한 신세계를 보다 사적인 영역으로 끌어들인다. 현장 사생을 통해 실재하는 장소를 재현하거나, 그 장소에서 돌과 나무 등을 채집하는 일련의 과정을 거치는데, 실제 풍경은 그릇에 담겨진 형태로 재현되어 <수집된 산수>가 되고, 채집한 돌과 나무의 형상을 바탕으로 재구성된 실경은 <편집된 산수>가 된다. 무심코 집어든 돌은 해남과 무안, 보길도, 그리고 담양의 누정으로, 때로는 무등산 입석대의 풍경으로 어우러진다. 작가의 표현대로 “사물과 같은 자연”은 작업의 주체가 실제 대상에서 체감한 개인적 감성들에 의해, 의미 그대로 ‘나만의 산수’가 된다. 원본의 구분이 모호해진 채 끊임없이 이미지를 복제하고 재생산하는 현대문명의 방법론을 반영한 듯, 개인적 경험과 인식 활동에 의해 가시적 풍경의 원본성은 거세된다. 하루.K는 우리가 닿을 수 없는 이치의 고정불변의 산수화가 아닌, 보다 일상적 정서에 의해 변화할 수 있는 자유로운 산수를 꿈꾼다. 지속하고 있는 작업에서도 소위 쓸모 있는 예술을 지향하는 작가는 현재의 시점에서 해석되는 전통, 혹은 고전의 재해석을 시도한다. 기복과 장식적 욕구가 결합된 기명절지화에서 착안한 정물화 작업에 이어서 진행 중인 <그림 속 그림 畵中畵> 연작에는 까치와 호랑이 민화, 안견의 몽유도원도 등이 자리한다. 고전회화와 현실적 사물, 그리고 자연물과 함께 상징적 장치가 혼재하는 작품은 이전보다 진한 채색이 돋보인다. 개개의 의미 전달보다 도드라지는 사실적 표현에 치중한 듯한 그림은 보는 이에게 익숙한 눈맛을 선사하며 대중성을 획득한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하루.K는 화명이다. 광주로 다시 내려올 즈음부터 쓰게 된 이 화명의 연유에서도 작가의 관점은 엿보인다. “하루의 삶의 태도가 결국에는 1년 후의 상황, 그리고 10년 후의 상황을 결정한다고 생각해요. 어떻게 보면 일종의 욕망을 억누르는 작용도 합니다.” 변화하는 세태에서 절대적 가치는 때때로, 고정된 위치나 의미의 강요로써 우리의 의식을 통제한다. 세상 돌아가는 흐름과 현실의 삶에 적극적 태도를 보이고, 현재를 살아가는 이들이 공감할 수 있는 내용에 집중하는 하루.K의 가장 큰 장점은 조화와 균형을 향한 의지일 테다. 고착된 형식에 머무르지 않고 지속적으로 변화를 모색하는 작가의 움직임에서, 자칫 좋은 요소만 취하려 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앞서기도 하지만, 영민함과 성실함으로 작품세계를 일궈온 그간의 모습에서 긍정적인 모습을 기대하게 된다. 혹서가 한창인 절기에도 많은 이들은 산으로 강으로, 그리고 바다로 향한다. 자연의 질서란 어느 한 객체가 우위에 설 수 없는 조화로움을 담보하기에, 인간은 자연 안에서 그것의 흐름대로 나를 인식하고 동화되어 간다. 수평적인 공존의 세계, 어찌 보면 하루.K 작가가 추구하는 이상향일지도 모르겠다. _ 고영재 (광주롯데갤러리 큐레이터, [전라도닷컴] ‘고영재의 작가탐험’ 2019년 8월호) 하루.K <봄날 무등(소풍)>. 2016. 한지에 수묵채색. 70x70cm 하루.K <편집된 산수(Take out-담양)>. 2018. 한지에 수묵채색. 112x145cm 하루.K <무지개 무등>. 2019. 한지에 수묵채색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이전글 다음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