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환 목판화전 '칼로 새긴 장준하, 가슴에 품은 돌베개' 페이지 정보 작성자 조인호 작성일19-08-10 14:55 조회2,713회 댓글0건 관련링크 이전글 다음글 목록 본문 이동환 목판화 연작 <물이다> <운하를 건너다> <새벽2시의 소란>. 2016 칼로 새긴 장준하, 가슴에 품은 돌베개 이동환 목판화전 2019.08.07-09.02 / 은암미술관 최근 한반도를 둘러싼 정치 외교 경제의 소용돌이. 특히 대한민국을 대하는 미·일·중의 태도나 작태들에서 전 국민의 분노와 자구책들로 삼복더위가 더 뜨겁기만 한 시기에 묵직하게 나라의 좌표를 환기시키는 전시가 열리고 있다. 평소 역사의 질곡과 부조리, 욕망, 허위, 절대권력의 그늘 등 사회의식 짙은 주제 연작을 이어 온 중견화가 이동환이 민족지사 장준하의 ≪돌베개≫를 목판화와 채묵화로 옮겨내어 전시회를 열고 있다. ‘칼로 새긴 장준하’라는 이름의 서울 전시(2018.08.23.~09.05, 아트비트갤러리)와 판화집 출판(2018, 민중의 소리)에 이은 광주전시 ‘가슴에 품은 돌베개’이다. ‘돌베개’는 독립운동가이자 민주주의 활동가이며 출판인이기도 한 장준하(1918~1975)의 항일활동부터 해방 직후 정부수립 시기까지 2년에 걸친 회고록이자 격변기 역사기록이다. 그는 동경 일본신학교 재학 중이던 1944년 태평양전쟁 말기에 일본군 학도병으로 징집되어 중국 서주 주둔부대에 배치되었다가 6개월 만에 탈출한다. 항일과 독립운동에 뜻을 품고 린취안(臨泉)에 있던 중국중앙군관학교 분교형태의 한국광복군간부훈련반을 거쳐 더 값진 활동을 위해 동료 4명, 민간인 50여명과 함께 한겨울의 혹한과 허기와 생명이 위태로운 숱한 위기·고난의 6,000리를 걸어 7개월 만인 1945년 1월 충칭(重慶) 대한민국임시정부에 도착하였다. 죽음을 무릅쓰고 찾아온 임시정부의 실체에 갈등하며 광복이 되자 김구 주석의 비서로 귀국하여 해방공간의 혼돈 속에서 보낸 11월까지 총 2년여에 걸친 생생한 현장의 기록이다. 이 ‘돌베개’를 주제로 엄청난 규모의 작업을 해낸 이동환은 작가노트에서 "온 나라가 혼란에 빠져있던 그 무렵.. 책장을 그대로 덮을 수 없었다… 벅차오르는 뜨거운 무언가로 가득 찼고 지난 역사의 아픈 상처가 지금도 채 아물지 않았음을 알 수 있었다… 한 판 한 판 숨을 몰아쉬며 걷기 시작했다."라고 말한다. 책을 몇 번이고 반복해서 읽으며 가슴에 박히는 주요 구절들을 뽑아내고, 그 상황을 그림으로 상상해 풀어내고, 이미지를 압축해 흑백 단순표현의 목판에 판각을 해서 찍어내는 과정을 거쳤다. 처음 시작할 때는 30점정도 예상을 했던 것이 포함해야 할 대목들을 더하고 더하다보니 100점이 되고 135점으로 불어났다고 한다. 장준하의 대장정을 따라 쉬저우·린촨·난양·라오허커우·파촉령·충칭·시안·상하이·서울로 이어지는 시·공간 범위도 엄청난데다, 책 내용과 별도로 반민주적 박정희 정권에 대한 항거와 의문사를 다룬 8점을 포함시켜 놓았다. 방대한 기록을 최대한 압축해도 책 한권을 찍어낼 정도의 작업 양은 책이 담고 있는 기간보다 훨씬 더 긴 2년 8개월이라는 또 하나의 대장정이었다. 그 결과물을 공유할 겸 장준하를 통한 역사와 현실의 재환기를 위해 책으로 엮어 배포하고 싶었는데 다행히 민중의 소리에서 책을 내주어 전시와 출판물로 장준하를 다시 되살려내게 되었다. 워낙 긴 시간, 많은 양의 판각을 하다 보니 힘이 많이 들기도 했고, 원래 그림 그리는 화가인지라 손이 경직되어 모필을 다루는데 문제가 생길 수도 있어 판마다 각인하는 강도나 표현형식을 달리하려고 노력했다. 판각에 힘이 들어가는 정도가 다른 딱딱하면서 선이 강직한 자작나무 판과 상대적으로 좀 더 부드러운 합성목 판을 번갈아 가며 작업을 했다 한다. 전시장 입구에는 작년 서울전시와 함께 출판된 목판화집 ≪칼로 새긴 장준하≫ 책과 표지화 목판이 놓여있다. 한쪽 벽에 몇줄로 길게 전시된 목판화들은 대부분 A4정도 크기이면서 세로구도이고, 특히 중요하다고 여긴 장면은 한 변이 122cm크기로 강조해 중간 중간 배치해 놓았다. 판화들은 각각의 장면마다 내용을 압축하는 형태나 칼 맛, 상황에 따른 흑백의 대비감들을 달리해서 길게 이어지는 연작이면서도 각기 다른 판화 맛을 내고 있다. 그 판화 아래에 작업의 발상을 불러일으킨 책의 구절들을 연필로 기록해 두었다. 작가로서 작품을 내보이는 것 못지않게 장준하라는 인물과 그의 사상과 조국애, 민족지사로서 활동들을 공유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새겨낸 목판 원판들과 찍어낸 판화들을 마주보는 벽면 가득히 열 지어 전시하고 있다. 미술관 2층으로 올라가면 올해 제작한 72점의 드로잉 그림들이 빼곡하다. 목판화 작업을 끝내고도 가슴 속에서 사그라지지 않는 감동과 극적인 장면들, 장준하에 바치는 존경심과 이 시대에 대입해서 보여주고 싶은 의미들을 회화형식으로 풀어낸 연작들이다. 딱딱하고 날카로운 목판화의 새김작업과는 다른 훨씬 자유로운 회화묘법들로 ‘돌베개’의 주요 내용들을 다시 한 번 작업해 본 것이다. 대부분 80x55cm 크기 종이에 채묵과 아크릴릭, 유화물감을 섞어 필촉의 맛이 거칠면서도 그 장면의 의미내용을 함축된 장면들이다. 전시실 입구에 걸린 80x110cm 큰 화폭도 눈발이 얼어붙은 험산 준령의 굽이진 절벽길을 힘겹게 걸어가는 장준하 일행의 모습을 거친 필촉과 채색을 절제한 큰 화폭에 장대하게 펼쳐놓았다. 맞은 편 전시벽에는 2017년 작품인 <삼계화택도(三界火宅圖)>가 260x196cm 화폭 4개를 붙여 벽면 가득 채우고 있다. 근래 5년여 동안 계속하고 있는 ‘불’ 주제의 작업 중 보기 드문 대작인데, 마치 불타는 집 속에 살고 있는 듯한 요즘 세상의 극심한 혼돈과 번뇌를 풍자하는 비판적 자성의 작품이다. 이미 화마가 모든 걸 다 태워버린 뒤인 듯 동굴처럼 어두운 숯검댕이 공간에 망연자실 또는 새롭게 각심을 해야만 하는 상황 앞에 홀로 선 인물이 유령처럼 서있다. 아득히 먼 곳의 문에서 새어드는 빛을 받아 희끗희끗 파도처럼 반사되는 잔해들이 참담함과 비워짐과 희망의 메시지로 복합적 상황을 전해주고 있다. 이와 연결해서 다른 벽에는 같은 주제 연작이면서 한창 타오르는 중의 지옥도처럼 붉은 채색의 거친 작품들이 마찬가지로 세상에 던지는 자성의 메시지들을 표현하고 있다. 전시실 한쪽에는 전시기간 중 목판화 현장작업과 체험프로그램을 진행하기 위한 넓은 목판과 프레스기 놓여 있다. 작품뿐 아니라 관람객과의 직접적인 교감으로 전시에서 전하려는 생각과 메시지를 좀더 효과적으로 나누고 싶은 실행 장치일 것이다. 이와 함께 이전에 진행해온 목판화 소품들, 판각작업 흔적으로 수북이 쌓인 목판부스러기 무더기도 노동과도 같은 긴 기간 판각작업을 짐작하게 한다. 8월 13일 3시부터 작가와의 대화시간을 갖고, 30일에는 목판화 체험시간을 진행할 예정이다. 당분간 의미를 함축한 자유로운 화법으로 세상을 반추해보는 회화작업들과 함께 잊혀진 역사 속의 인물들을 주인공 삼아 우리 역사를 되짚어 보는 목판화 작업을 계속할 생각이라 한다. - 조인호 (광주미술문화연구소 대표)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이전글 다음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