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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ixed Signal' 황정후 사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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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김병헌 작성일18-08-17 19:08 조회3,40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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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정후 <Fruit_still life 128>(부분), 2017, pigment print, 90x120cm

     

    'Mixed Signal' 황정후 사진전

    2018. 8.16-8.31 은암미술관

     

    포스트모던과 디페랑의 이미지

    황정후 작가의 작품들을 볼 때, 적지 않은 사람들은 매우 기이(奇異)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가 보여주는 작품의 이미지들이 무척 낯설고 일반적인 생각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이번 전시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관객들은 맨 처음 1층 전시장에 들어섰을 때 과일들을 볼 것이다. 하지만 그의 과일들은 하나같이 우리가 생각했던 모습들과는 다르다. 방울토마토들이 포도처럼 보이고, 멜론의 씨가 있어야할 중심에는 자몽이 박혀있다. 이처럼 그의 과일들은 우리가 당연하게 기대했던 모습들에서 벗어나 있다. 그래서 그의 작품들은 본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의문을 품을 것이다. ‘왜 참외를 잘랐는데 키위가 있지?’, ‘난초 화분에 대파가?’, ‘메추리알 포도까지?’ 등등. 그들은 또한 무척이나 생소한 과일들의 모습에 신기해하다가 또 어떤 재미난 모습들이 있을까?’라며 은근한 기대도 할지 모른다.

    전시장 2층으로 올라가보자. 2층에는 두 종류의 작품들이 있을 것이다. 하나는 1층과 유사하지만 조금 다른 느낌의 작품들일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전혀 다른 종류의 작품들이라고 느낄 것들이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층의 작품들은 1층의 것들과 마찬가지로 한 가지 점에서는 공통점을 지닌다고 볼 수 있는데, 그것은 이들 작품들 역시 낯설고 기이하다는 것이다. 먼저, 전혀 다른 종류라고 느낄법한 작품들을 말하자면, 이 작품들은 일단 사람의 얼굴을 나타내고 있지만 그냥 얼굴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얼굴은 그가 누구인지 확인할 수 없도록 여러 종류의 가면들에 의하여 가려져 있다. 그래서인지 다른 작품들과는 분위기도 다르다. 마치 데드마스크를 쓰고 있는 것처럼 이들의 얼굴에서는 감정을 발견할 수 없으며, 무겁다. 한편으로는, 이처럼 무거운 분위기의 얼굴들을 다양하게 보여준다는 것에서 놀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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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정후 <Mask 011, 012, 015>, 2018, pigment printm, 140x100cm

    이와 대조적으로, 2층의 또 다른 작품들은 1층과 마찬가지로 무겁지 않으며 매우 유쾌한 느낌을 준다. 물론 전시장의 모든 작품들이 생소하다는 점에서는 같지만 말이다. 이 작품들 역시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것들이 함께 있다는 점에서 1층의 것들과 유사하다. 어떤 작품에는 수류탄 술병들과 종이로 만든 총이 축하 꽃바구니와 같은 장소에 놓여 있다. 옛날 집에서 하나쯤은 있었을 초가집 좌대의 수석과 소반, 오래된 노트북 컴퓨터, 놋쇠 잔들과 주전자, 캠벨스프 캔, 난초화분에 심어진 부추 등이 또 한 작품에 어울려 있다. 또 다른 작품에는 냉장고가 보이는데 책들이 차곡차곡 들어가 있다. 이처럼 2층의 다른 작품들은 우리가 경험하지 못했을 이미지들로 나타나 있다. 우유가 담겨진 코카콜라병들, 무거운 운동기구가 담겨진 비닐봉투, 좌대 위의 생감자 (재미있게도 이 생감자에는 수석에서처럼 사람의 얼굴이 나타난다), 클론가면을 쓴 고릴라인형, 화분에 심어진 청경채 등을 보면서 관객들은 신기함과 재미를 넘어서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던질지도 모른다. ‘대체 이 작품들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지?’라고 말이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황정후 작가가 그리는 것들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어떤 기준들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포도는 포도나무에서 자란 검보라색의 포도열매나 청녹색의 열매를 가리킨다. 이것은 참외, 멜론, 바나나 등과 같은 과일에서뿐만 아니라 사람의 초상화나 냉장고, 식료품과 같은 것들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바나나는 바나나로서 멜론은 멜론으로서 인물의 초상화는 초상화로서 보이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그의 이미지들은 너무나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에 질문을 제기한다. ‘당신 앞에 보이는 모든 것들을 진실 된 모습이라고 장담할 수 있는가?’

    (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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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정후 <Mixed Souvenir 004>, 2018, pigment printm, collage on Canvas, 130.3x97cm

    리오타르의 생각은 보편적인 진리보다는 단일한 사건들, 그리고 인간 경험의 다양성과 지역적인 문맥에 대한 강조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황정후 역시 이와 같은 포스트모던한 상황을 직관적으로 알아챘을 것이다. 필자가 보기에, 그의 과일 이미지들은 정확히 리오타르적인 분쟁을 나타내고 있다. 그의 과일 작품들에서 자몽이 원주민인지 멜론이 거주민인지는 분명치 않다. 이것은 다른 모든 것들에서도 똑같이 적용된다. 즉 주체와 객체, 우월한 것과 저열한 것, 너와 나 등의 구분은 더 이상 의미를 갖지 않는다. 이것은 마지막으로 그의 다음 작품들인 2층의 콜라주 작업들로 연결된다. 이 콜라주 작업들이 다른 것들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것은 작가의 개별성이 보다 두드러지기 때문이다.

    그는 이 작업에서 기존의 작품들과 달리 이미지들을 사진으로 찍고 다시 프린트한 것을 직접 손으로 오려서 캔버스에 붙이는 작업을 했다. 그러면서도 문맥에 맞지 않는 지극히 개인적인 사물들을 (물론 이것은 북경기념품 시리즈에서도 보이지만) 하나의 캔버스에 함께 둠으로써 많은 해석을 요구하고 있다. 앞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수류탄 모양의 술병과 수류탄 박스, 그리고 꽃바구니는 작가가 북경에서 전시를 했을 때 선물로 받았던 것들이다. 그리고 이것들과 함께 있는 종이로 만든 총은 작가의 아들이 직접 만든 것이다. 냉장고 콜라주 역시 작가가 소장한 책들과 평소에 보던 음료, 식료품을 가장한 숯 등 모든 요소들이 전혀 다른 문맥에 있어야 할 것들이다. 이것은 리오타르가 말하는 풍부한 마이크로내러티브(micro-narrative)들을 표현하는 것이자 한 화면의 보편적인 원리에 순응하지 않는 개별적인 사건들에 대한 의미의 다양한 소통을 말해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필자는 이 말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바르트(Roland Barthes, 1915-1980)가 말했던 것처럼, 이러한 의미는 저자로부터 올 수 없으며 이것을 보는 독자들에 의해서 능동적으로 만들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필자는 이와 같은 의미의 다양성, 그리고 해석의 다양성이야말로 황정후의 작업이 하고자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 김병헌 (독립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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