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과 기억의 에세이’ 노여운의 회화세계 페이지 정보 작성자 고영재 작성일19-01-12 12:50 조회2,609회 댓글0건 관련링크 이전글 다음글 목록 본문 노여운 <머무르다 (초저녁)>, 2017, 캔버스에 유화, 162x60cm ’상실과 기억의 에세이’ 노여운의 회화세계 생활의 번잡스러움 때문인지, 가끔 선잠에 들 때 꿈을 꾸고는 한다. 무의식과 의식을 오가는 그 찰나에도 오만가지 일상의 단편들이 교차되지만, 유년시절과 같은 과거의 시간과 오래된 기억 속 장소들이 뜬금없이 나타나기도 한다. 지금은 사라져 버린 옛집에 관한 쓰라린 마음 그리고 지나간 시간에 대한 회한을 반영한 듯, 안타까운 사건들과 행복한 순간이 마치 현재의 일처럼 펼쳐진다. 당연하게도 내가 살았던 공간은 곧 내 생이 축적된 곳이기에, 일종의 회귀본능처럼 일상의 어느 시점에서 기억 속 그 공간과 재회하게 된다. 오래된 골목길 풍경을 담아내는 노여운의 작업은 그러한 재회의 과정이다. 광주 학동 백화마을의 재개발로부터 시작된 작가의 골목길 풍경은 햇수로 벌써 9년째에 접어들었다. 해남에서 태어난 노여운은 여덟 살 되던 해 광주 학동으로 이사하게 되었고, 유년시절을 줄곧 백화마을과 학동 팔거리에서 보냈다. 1936년에 조성된 학동 팔거리는 일제가 광주천 조성사업과 함께 천변 주변의 토막집 주민들을 집단 이주시키면서 형성된 곳이다. 갱생부락으로 불리며 주민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기 위한 용도로 만들어진 팔거리는 중앙에 공터를 중심으로 여덟 개의 좁은 길이 뻗어나가는 독특한 구조를 띠었지만, 해방 이후엔 오롯이 주민들의 삶터가 되었다. 백범 김구 선생이 전재민(戰災民)을 돕기 위해 만들어진 백화마을 또한 우리의 아픈 현대사가 깃든 곳이다. 지금은 모두 고층아파트 단지에 밀려 사라져버렸고, 역사공원과 기념관의 형식으로만 그 때를 어렴풋이 가늠할 수 있는 정도이다. 노여운이 사라진 주택가를 보며 느꼈을 상실감은 물리적 공간의 소멸에서 오는 충격 너머의 자신만이 인지하는 그 곳의 특수한 장소성에서 기인한 것일 테다. 과거의 시간을 송두리째 들어낸 듯, 내가 살아온 날들이 일순간에 사라진 느낌은 실향민의 상실감과 유사하지 않을까? 작가의 이 상실감은 오래된 동네의 기록으로 이어졌고, 현재까지 광주의 중흥동, 우산동, 계림동, 학동, 운림동 등 주로 구도심의 골목길을 담아내는 데 주력하고 있다. 노여운의 골목길 풍경에는 사람살이의 애틋한 정이 묻어있다. 어두운 색조의 초기 작업에서는 오래된 동네를 들어설 때 마주하는 쓸쓸함과 적적함이 배어나온다. 여러 개의 캔버스에 이어 붙인 파노라마 형식의 조망에선 더 많은 이야기를 기록하려 하는 작가적 욕심이 엿보이고 구도심 뒤로 보이는 고층빌딩, 시멘트 벽면의 벗겨진 페인트칠, 무너져가는 담벼락과 슬레이트 지붕 등에서 재개발과 난개발로 인해 쇠락해가는 삶터의 현재를 유추할 수 있다. 기상 여건에 의해 드로잉과 사진 촬영을 병행하며 장소를 포착해내는 작가는 시간대별 현장 방문을 통해 지속적인 관찰을 도모한다. 이후 꾸준한 관찰에서 체감한 구도심의 기운, 예를 들어 장소가 내포하는 추억, 그리움, 안타까움 등의 정서를 골목길에 투영하며 보다 구체적 서사를 만들어 낸다. 건조하고 비판적이었던 초기 성향을 다소 주정적 태도로 변화시키며 다양한 감성을 화폭에 축적시켜 왔다. 더불어, 익숙한 남도의 인상주의 화풍을 기반으로 색채는 따뜻한 파스텔톤으로 변화를 주었고 붓 터치 또한 더욱 과감해졌다. 단순히 현상의 기록이 아닌 그 현상이 담보하는 내적 심상에 주안점을 두어 장소와의 심리적 거리를 좁혀왔다고 볼 수 있다. 노여운 <쓸쓸함>, 2010, 캔버스에 유화, 90×33cm 노여운 <남겨지다2>, 2013, 캔버스에 유화, 116.7x47cm 몇 년 간의 노여운의 근작에서는 지나간 시간들에 대한 애수와 삶의 흔적이 고스란히 배어난다. 코 묻은 돈으로도 풍족했을 구멍가게 앞에는 여전히 너른 평상이 자리하고, 각양각색의 플라스틱 의자는 동네 술꾼들을 기다린다. 차가운 시멘트벽 앞으로 옹기종기 들어선 고무대야와 스티로폼 박스는 화분으로 분해 파릇함을 뽐내고, 어느 노인의 장바구니로 쓰였을 유모차는 대문 앞에 귀히 모셔져 있다. 다 큰 자식의 공부방에서 그 용도를 다한 회전의자, 지나가는 이들의 피로를 달래주는 커피 자판기까지 그림 안에는 소소하지만 가치 있는 우리네 일상이 빼곡히 들어 차있다. 이 또한 한 순간에 사라질지 모르는 풍경들이지만 관람자는 사람 하나 없는 그 풍경 안에서 사람냄새를 맡고 지나간 시간들과 재회한다. 동사형이 대부분인 작품의 명제에서도 현재를 기록하고 지켜내고 싶은 작가의 마음이 드러나는 것처럼, 노여운은 작품을 접하는 이들에게 함께 이 시간 이 장소들을 기억하기를, 나아가 소중했던 그 때를 상기하며 평안해지기를 권유한다. 노여운 <흘러가다3>(왼쪽), 2014, 캔버스에 유화, <머무르다>(오른쪽), 2018, 캔버스에 유화, 33x33cm 노여운 <시든 꽃>, 2015, 캔버스에 유화, 22x27.3cm 모든 게 쉽게 버려지고 소모되는 사회, 심지어는 사람도 수단으로 전락하는 지금의 모습에서 많은 이들은 아날로그의 감성을 뒤적거리고 인간성을 그리워한다. 노여운이 간간이 그려온 <시든 꽃> 시리즈의 ‘죽은’ 식물은 결과 중심의 사회에서 쉬이 소모되는 현대인의 모습을 닮았다. 일정한 형식 없이 써내려가는 수필처럼 스러져가는 일상의 면면을 담담히 기록해나가는 노여운의 작업은, 반성의 과정 없이 소모되고 사라짐을 반복하는 사회에 가하는 일련의 기억 행위이다. “우리가 말하는 고향이나 추억의 장소는 지리적인 요소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 공간에 쌓여진 기억들과 남겨진 흔적이다. 자신이 가장 오래 사용한 물건에는 사연과 흔적들이 깃들어 있듯이 공간도 그러하다. 지금도 골목길을 다니며 수많은 감정을 느끼며 흔적을 발견하고 많은 생각을 한다.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골목길 작업은 이어갈 것이고 그 안에서 따뜻함과 편안함을 느꼈으면 좋겠다.” 작가의 이러한 작업에 대한 술회에서 새삼 고마운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작업의 출발점이 되었던 쟁점을 돌아보며 좀 더 날 선 시각을 고민해봄도 좋지 않을까 싶다. 에세이가 상징적인 시로 응축될 수도 있고, 평면에서의 풍경만이 아닌 다루지 않은 형식으로도 실험을 도모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무심히 돌고 도는 계절에도 저마다 바람 냄새가 있고, 대기의 기운이 다르다. 가을은 어느 이웃집의 장작 타는 냄새로 기억되기도 하고, 시커먼 아궁이에서 화드득 타오르던 들깨대와 콩깍지로 겨울을 소환하기도 한다. 하물며 내가 살았던 그 집, 그 동네는 어떠하겠는가. 사후 약방문식의 형식적 기억 행위가 아닌 개발의 소용돌이에서 잊혀져가는 삶의 가치를 다시금 생각해볼 수 있기를 바란다. 노여운의 작업에서 그 가치를 발견해낼 수 있다면 더욱 좋겠다. -고영재 (롯데갤러리 광주점 큐레이터) * ≪전라도닷컴≫ 2019. 1월호 [고영재의 작가탐험] 연재글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이전글 다음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