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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용안 작품전 '본질 속의 본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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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광주미연 작성일17-11-16 14:12 조회2,94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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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 작가
    , 김용안 전

     

    2017. 11. 9 - 11. 15

    갤러리 봄 (광주 예술의거리)

     

    이번 김용안 작가의 작품들은 눈으로만 봤을 때 몇 가지 점에서 이전의 작품들과 다른 것을 알 수 있다. 첫 번째로 구별되는 것은 이전의 작품들에서 안개들은 화면 곳곳에 퍼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묵직한 존재감을 과시하려는 듯이, 마치 안개의 강물처럼, 거대한 흐름 속에서 나타나고 있었다면, 현재의 작품에서의 안개는 그야말로 화면 전체를 장악함으로써 자신의 권역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분명하게 드러나는 것을 허용치 않는 것처럼 보인다. 이전의 작품들을 보면 안개에 가려져 있는 부분을 제외한다면, 비교적 나무의 형태나 숲의 모습들이 자신들의 자태를 고스란히 내보이고 있다. 이에 반하여 이번 작품들에서는 자욱하게 깔린 안개들로 인하여 숲은 말할 것도 없고 그 안에 포함되어 있는 나무들의 형태는, 비교적 뚜렷하게 보이는 것들에서조차, 본래의 모습을 온전하게 드러내고 못한다. 즉 이전의 나무와 숲이 서로 힘을 합하여 안개들 속에서나마 자신들의 모습을 드러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면, 현재에 이르러 이것들은 안개에 의해 완전하게 잠식당한 상태라고 말할 수 있다.

    두 번째로 다른 점은 이번의 작품들에서 녹색이 거의 사라져 버렸다는 것이다. 이전의 작품들은 푸른 색 계열의 단색조로 채워진 작품들에서도 곳곳에 녹색의 나무들이 보였으며, 이것들 중 몇몇 작품들은 온전히 녹색 계열로만 그려진 것들도 있었다. 이제는 푸른 색 계열의 작품에서도 녹색의 나무는 겨우 한 두 개만 찾아 볼 수 있을 뿐이며, 더 나아가 모든 색들이 탈색되어버려서-마치 먹의 농담으로만 그려낸 수묵화처럼- 오로지 회색계열의 나무들로 이루어진 작품들이 등장한다. 물론 이전에도 보라색과 같은 단색으로만 묘사된 작품들도 있었다. 하지만 필자가 보기에 검은 색과 흰 색의 강약으로만 묘사하는 회색조의 작품은 이번에 처음 선보이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너무나도 자욱한 안개로 인하여 나무 가지에 앉아 있을 거라고 추정되는 작은 새들 역시 거의 푸른색의 한 가지 계열로만 묘사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전의 새들 역시 안개로 인하여 형태나 색을 잠식당하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각의 새들은 자신들이 본래 지니고 있어야 할 색채를 유지하고 있어서 서로의 존재를 구별하는 것이 가능했다. 하지만 이 새들은 더 이상 그런 모습으로 묘사되지 않는다. 이것들은 분명히 다른 모양으로 생겼지만 가지고 있어야할 고유색을 점점 잃어버리고 있다. 몇 마리의 새들만이 안개 속에서 자신들의 색을 드러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그 역시 어느새 안개 속에 파묻혀 버릴 것처럼 위태롭기만 하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변화는 무엇을 의미하고 있으며, 우리는 이것을 어떻게 해석해야만 할까? 필자는 저번에 푸코(Michel Foucault, 1926-1984)권력(power)’ 개념을 끌어 들여 김용안의 작업에 대해 말한바 있다. 어떤 한 사람의 지배 하에서 발휘되는 그러한 권력이 아니라 이 사회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일정한 모양도 없으면서도 우리의 도처에 존재하는 보이지 않는 힘으로서 작용하는 권력을 안개에 빗대어서 말이다. 이것은 그 정확한 실체를 파악하기 어렵기 때문에 안개와 같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품 속에 등장하는 나무의 형태를 규정짓고, 숲의 모양을 형성하면서 전체 화면을 만들어 내는 안개처럼 그것은 사회와 그 구성원들을 일정한 형태로 만들어낸다. 그리고 이것이 작가가 이전의 작업에서 말하고자 하는 지점이었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서, 그는 자신이 속해있는 세계에 대한 면밀한 관찰을 바탕으로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 강제되어 있는 우리의 모습을 나무와 숲, 그리고 가지에 앉아 있는 새들의 형상에 빗대어 보여주고자 했던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 안에서 나름대로 자신의 색을 잃지 않고자 하는 자신을 포함하는 개인들의 끈질긴 생명력을, 그 힘에 대항하여 각자의 이상을 향해 나아가고자 하는 인간들의 모습을 나타내고자 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따라서 그는 안개 속에서도 녹색의 숲과 나무들을 그렸으며, 가지 위의 새들도 각각의 고유색을 지닌 채 묘사된 것이리라.

    하지만 이번의 작품들에서는 앞에서도 언급했던 것처럼, 모든 존재들이 안개에 의해 잠식당한 채로 그려져 있다. 생명력의 상징이자 자연을 대변하는 녹색의 나무들은 파란색의 단색 계열 속에서 자취를 감추고, 나아가 무채색의 회색 계열로 동화되어 버렸다. 화려한 색상을 뽐내야할 작은 새들은 보이지 않는 가지 위에 앉아 한 가지 색으로만 머무를 것을 강요당한다.

    필자가 보기에 김용안의 작업이 이처럼 바뀌게 된 가장 큰 이유는 현대사회의 보이지 않은 힘에 대한 지속적인 저항의 결과에 있다고 본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최근에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사건들을 보면서 우리사회에 대한 일종의 경각심을 상기시키기 위함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작가들 역시 마찬가지이겠지만, 그의 작업들은 그 성격만큼이나 신중하고 철저하다. 그는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끊임없이 고민하고 이것을 어떻게 그려낼지에 대해서, 마음에 들 때 까지 몇 번이고 연습한다. 이와 같은 고민과 실천과정에서 나타난 것이 바로 이번의 작품들인 것이다. 즉 그가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단지 우리 사회의 보이지 않는 힘이 각 분야에서 작용한다는 점만을 감지하여 그 잠재적인 위협에 대해 예술적인 언어로 나타내고자 했다면, 양파 껍질 벗기듯 해도 해도 끝이 없는 최근의 사태를 보면서 이와 같은 보이지 않는 힘들이 (단순히 병들게 하는 것을 넘어) 이 사회를 무너트릴 수도 있음을 작품에서 역설적으로 말한다는 것이다.

    김용안 작가가 집요하게 그려내고자 했던 보이지 않는 힘. ‘말할 수 없는 것에 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는 누군가의 말처럼, 이것은 논리적인 언어로는 파악되지도 않고 형태도 알 수 없는 뿌연 안개와 같은 것이다. 이제 그것은 그의 작품을 통하여 우리에게 감추어진 실체를 드러내려고 한다. 오직 예술적인 언어를 통해서만 조금이나마 윤곽이 드러나는 힘이다.

    - 김병헌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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