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사와 담론 1 ; 강운 회화전 페이지 정보 작성자 조인호 작성일18-04-30 08:43 조회3,202회 댓글0건 관련링크 이전글 다음글 목록 본문 서사와 담론 1 ; 강운 회화전 사실적 구상과 표현적 추상의 변주곡 산수미술관 기획 / 2018. 04. 27 - 05. 19 산수미술관에서 중견화가 강운의 개인전이 진행 중이다. 미술관의 ‘서사와 담론 작가’ 시리즈 첫 번째로 기획된 이 전시는 단지 작품 보여주기만이 아닌 초대된 작가와 작품에 관한 담론의 장을 함께 마련함으로써 작가와 관객 서로간의 시지각을 넓히려는 의도이다. ‘사실적 구상과 표현적 추상의 변주곡’이라 이름붙인 이 전시는 강운의 90년대 초부터 현재에 이르는 시기별 작업의 궤적을 요약하는 몇 점의 작품들로 선별해 놓았다. 화폭을 하늘공간 삼아 무궁무진 천변만화하는 구름을 붓작업으로 묘사한 ‘순수형태’와, 작업공간의 건습·온도나 화지상태와 작가 심신상태 등에 따라 일획의 창작행위가 무작위 오묘한 현상들을 이루어내는 ‘물위를 긋다’, 수없이 들고나기를 반복하며 파도가 만들어 놓은 갯벌 물결모양과 미물들의 생명활동 흔적을 현장 그대로 떠낸 한지 캐스팅 작업, 열린 시공의 층위에 따른 대기 흐름을 천연염색 화폭에 반투명 한지조각들을 오려 붙여가며 무념 사유의 결을 표현해낸 ‘공기와 꿈’ 등의 작품들이다. 전시회가 시작되는 4월 27일 오후 ‘크리틱 토크’로 ‘서사와 담론’의 문을 열었다. 먼저 주인공인 강운의 1991년부터 2018년까지 작업 흐름을 소개하는 작가발표가 있었다. 대학 졸업 후 해남에 머물 당시 사방에 펼쳐진 대자연의 풍광들에 매료되어 구상소재의 ‘하늘과 땅’ 풍경화를 주로 그리다가, 문득 그런 대상 중심의 사실적 묘사에 회의를 느껴 거기에 작가의식과 마음을 담아내는 ‘서사적 풍경’으로 옮겨가고, 이를 다시 드라마틱한 자연의 변화와 기운을 내면의 심중이나 심연의 세계와 대입시켜낸 ‘순수형태-생성’ 연작으로 이어가게 되었다. 2000년 제3회 광주비엔날레 (주제 ‘人+間’) 출품은 작가활동에 큰 변화의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대형 화폭에 각기 다른 구름형상을 묘사한 ‘순수형태’ 연작들을 내걸었는데, 풍경의 설명적 요소를 일체 생략하고 하늘공간과 구름형상만으로 채워낸 추상화면이 건조한 미니멀리즘과는 다른 서정과 서사가 담긴 화폭으로 뜻밖의 좋은 반응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전시 직후 이어진 일본 순회전에 참여하게 되었는데, 당시 커미셔너였던 타니 아라타는 온갖 형식의 현대미술의 난무 속에서 전통 동양화의 유무형 여백 소재를 서양화 작가가 현대적으로 해석해낸 구상회화라며 격려와 기대를 보여줬다. 한때는 우연찮게 시골 옛 제각에서 뭉툭한 주춧돌 위에 무심한 듯 올려진 그랭이 공법의 기둥에 매료되어 묵직한 자연목 그대로를 옮겨다 개념적 공간설치 작업을 하기도 했다. 또한, 2006년 무렵 시멘트로 발라진 담벼락의 넝쿨들을 전체 모습에서 한 가닥씩 제거해 가면서 그 순간순간을 폴라로이드로 담아 ‘空 위에 空’ 연작을 만들기도 했다. 강운의 회화세계에서 지금도 여전한 대표적 소재인 구름을 필치로 묘사하는 대신 한지조각들로 겹쳐 붙여 표현해내는 ‘공기와 꿈’ 연작은 2011년부터다. 표구점에서 수없이 반복되는 배접작업의 흔적에서 영감을 얻었다. 허공의 수분을 머금은 구름더미를 층위에 따라 다른 모양으로 잘라낸 한지조각들을 겹쳐 붙여 명도·채도의 차이가 없으면서도 자연의 웅혼하고도 광활한 대기감을 표현해 내었다. 그리는 방식이든 다른 어떤 표현형식이든 그에게는 수행과 사유의 작업이면서 “회화는 매체 그 이상의 의미다”는 생각이 밑바탕을 이루고 있다. 한편으로 여러 장르 작가나 전문가들과 함께 팀워크를 이루어 다매체 융복합 형태의 미디어아트를 시도하기도 했다. 개별작업과는 별도로 2012년부터 회화와 미디어영상, 음악, 심장박동소리, 현대무용 등 여러 활동가들과 협업으로 ‘인문학적인 무등산’을 탐구하면서 거기에 한글 자음·모음을 영상작업으로 조합하여 ‘숲·숨·쉼 그리고 집’ 작업을 만들어냈다. 그 해 제9회 광주비엔날레에 출품된 이 작품은 무등산 아래 식영정에서 모티브를 얻은 작품으로, 자기 그림자와 발자국조차도 털어버리려 했던 옛 고사에 담긴 인간 자유의지를 무엇에고 얽매임 없는 쉼과 숨으로 표현하고자 한 것이다. 여러 형태로 묘사되는 구름의 상징적인 대자연 작업과 더불어 강운 작업의 큰 축을 이루고 있는 것이 2009년경부터 계속 해 온 ‘물위를 긋다’이다. 매일 아침 고요 속에서 수행처럼 모포 위 종이에 한 획 긋기를 거듭하던 중 의도적 창작행위와 불가역적인 작용에 의한 융화현상들을 발견한 것이다. 같은 일획이더라도 유리판과 종이 사이의 공기와 습도와 날씨, 심신 상태에 따라 무의지적인 무한 변화가 만들어내는 현상을 각각 그대로 보존하고 이를 개체 또는 군집으로 보여주는 연작이다. 크게 보면 강운이 탐구해 가는 예술세계는 크게는 순수자연 원형과의 동화이면서 재현과 추상, 작업과 놀이, 노동집약과 즉흥, 물리적 매재와 심상 등 여러 다른 요소들이 융화되어 작품의 맥을 이루어 왔다. 토크에는 광주비엔날레 김선정 대표이사와 조인호 전문위원, 천윤희·정혜연 팀장, 아시아문화원 박남희 교육사업본부장, 김희랑 광주시립미술관 하정웅미술관 분관장, 박상화·윤세영·정광희·서영기 등 동료작가와 후배, KBS 지종익 기자 등 20여명이 아담한 공간에 오붓하게 둘러앉아 두 시간여 강운의 작업에 관한 얘기들을 나누었다. 패널로 초대된 김희랑 분관장은 강운의 회화는 ‘발견·재현·제시’라는 관점에서, 박남희 본부장은 ‘수행적 회화’라는데 의미를 두었다. 후배 윤세영 작가가 화랑에서 바라는 작품과는 다른 작업을 탐구하느라 7년여 간 경제적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자기작업을 지탱할 수 있었던 실재 동력이 무엇이었냐는 질문에 “혼돈 속에서도 나를 믿는 것”이라 답했다. 강운은 앞으로의 작업에 대해 “사물과 대상을 떠나고 싶다. 그러나 다시 그리고 싶다.”고 말한다. 나이 들어감에 따른 신체적 작업조건과 시기별 생각과 사유세계의 변화를 자연스럽게 따르면서도 외형적 형상에 매이지 않고 지속적으로 매체와 형식을 확장해 나가고, 예술의 창작행위와 순수자연의 원형 간의 융화를 추구해 가겠다는 의지로 보여진다. 크리틱 토크는 시작 때 끝났지만 그의 시기별 사유들을 요약해서 보여주는 전시된 작품을 매개로 삼아 각자의 서사와 담론을 음미해볼만 한다. 강운의 이 전시는 5월 19일까지이다. - 조인호 (운영자, 광주비엔날레 전문위원)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이전글 다음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