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묵의 재창조 모색하는 '남도수묵화협회' 창립전 페이지 정보 작성자 조인호 작성일18-12-28 17:52 조회2,663회 댓글0건 관련링크 이전글 다음글 목록 본문 이선복 <무등산 만월>, 2018, 종이에 먹, 240x120cm 남도수묵화협회 창립전 2018.12.27-19.01.02 / 유스퀘어문화관 금호갤러리 남도수묵화 전통과 이 시대의 회화 원래 수묵화는 수많은 묵객·화사들, 지필묵을 가까이하는 유학자들과 더불어 시대사조와 맥을 같이하며 이른바 지식인 사회의 문화활동으로 여겨져 왔다. ‘색은 사람의 눈을 멀게 한다’고 경계할 만큼 감각적인 것을 멀리하던 선비문화와, 그들 취향과 선호에 맞춰 그려지는 그림들이 수묵화의 대세가 되었던 것이다. 중국 남종화의 종조라 일컫는 당나라 왕유(王維)는 그의 [산수결(山水訣)]에서 수묵을 화도의 으뜸(畫道之中水墨最上)이라 했다. 삼라만상 오만 색의 총체인 검정(玄墨)은 그만큼 오묘한 색들을 품고 있고, 당나라 말기인 10세기 후량의 형호(荊浩)도 [필법기(筆法記)]에서 그림의 가장 중요한 여섯 가지 요소(六要)를 기(氣)·운(韻)·사(思)·경(景)· 필(筆)·묵(墨)이라 하여 먹을 매우 존귀하게 여겼다. 실제로 수많은 화가나 문인들이 그려지는 산수자연의 형상만이 아닌 종이와 물과 모필 같은 화구들을 다루는 용묵과 운필의 과정에서 적묵과 백묘와 몰골, 선염, 발묵 등 먹의 여러 효과들을 자연본성의 체화처럼 여기기도 하였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중국으로부터 흘러든 북송대 이곽파(李郭派)와 남송 마하파(馬夏派), 원말 4대가 등의 산수화풍을 고전적 모본으로 삼아 18세기 진경산수화시기를 제외한 거의 모든 시대 수묵화들이 중국 옛 그림들을 전형으로 따르고 있었다. 특히 조선말 추사를 필두로 정신적 이상미를 추구하는 고전주의가 시대문화로 퍼지면서 세속의 티끌을 털어낸 간결하고 고아한 먹빛의 이상미를 추숭하였다. 남도화단에서는 조선 초 학포 양팽손의 것이라 전하는 그림들이 그의 진작이라면 정치적 소용돌이 속 낙향처사가 심중에 담고 있던 피안의 이상주의와 시대풍자를 동시에 읽을 수 있으면서, 조선 중기 공재 윤두서의 앞선 현실인식과 시대미감과 탁월한 실재묘사는 한국회화사의 빛나는 화적들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 같은 흐름과 전혀 달라진 19세기 조선 말기의 고전적 이상미를 추구하는 문화풍조에 따라 소치를 거목으로 한 남종수묵화가 시대를 풍미하게 되고, 그로부터 대를 이어 몇 갈래 화맥들이 형성되면서 호남남종화 전통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그러나 시대환경도, 자연과 도회문화 사이 생활조건도, 그에 따른 동시대인들의 미감도 크게 달라진 지금, 그런 지난날의 수묵화 역사에서 무엇을 전통의 주된 가치로 여길 것인지, 세상과 문화의 현격한 변화 속에서 이 시대의 수묵화는 무엇이어야 하며, 무엇을 미래의 자양분으로 축적시켜 갈 것인지 등등은 작가 개개인은 물론 이 모임에 주어진 일차적인 과제이다. 가법인 호남남종화의 전통을 따르면서도 시대문화에 부합한 창의적 작가정신을 중시했던 허건은 그의 저술 [남종회화사]에서 “남화는 ‘인품·풍운·의기’ 등의 심적 수양의 표현을 품격으로 정하여 시기(市氣)나 속기(俗氣) 등을 배격하고, 이조 유생들의 모화사상을 그대로 답습하였는데… 봉건적 잔재를 일소하고 근로대중의 진실한 회화를 해야 할 것”이라며 시대에 부합한 회화정신을 강조하였다. 그동안 남도화단에는 수묵화 전통의 현대적 탐구 계발을 표방한 여러 단체들이 있었다. 이들 단체들은 의재나 남농, 또는 그 화맥을 잇는 화숙의 동문들이거나 출신대학별 학파 성격도 있었고, 동세대 수묵채색 작업을 하는 작가들의 집합체도 있었다. 또한 80년대에는 민족 자주문화를 지향하는 현실주의 수묵화운동이 일기도 했고, 한때 ‘채묵의 변용’과 그 ‘신형상성 탐구’가 유행을 타기도 했었다. 따라서 수많은 단체들이 명멸해 간 이 시점에 새롭게 등장하는 ‘남도수묵화협회’의 결성 의미와 활동방향이 주목된다. 모임의 핵심인 ‘수묵화’라는 것을 회화적 형식이나 화구로서 구분에 우선한 것인지, 자연교감과 풍류와 문기와 먹향의 정신성을 중시한 것인지, 시대현실과 당대 미감과의 관계성에서 수묵으로 그려내는 그림의 역할에 비중을 둔 것인지, 예술이라는 창조적 행위와 회화의 신세계 개척에서 수묵의 또 다른 가능성을 찾고자 하는 것인지 등등을 생각하게 한다. 이전에 있었던 모임들과는 활동환경부터가 크게 달라진 시점에서, 단지 수묵을 다루는 화가들의 모임이라는 소박한 동기는 아닐 것이다. 수묵으로 이 시대에 무엇을 어떻게 표현할 것이며, 그런 공동인식을 가진 화가들이 함께 더불어 무엇을 해 나갈 것인지에 대한 명확한 설정이 협회활동의 추동력과 결속력을 높여줄 것이라고 본다. 물론 어떤 면에서는 그런 전제나 틀을 두지 않고 각자의 자유로운 회화세계들을 존중하며 함께 시대문화를 일궈간다는 유연한 동기일 수도 있다. 그러나 개별활동에서는 자유로운 예술세계가 당연하지만 단체일 경우는 다르다. 결국 협회 결성의 전제가 된 ‘수묵’이 공동의 회화적 성취를 이뤄내기 위한 목적인가 방편인가, 동시대 같은 유형의 작업들을 한데 모아 연결하기 위한 명분인가가 출발선에 선 이들에게 보내는 기대와 궁금증이다. 단체활동에서는 함께하는 회원들의 면면이 모임의 성격을 짐작케 한다. 이번에 새롭게 창립하는 남도수묵화협회 회원들은 지역화단에서 꾸준히 먹을 다루어 온 원로부터 청년세대 화가들을 아우르고 있다. 그러면서도 평소 오로지 수묵작업만이 아닌, 먹을 다양한 방식으로 풀면서 이를 근간으로 채색과 안료를 폭넓게 개발 활용해서 독자적인 화폭들을 펼쳐내는 작가들도 많다. 그러면서도 이번 창립전의 작품들은 최대한 먹작업에 집중하고 있는데, 소재나 화면구성에서 자연소재의 사실화법들이 대부분이면서 지역의 전통산수 화맥을 잇고 있는 작가도 있고, 문인화 정신을 살려 사의성과 감성적인 면을 곁들인 현대적 미감의 화폭을 일궈가는 작가, 또는 재료와 형상과 의미를 넘어 화폭에서 필묵의 기운과 회화의 무한세계를 탐닉하는 작가도 있다. 이번 협회 결성에 즈음하여 김대원 회장은 “오랜 전통을 이어온 수묵화가 작가들은 물론 일반 애호가들에게조차 외면을 당하는 현실이 된 것은 수묵화를 그리는 작가들의 안이한 시대정신과 투철하지 못한 작가관, 무분별한 작가양성이 주요 원인’이었다고 진단하고 있다. 따라서 이를 극복하고 ‘수묵화의 진정한 발전을 꾀하고자 작가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구성’한 협회이니만큼 향후 공동의 활동들이 기대를 모은다. 지금의 우리시대 문화에서 ‘남도’라는 지역을 전제로 한 ‘수묵’의 의미와 가치, 그것이 이루어낼 수 있는 문화 예술적인 성취들, 이를 수용하고 향유하는 지역민 또는 세계인들의 관심과 공감대, 수묵그림으로 이뤄낼 수 있는 유무형의 효과들은 이제 협회의 이름으로 뭉쳐 새롭게 출발하는 회원들의 지속적이고 공통된 화업의 과제이다. 이미 그동안 수많은 작업의 경험과 회화적 저력들을 다져온 무게 있는 작가들이 대부분인 만큼, 협회의 활동과 전개과정에 기대를 보낸다. - 조인호 (미술사, 광주비엔날레 전문위원) 남도수묵화협회 김대원 회장의 <천지인>, 2018, 종이에 먹과 채색, 200x70cm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이전글 다음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