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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이지 않지만 느낄 수 있는... 표인부의 작품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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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고영재 작성일19-03-26 10:56 조회2,97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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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인부.바람의 기억-어머니2.2017.캔버스에 종이.190x150cm.시립-북경질주.180614-1.jpg
    표인부 <바람의 기억-어머니2>(부분). 2017. 캔버스에 종이. 190x150cm

     

    보이지 않지만 느낄 수 있는... 표인부의 작품세계

     

    수년 전 어느 설치미술가의 초대전을 진행했었다. 자유로운 생각과 감각적인 아이디어로 무장한, 표현 그대로 통통 튀는 매력의 작가를 보며 작업의 태도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필자는 그에게 창작의 동기부여, 정확하게는 문제제기에 대한 지속적인 고민이 필요하며 맥락 없는 형식보다 내용에 더 집중해보기를 권유했다. 어찌어찌 대화를 계속하다 보니 작가는 끝내 눈물을 쏟고 말았다. 그 눈물은 섣부른 기획자의 독설에 의한 결과이기도 했지만, 예술가라면 누구나 품고 있을 법한 깊이에 대한 강박에서 비롯된 모종의 푸닥거리이기도 했다.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단편집 <깊이에의 강요>에선 재능 있는 한 여성화가가 작품에 깊이가 없다는 평론가의 말 한 마디에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굳이 허구적 서사를 빗대지 않더라도, 예술가에게 있어 창작은 단연 취미의 범주가 아닌 업()이다. 그것이 업이기에 창작자는 완벽하려고 무던히도 애를 쓴다. 간접적이나마 표인부 작가의 작품세계를 훑어보면서 체감할 수 있었던 것은, 작업의 당위성을 찾기 위한 작가적 욕심과 일련의 진지함이었다.

    외부세계의 본질 찾기

    표인부는 학부 때 서양화를 전공하고 90년대 중반 중국에서 수인(水印)목판화를 수학했다. 그의 초기 작업에서 두드러지는 대상은 인물이다. 먹을 비롯한 수성 안료를 이용해 판을 찍어낸 수인목판화에 먹과 목탄, 콩테 등으로 얼굴 형상을 그려낸 작품들에선 회화적인 거친 선맛과 무채색 위주의 색감이 돋보인다. 청년작가가 작업의 출발점에서 천착할 만한 동시대인에 대한 관심이 고스란히 드러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타인이면서 나의 얼굴이기도 한 피사체에서 실존에 대한 고민이 역력히 읽혀진다. 애초, 그리고 새기고 찍어내는 행위가 결합된 기법을 체득한 작가에게 있어 형식이란 자유로운 변용이었을지도 모른다. 이후 펼쳐지는 작업에선 합판, 캔버스, 나무, 아크릴 물감, , 종이 등을 활용하며 표현 방법을 확장해나간다.

    더불어, 인물은 구체성을 제거하면서 점차 하나의 함축된 형태로 부각되는데, 작가는 설명과 묘사를 지양하며 보는 이와의 거리두기를 시도한다. 이러한 화법(話法)은 외피적 요소 이면의 내부(작가의 표현에 의하면 본질)를 보기 위한 움직임으로 절충된다. 표인부는 기초 조형요소 중 하나인 선()을 중심으로 대상이 지니는 근본적인 형태에 집중한다. 표현의 주제는 인물이라는 형상에서 자연이라는 선으로 변화했고, 작가는 오롯이 본연의 감각만으로 사물의 본질적인 이미지를 이해하려 했다. 그 과정에서 화면은 3차원의 환영이 아닌 대상을 확대한 듯한 추상적 평면으로 치환되었다. 제작 행위 또한 종이 위에 색을 칠하고 먹을 입히고, 그리고 지우고, 이내 다시 색을 칠하고 그리고 지우고를 반복하며 과정상에서 내용적인 일치를 담보하고자 했는데, 외부세계의 가시적인 색과 형태를 버려가면서 종국에는 흑백의 화폭을 구축한다. 2000년 중반부터 근 10년 가까이 끌고 간 풍경 연작의 독창성은 자연이라는 소재보다는 작가만의 독특한 표현력에서 파생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장지 위에 흰색 아크릴 물감을 두껍게 바르고 들판의 풀이나 나무, , 바위 따위의 형상을 나뭇가지와 같은 뾰족한 도구로 긁어낸 후 다시 먹을 입히고 재빠르게 닦아내는 고된 과정을 반복했다. 이렇듯 지난한 과정의 결과물에서 얼핏 여백의 미와 같은 전통적인 미감을 찾을 수도 있겠으나, 본 작업은 단순히 동양적인 정신성의 구현이나 옛 그림의 사의(寫意) 추구에서 기인한 것이라기보다는, 작가의 감각에 의해 받아들여진 실경이 내적으로 억눌린 심상으로 재가공된 다분히 표현주의적인 발현의 결과로 해석된다. 거칠고 날카롭게 새겨진 풍경이 감상 중심의 서정적인 풍경이 아닌, 먹먹하고 바스러진 내면으로 다가오는 이유도 이 지점에서 연유한 것일 터이다.

    기억의 소환

    채색되어 잘게 잘린 한지 조각들이 결을 이루며 꿈틀거린다. 언뜻 보면 바람결에 세차게 소용돌이치는 들판 같기도, 때로는 붉게 물든 해름참의 하늘같기도 하지만, 필자는 그 바람의 형상에서 유년시절의 기억을 끄집어냈다. 그 때의 향긋했던 나무 냄새, 하늘의 색, 그리고 귓가를 스쳐간 바람소리까지 자연의 일부분으로 체화된 내 기억의 단편들이 하나의 작품을 통해 다시 떠오르게 된 것이다. 표인부의 작품 <바람의 기억>을 접하며 겪게 된 이와 같은 경험은 그의 작업 세계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표인부는 2012년 뉴욕에서의 개인전을 마지막으로 작업의 전환점을 맞이한다. 형태와 색이 버려진 기존의 풍경 시리즈는 새로운 형식의 변화를 맞게 되는데, 작가는 종이 위에 조각낸 한지를 부착하는 기법을 시도하며 실험을 단행한다. 처음에는 바다 위의 섬과 같은 형상성을 띠다가 점점 종이의 파편만이 반복되는 형태로 바뀌고, 화면에 동적인 결을 주어 특유의 조형성을 구축하기에 이른다. 기성의 색한지가 지니는 표현의 한계로 인해, 작가는 직접 한지에 아크릴 물감으로 색을 입혀 더욱 풍성한 화폭을 만들어낸다. 7년 째 이어지고 있는 <바람의 기억> 연작에서의 방법론이라 함은 일종의 상징화이다. “나에게 상징화된 기억들은 각기 다른 하나의 색채로 인식되고 존재하며, 부지불식간에 일어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기억들을 바람 형태의 형식을 빌어서 표현한다.” 계절에도 각기 그 체취가 있는 것처럼 기억으로 명명되는 삶의 흔적을 다시금 유추해내고, 더불어서 그러한 흔적에서 내 삶을 투영할 수 있는 가능성을 표인부는 작업을 통해 제시하고자 한다. 머무르지 않은 바람처럼 왜곡되고 흐려지는 개개의 기억들은 각기 다른 특정한 색으로, 움직이는 대기의 결로 표현되며 보는 이로 하여금 폭넓은 사유를 이끌어낸다. 관람자와의 거리를 좁히기 위한 인위적인 설정은 아니었을 테지만, 결과적으로 인식의 간극은 좁혀진 듯하다. 표인부의 작업은 그리거나 긁어낸 거친 선을 지나 한지라는 부드러운 물성의 면으로까지 흘러왔다. 의도적으로 꾀한 형식적 변화에도 불구하고 그의 작품이 수반하는 내용적인 힘은 줄곧 유지되었다. 여전히 내적으로 응축된 감정들이 전달되며, 작품 앞에 오랜 시간 머무르게 되지만 표인부만의 정체성을 확보하기엔 그 변화의 호흡이 다소 가쁜 느낌이 든다. “작가가 경계해야 되는 건 기법적으로 숙달되는 것입니다. 기존의 형식에 얽매이다 보면 정작 본인이 무슨 얘기를 하는 지 잊어버려요.” 익산의 조용한 화실에서 또 다시 변화를 준비하던 작가의 모습을 떠올리며 걱정 아닌 걱정을 하기도 하다가, 본인 작업에 진중함을 담아온 작가의 여정을 돌이켜보면서 외려 긍정적인 가치를 찾게 된다.

    - 고영재 (광주롯데갤러리 큐레이터, [전라도닷컴] 20194월호)

     

    4. 2007년 개인전 '삶이 스미는 풍경'전 출품작.jpg
    표인부 <소외된 풍경>, 2007

     

    7. 2014년 작품 '바람의 기억,.JPG
    표인부 <바람의 기억>, 2014

     

    9. 2016년 작품 '바람의 기억-돈'.jpg
    표인부 <바람의 기억-돈>, 2016

     

    12. 2018년 작품 '바람의 기억 6'.jpg
    표인부 <바람의 기억 6>,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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