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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실감의 치유; 서영실 개인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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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광주미연 작성일16-11-01 17:12 조회3,59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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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영실 <Trivial scenery-HeaNam>, 2015, 캔버스에 아크릴릭. 91x127.5cm



    상실감의 치유 ; 서영실 개인전

     

    롯데갤러리 창작지원전

    2016. 11. 4 - 11. 23

    광주 롯데갤러리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새김

    오래된 동네를 들어설 때 마주하는 쓸쓸한 풍경과 흔히 느끼게 되는 적적함은, 그 공간이 점점 소멸되어가고 있음을 마음으로 느끼기 때문일 테다. 공간은 단순히 장소로써의 구실 이전에 그 공간을 향유했던 이들의 생이 축적된 곳이기에, 터전의 쇠락은 이내 상실감을 동반한다. 특히, 재개발과 무질서한 난개발로 인해, 마치 전쟁의 상흔과 같이 갈무리하지 못한 시간의 흔적들은 문명의 단면으로서 씁쓸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서영실 작가는 그러한 삶의 흔적들을 기록하는 데 집중한다. 작가가 주로 표현하는 것은 세월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골목길 모습이다. 보급형 기와와 슬레이트, 시멘트 벽돌로 쌓아 올린 외벽, 좁은 골목길 그리고 좁은 창문 틈에 박혀 있는 듯한 방범창, 어지럽게 얽힌 채 하늘 조망을 가득 메우고 있는 전선, 동네와 세월을 함께 한 나무 전봇대 등, 하나같이 구도심 어귀에서 마주할 수 있는 녹슨 풍경들이다.

    작업의 중심 이야기는 시간의 흐름과 함께 사라져 가는 것들이다. 화폭에 홀연히 등장하는 야생동물도 그 이야기의 일환으로, 작가는 생존에 치열한 동물의 모습과 현대인의 삶을 동일선상에 놓았다. 끊임없는 발전을 위시한 현대문명과 그에 수반하는 자본논리는 동물이든 사람이든 각각의 터전을 변화시킨다. 근원적 생명력 혹은 인간사의 순리를 상징하는 원초적 풍경은 변화와 개발의 미명 아래 스러져 간다. 엄밀히 들춰보면 터전이 변화하는 게 아니라 터전을 빼앗기는 것이 된다. 흔히 말하는 공존 혹은 공생의 개념이 되려 헛헛한 외침으로 느껴지는 것도, 너무 많이 파괴되고 사라졌기 때문이 아닐까?


    서영실 <햇빛이 드는 풍경-이즈하라, 대마도>, 2016, carving of acrylic paint, 91x127.5cm


    한편, 서영실 작업의 매커니즘은 생성과 파괴를 반복하는 시간의 층위를 반영하듯, 겹겹의 물감층에서 비롯된다. 작가는 화폭 위에 아크릴 물감을 켜켜이 쌓아 올린 뒤 조각도로 파내고 깎아내는 기법을 취한다. 7-8가지의 색으로 구성된 물감층은 레이어별로 동일색상이 아닌 원색과 보색 등 서로 상치되는 색감으로 형성된다. 적당히 굳은 물감을 깎아내어 대상을 드러냄으로써 단순히 파는 행위 이상의 새김을 시도하는 작업과정은, 파괴와 재생산이라는 협의적 메시지, 그리고 생과 사의 순환이라는 광의적 내용을 더불어 함축한다.

    작가는 본인 작업을 두고 기록이라는 표현을 자주 쓴다. 작품의 형식과 내용 면에서 바라볼 때, 내용적인 부분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하기에, 대상을 단순한 재현이 아닌 화폭 안에 기록한다는 입장은 무리가 없다. 더불어 작업의 서사를 받쳐주는 형식적 일치감이 서영실 작업의 긍정적 가능성이기도 하다. 골목길의 소소한 풍경이 자아내는 쓸쓸한 서정과 원색의 경쾌함이 조화를 이루는 것도, 작업의 쟁점과 그것을 풀어내는 화법이 동일선상에서 움직이기에 가능한 것으로 여겨진다. 무엇보다 유년시절 흔히들 다뤘던 판화의 칼맛과 유사한 화면의 질감은, 보는 이로 하여금 옛 것의 감성을 불러일으켜 감흥을 유도하기도 한다.

    서영실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작업의 과정을 여실히 엿볼 수 있는 드로잉과 함께, 작품의 부산물인 물감의 파편들을 한 데 응축한 또 다른 입체작업들도 함께 선보인다. 작업의 시작과 끝, 그리고 현재를 자연스럽게 제시함으로써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작가의 논고를 더욱 강조한다.

    모든 살아 숨 쉬는 이들의 살아온 날들은 그것이 유형의 것이든, 무형의 산물이든 삶의 모습을 그대로 투영한다. 생의 한 자락을 장식했던 음악가의 선율 하나에도 지나간 날들을 오롯이 반추하는 게 우리 모습이다.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 속에서 사회의 동력도 삶의 기준도 많이 변화한 것 같지만, 정작 우리의 속사람은 큰 변화가 없기에 사라져가는 것들을 더욱 아쉬워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어찌 보면 서영실 작가가 그려내는 너머의 풍경이란 세상살이에서 쉬이 변하지 않는 우리네 삶의 풍경일 터이다.

    - 고영재 (광주 롯데갤러리 큐레이터)



    서영실 <달콤한 꿈>, 2016, carving of acrylic paint, 30x70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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