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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슴마다 꽃으로 피어 있으라' - 이준석 초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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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광주미연 작성일16-12-17 16:12 조회3,52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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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슴마다 꽃으로 피어있으라- 이준석 초대전

     

    2016.11.15 ~ 2017. 1.29
    광주시립미술관 본관 5, 6전시실

     

    미술이 사회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사회변혁을 위한 실천적 무기로 작동해야 한다는 민중미술은 광주민중항쟁과 함께 시작되고 진전되었다. 1980년 미술대학 4학년에 재학 중이었던 이준석은 오월광주를 직접 목격하고 깊은 충격에 빠졌다. 그리고 살아남은 자의 부채의식을 가지고 그는 1983년 군 전역 후 지금까지 30년이 넘도록 소위 민중미술이라 불리는 그림들을 그려오고 있다.
    이준석은 1984년부터 2002년까지 민중문화연구회 미술분과’, ‘광주목판화연구회’, ‘광주전남미술인공동체로 이어지는 미술운동 조직 활동을 통해 개인 작업보다는 시대가 요구하는 그림들을 개인 혹은 집단창작으로 표출하였다. 그는 그림을 통해 사회적 발언을 하고 사회변혁을 일궈낼 수 있다는 굳은 신념을 가지고 있다.”

    광주시립미술관의 이준석 초대전 가슴마다 꽃으로 피어있으라를 기획한 임종영 학예연구사의 말이다. 한 때 이준석 작가와 같은 참여미술 현장의 후배로서, 때로는 행사를 함께 준비하는 동료로서, 또한 그 이후 내내 당대 사실주의 미술에 시대의식을 같이해 온 시각에서 작가를 압축해서 소개하는 표현이다. 실제로 모처럼 넓은 전시공간에 시간의 흐름을 따라 그가 현실에 절규하며 기록으로 항거하고, 삭혀내고, 내면의 울림으로 키워내고, 역사 현실을 관통해 온 작가로서의 통찰을 담아내는 화폭들을 모아놓음으로써 작가의 전체적인 회화세계의 맥락과 변화들을 보다 또렷하게 보여주는 기회가 되고 있다.

    지난 30여 년 동안 광주 현실주의 참여미술 현장과 함께 해 온 이준석의 작업들은 연작 주제에 따라 크게 세 묶음으로 모아볼 수 있다. ‘오월광주에서 화엄광주, 그리고 동시대 희망의 꽃으로 이웃들의 모습을 피워내는 최근작까지 목판화와 회화 작업들이다. 거기에다 그 시절 활동들과 관련된 유인물, 일간지나 간행물 기사, 포스터 등 소략한 아카이브까지 곁들여져서 이번 전시는 이준석의 개인사만이 아닌 광주 현대미술의 굵은 획을 그었던 민중민족미술의 역사를 얼추 되돌아보는 자리가 되기도 한다.

    오월 목판화와 시대의 풍경

    전시 작품 가운데 벌써 시간이 꽤 멀어진 초기 목판화들이 먼저 눈길을 끈다. 1984년부터 선배인 조진호, 김경주, 한희원 등과 더불어 광주목판화연구회활동을 했던 흔적들이다. 이 가운데 초기 판화작업인 <묘지 가는 길 , >(1983, 고무판)을 비롯, 민중미술 목판화 연작인 <인산>(1984), <귀가>(1985), <어머니>(1986), <장군도>(1988), <오월춤>(1990), <오월전사 , >(1990) 등을 원판과 판화작품, 그 작품이 시화처럼 실린 일간지들을 함께 구성해 놓았다. 그의 작품들이 대체로 그렇듯이 거친 칼맛 보다는 함축된 이미지의 섬세한 도상들이 주를 이룬다.

    <묘지 가는 길>은 첫 현실비판 소재를 다룬 민중미술 작품이라는데, 두 점이 서로 대칭으로 짝을 이루도록 새겨진 고무판화이다. 망월묘역을 비추는 만월과 초승달 아래 첩첩으로 매장된 오월의 넋들이 수런수런 웅성이는데 주술사 같은 검은 실루엣의 인물이 지팡이를 든 채 두 팔을 벌려 이들을 위령하는 듯한 모습이다. 대학 졸업반 때 맞닥뜨린 5·18현장에서 참혹한 광경을 목격한 이래 트라우마로 계속 뇌리에서 맴돌았을 그 억울한 혼령들을 위무하고픈 잠재의식의 표현이라고도 볼 수 있다.

    이 같은 오월의 무고한 주검에 대한 감당하기 어려운 충격을 <인산>(1984)에서 소리 없는 울부짖음으로 고발하고 있다. 인간존엄이라곤 아예 무시된 채 내팽개쳐진 단지 시체일 뿐인 주검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죽임을 당하였으나 결코 죽을 수 없는 주검들의 절규하듯 일그러진 표정들은 목판화의 강렬한 흑백 대조로 더 극대화 되어 초승달 아래 처연하기만 하다. <인산> 목판화는 30여년이 지난 지금, 원작구성 그대로 흑백 주조의 500호가 넘는 캔버스 대작으로 재제작 되어 있다. 희생된 시신을 리어카에 싣고 비통 속에 <귀가>하는 목판화도 당시 목격한 상황을 묘사한 현장기록의 하나라 한다.

    그러나 이런 현장고발 형태의 직설적 사실주의는 80년대 격변의 소용돌이가 조금은 누그러지고 6월 항쟁을 통해 민주화의 열망들이 희망의 빛을 보기 시작하면서 상징적 도상들 위주로 변화하고 있다. 이런 경향은 민중민족미술 작가들에게서 전반적으로 나타나는 변화들이었는데, 이준석은 같은 목판화이면서도 그 희생들을 숭고하게 승화시키는 상징적 도상들로 변화하고 있다. 수많은 분신들이 이어지던 항쟁의 과정에서 목숨을 던진 여러 희생을 기리듯 화염꽃 위로 띄워 올린 <청산에 꽃잎처럼>(1988), 궂은 세상 속 연꽃처럼 피어올라 덩실덩실 흥을 타는 <오월춤>(1990), 희생된 넋들을 전통문화재의 비천상으로 전치시켜 이 세상 지킴이로 묘사한 <오월전사 I, II> 연작(1990) 등이 그런 예이다.




    이러한 시대의 굴절 속에 스러져 가는 민중의 모습은 판화에 비해 훨씬 넓은 화폭으로 현실감 나게 표현할 수 있는 캔버스 그림들에서 농촌소재 시대풍경화들로 확장되어 나타난다. <빈산>(1991), <평동마을의 오후>(1993), <붉은 대지의 노래>(1994)처럼 전쟁연습으로 패이고 벌거벗겨진 남도의 둔덕 같은 산자락 배경의 붉은 빛깔 황토들녁 풍경들이다. ‘평동마을 풍경은 위험천만한 포격훈련장을 뒤에 두고 씨뿌리고 소쟁기질 하는 농촌의 일상을 묘사한 그림이다. 삶의 근본으로서 농사일과, 그 평화와 생명을 저해하는 전쟁과 살상무기의 위협을 시대상황으로 대비시켜 놓았다.

    이러한 외적인 힘에 의해 생존이 위협받는 시대상황에 대한 풍자는 붉은 대지의 노래도 마찬가지이다. 1991년 우루과이 라운드로 인해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진 농촌 현실을 상징적 풍자화로 그려낸 작품인데, 마치 제를 올리듯 허공 높직이 띄워 올린 낫을 든 농민의 모습은 생업을 넘어 생존 자체가 위협받던 한국 농업의 현실을 상징적으로 대변한 작품이다.


    미완의 민주세상을 화엄광주로 꽃피우기 

    한편으로 이준석의 회화세계는 1995년부터 2002년까지 이어진 화엄광주연작처럼 전통문화와 민속 요소를 결합한 민중미술 작품들로 거듭난다. 황지우 시인의 같은 제목 시에서 영감을 얻은 이 연작은 15년이 흐르는 동안 많이도 희석되고 박제화 되어가는 오월 역사와 희생들을 화엄정토로 치유 승화시켜내는 그림들이다.

    그 첫 작품인 <화엄광주 I>(1995)은 오월 현장의 시민군들 넋과 이후 계속 이어진 80년대 민주항쟁 과정의 이한열을 비롯한 희생들을 한 화폭에 담아내었다. 짙푸른 무등산의 화산 같은 기운을 타고 구름 위 천상세계로 승천하는 듯한 2단 구도에 운주사 천불천탑이 문양처럼 묘사된 오방색 띠를 둘러놓았다. 같은 해 그려진 <화엄광주> 은 운주사 돌법당 미륵불을 화면 중앙에 꽃술처럼 배치하고 80년 광주항쟁부터 90년대까지 민주화운동 과정의 실재 인물들을 활짝 핀 꽃잎처럼 원형으로 둘러 흑백으로 그려놓았다.

    <화엄광주 >는 화면구성을 아예 바꿔 전체를 일정간격으로 오방색 조각보들을 잇대어 채우고 그 위에 각각 오월항쟁 이미지들을 보도사진 느낌대로 흑백 사실화로 그려 올렸다. 이런 조각보 패턴에 사실적인 이미지들의 묘사는 2002년까지 이어지는 화엄광주연작 뿐 아니라 <미완의 세월-화엄꽃 피우기>(2003)를 비롯, 이후 작품들에서 주된 구성방식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이런 미완의 민주주의에 대한 회한과 열망은 <화엄광주>에서는 화면 가득 채워진 격자형 조각보마다 운주사 천불천탑을 그려 넣어 미완으로 끝난 운주사 미륵세상 구전설화와 진정한 민주주의의 도래를 바라는 이 시대 민중의 열망을 역사를 넘어 공통된 시대염원으로 연결하고 있다.


     

    이 시대 인류 삶에 오월정신과 희망을 불어넣기

    오월과 전통문화 소재를 주로 다루던 이준석의 회화세계는 2000년대 들면서 동시대 인물들이나 시사성 있는 이미지 위주로 변화한다. 두 폭이 짝을 이루어 나란히 전시된 <역사의 다리>(2005)는 이전의 사각 캔버스모양에 맞춰 격자형으로 작은 조각보들을 채우던 방식과는 달리 수직 변형된 형태로 화폭을 구성하였다. 그 한쪽 화폭에는 오월의 윤상원부터 이후 민주항쟁 현장에서 쓰러진 열사들의 흑백이미지들을 전통문화 불상들로 둘러놓았고, 다른 쪽 화폭에는 지구촌 곳곳의 자본주의의 그늘과 가족, 자연 등의 이미지를 흑백으로 묘사하고 대기업 심볼과 원자력, 유전자변형 등의 이미지를 둘러 두 폭을 대비시켜 놓았다. 민주화 현장이나 평범한 도시의 일상, 또는 그 뒷그늘의 소외된 삶이든 그 모든 것들이 이 시대 역사를 이어가는 다리라는 의미일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뉴욕 세계무역센터 항공기 테러로 무너져 내린 충격적 사건을 소재로 삼은 <War Game>(2001)가 주목된다. 2001911일에 있었던 참상의 현장에서 먼지를 뒤집어 쓴 채 황망히 피신하는 사람들의 보도사진을 차용한 그림이다. 이 인물들은 미국을 이루고 있는 유색인종이나 다민족들이면서 그들 흑백 인물들 앞으로 전투기와 디즈니랜드 캐릭터들을 칼라 도상으로 그려 넣어 날로 확장되어 가는 첨단 군사무기와 거대자본과 평범한 소시민들을 대비시켜 놓았다. 작가의 시각이 오월과 국내 문제에서 지구촌, 현대사회, 인류 생존의 문제로까지 넓어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예이다. 이전의 격자형 작은 단위들을 잇대어 대형 화폭을 구성하고 그 안에 시대의 다종다양한 인물들과 기업과 캐릭터, 전통문화재들을 묘사해 넣은 <We are the world>(2007)도 같은 주제의식의 표현이라 하겠다.





    이처럼 세상을 대하는 시각의 변화는 역사의 그늘에 묻히거나 각자의 표정과 일상들로 자기 시대 주체로 살아가는 이웃들에게 연민의 위로와 희망을 건네는 작품들로 변화된다. <당신이 희망입니다>(2008), <가슴마다 꽃으로 피어나라>(2014)처럼 제목도 그렇고, 화면 가득 모란이나 해바라기 꽃송이와 가족과 주변 인물들과 시대의 희생자들을 함께 병치시켜 시대의 풍경을 그리면서 이전의 암울함이나 아픈 상처만이 아닌 밝은 색채로 생기를 불어넣고 있다. 오직 사람만이 시대와 역사의 주체이고 희망이라는 메시지로 읽혀진다.

    작가가 이번 전시를 통해 역사 속의 진실을 새롭게 불러낸 작품이 있다. <오월의 소리>라는 신작인데, 어둡고 텅 빈 공허 속에 5·18 당시 사망자 명단 발표와 도청사수를 독려하는 방송 소리, 거기에 바람에 흔들거리는 풍경소리만이 울려 퍼지고 있는 소리설치작품이다. 그가 오월의 희생을 오월그림전을 통해 지금에 불러내는 것도 소재나 형식은 변할지라도 지난 30여 년 간 일관되게 추구해 온 오월정신의 현재화라는 화두의 또 다른 표현인 것이다.

    - 조인호 (광주비엔날레 정책기획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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