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은 마을에 색을 입히다-'청춘발산' 페이지 정보 작성자 광주미연 작성일15-11-28 22:17 조회6,084회 댓글0건 관련링크 이전글 다음글 목록 본문 묵은 마을에 색을 입히다-‘청춘발산’ 양3동 발산창조문화마을 가꾸기 주민공동체의 사람 시간 공간들 주민 기업 행정의 더불어 문화엮기 “청춘은 무엇이고 어디에 있을까폭풍 같은 날들로, 희망이 안보일지라도오늘의 삶에 ‘꿈’이라는 빛나는 벗은 잃지 않을 거야나의 오늘이 내일의 청춘이기를..” 광주시 서구 양3동 천변좌로 108번길 일대 발산마을. 이 마을 중심부를 가파르게 종단하는 108계단에 칸칸이 적힌 기도문과도 같은 글귀의 일부다. 방직공장 옮겨간 뒤로 오랫동안 텅 빈 공허와 쇠락의 과정을 견디어 오는 동안 대도시의 그늘에 묻혀 달동네 분위기였던 이곳에 ‘청춘발산’이라는 이름으로 발산창조문화마을이 가꾸어졌다. 천변 언덕배기를 의지하여 전쟁통에 흘러든 피난민들과 산업화 물결 따라 도시로 보따리 싸들고 떠나온 촌사람들과 물 건너 방직공장 일하러 다니던 여공들이 이래저래 생의 한자락을 엮어가던 곳. 애잔하고 스산했던 이 마을이 시골 큰애기 꽃단장하듯 옷을 갈아입었다. 광주창조경제혁신센터와 현대자동차그룹, 광주시, 주민자치위원회 등이 힘을 합해 2015년 발산창조문화마을 만들기 사업을 벌인 것이다. ‘청춘의 꿈을 담을 씨앗을 싹틔우는 마을’로 만들자며 ‘청춘발산’이라는 이름을 걸고 주민들과 외부 기획자, 작가, 문화활동가, 행정이 함께 소소한 일상에 문화를 입혀내었다. 젊은 청춘길, 열정 청춘길, 푸른 청춘길 세 갈래 골목길에 연두빛, 오렌지빛, 푸른빛의 색깔들을 칠하고, 어느 집 문살, 옥상난간 그림자, 동네 야생화에서 따온 무늬들을 다듬어 퇴락한 담벼락이나 누덕누덕한 시멘트 옹벽, 비바람 땟국 눌어붙은 대문이며 들창 주변을 멋지게 치장시켜 놓았다. 폐가를 걷어낸 공터 텃밭 가에나, 우둘투둘 시멘트 비탈길, 옹기종기 모여 앉은 동네 할매들 같은 화분들에도 쌩쌩한 색들이 발라지고 따복따복 이쁜 무늬들이 둘러져 있다. 페인트로 도색된 도시풍경은 한국의 서구화, 또는 그 흉내내기 잔편들일 것이다. 일시에 풍경을 개조시키는 편리함과 산뜻함이 급속한 도시개발과 잘 맞았겠지만, 88서울올림픽 무렵 고속도로변 지붕들과 도회지 옹벽들에 페인트들이 칠해지고, 도시 뒤켠 일부 시범사업지에는 우중충한 세월의 때를 쌈빡하게 가려주는 벽화작업들이 입혀졌었다. 물론 싸구려 페인트문화만 있었던 건 아니고, 2000년대 이후 문화와 미술이 마을과 일상에 덧입혀낸 광주의 몇몇 멋진 사례들도 있다. 2002년 각화 마을길에 청년조각가 이재길과 주민들이 가가호호 좋아하는 명언과 애송시, 그림들을 담벼락에 모자이크로 꾸미면서 시화마을의 싹을 틔우고, 달동네 같은 중흥3동에 2003년 펼쳐진 ‘아홉골 따뜻한 담벼락’과 2007년의 ‘하늘아래 텃밭으로 오르는 아홉길’ 공공미술프로젝트, 2007년 양동 통샘마을 좁은 골목길에 ‘소망의 빛 프로젝트’가 진행되기도 했다. 그 연장선에서 발산마을 가꾸기는 이곳 사람과 시간과 공간을 주민들 스스로 다시 들여다보고, 끄집어내고, 단장시켜내도록 유도해낸 과정이 주목된다. 마을의 역사를 구술과 옛 사진과 흔적들을 통해 엮어내고, 주민들 사이에 돌이끼처럼 내려깔린 공동체문화 그대로를 마을공간들에 되살려냈다. 마을 어귀 담벽에는 이 사업의 행정적인 소개와 마을이야기와 사진들이 펼쳐져 있고, 108계단 아래 작은 광장에 서면 청춘발원문이 칸칸이 적혀 있는가 하면, 동네 벽 여기저기에 삶을 위로하고 다독이는 문구들이 떠있다. 광주광역시 서구 월산로 268번길 14-36. 발산마을의 척추라 할 108계단을 올라서면 그 위에 ‘뽕뽕브릿지’가 있다. 달착륙 우주선과 우주인이 그려진 창고같은 허름한 공간을 아지트 삼아 뽕뽕 철다리처럼 문화를 건네고 나누기 위한 작업들을 벌리고 있다. 이곳에서 작가 박세희는 발산마을이 지금 모습으로 변해지는 여섯 달 사이의 모습을 시간을 거슬러가며 영상기록으로 보여주고, 창고 허물어진 담장 밖 잡초더미 우거진 원래의 풍경과 어느 폐가 휑한 창문있는 벽면 사진을 실사출력으로 설치해서 마을의 기억을 더듬도록 하였다. 이와 더불어 ‘마을미술프로젝트’로 진행된 공공미술작업들이 옹벽과 비탈길 난간, 벽면에 철판과 그림과 야외조형물로 제작되어 있다. 서로 다른 사업이지만 같은 마을공간에서 이루어지다보니 하나의 문화산업 산물이 된 것이다. 페인트색깔 산뜻하고 마을 여기저기 무늬들도 이쁘다. 그러나 비록 찌들은 삶일지라도 그곳에 뿌리내려온 마을의 묵은 내력과 숨결이 온통 페인트 치장으로 덮이고 들떠 보이는 풍경은 생경하다. 산뜻한 청춘도 좋지만 원래의 것들이 진득하고 아기자기 정감 있게 가꾸어진 풍경이 더 발산마을답지 않을까. - 조인호의 미술이야기(전남일보. 2015. 11.27)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이전글 다음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