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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빛으로 드러나는 '세상존재의 현상과 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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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광주미연 작성일16-04-16 18:11 조회5,13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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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운학 <생명나무>, 2016




    빛으로 드러나는 세상존재의 현상과 이면

     

    정운학 미디어아트 초대전

    2016. 4. 1 - 5. 2 무등현대미술관

     

    입체회화에서 미디어회화, 이미지 설치로 표현방식을 변화시켜 가는 정운학의 아홉 번째 개인전이 무등현대미술관 초대로 41일부터 52일까지 열리고 있다. ‘존재의 빛이라는 전시주제로 사물과 공간과 의미의 관계들을 담아낸 미디어아트 설치전이다. 단일형상 또는 군집 형태로 전시실 벽면과 허공에 연출된 이들 작품들은 보여지는 형식이나 매체가 갖는 시각적 형상과 더불어 정운학의 작업에서 오랜 화두인 세상 존재의 현상과 이면을 드러내는 장치이다.

    전시공간을 채우고 있는 것은 소리 없이 색으로 흐르는 빛, 그 빛을 담은 에폭시 상자들과 둥근 유리통들에 담긴 이미지들이다. 이들 시각적인 설치들은 세상을 가득 채우다 어느 순간 세월 뒤로 사라지고 더러는 생채기가 도지기도 하는 도처의 숱한 사건 사태들이 구겨진 기록이나 때묻은 흔적쯤으로 희미해지고, 그런 속에서 드러날 듯 말 듯 흔들리며 한 생을 엮어가는 사람들과 이 땅 생명존재들에 대한 정운학식의 반추작업일 것이다.

    <생명나무>는 최근 정운학이 계속해 온 야외설치 연작 빛의 열매와 비슷한 형식구조이면서 개념적으로는 의미를 더 중층적으로 복합시켜낸 작품이다. 미술관 입구 정원수처럼 서있는 이 나무는 스테인레스 몸체에 사방으로 뻗은 가지 끝마다 조명구들이 주렁주렁 열려있다. 전구를 용도변경한 작은 공간들에는 수생의 푸른 넝쿨식물들이 자라고 있고, 그들은 구멍 밖으로 여린 이파리들을 내밀어 대기의 흐름을 호흡하고 광합성으로 에너지를 모으며 스스로의 생장을 지속해 나간다. 때와 날씨를 따라 햇볕과 비바람, 뜨거운 한낮의 열기와 새벽의 차가움을 오가는 유리통 속 나날의 삶을 한모금의 물로 보전하는 그들 존재는 허공에 띄워진 극기의 조건일수도 있고 개별세계 안의 평온일 수도 있으면서 정운학식의 세상 비유이기도 하다.

    전시실 널찍이 설치된 <시간을 담다>는 약간씩의 물이 담긴 훨씬 크고 둥근 조명구에 식물대신 나무와 꽃잎과 남생이, 도룡용, 기록사진, 부처 등의 사진필름들을 깔아놓았다. 천장에 매달린 유리통 속의 이들 이미지들은 LED의 흐르는 빛을 따라 색깔이 변하면서 전시실 바닥에 필름의 이미지를 투사한다. 유리통 바닥에 깔린 한 모금의 물들은 각각의 존재를 투사시키는 렌즈역할을 하면서 세상과 생명을 담는 상징적 대양 아니면 응축된 한 방울의 물 자체이기도 하다. 각각의 영역 공간에 담긴 그들 존재들은 서로가 연결되는 듯 아닌 듯 허공에 매달려 저마다의 세상을 영위하고 있다.

    그 아래 바닥에는 LED조명으로 드리워진 엷은 파장과도 같은 둥근 빛그림자들이 투사된다. 작가는 세상 존재의 흔적들을 퍼올리는 기억의 우물이자 현상세계와 이면을 연결하는 통로로 의도한 연출이라 한다. 이미지의 실체와 투사된 영상 사이의 매개라는 드러난 세계와 더불어 전시실 바닥에 맺혀진 상 그 아래의 심연에 깔린 존재의 이면을 퍼 올리듯 개념적인 상상의 공간을 확장시키려는 것이다.



    세상사에 대한 기록과 반추는 <기록된 흔적>에서도 마찬가지다. 벽면에 줄지어 붙여진 20여개의 작은 상자들에는 광주 5·18과 캄보디아, 베트남 등지 도처에서 일어났던 정치사회적 사건 사태들의 보도기사들이 필름으로 떠져 겹치고 구겨진 채로 기록물보관처럼 에폭시로 쌓여져 있다. 결코 흔적 없이 묻히거나 사라질 수 없는 그 사태들은 내장된 빛에 의해 세상에 다시 드러나면서 LED 빛의 변화를 따라 각기 다른 표정들을 짓기도 한다. “내재되어있는 빛은 대상의 존재에 관한 표현이면서 반복되어지는 역사 속에서 실루엣처럼 오늘과 중복된 상을 만들어 간다는 작가의 생각들이 읽혀지는 작품이다.

    이번 전시의 키워드인 세상존재의 현상과 이면을 효과적으로 드러내기 위한 시도는 다른 이미지 전달방식에서도 나타난다. <부처>는 이전에 여러 차례 발표했던 같은 이름의 연작들과 연결되지만, ‘흔들리는 부처의 마음이 핵심일 것이다. 부처조차도 흔들리는 혼돈스런 세상에 마음 붙일 곳 없는 세상사람들의 심란한 심사를 시각화시켜낸 작품이다. 불안스럽게 삐뚤거리며 높직이 쌓아올린 상자들마다 계속해서 흔들리고 있는 불두의 이미지를 내장된 LED 빛으로 비춰내었다.
     


    부지불식 불확실한 세상에 대한 은유는
    <정물화>에서도 볼 수 있다. 빛이 내장된 상자에 실체의 그림자인지 겹쳐진 사진필름 이미지인지 분간할 수 없는 기물과 과일과 권총 이미지들이 안개 속처럼 흐릿하게 액자상자 표면에 비춰지고 있다. 현상과 가상, 실체와 이면, 폭력과 유혹과 위무가 혼재하는 세상풍경이 드러날 듯 말 듯 정물 이미지들로 비유되고 있는 것이다.

    영상과 빛과 이미지를 복합적으로 다루는 미디어아트 작가들 가운데 정운학의 기본은 입체회화이다. 한동안 그가 천착했던 2차원의 평면을 벗어난 입체적인 회화로 이미지를 확장시키는 작업과 같은 연장선인 셈이다. 그 화폭을 벗어난 회화작업의 이미지가 입체나 사진, 영상, 미디어매체 등등으로 변환되고 빛상자와 디지털광원과 조형소품이나 설치형식들과 결합하면서 여러 형태로 분화되고 있는 것이다. 매체의 시각적 이미지나 조형적 형식만이 아닌 세상의 존재와 삶들을 담아내고 그 이면을 비춰내는 방편이자 통로로서 조형적인 작업과 설치에 이미지를 투영시킨다는 점에서 정운학의 독자성을 부여하게 된다.

    - 조인호 (광주비엔날레 정책기획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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