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과 사람의 역사 '전라도 천년' 페이지 정보 작성자 조인호 작성일18-07-30 11:27 조회6,814회 댓글0건 관련링크 이전글 다음글 목록 본문 전라도 천년 '인문의 땅' 섹션에 출품된 정정주의 <소쇄원(부분)>, 2018 땅과 사람의 역사 ‘전라도 천년전’ 천년의 하늘 천년의 땅 2018.7.6.-11.11 / 광주시립미술관 전라도의 천년역사를 시각예술로 펼쳐보는 전시가 진행 중이다. 광주시립미술관이 ‘전라도’ 이름 탄생 천년을 기념하여 기획한 전시로, 7월 6일 시작해서 올해 제12회 광주비엔날레 기간까지 120여일의 대장정을 펼치는 전시다. 전라도 천년을 기념하는 기관·학교·단체들의 행사와 사업들이 진행되고 있지만 전라도의 정체성을 현대미술로 풀어보는 게 이번 전시의 주 목적이다. “전라도 정신과 문화, 역사적 상징성을 현대미술을 통해 접근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호남의 정신과 예술의 맥을 재해석함으로써 과거가 아닌 현재 진행형인 전라도의 혼을 호흡”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땅의 실질적 지주였던 민중의 힘과 절의와 유배 선비들의 사유와 실천, 의로운 역사를 위한 항쟁의 정신 등을 토대로 현시대 정치사회적 대응과 향후 융복합 문화의 시대를 발전시켜가는 응집력을 미술작품으로 모아보는 의미도 크다고 본다, 사실 편년적 의미의 천년을 굳이 기념하지 않더라도 그동안 수많은 학술과 축제, 현장탐방과 여행들로 그 유무형 천년 역사의 자료와 현장들을 접해왔다. 분야별 전문가는 전문가대로, 지역민이나 외지 방문자는 일반적인 시각에서 곳곳의 전라도를 느끼고 각자의 의식들을 갖고 있다. 다만, 일반적 영역과는 보다 특별한 사유와 감성과 표현세계를 가진 작가들의 관점과 조형언어들을 통해 자기 안의 전라도를 새롭게 발견하고 재음미해보는 문화공감의 자리라고 생각한다. 광주시립미술관 황유정 학예연구사가 기획을 맡은 이 전시는 전라도를 크게 4개의 소주제로 접근하고 있다. ‘발아·의기·인문·예향’이라는 4개 키워드다. 첫 장이라 할 ‘발아하는 땅’은 서남해안 온난한 바다와 드넓은 평야라는 삶의 터전을 주목한 것으로 ”외부에서 유입되는 문화를 ‘서로 다름’을 절이고 곰삭혀 전라도만의 멋으로 싹트게 했다.”는데 주목한다. 이 섹션에는 마종일과 신창운이 초대되었다. 마종일은 <그대, 풍요로운 땅에 서 있는 당신이여>라는 제목으로 채색한 500여개 대나무들을 무수하게 엮어 전라도의 에너지를 채워놓았다. 신창운은 그가 2000년대 초에 한창 연작주제로 탐닉했었던 <내 땅에서> 대작들을 다시 내보이고 있다. 바짝 말라들어 피폐해진 이 땅에 알몸인 채로 손가락들을 꽂아 생명의 기운을 수혈시키는 화폭이거나, 얽히고 설킨 앙상한 대뿌리들 사이에 생명의 알들을 품어 이 땅의 부활을 꿈꾸는 오브제작품들이다. 마종일 <그대, 풍요로운 땅에 서있는 그대>, 2018 / 신창운 <내땅에서>, 2001, <내땅에서-부활>, 2003 두 번째 장인 ‘의기의 땅’은 송필용, 조광익, 박종석의 작품으로 꾸며졌다. 송필용은 전라도의 역사에서 두드러지는 것은 ‘의기’였다고 보고, <민중의 땅>(1994)와 <땅의 역사-일어서는 백아산>(1995) 등의 두텁고 거친 질감의 산야도를 통해 질박하고 억세게 이 땅의 역사를 지켜온 민초들의 초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조광익은 폭 10여m에 이르는 대형 수묵담채 <담양 아리랑>을 펼쳐 전라도의 산천과 누정과 도시와 사람들을 무수한 선묘들로 결을 이루어 이 땅의 지문을 담아 놓았다. 박종석 또한 폭 15m의 대작 <매천 황현>을 펼쳐놓았는데, 길게 뉘운 한반도와 대륙 사이로 천지기운이 하얀 강줄기처럼 관통을 하고, 동백꽃 점점이 흩어진 채 진동을 일으키고 있는 한반도 터전에는 매듭 굵고 구불거리는 긴 대붓과 엎드려 통곡하는 매천의 뒷모습을 거친 파필로 묘사해 놓았다. “요사스런 기운이 임금별자리를 옮기니…무궁화 이세상은 침몰하고 말았네.”라는 통한의 방성대곡을 곁들여 작품에 깔린 저항의식을 대변하고 있다. 송필용 <땅의 역사-일어서는 백아산>, 1995 / 박종석 <매천 황현>, 2018, 220x1480cm / 조광익 <담양 아리랑>, 2012, 317x990cm 세 번째 ‘인문의 땅’은 오상조, 조재호, 박경식, 정정주 작품이다. 오상조는 이땅 곳곳의 당산과 민불, 장승들을 사진으로 기록해 오던 작업들 가운데 <운주사>의 이땅 민초들의 초상과도 같은 석불과 석탑 사진들을 가져왔다. 독자적인 도자세계를 탐닉해 온 조재호는 흐르고 터지며 기표면에 무작위적 형세들을 남겨놓은 덤벙분청기법 다완 100여점을 누정의 다회를 상징하듯 시가문화권 누정처럼 둥그렇게 둘러놓았다. 정정주는 설치와 영상을 곁들이는 그의 작업 특성을 계속하면서도 청자기법 도조조각들을 잇대어 <소쇄원> 원림을 재현한 대작을 연출해냈다. 자연과 선비문화가 어우러져 수세기 동안 인문 보고를 이루어 온 소쇄원의 역사 문화적 면모를 미니어처 작은 입체조형으로 재현하고, 작은 비디오카메라들을 두어 외부에서 바라보는 시선과 안으로부터 바깥을 내다보는 지각의 관점을 반전·교차시킨 영상을 함께 보여준다. 그런가 하면 박경식은 버려진 마른 나뭇가지들을 산줄기·강줄기·밭이랑처럼 무심한 듯 던져놓고 그 위에 옹이처럼 작은 누정들을 올려 선비들의 도학·결의와 민초들의 거친 삶이 함께하는 전라도 풍경을 만들어내었다. 박경식 <나무도 나도>, 2014~2018, / 오상조 <운주사>, 1989, / 조재호 <개화>, 2018 윗 층에 마지막장으로 연결되는 ‘예향의 땅’에는 홍범, 유휴열, 오윤석, 허달재의 작품으로 구성되어 있다. 오윤석은 추사의 <불이선란도>를 하얀 한지에 투각시켜 13장의 레이어로 설치하거나, 옛 서간의 문장을 투각시킨 글자들에 빛을 비춰 실체와 벽면 그림자 사이에 간격을 두기도 하고, ‘묵란도’ 이미지를 따라 수많은 철침들을 꽂아 그 그림자로 화면을 구성한 ‘re record’ 연작을 내놓았다. 허달재는 <백매> <묵포도> 이미지를 화사하지만 담담한 수묵담채 색감의 현대회화로 재창출하면서 문인화 본래의 심상적 관조와 고요한 사유의 세계를 펼쳐 보인다. 이와 달리 유휴열은 전라도의 흥과 멋을 적극적인 채색과 생동감 넘치는 춤사위 인물형상이나 고부조의 입방체 구성 화폭으로 <생·놀이> 연작을, 홍범은 고향에서 기억된 소리들을 큼직한 불규칙 입체기둥들에 오르골로 내장하여 그 기둥들의 위치에 따라 만들어지는 간격과 부조화의 여백을 음미하도록 한 <기억의 광장>을 설치하였다. 오윤석 <re-record 불이선란도>, 2007~2009, / 유휴열 <생, 놀이>, 2015, 허달재 <포도>, 2018, / 홍범 <기억의 광장>, 2017 땅과 지역은 뭍 생명의 터전이기도 하고 그 생명군집들로 일정한 공동체를 이루기도 한다. 그러나 본래자연 밖 인간세상에서는 지칭하는 지역명이나 행정단위, 선거구, 정치적 이해관계 등에 따라 지연의 유대감을 이완 또는 강화시키기도 한다. ‘호남’으로 묶이는 전라 남·북도와 광주광역시라는 지금의 서로 다른 행정단위 묶음에 따라 서로 따로 또 같이를 반복하고 있지만 ‘전라도’라는 큰 이름 하나로 지역공동체의 연을 이루고 있다. 이번 ‘전라도 정도 천년 기념전시회’는 같은 듯 다른 듯 전라도 속의 전통문화와 정서와 감성, 인물들을 인문학적 이해들을 바탕으로 오늘의 독창적 시각예술작품들로 되비춰보는 자리다. 4개월에 걸친 긴 전시기간 중 지역민들은 물론 제12회 광주비엔날레 기간(9.7~11.11) 중에 광주를 찾게 될 많은 외지인이나 외국 방문객들이 전라도의 풍부한 역사와 문화를 들여다볼 수 있는 의미 있는 우리 소개의 장이 되리라고 본다. 이 전시의 의미와 공감대를 널리 확산시키기 위해 특별강연이 예정되어 있다. 1차는 9월 5일 오후 3시에 한국학호남진흥원 이종범 원장의 ‘전라도 천년-의기의 땅’이, 2차는 10월 11일 오후 3시에 전남도립대 최한선 교수의 ‘누정과 문학창작의 모태’라는 주제 강연이 광주시립미술관 세미나실에서 있게 된다. - 조인호 (광주비엔날레 전문위원)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이전글 다음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