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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수민 展 - ‘일상의 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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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광주미연 작성일16-07-04 18:59 조회4,76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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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반된 요소들 사이에서 드러나는 것

     배수민 일상의 삽화

    2016. 6. 24 - 7. 7
    광주롯데갤러리

     

    예술의 순수성과 사회성, 전통적인 것과 현대성 등, 서로 다른 성격을 지니는 이러한 요소들은 시각매체 분야에서 상치된다. 내용과 형식 논쟁 , 예술의 사회적 역할과 예술을 위한 예술의 개념까지, 각기 반대 방향에 놓인 듯한 이러한 사고는 현대미술 안에서 점차 그 인식의 틈을 좁혀 왔다. 공공미술, 전통의 현대적 차용, 고전의 재해석이라는 접근 방식 이외에 예술은 시대 혹은 사회와의 상호성 아래 지속적인 변화를 도모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예술가들이 창작의 길로 들어설 때, 가장 먼저 마주하는 것은 자기 자신이다. 작가는 흔히들 표현하는 내면세계, 즉 개인적 경험에서 파생되는 다양한 갈등 구조, 심리적 상황, 그리고 스스로가 인지하는 근원적인 정서에 천착하고, 이를 창작이라는 물리적 형태로 표출한다. 나의 작업세계를 가장 진실하게 보여줄 수 있는 방법 중 하나가 나의 이야기이기에 위와 같은 접근법은 자연스럽다. 일기를 쓰듯, 작품을 통해 나를 보여주는 과정에서 작업의 주체는 창작의 쟁점을 되돌아보게 되고, 이내 문제제기의 폭을 넓혀간다.

    두 번째 작품전을 선보이는 배수민의 근작에서 감지되는 변화가 반가운 이유도, 언급한 시선의 확장에서 기인한다. 배수민의 작품에서 두드러지는 특징은 독특한 덩어리(mass)이다. 릴리프(relief), 혹은 돋을새김(양각)의 형태로 각인되는 반부조의 물질감은 그것이 단순히 기법적 특이성이기 이전에, 2차원적 평면과 3차원의 입체형식이 작업의 메시지와 적절히 어우러진다는 점에서, 작품 자체로 시각적인 힘을 함축한다. 찰리 채플린, 빈센트 반 고흐, 존 레논, 체 게바라와 같은 유명인을 오마주한 기존의 작업들이, 표현 대상의 정형성이라는 결점을 수반함에도 불구하고, 배수민만의 작업으로 안정되게 고착된 연유는 그러한 시각적인 힘에서 비롯된다.

    20대 후반을 갓 넘긴 청년작가가 느끼는 시대적 불안과 욕망이 오롯이 투영된 유명인의 초상은, 보는 이에게 낯익은 정서와 함께 경의(敬意)의 감정을 선사한다. 더불어, 위인 혹은 전설이 된 예술인은 지나간 시간을 상징하지만, 시대를 막론하고 그들의 생애에서 삶의 지향점을 찾을 수 있다는 점에서 현재, 또는 미래가 적절히 공존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전통적인 흙 작업과 석고 캐스팅, 그리고 합성수지와 시트지, 우레탄 도장 등의 현대적 매체가 혼용된 작업의 메커니즘이 작품의 메시지와 그 맥을 같이 하고 있기에, 배수민의 작품은 빠르게 완성도를 구축할 수 있었다.

    이번 전시에 새롭게 선보이는 풍경 작업에서는 창작의 쟁점이 개인에서 확장, 사회로 향하고 있다. 사적인 사유에서 보편적인 공감의 영역으로 변화를 꾀하고 있는 배수민 작가는 작품 <달동네>, <Flower tree>연작, <문화적 혼동>, <TV 정글> 등에서 전통과 현대, 자연물과 인공물을 함께 배치한다. 이처럼 상반된 성격을 지니는 요소들을 이종교합의 형태로 제시함은 일종의 역설 화법이다.

    세계화와 신자유주의 물결 속에서 흔히 들려오는
    인간성의 파괴, 소진증후군, 성과주의라는 용어들, 한 사회를 지속하는 정신문화가 부재한 상태에서 팽배해져 버린 물질 만능의 시대 분위기를 작가는 비판적인 시선으로 바라본다. 작품 <TV 정글>에서는 무성한 잎사귀에 어지럽게 쌓여 있는 모니터들을 발견할 수 있다. 매스미디어의 홍수 속에 무분별하게 수용되고 있는 매체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 엿보인다. 화려한 꽃무늬 장식의 그릇 위에 놓인 동네는 어지럽게 얽히고설킨 전선과 비좁게 들어선 건축물들의 공간감에서, 그것이 달동네임을 보여준다. 그러나 하나같이 고래 등 같은 기와를 얹고 있는 모습으로, 보는 이에게 기묘한 허세와 부자연스러움을 전달한다. 풍성한 꽃나무 사이사이 자리한 신호등과 교통 표지판, 얼기설기 전신주 위로 피어난 꽃무릇에서도 자연물과 인공물의 조합은 기형적이며, 서양의 우아한 클래식을 상징하는 피아노와 해외로의 자유로운 여행을 상기시키는 캐리어 전면을 뒤덮고 있는 전통문양에서는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들이 무엇인지 우의적으로 드러난다.

    예술에서의 고유성과 보편성의 문제를 사유와 공감이라는, 향수자 측면에서 바라보는 해석이, 때로는 작품을 표피적으로 바라보는 결과를 낳는다. 완성된 작품의 이미지에서 팝의 요소가 짙게 배어나는 배수민의 작업세계는 그 현대적인 외양으로 인해서 보는 이로 하여금, 메시지의 유추나 독해 과정이 이차적인 작업으로 밀려나는 경향을 띤다. 작가의 의도나 문제의식과는 다르게 아직은 기법의 특수함이 더 부각되고 있는 작품 성향을 볼 때, 내용성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드러내느냐의 문제는 작가가 풀어야 할 숙제이기도 하다. 기법의 고유함과 메시지 상의 날카로운 쟁점이 한 데 융합되어, 보다 스펙터클한 구조 안에서 읽어낼 수 있는 내러티브를 기대한다.

    - 고영재(광주롯데갤러리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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