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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명; 삶과 죽음의 초상 - 정영창 회화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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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광주미연 작성일16-10-26 20:31 조회4,40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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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명삶과 죽음의 초상 - 정영창 회화전

     

    11회 광주비엔날레 기간(2016. 9.2 -11. 6)에 맞춰 광주시립미술관에서 기획전으로 마련한 재독화가 정영창 회화전(2016. 8.25- 11. 6)이 얼마 남지 않았다. 군복무 마치고 5.18 직후 좌절과 혼란에 휩싸여 있던 상황에서 1983년 독일로 떠난 뒤 33년 만에 고향은 물론 국내에서 처음 갖는 대규모 개인전이다. 2014년 광주비엔날레 20주년 특별프로젝트로 개최된 달콤한 이슬, 1980 그 후전시에 처음 4점의 작품을 선보인 것이 계기가 되어 지난 수년간 이어온 주제 연작들을 망라하는 발표전이 마련된 것이다.
    이번 전시에서 정영창의 회화는 인간의 '생명'을 큰 주제로 다루고 있다. 특히 인간존재의 존엄을 화두 삼으면서 단지 개체로서 인간의 탄생과 삶과 죽음을 그리기보다, 부당하게 자행되는 국가폭력이나 그릇된 욕망에 의한 전쟁, 역사의 굴절과 희생, 상처, 저항 등 정치 사회적 이슈들을 폭넓게 담아내고 있다. 지구촌 곳곳에서 진행되어 온 인류사의 거대한 질곡과 그늘들에 대한 레퀴엠과도 같은 대 서사의 장들이 한폭 한폭 화폭에 담겨져 있는 것이다. 따라서 작품들은 지극히 절제되면서도 압축된 흑백의 톤으로 현장을 직시하듯, 또는 역사 속에서 소환해 내어 인류 앞에 고발하듯 명징하면서도 통렬한 비판의식을 담아 사실적으로 그려져 있다. 이같은 분위기 때문에도 전시장은 사뭇 시각적 심리적 긴장감과 숙연함으로 적요함마저 흐른다.
    1026일 오후 4시부터 광주시립미술관 전시 현장에서 세 번째이자 마지막 작가와의 대화시간이 있었다. 이 자리에는 정영창 작가와, 전시를 기획한 변길현 학예연구사, 패널로 광주비엔날레 조인호 정책기획실장이 대화를 진행하고 관람객들 20여명이 자리를 함께 했다. 작가의 그동안 작업과 이번 전시에 관한 대략적인 소개에 이어 질문 답변 형식으로 얘기가 진행되었다. 오늘 오갔던 얘기의 요지를 시간대를 따라 간략하게 정리해 봤다.



     

    ‣ 어떤 계기로 미술을 하게 되었나?
    ⇒ 초등학교 5학년 때 담임선생님이 교실 환경미화를 시키곤 하셨는데, “너는 미대를 가면 좋겠다고 하셔서 미술에 소질이 있나보다고 생각했다. 중학생 시절에 미술부는 특별한 애들만 들어가는 줄 알았는데, 미술선생님께 미술부 활동을 하고 싶다했더니 흔쾌히 그러라 하셨다. 후에 디자인을 하게 돼서 홍익전문대를 2년 다닌 뒤 홍익대로 편입하려 했는데, 제대 후 돌아와 보니 그 편입제도가 없어져 있었다. 1년간 디자인회사에 근무하다 독일유학을 결심하게 되었다.

    독일로 떠나게 된 계기는?
    사회적인 문제를 감동적으로 표현해낸 독일 캐테 콜비츠 작품에 대한 감화도 있었고, 한국과 같은 분단상황과, 5·18 이후 예술의 역할이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 등이 복합되어 있었다.

    뒤셀도르프대학을 선택한 이유는?
    처음 독일에 있던 선배의 추천으로 카셀로 갔다. 카셀종합대학 미술대학 입학시험을 치렀으나 불합격 통지를 받았다. 시험감독관이었던 교수를 찾아가 이대로 한국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정을 얘기했더니 청강을 허락해 줬다. 1학기 청강을 한 뒤 1년 반 카셀대학을 다니다 뒤셀도르프로 전학을 갔다. 뒤셀도르프는 요셉 보이스나 백남준이 교수로 있었고, 현대미술을 제대로 배울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가 있었다.

    이번 전시에서 말하고자 하는 주제와, 왜 흑백 톤인지 말해 달라?
    2009년 오키나와에서 전쟁의 기억을 그리다라는 세미나에 참석한 적이 있다. 그 때 오키나와의 이곳저곳을 다니던 중 해안가 동굴을 가보게 되었다. 이곳은 제2차 세계대전 종전 때 일본군들이 섬 주민들에게 곧 미군이 주둔하게 될텐데 그리되면 누구도 살아남지 못할 것이니 차라리 스스로 목숨을 끓는 게 나을 거라고 자살을 종용하였다. 그래서 많은 주민들이 절벽에서 뛰어내리거나 이 동굴에서 가족들끼리 서로를 죽이고 생을 마감한 처절한 장소였다는 설명을 들었다. 너무도 끔찍했을 상황을 느끼면서 생과 사에 대한 문제가 크게 각인되었다. 그리곤 돌아서 나오는데 동굴 밖으로 내다보이는 푸른 하늘과 쪽빛 바다가 동굴의 어둠과 흑과 백으로 너무나 대조되어 보였다. 그 인상이 너무 강렬해서 이 동굴의 기억을 첫 흑백 그림으로 그렸고, 이후 국가폭력 등 인위적인 죽음과 전쟁의 피해 등에 관한 주제를 흑백으로 계속 그리게 되었다.

    이번 전시에서 보여준 흑백 사실주의 작업들 이전에는 어떤 작업을 했었나?
    독일에 있다 보니 한국적인 것, 우리다운 것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됐다. 그러나 그것은 이미 한국에서 20여년 사는 동안 이미 내 몸에 배어있는 정체성에 있다고 생각했고, 재료에서 차이를 찾아보려 했다. 카셀대학 시절 쿠어터 하올 교수가 포토리얼리즘 경향의 작업을 하는 분이었다. 그러나 꼭 사실적인 작업만을 해야 하나 하는 생각에 뒤셀도르프대학에서는 독일의 추상표현주의나 거친 형식들을 비롯해 다양한 수업을 받고 시도를 해봤다.
    졸업작품으로 마약이라는 대작을 그렸는데, 시내 중심부에 있는 공원을 지나다 수저에 마약을 녹여 주사로 투약하는 충격적인 장면을 목격하고, 삶을 위한 수저가 죽음으로 내몰아가는 도구로도 쓰인다는 양면성에서 발상이 이루어져 그림으로 표현한 작품이었다.
    1991년 졸업 후에 1994년 뒤셀도르프시립미술관에서 초대를 받아 미술관급 첫 개인전을 생명을 주제로 가졌다. 일반 학생들과 다른 방식으로 사회적인 문제를 다룬 작품들이어서 눈여겨봤다가 초대했다고 한다.

    독일에서 작가로서 생활환경과 작업여건은?
    독일에서도 작가의 삶은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많다. 돈벌이를 위해 알바나 다른 일을 하는 작가들도 많지만,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작업에 전념하려 했다. 돈이 안드는 재료를 찾아서 마트에서 나오는 식품포장지나 판재, 골판지를 모아 그림을 그리곤 했다. 설치보다는 회화를 일관되게 작업해 왔는데, 쌀을 이용한 설치작업을 해 본적이 있다. 2004년 부산비엔날레에 출품했던 작품이 패널에 쌀을 붙여 우주처럼 보이게 만든 것이었다. 가끔 작품이 팔리기도 하는데, 뒤셀도르프시립미술관에 12점 정도가 소장되어 있다. 전속화랑도 있다. 작품이 팔리면 생활비보다는 대부분 작품재료를 몽땅 사서 비축해 두곤 한다. 화가는 다른 장르에서 기술적인 부분만 취하면 무엇이든 다양한 작업이 가능하다. 사진작가가 그림을 잘 그릴 수는 없지만 화가는 사진을 잘 찍을 수도 있고 무엇이든 할 수 있다. 회화가 갖는 감각이 있기 때문이다.

    검은색을 다루는 재료나 방법은?
    그림의 안료로 유화물감이나 아크릴, 먹 등을 다양하게 사용해 봤다. 각 재료마다 먹빛을 내는 차이들이 있다. 지금 작업들은 아크릴락 기법을 주로 이용한 건데, 먹으로 그림을 그리고 아크릴락을 나전칠기 칠하듯 열 번 정도를 반복해서 발라주면 먹빛이 속으로 스며들면서 번들거리지 않고 아주 깊어진다.

    작업을 하면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재료나 표현방법은 조금씩 달랐더라도 크게 보면 생명에 관한 주제를 지속해 왔고, 작업에서 완성도를 중요시한다. 감동과 느낌을 주려면 의도하는 것을 끝까지 표현해내어 완성도를 높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광주의 80년대 이후 현실주의 참여미술 작가들과의 관계는?
    80년대 시매연(시각매체연구소) 작가들과 교류가 있었다. 시매연이 교토미술관에서 '동아시아의 평화와 광주의 기억'이라는 주제로 전시할 때와, 제주도 마라도 사찰공간에서 전시할 때 함께 출품한 적이 있다. 한국80년대 참여미술을 보면서 꼭 저렇게만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어 독자적인 사회참여적 사실주의 회화를 탐구해 왔다.

    이후 작품활동은 어떻게 펼쳐갈 건지?
    이번 광주시립미술관 전시가 끝나면 다른 곳에서 다시 전시를 하고 싶어 알아보는 중이고, 한국에 자주 와서 그동안 경험하고 느꼈던 것들을 젊은 작가들과 함께 나누고 싶다.



    정영창. <hand and body>. 2015. 150x150x4cm. 캔버스에 아크릴릭+락카


    정영창. <Window 1>(위), <Window 2>(아래). 2012. 캔버스에 아크릴릭+락카, 90x90x4cm, 120x90x4cm


    정영창. <victim>. 2015. 200x150x4cm. 캔버스에 아크릴릭+락카


    정영창. <문규현>. 2011. 150x150cm. 캔버스에 아크릴릭+락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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