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민과 초월, 그 간극에서의 사색 - 박성휘展 페이지 정보 작성자 광주미연 작성일15-09-30 13:53 조회6,362회 댓글0건 관련링크 이전글 다음글 목록 본문 번민과 초월, 그 간극에서의 사색 박성휘 개인전 - ‘밤이 피다’ 2015. 10. 2 - 10.14 광주 예술의거리 자미갤러리 서(西)으로 가는 달같이는 나는 아무래도 갈 수가 없다. 글쓴이가 추천사(鞦韆詞)의 이 극적인 시구를 처음 접했을 때의 반응은, 의미 그대로 체감 비슷한 감흥에 가까웠다. 현실적 번뇌를 극복하고 조화로운 이상 세계를 꿈꾸는 화자의 간절함, 그것은 여느 사람들의 생의 희망과 맞닿아 있다. 부연하자면, 예술에서 자주 쓰이는 상징과 은유가 향수자로 하여금 더욱 절절한 감동으로 다가오는 이유는 예술이 삶을 투영하고 포용한다는 점에서 기인한다. 더불어, 예술을 행하는 주체 또한 작품세계라는 서사적 구조 안에서 스스로를 감싸고 포용한다. 그리는 행위가 이내 치유의 의미이기도 한 박성휘 작가는 그의 작품에서 삶에 대한 초극의 염원을 담아낸다. 작품성의 구축에 있어 철저히 내적 사색으로 일관해 온 작가는 외려 현실에 깃든 아픔과 상처에 관한 이야기로 붓을 들기 시작했다. 여체 위주의 인물을 선보인 박성휘의 초기작에서 느껴지는 심상은 낱낱이 열거한 여성으로서의 고통과 상흔들이다. 문학으로 비유하자면 다분히 주정적이고 자조 섞인 화법이 눈에 띄지만, 이후 작업에서는 생의 아픔에 관한 극복의 이미지를 제시하며 보다 자기 반성적인 태도로 변화한다. 성찰과 유사한 변화의 시점에서 작가가 취한 극복의 상징은 바로, 오랜 시간 전승되어온 서사무가 바리데기이다. 한국의 대표적 여성 무속신화인 바리데기는 남성 중심적 이데올로기에서 삶과 죽음을, 나아가 현실과 이상을 매개하는 존재로서의 초월적 여성상을 대변한다. 태어나자마자 부모로부터 버려지지만 훗날 죽을병에 걸린 아비를 살리기 위해 갖은 시련을 이겨내고 생명수를 구해오는 바리공주는, 종국에는 상처 입은 이들의 어머니로 다시 태어나는 과정을 보여준다. 저승과 이승의 경계에서 망자의 원혼을 보듬고 산자의 상처를 감싸는 바리공주는 표면적인 신화 속 인물이기 이전에, 현세의 사람들에게 ‘생명력’이라는 삶의 희망을 제시하는 다분히 인간적인 대상이다. 작가는 사랑으로 스스로를 개척하고 만인에게 있어 희망의 아이콘으로 분한 바리데기의 능동성과 생명력에 천착하며, 현실을 살아가는 여성의 삶을 신화 속 메시지에 견주어 비유하고자 했다. 물 긷고, 나무하고, 밥 짓고, 생명을 잉태하고 낳았던 바리데기의 시련 속 여정이 그러하듯, 삶의 길쌈을 뜻하는 실꾸리, 윤회와 환생을 드러내는 연꽃, 행복과 희망을 투영한 나비, 신을 향한 간구를 의미하는 방울 등이 배에 가득 실린 모습으로 작품 속에 등장하며 특유의 바리데기 도상과 한데 어우러졌다. 이 바리데기 이미지는 박성휘 작가가 지속적으로 가지고 가는 상징적 화재(畵材)로, 생과 사의 고찰과 함께 작가의 자전적 서사의 중심에 자리한다. 시인 백석과 그의 연인 자야의 스토리가 담긴 시에서 연유한 <나타샤와 흰 당나귀> 연작 또한 백석의 나타샤(자야)를 신화 속 바리데기로 치환한 예이다. 속세의 시공간을 초월한 사랑, 그 주체로서의 나타샤는 더 이상 수동적 객체가 아닌 자신의 삶을 스스로 극복해 나가는 이상적 여성상에 다름 아니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인물들 간의 서사는 이전의 작품세계와 그 맥을 같이 한다. 작가는 현실을 갈무리함에 있어 여전히 간접화법을 취한다. 설화 속 상서로운 동물들과 함께 서정적 감성을 자아내는 풍성한 달빛과 별빛, 그리고 그 빛을 닮은 꽃무더기 등은 자못 몽환적이다. 기존과 다른 부분은 작가만의 자전적 삶의 현전(現前)이 더욱 담담히 풀어헤쳐진다는 점이다. 더불어, 작품의 모든 배경이 밤이라는 점이 이채롭다. ‘밤이 피다’라는 금번 전시 주제가 암시하는 자기 성찰, 즉 사유의 깊이가 더해지는 시간이자 공간인 밤에서 비롯된 이야기들이 다양한 함축적 장치로 점철되고, 정적인 시공간인 밤과 생명력이라는 동적인 에너지가 대비되어, 결국에는 극적인 분위기를 선사한다. 이러한 생명력에 관한 사색은 곧 삶의 꿈과 희망에 관한 사색이다. 바리데기의 사랑이 영원한 생명을 암시하는 것처럼, 남녀 간의 사랑을 비롯한 사람과 사람 사이의 사랑이 화면 곳곳에 묻어 나온다.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연분홍빛 자귀나무 꽃은 생의 환희를 의미한다. 자귀나무는 해가 지길 시작할 무렵 입이 오므라들어 서로의 가지를 포옹하기에, 합혼수(合婚樹)라고도 불리며 이에 부부간의 화목을 뜻하기도 한다. 이처럼 작품 속에 드러난 상징물들은 박성휘 작업의 주제의식과 합일된다. 팔색조 음색의 해금을 통해 인생의 희로애락을 노래하는 사람, 알알이 들어찬 보리밭 그림자를 뒤로 한 채 져버린 생명을 회고하는 이, 어딘가에 생명의 샘을 감추고 있을법한 사막을 여행하는 연인 등 삶의 여정에서 켜켜이 쌓인 기쁨과 아픔들이 작업을 통해 희망이라는 진행형의 정서로 바뀌거나 혹은 치유된다. 박성휘 작가가 지속적으로 몰입해온 신화의 원형은 그것이 허구적 신화로서만이 아닌, 여전히 현실에서 투영될 수 있는 사람살이, 그 궤적으로써의 신화이자 이내 생의 모티브이다. 그 누구나 삶 안에서 주체가 될 수 있고, 삶을 묵상하는 이의 마음자리에 따라서 신이 될 수도 있다고 술회하는 작가는, 스스로가 생의 상처를 씻기는 ‘샤먼’을 자처하는지도 모르겠다. 인물 표현이나 화법에 있어서 보다 교감할 만한 형식으로 변화하기를 바라지만, 아물지 않은 만인의 고통을 위로하고 고단한 삶을 보듬었던 바리공주처럼 그녀의 작품세계 또한 때묻지 않은 독특한 매력을 갖고 있다. 부박한 세태처럼 사람과 사람 사이의 애정도 가벼운 시대이다. 사랑의 힘을 믿고 생명의 존귀함에 대해, 삶 안에서의 생명력의 가치에 대해 숙고하는 박성휘 작가의 메시지가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때이기도 하다. 더불어, 그 작품세계를 통해 생의 희망을 공유할 수 있다면 작가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힘이 되고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이다. - 롯데갤러리 큐레이터 고 영 재 박성휘는 전남대학교 예술대학 미술학과를 졸업하고 2006년부터 ‘바리데기’ ‘空놀이’ ‘나타샤와 흰 당나귀’ ‘밤이 피다’ 등의 ‘The Women Story’ 연작으로 5회의 개인전을 가졌다. 아울러 ‘광주전남여성작가회전과 한울회 회원전 등을 통해 작품을 발표하고, 2013.05 광주-전남 가고시마 미술교류전(2013, 일본 가고시마현 역사자료센터 여명관), 밥과 국수(2013, 광주 향토음식박물관), 한일 장애인과 비장애인 미술 동행전(2014, 광주 무등갤러리), 공존의 시간(2015, 광주 국윤미술관) 등의 전시에 참여하였다. 현재 한국미협, 광주전남여성작가회, 한울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이전글 다음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