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식되지 않는 오월- 노정숙 동판화전 페이지 정보 작성자 광주미연 작성일17-04-25 19:13 조회3,746회 댓글0건 관련링크 이전글 다음글 목록 본문 노정숙 <형-87 상처난 기록> (왼쪽), <형 87-1 깊은 잠> (오른쪽). 1987. 아쿼틴트. 60x40cm 부식되지 않는 오월 시간의 기록2노정숙 80년대 동판화를 가슴으로 새기다2017.04.21-05.06메이홀 19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을 지켜본 노정숙은 고등학교 2학년이었다. 바로 위 오빠가 시위대에 참여하여 집안의 불안감이 고조되자, 부모님은 대학가서 데모하는 것을 철저하게 반대했다. 두 눈으로 시민 학살의 현장을 목격한 세대는 내면에 국가공권력에 대한 불신과 두려움이 공존한다. 그녀는 광주의 피비린내 났던 오월, 신군부의 권력에 대한 욕망에 의해서 파괴된 일상과 약자들의 죽음. 그 앞에서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던 자책과 살아있다는 죄책감 등이 자신의 내면에서 그림자가 되어 늘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노정숙은 1984년, 대학 3학년 시절, 서양화 작업실 구석에서 나무 생선박스 안에 비닐을 씌워서 질산 부식 용액을 부어놓고 동판을 부식시키며 혼자 밤새워 동판화를 찍곤 했다. ‘형-84-죽은 자의 무게’ 이 작품은 죽은 자를 짊어지고 무너지고 있는 시공간을 걸어가고 있는 작품으로 엄혹한 정부의 감시 하에서 그녀는 당시에 이 작품을 발표하지 못했다. 이렇게 오랫동안 묻혀 있었던 작품들이 이번 기회에 빛을 보게 된 것이다. 그 판화에 대한 열정은 이어져서 당시에 유일하게 판화학과가 있는 성신여대 대학원을 다니며 작품에 몰입하게 된다. 세상을 바라볼 때, 곧 붕괴될 것 같고 이 평화로운 일상도 곧 사라질 것이라는 근본적인 두려움은 그녀의 80년대 동판화 작업 전반에 나타나는 표현 양상이 되었다. 도망치듯 희미한 빛을 향해 뛰어가는 말의 뒷모습과 무너지는 도시의 배경은 그녀의 내면에 그림자처럼 드리운 광주 80년 오월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려는 자유의지다. 재앙이 일어날 때 인간보다 먼저 피해서 안전지대로 빠르게 대피하는 말의 모습을 통해서 생존에 대한 희망과 자유에 대한 갈망을 초현실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광주 시민들에게 1980년 5월은 재앙처럼 다가왔다. 국민을 지켜야 할 군인이 시민들을 향해 임산부, 어린이에게까지 총을 난사했으니, 당시에 어른들은 6.25전란 때보다 더 잔혹하다고 말했다. 국가공권력이 광주라는 한 도시를 무차별 학살한 그 시대에 광주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살아남았다는 이유만으로 무의식적인 부채의식을 갖고 있다. 특히 현장에서 동지들은 죽고 살아남은 사람들의 트라우마는 평생을 괴롭힌다. 고등학생이었던 노정숙은 피 끓는 시기에 광주민주화운동을 겪고 암울한 군부 독재시대에 청년기를 보내면서 초현실적 상징을 통해 내면을 표현했다. 스페인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는 ‘내란의 예감’이라는 작품에서 스페인의 잔혹한 현실을 거대한 거인의 몸이 찢겨져서 맑은 하늘아래 구조물처럼 서 있는 장면을 그리고 그 거인의 혀가 뽑혀져 허벅지에 널려있는 해체된 육체, 초현실적인 풍경으로 내면을 표현했다. 노정숙의 동판화 ‘Pain 1988-죽은 자의 또 다른 상처’는 희미한 빛의 문이 있으나 공중에 떠서 그 빛을 향하고 있는 직육면체의 판들은 오월에 목숨을 잃은 광주 시민들의 관을 상징한다. 대못이 박힌 관은 광주시민들을 왜곡하고 있는 현실을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행복 1988-진실이 열릴 때 당신은 편히 가리라’ 이 작품도 역시 시간이 지나도 밝혀지지 않는 광주의 진실이 밝혀지기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녀의 작품에 열려있는 문과 빛은 진실을 상징하고 영원을 상징한다. 갈라진 틈 사이로 피는 꽃이나 식물들은 빛을 향해 나아가는 진실을 향한 희망과 염원이다. ‘꽃이 피고 지고 1989-시간의 덧없음’은 진실이 시간 속으로 사라져버리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과 다시 역사의 계단에 진실이 드러날 것을 암시하고 있다. ‘도시 1989-상처 입은 도시의 시간은 흐른다’라는 작품은 보다 구체적인 80년대의 서민들의 삶의 터전인 골목길 모습의 붕괴를 배경으로 갈라진 바닥에서 야생의 식물들이 자라고 있다. ‘舞-89-기록 상자를 열다’는 부유하는 육면체들에서 영혼의 꽃이 춤을 추듯 표현되고 있다. 진실이 드러나고 있음을 표현한 것이다. ‘정지된 시간 1988-광주의 시간은 멈춰버렸다’에서는 시계를 향한 기찻길이 파괴되어 진실이 묻혀 질 것 같은 암울함을 표현하고 있다면, ‘舞-89-기록상자’에서는 오월영령들이 춤을 춰서라도 진실이 밝혀질 것이라는 확신을 보여준다. 노정숙의 작품은 두렵고 암울한 현실 속에서도 끝까지 인간의 자유와 희망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녀의 삶이 인간에 대한 연민에 그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시간이 많이 지났지만, 부식되지 않고 아직까지 현장처럼 살아있는 노정숙의 80년대 동판화 작품들을 한 자리에 모아 오월을 매개로 내면과 대화할 수 있게 되어 기쁘다. - 주 홍 (메이홀 큐레이터, 예술치료학 박사)노정숙 <형-83 죽은 자의 무게>. 1984. 에칭 (왼쪽), <형-87 초가을>. 1987. 아쿼틴트. 60x80cm (오른쪽)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이전글 다음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