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변만화하는 세상의 이미지-'이미지 스펙트럼' 페이지 정보 작성자 광주미연 작성일16-04-08 17:41 조회5,144회 댓글0건 관련링크 이전글 다음글 목록 본문 천변만화하는 세상의 이미지 2010년 제8회 광주비엔날레 마시밀리아노 지오니 예술총감독은 당시 기자간담회에서 트리스타 짜라(Tristan Tzara)의 “이미지가 해석되면 저널리즘이 되고 만다”는 말을 인용하면서 요즘처럼 작가만이 아닌 모든 사람이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시대에 과연 작가는 무엇인가를 고심해야 할 때라고 했다. 한 컷의 사진이 지닌 힘과 파장이 엄청날 수도 있지만, 담긴 의미 내용과 상관없이 그 자체로서 기록성을 띤 시각이미지들이 끊임없이 생산되는 이 시대에 과연 사진의 위치나 가치는 무엇인가라는 문제제기이기도 하다. ‘이미지 과잉의 시대’라는 요즘에 사진은 예술이나 전문영역을 넘어 누구나 언제 어디서나 무엇이든 원하는 이미지를 담아 간직하고 다른 사람과 공유하는 일상의 문화가 되어 있다. 사진의 본래 기능은 이미지의 기록과 저장이다. 하지만 그 대상을 특정한 이미지로 저장하기까지 수많은 요소들의 고려와 선택, 각기 다른 사회적 미학적 시각차, 사물과 현상을 대하는 관점과 깊이의 차이, 이미지의 실체나 진상을 드러내고 전달하는 형식의 독창성 등등이 엮이면서 이미지는 수없이 분화되고 재탄생된다. 그런 면에서 사진은 이미지를 취하는 자의 의식과 태도와 가치관의 차이를 기본으로 대상을 비춰내는 실재성의 정도 또는 정직성과 가변성, 이미지의 개별성과 사회적 관계성, 기계적 테크닉과 외적 요소들의 활용 등에 따라 또 다른 이미지의 세계들을 펼쳐낸다. 그야말로 현대사진은 경이로울 만큼 천변만화하고 있고, 시각예술 현장에서 영역확장은 물론 사회문화적 대우나 금전적 보상가치도 어느 예술장르 못지않게 높아지고 있다. 이와 더불어 독자적 이미지의 세계를 추구하는 전문가들의 영역뿐 아니라 일상문화로서 대중성 또한 계속해서 넓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번 담양 담빛예술창고 기획전 ‘이미지의 스펙트럼’은 그런 사진의 다변화와 일상화 속에서 광주 전남을 기반으로 차별화된 사진미학을 탐구하고 있는 열한 작가의 작업을 통해 현대사진의 세계를 조망해보는 전시이다. 대부분 일관된 작업성향이나 주제의식, 관심사들로 독자적인 세계를 모색하고 있는 작가들이어서 최근 창작사진의 경향을 살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가운데 파운더에 비춰지는 피사체의 진상을 우선하면서도 그 이미지에 배어있는 시간의 퇴적과 서사성에 주목하는 경우로 리일천, 박세희, 박하선, 인춘교를 들 수 있다. 물론 실재하는 대상이더라도 작가가 찾아내고 선택하는 촬영의 조건과 이미지의 연출에 따라 서로 다른 표정들을 보여준다. 리일천은 자연풍경의 일부나 일상 삶의 단편을 본연의 리얼리티와 그 속에 천착된 색깔에 초점을 맞추면서도 그 이미지들 간의 공간관계와 원근의 깊이를 중첩시켜 시적 여운을 녹여 내거나 추상화면과도 같은 구성으로 재해석해낸다. 박세희는 생명의 생장과 소멸을 끊임없이 이동하는 노마드의 연속으로 바라보면서 그 현존의 흔적으로서 이미지를 담아내는데, 생과 사가 함께 투사되는 낯설고 낡은 빈집과 창밖 기념비적인 묘소가 공존하는 지점에서 스러진 어느 삶의 흔적과 현재를 동시에 떠올려 준다. 박하선은 자연과 인간의 접점들을 문명사적인 맥락에서 순례하면서 세상 어느 곳에 남겨진 퇴락한 문명의 흔적을 기록해낸다. 압록강 두만강 건너편 헐벗은 북녘의 산하와 마을을 강물 너머 다른 세상으로 바라보아야 하는 안타까운 시선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인춘교는 세간의 관심 밖에 존재하는 소외지대를 기록하면서 시골 폐교의 쓸쓸한 풍경과 빛바랜 조각상들을 통해 공기처럼 떠도는 세월의 층위와 기억의 심연에 내려앉은 옛 시절을 되비춰낸다. 그런가 하면 김영태, 라규채, 박일구, 이설재는 실재하는 대상들을 찰나적 포착만이 아닌 현상과 가상 사이의 또 다른 이미지로 새롭게 연출해낸다. 김영태는 재개발이 예정된 쇠락한 계림동 골목길에서 도회지 삶의 실핏줄마다 얽혀있는 수많은 시간의 퇴적들을 불러내고 지우기를 반복하면서 어른거리는 공간의 이미지들을 중첩시켜낸다. 대숲에 이는 바람의 흐름을 풍죽 이미지로 그려 온 라규채는 이번에는 한낮 강한 햇살이 측광으로 부딪히는 대나무들을 뒷 그늘배경과 명료한 대비감으로 담아내면서 세상의 보이는 것과 보여지지 않는 것들에 관한 성찰을 흑백 광죽도로 보여준다. 삶의 바다를 연작으로 다루어 온 박일구는 너른 들녘처럼 펼쳐진 연안바다 삶의 터전을 시간의 흔적마저 사라진 통시적 공간으로 바라본다. 새벽녘 아스라한 잿빛 바다에서 그 곳에 기대어 사는 다종다양한 삶의 숨결들을 포착해낸 이미지들은 물결의 일렁임이나 대기의 흐름마저도 숨을 죽인 듯한 경외와 묵언의 세계에 다름 아니다. 대상의 시지각적 이미지들을 다분히 디자인적인 감각으로 재구성해내는 이설재는 집단 속 개인이면서도 개별존재가 상실된 현대사회의 익명성을 흐릿한 인물상과 그들 얼굴을 가린 색색의 둥근 원들로 ‘도트 사피엔스’를 표현하기도 하고, 백자 다완에 안개 속 산봉우리나 마른 나무를 담아 텅 빈 허공에 배치해 놓는 이미지들로 실상과 가상을 혼재시켜 놓는다. 그런가 하면 안희정과 이정록, 정일의 사진은 이미지를 다루고 담아내는 방법에서 실재의 기록 이상으로 사진 외적 작업들이 더해지는 경우다. 안희정은 지난 시절의 시간과 역사의 흔적이 고스란히 배어있는 이 땅 곳곳의 근대기 건물이나 각양각색의 가옥들, 창고 같은 옛 공간들을 디지털이미지로 담아 작고 부드러운 페브릭 큐브들로 재현시켜내는 ‘곳’ 연작을 통해 이제는 아련해진 ‘기억의 재개발’을 유도해낸다. 이정록은 흙기운 진하게 배어나는 들녘이나 문화의 혼재가 만들어낸 이상증세로서 개량가옥 등 사진 본래의 사실작업은 유지하면서도 누구나 담아낼 수 있는 이미 존재하는 풍경 그대로보다는 신목 같은 나무에 빛을 뿌리고 터트리며 빛 열매를 송이송이 맺어낸 ‘생명의 나무’를 보여준다. 정일은 세상 속 이미지를 따오되 필요한 부분만을 동그랗게 도려내어 비구상적인 패턴을 만들어내는데, 상하수도 맨홀 뚜껑이나 전기·도시가스·저수전의 표식들, 아니면 도처에서 만나는 이러저런 꽃들과 이파리, 넝쿨의 일부를 담아낸 이미지들을 작은 원형들로 만들고 화면에 둥글게 배치하여 세상 만다라를 펼쳐놓았다. 사실 세상의 실체들은 드러나고 보이는 것만이 전부는 아니지만 발견하고 담아내고 나누면서 이미지는 증폭되고 변이되고 생멸을 거듭하게 된다. 시시때때로 도처에서 만들어지고 떠다니다 어디선가 누구에게는 특별한 의미가 되기도 하는 이미지는 실재의 정직한 실상이든, 여운을 담아 흔들어놓은 잔상이든, 새롭게 가공된 가상이든 그 자체로서 존재성을 가지면서 사회문화적 관계와 의미들을 키워가게 된다. 각자의 시선과 색깔을 담아 세상을 다층적으로 엮어낸 이미지와 사유들을 통해 진화하는 현대사진의 세계를 고루 살펴볼 수 있기를 바란다. - 조인호 전시팸플릿 평문 (광주비엔날레 정책기획실장)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이전글 다음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