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업의 뿌리로서 '동양문화의 원형' 탐구 페이지 정보 작성자 광주미연 작성일16-05-04 20:18 조회4,837회 댓글0건 관련링크 이전글 다음글 목록 본문 화업의 뿌리로서 ‘동양문화의 원형’ 탐구 - 오승우 화백 70년 회화세계 오랜 역사로 전승되는 지역 화맥도 그렇지만 한 가계에서 예술가들이 3대 이상을 이어가기는 흔치 않다. 예향이라 일컬어 온 호남화단에서 조선중기 공재 윤두서 일가나 조선 말 소치 허련 일가와 더불어 근현대기를 잇는 호남 서양화단의 대부 오지호화백의 일가도 그 귀한 예의 하나이다. 그 오지호 일가의 대맥을 잇고 있는 오승우 화백의 초대전이 광주시립미술관에서 있었다. 지난 3월 2일부터 4월 27일까지 열린 이 전시는 오화백에게는 1996년 광주시립미술관에서 ‘한국의 100산’으로 초대전을 가진지 20년만의 자리다. 특히 이번 전시는 오화백의 70여년 화업을 크게 망라해 본다는 점에서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이른 것은 대학 입학 전인 1949년 작을 비롯해 1950년대 [국전] 출품작으로 집중했던 불상과 불교소재 위주의 ‘한국 전통문화’ 탐구, 실재 대상에 상상력을 가미해 초현실적 분위기가 살짝 풍기는 60년대 구상회화, 80~90년대 연작주제로 다루었던 ‘한국의 100산’, 96년 1년간의 중국 체류기간 작업을 포함해 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까지 이어진 ‘동양문화의 원형’ 찾기, 2000년대부터 최근까지 계속되고 있는 ‘십장생’ 연작 등 시기별 관심사를 따라 큰 화업의 흐름을 조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화백의 회화세계를 크게 보면 역시 ‘문화의 원형’에 대한 집중적인 탐구가 두드러진다. 이는 화업의 밑뿌리를 단단히 다짐으로써 독창적 회화세계를 이루고자 하는 예술의지의 집약이라 여겨진다. 이는 한국 구상화단의 거목인 선친 오지호화백의 그늘에서 벗어나 결이 다른 회화세계를 펼치려는 노력이기도 하다. 이점은 먼저 타계한 아우 오승우화백이나, 3대째인 아들 병욱과 상욱에게서도 마찬가지고, 현재 미술수업기에 있는 4대째 손자 주성에게로 이어질 것이다. 집안 내력인 정신과 작업의 뿌리는 중히 여기면서도 그 뿌리를 어디에 두고 어떻게 회화로서 발현시켜내는가는 서로 다른 예술세계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너무도 뚜렷한 주관과 족적을 남긴 선친의 영향은 화업의 대를 잇는 자손에게는 후광이면서 동시에 묻혀서는 안 되는 그늘일 수도 있다. 따라서 선친의 활동에 누가 되지 않으면서도 자신만의 독자세계를 열어야 한다는 작가로서 고뇌가 클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물론 초기 수업기에 선친의 한국적 인상주의 화풍이 자연스레 배어나기도 하지만 일찍이 20대 청년기부터 전통문화에 뿌리를 둔 회화세계를 모색하는데 열의를 쏟게 되었다. 이번 전시에도 포함된 50년대 불상과 법당 등 불교소재 작품들이 그런 초기작업의 예이다. 어떤 면에서는 일찌감치 선친의 자연예찬과는 다른 쪽으로 눈을 돌린 셈인데, “원색적인 색채의 조화가 강렬하고 원시적인 미를 느끼게 하는” 불교미술에서 자연의 광휘 못지않은 회화적 묘미를 발견한 듯하다. ▲ 오승우 <금강계단(통도사)>. 1960. 162.2x130.3cm / <자금성_午門>. 1996. 145.5x112.1cm 해남 대흥사, 김제 금산사, 구례 화엄사, 법주사 팔상전, 통도사 금강계단 등 고찰의 불상과 불단, 고색단청을 두른 법당건축이 주된 대상들이다. 그 노작들로 [국전]에서 4회 연속 특선과 29세 어린 나이에 추천작가로 인정받았고, 이어 경복궁, 덕수궁, 창경궁 등 고궁 고적들을 집중해서 화폭에 담았다. 오화백의 긴 회화여정에서 초기에 속하는 이들 불교·고적 소재의 작업들은 풍경으로서 대상이기보다는 한국적 조형미나 건축미의 화제로 즐겨 다루었다는 점이 주목된다. 이런 특징은 이후 ‘동양문화의 원형’이나 ‘100산’ 연작에서도 마찬가지인데, 그만큼 선친의 감흥위주 회화와는 달리 견고하게 엮어진 의식과 화폭의 조형적 결합에 더 천착했다고 보여진다. ▲ 오승우 <백두산>. 1991. 333.3x218.2cm / <한라산>. 1992. 333.3x197cm 오승우화백의 전통문화에 기반한 창작의지는 화업의 새로운 출구를 찾아 떠났던 1974년 1년간의 유럽여행 중에 더욱 강고해졌다. 도처에서 만나게 되는 “장엄한 건축물들과 조각상들을 비롯해 신필의 경지에 이른 그들의 예술품을 본 후로” 극심한 자괴감마저 들었다. 그런 실의를 딛고 새롭게 찾아 나선 것이 한국의 산천을 제대로 답사하고 그 기운을 체득하기 위한 100산 연작이었다. “산을 그리는 것은 조국을 그리는 일이다”는 생각으로 1983년부터 13년에 걸쳐 가까운 북한산, 관악산을 비롯 백두산, 한라산, 오대산, 월출산 등 전국 곳곳의 산들을 찾아 150여점의 대작들을 그려내었다. 대부분 굵고 힘 있게 내려 긋는 붓질과 갈필의 거친 획들 위주로 산의 큰 골기를 잡아내면서 계절마다 또는 시간대에 따라 달라지는 색감들로 장대한 진경을 이루어 낸 것이다. 이 같은 뿌리에 대한 천착은 우리문화와 연원을 맺고 있는 동일문화권으로 확대된다. 우리와는 문화와 정서가 다른 서양미술의 아류가 되느니 “동양의 원형은 동양의 고적에서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1996년 1년여 간 중국에 머무르며 자금성, 이화원 등 옛 영화의 기념비적 조성물들은 물론 실크로드의 명사산, 운강석불사 등 곳곳의 고대유적 유물들을 현장사생으로 교감코자 하였다. 구도승과도 같은 집념은 중국을 넘어 몽골 보구도한궁, 인도네시아 보로부두르사원, 인도 타구르바리사원 등으로 이어져 풍토와 민족은 다르지만 우리 문화와 연관을 가진 아시아 문명의 보고들을 화폭에 담아내었다. 오승우화백이 집중했던 연작주제에서 가장 최근이 ‘십장생도’이다. 한국인의 의식구조 속에 민속신앙처럼 각인된 장수다복의 염원을 옛 민화나 궁중회화의 도상과 구성을 재해석해서 자유롭게 풀어낸 그림들이다. 장수를 상징하는 천지산천과 갖가지 동식물들이 피안의 이상향에서 평화롭게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모습들이다. 어쩌면 체력이나 시력이 예전 같지 않은 여건과 긴 화업인생을 되돌아보는 시점에서 택하게 된 또 다른 원형 찾기 시리즈라 하겠다. 70여년 화업을 돌아보는 이번 전시에서 초지일관 자연대상의 감각적 외피나 감성적 흥취의 묘사가 아닌 문화나 의식의 근원과 원형을 탐구해 온 원로화백의 한평생 구도의 길에 절로 경의를 표하게 된다. - 조인호 (광주비엔날레 정책기획실장, 월간미술 2016. 5월호)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이전글 다음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