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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학경 다시보기와 아카이브의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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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광주미연 작성일14-11-26 22:38 조회12,55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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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지하 기획자가 ‘차학경 레퍼런스’ 전시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차학경 다시보기와 아카이브의 가치



    포스트모던시대 실험예술 흔적

    자료로 달라지는 평가와 가치

    개인과 공동체 문화자산 키우기


    한 나라의 역사는 말할 것도 없고 어느 개인에 대한 삶의 족적은 그와 관련된 자료들로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어떻게 살았고 무엇을 위해 힘썼으며 당대나 후세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등등은 남겨진 흔적에 따라 그 조명의 폭이 엄청 좌우되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미 세상을 떠난 경우라면 생전에 그가 이루어놓은 활동성과나 자료들이 얼마나 온전하게 잘 보전되고 관련분야의 전문적인 평가로 이어지는가에 따라 전혀 다른 삶의 무게를 갖게 될 것이다.

    광주 동명동 수하갤러리에서 ‘차학경 레퍼런스’라는 전시회가 11월 29일까지 열리고 있다. 차학경(1951∼1982)은 일반 대중은 물론 관련분야에서도 잘 알려져 있지 않다. 한국전쟁 와중에 부산에서 태어나 열 살 때 미국으로 이민을 가 타국에서 성장하고 수업기를 거친 뒤 신예로서 막 창작활동을 시작하려던 31세에 요절했기 때문이다.

    그가 타국에서 의문의 죽음을 당한 뒤 30여년이 지난 지금, 생면부지 광주에서 그의 삶과 예술을 조명하는 전시회가 마련되었다. 전시는 학창시절과 짧은 활동 중에 시도했던 1960년대 개념미술 이후의 회화와 설치, 퍼포먼스, 비디오영상작업 등 다양한 실험작업과 관련 자료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 전시를 기획한 아시아문화전당 정보원의 김지하 책임연구원은 “차학경은 한국의 실험예술 1세대임에도 불구하고 작품활동 대부분이 미국에서 이루어지고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한 것으로 인해 작가의 작품에 대한 지속적인 연구가 이루어지지 못했고, 백남준을 제외하면 미국 휘트니미술관에서 특별전이 열린 유일한 한국작가임에도 국내 예술계에서는 크게 주목하지 않았다”며, 그러나 그는 예술의 실험성을 중요시 여기는 많은 작가들에게 지속적으로 다양한 영감을 제공해 왔다고 말한다.

    10여년에 걸친 기초조사와 자료수집 과정을 거쳐 준비된 이번 전시는 차학경의 비디오영상 몇 편과 그의 UC버클리대학 지도교수나 지인들이 보관하고 있던 실험적 작업의 흔적들, 여러 나라 언어들로 출판된 그의 저술 『딕테 DICTEE』, 그의 창조적 작업들에서 영감을 받거나 그 소재를 재해석해낸 다른 작가들의 작품들로 꾸며져 있다.

    이 가운데 차학경의 ‘입에서 입으로’는 오래된 브라운관 모니터의 지글거리는 영상으로 뭔가를 웅얼거리는 입모양이 투사되다가 한글 모음들이 하나씩 흘러 지나간다. 말과 글자라는 소통기호의 차이를 통해 겉도는 이방인의 존재를 최소 이미지로 반복 재생하는 영상언어다. 또 다른 비디오영상 ‘치환’은 검고 긴 머리칼의 여성 얼굴과 그 뒷모습이 계속 반복된다. 차학경의 동생 앞뒤 모습이 되풀이되면서 작가 자신의 얼굴이 한 컷 슬쩍 끼워 넣어져 있다. 자매간이지만 엄연히 다른 존재인데도 그와 동생을 잘 구분하지 못하거나, 아시아 여성작가로 이름을 얻고 있던 오노 요코와 자신을 혼동하는 미국인들의 반응 속에서 자기존재에 대한 정체성 문제를 독백처럼 담아 놓았다.

    『딕테』의 내용도 이런 문화적 정체성에 대한 자기성찰이 기본이 된 것 같다. ‘문단 열고 그 날은 첫날이었다 마침표 그녀는 먼 곳으로부터 왔다 마침표 오늘 저녁 식사 때 쉼표 가족들은 물을 것이다 쉼표 따옴표 열고 첫날이 어땠지 물음표 따옴표 닫을 것…’. 모국어인 한글 문장을 받아쓰기 소리 그대로 서술한 딕테의 일부분이다. “나는 다른 나라의 언어, 제2의 언어로 말합니다. 이것이 내가 얼마나 멀리 있나를 나타냅니다”라는 그의 글 속에서 자기 뿌리인 모국과 현재의 자신 사이에 존재하는 물리적 거리감뿐 아니라 정신적 공허를 엿볼 수 있다.

    그 역시 영상영화학을 전공한 기획자 김지하는 “차학경의 영상에서 보여주는 파편적 내러티브와 메타 언어적으로 분해되는 이미지들은… 소수자, 여성, 혼종성, 탈식민주의 이론 등 복잡하고 난해한 이론과 사상이 중첩되어 있다”며 포스트 모던 성향의 작품세계로 매체와 형식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실험적 작업을 펼쳤던 그의 작품세계를 새롭게 환기시켜 준다.

    차학경의 실험적 작업과 활동들은 시대를 앞선 창작의 산물들이다. 그러나 ‘차학경 레퍼런스’ 전시와 더불어 되돌아볼 것은 우리가 가진 여러 문화적 자산에 대한 관리와 그 가치를 키워나가는 방법이다. 그것이 지역 공동체문화이든, 시대를 이끌었던 개인에 관한 것이든, 결국 어떻게 발굴되고 조명되는가에 따라 평가가 달라지고, 이런 자료들이 모아지고 쌓이고 공유되면서 문화적인 가치를 더해 갈 것이다.

    한 개인의 삶과 공동체문화는 시대환경에 따라 변해가고, 창작자나 역사의 산 증인들도 시간과 함께 스러져 간다. 당사자인 개인은 물론 지역과 주변의 가치 있는 것들에 대한 관심과 체계적인 보전ㆍ조명이 문화자산을 키워가는 밑바탕이라 여겨진다.

    - 조인호의 미술이야기 (전남일보. 2014.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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